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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17장

택함 받은 자는 진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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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4-13 13:46 조회2,4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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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함 받은 자는 진실하다

 

택함 받은 자는 진실하다

2020년 06월 07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계시록 17:14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일어날 일을 말씀하시며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마 24:21~22)”고 말씀하셨습니다.

환난이 길어지면, 환난이 심해집니다. 그렇게 되면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위해 환난의 날을 감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공연히 미워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미워하여 죽이고 환난이 넘기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 보면, 큰 짐승이 등장합니다. 이 짐승은 스탈린, 김일성과 같은 독재자를 의미합니다. 그 짐승이 전 세계를 지배할 것입니다.

우상을 만들어놓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 앞에 절하게 할 것입니다. 절하지 않는 사람은 다 죽일 것입니다.

그리고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해서 그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만큼 무서운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

 

본문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보면,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이 땅에 큰 환난이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그 환난을 이길 것입니다. 믿음으로 승리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승리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4~18절에 보면,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베드로와 같은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모여 이루어진 교회는 아무리 악한 마귀의 세력이라 할지라도 이깁니다. 예수님께서 이긴다고 말씀하셨으니 이깁니다.

 

본문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보면,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환난이 있고, 우리를 박해하는 세력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하나님을 찾았던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상을 만들어 파는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불러내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택하신 사람을 찾아오셔서 그들을 부르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처럼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을 찾아오셔서 이름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마음 문을 두드리십니다.

 

요한복음 10장 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을 양으로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이름을 불러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에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입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어린 양 예수님과 함께 있는 사람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이깁니다.

첫째, 만주의 주, 만왕의 왕 되시는 하나님께서 이기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시고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함께 살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보면,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사람은 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공로가 있어서, 우리가 남들보다 훌륭해서, 우리가 죄를 짓지 않고 거룩하게 살아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하나님의 자녀를 택하시고 그 사람을 찾아오십니다. 창세기 12장 1~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에서와 야곱은 똑같이 죄인입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도망가다가 돌 베개를 베고 잤습니다.

그 날 밤 꿈에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향한 계획과 야곱에게 주실 복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의 밑에서 심부름하는 어린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찾아오셔서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선지자로 세우셨음을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았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알았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불러주시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의 책임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진실하게 사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진실하게 살려면, 마음이 진실해야 합니다. 말과 행동이 진실해야 합니다. 삶이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 앞에서 진실한 척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인정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인정 받는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사람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껍데기에 속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속사람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속사람이 진실하고 정직한가를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사람은

첫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똑바로 압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신실하십니다.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이 이런 분이신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렇게나 살 수 없습니다.

 

둘째, 내세를 믿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천국과 지옥의 내세가 있다는 것을 알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압니다.

이 세상에서 받는 심판과 장차 하나님 앞에 받는 심판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심판을 받습니다. 이 세상이 심판을 받는 것을 우리가 눈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장차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무서운 심판입니다. 지옥 불에서 영원히 사는 고통은 매우 큽니다. 생각하기만 해도 두렵고 떨립니다.

 

그런데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는 사람은 불못에 들어가 영원히 고통 당하게 됩니다. 교회에 다녔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 거듭나지 못한 사람도 불못에 들어가 고통을 당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진심으로 믿어야 하는데, 믿는 척하는 사람도 불못에 들어가 고통을 당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적당히 믿는 척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신을 속이는 사람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에 보면,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진리를 믿어 구원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예수님이 진리가 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이 진리인 것을 믿는 사람이라야 구원 받습니다.

교회에 다니지만 성경을 읽지도 않고 진리가 무엇인지도 모른다면, 이 사람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지옥에 갈 것을 생각하며 울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지 않아 지옥 불에 들어갈 것을 상상해보세요. 울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습니다(고전 12:3). 우리의 힘으로는 예수님을 믿게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울어야 합니다.

 

주일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봉사하지만, 1주일 내내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위험합니다. 하루 24시간, 주 7일 항상 똑같아야 합니다.

1주일에 하루 교회에 와서 봉사하고 돌아가면 그것으로 충분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스스로 속으면 안 됩니다. 자신이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가 거듭난 사람인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넷째, 예수님의 재림을 믿습니다.

마태복음 24장 40~4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7장 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없어진 사람은 구름 타고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러 간 것입니다.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러 간 것입니다.

 

버려둠을 당하는 사람이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데, 예수님께서 데려가지 않으셨습니다. 버려두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버려두신 사람은 모두 통곡할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시는 것을 볼 것입니다(마 24:30).

