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문을 열라 > 요한계시록3장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회원로그인

요한계시록3장

축복의 문을 열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6 14:48 조회5,599회 댓글0건

본문

축복의 문을 열라

 

축복의 문을 열라

2009년 09월 11일(금요철야)

본문 / 요한계시록 3:20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받은 축복 가운데 가장 큰 축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돈을 많이 번 것입니까? 결혼한 것입니까? 일류대학에 들어간 것입니까? 좋은 직장에 취직한 것입니까?

저는 예수님을 만난 것이 가장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보다 더 귀한 복이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저는 예수님을 직접 만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이었을 때입니다. 죄 많고 고생 많은 세상에서 사는 것보다 천국에 가는 것이 더 낫겠다 생각했지만, 자살할 수는 없으니 금식 기도하다가 죽으려고 생각하고 금식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죽지 않았습니다. 이러다가 40일 동안 굶어도 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금식기도를 시작한 지 사흘째 되던 날, 꼭 죽기로 결심하고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때 제가 기도하는 방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게 “너는 죽었느니라. 나를 위해서 살아줄 수 없겠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간절하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분명하게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나 같은 죄인을 주님께서 필요로 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쓰시려고 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죽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죽는 것을 포기하고, 금식을 중단했습니다.

저는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을 때, 주님을 만났습니다. 바로 그때가 하나님께서 제게 결정적인 축복을 내려주신 시간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세상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많지만, 그 중에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수십 년 동안 예수님을 믿었어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지 못할까요? 문을 열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문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시간에도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인을 주시는데,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문을 두드리시는데, 우리는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밤 예수님께서 문을 두드리시는 소리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주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즉시 문을 여시고 주님을 모셔 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을 모시고 사는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인도해주시는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문을 열기만 하면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축복의 문이 열렸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이것은 순종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하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났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그때그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갔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순종하기로 결심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발걸음을 움직이는 순간이 바로 아브라함의 일생에서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축복의 문을 여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모시고 살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가장 좋은 길입니다. 제일 복된 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제일 좋은 길이 어떤 길인지 아십니다. 우리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가장 완전한 길이요, 가장 좋은 길이요, 가장 복된 길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받은 복이 엄청납니다. 이것을 다 이야기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이 언제부터 엄청난 축복을 받았는가 하면, 축복의 문을 여는 순간부터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순종하기로 결심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아갔습니다. 그 발걸음은 축복의 발걸음이요, 그때부터는 축복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평생 복을 받았습니다.

 

이삭이 축복의 문을 연 것은 흉년이 들었을 때입니다. 창세기 26장 2~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무조건 순종하는 순간이 축복의 문을 여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애굽으로 가고 싶었지만 포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랄 지방에 거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이삭을 축복하셔서 이삭은 마침내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삭이 어디로 가든지 이삭과 함께해주시고 이삭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본 그랄 사람들은 이삭에게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고 말했습니다.

이삭을 보고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얼마나 복을 주시는가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이삭도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그 순간이 축복의 문을 활짝 여는 순간이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무조건 순종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야곱이 축복의 문을 연 것은 형 에서를 피해서 도망갈 때였습니다. 야곱은 도망가다가 벧엘에서 하루 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28장 13~1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꿈에 나타나셔서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날 야곱은 잠에서 깬 후, 믿음의 결단을 했습니다. 앞으로 이렇게 살겠다고 믿음의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서원 기도를 했습니다.

창세기 28장 20~22절에 보면, 야곱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라고 결단하고 서원했습니다. 바로 이 순간이 축복의 문을 여는 순간입니다.

이후 야곱은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고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가는 길은 형통했습니다. 언제나 축복이 따라왔습니다.

 

창세기 29장 6절에 보면,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외삼촌의 딸인 라헬을 만났습니다. 라헬의 인도를 받아 집으로 가니 얼마나 좋습니까. 꼬부랑 할머니가 아니라 예쁜 처녀가 인도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평생의 배필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창세기 30장 30절에 보면, 야곱이 외삼촌 라반에게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 왔을 때, 외삼촌 라반은 가난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가는 길에 언제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까 형통하고 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외삼촌의 집에 와서 일하니 외삼촌의 집이 복을 받았습니다.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창세기 31장 1절에 보면,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개역한글성경에 보면, “야곱이 들은즉 라반의 아들들의 말이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인하여 이같이 거부가 되었다 하는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야곱은 축복을 받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야곱이 꿈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다음날 ‘나는 평생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겠다’라고 결심하고 서원 기도한 이후부터 축복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고 인도해주시고 축복해주시고 높여주셔서 새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다녔던 교회의 장로님 중에 한 분이 참 훌륭하셨습니다. 그분은 본래 잘 사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시골