 

마태복음 24장 45~4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신앙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람들과 영의 양식을 나누고, 자신이 받은 은혜를 나누다가 예수님을 맞이하는 사람이 가장 복 있는 사람입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고 빈 등만 준비한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예수님께서 버리십니다. 그러므로 등과 기름을 다 준비해야 합니다. 껍데기 신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예수님께서 천국으로 데려가십니다.

 

마태복음 25장 31~4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보면,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사람을 예수님께서 데려가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48~5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오늘 오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늘 오지 않으실 것이라 생각하고 먹고 마시고 동료를 때리는 사람은 예수님께 버림 받습니다.

 

마태복음 22장 11~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 4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양과 같은 성도는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에게 예수님을 대하듯 합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나눌 줄 압니다. 병들었거나 갇혔을 때에 돌볼 줄 압니다.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를 한 가족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염소와 같은 성도는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를 돌보지 않습니다. 바쁘다 합니다. 시간이 없다 합니다.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고도 자신은 예수님을 믿으니 구원 받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염소와 같은 성도는 예수님께서 버리십니다. 예수님께서 데려가지 않으십니다. 염소 노릇을 해서는 안 됩니다.

 

형편이 좋아지면 하겠다고 생각하면 영원히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보세요. 백 배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먹고사는 것으로 인해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리 어려워도 나누고 돌보고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백 배의 복으로 보상하십니다.

결심하기만 해도 복을 받습니다. 모든 것이 생각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를 버리십니까?

첫째, 진실하지 못한 위선자입니다.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마 23:13, 15, 23, 25, 27. 29)”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겉모습은 천사입니다. 그런데 속에는 마귀가 들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철저히 이중적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악했습니다.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켰습니다.

 

둘째, 양심을 저버림으로 믿음이 파선된 사람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 19~20절에 보면,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16~17절에 보면,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얼마나 악독한지, 악성 종양에 비유했습니다. 양심이 화인 맞은 사람입니다. 믿음이 파선된 사람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14~17절에 보면,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얼마나 악독한지 성도들이 아무 말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함부로 말했다가는 맞아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이 교회에서 직분자이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이들은 하나님께 버림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한 사람도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할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에 참으로 진실한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 요셉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했을 때, 요셉은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 39:8~9)”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통해 요셉이 진실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한나입니다.

한나는 아기를 낳지 못했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1)”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나에게 아들을 낳게 해주셨습니다. 사무엘이 젖을 떼자 한나는 사무엘을 데리고 하나님의 집에 나아갔습니다.

한나는 서원한 대로 어린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지켰습니다. 이를 통해 한나가 진실하게 기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나를 축복하셔서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낳게 하셨습니다.

 

셋째, 세리입니다.

누가복음 18장 13절에 보면,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8:14)”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면 바리새인들은 진실하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을 높이는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세리는 진실했습니다. 자신은 죄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세리들은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세리와 같은 사람이 진실한 사람입니다.

 

넷째, 다윗입니다.

열왕기상 15장 5절에 보면,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이 범죄한 적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회개했습니다. 그 후 다윗은 평생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이 세상에 의인은 없습니다. 죄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허물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허물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에게도 허물이 있습니다. 다 똑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려고 한 것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 중에는 진실하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첫째, 가인입니다.

요한일서 3장 12절에 보면,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찾아오셔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창 4:9)”라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가인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 4:9)”라고 대답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몰랐기 때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가인과 같은 사람이 많습니다.

 

요한삼서 1장 9~11절에 보면,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2천 년 전에도 악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교회에 많았습니다. 악독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을 본받아야 합니다.

진실하지 못한 사람, 신앙이 진실하지 못하고 마음이 진실하지 못한 사람은 악합니다.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지 못하게 행동할 수 있습니까.

 

둘째, 라반입니다.

창세기 31장 7절에 보면,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셋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입니다.

이들은 성경을 알고 하나님을 말하면서도 외식하고 악하게 살았습니다.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들 속에는 성령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넷째, 가룟 유다입니다.

가룟 유다는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요 6:70)”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를 가리켜 말씀하셨습니다.

가룟 유다는 돈궤를 맡았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사람들이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갔습니다. 그러고도 죄책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은 30에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얼마나 악독합니까.

 

다섯째, 거짓 선지자입니다.

마태복음 7장 22~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짓되게 살고 죄를 범하고 진실하지 못한 과거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어 진실해져 가고 있습니다. 깨끗한 사람은 우리 중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허물이 많습니다.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믿음이 부족하고 허물이 컸습니다.

야곱은 형을 속여 장자권을 가졌고,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허물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어 진실하게 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하게 살면 이깁니다. 주님과 함께 영광을 얻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사람이 되셔서 승리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지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변화되고 새사람이 되어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아 끝까지 승리하게 하여주옵소서. 그래서 주님과 함께 영광을 받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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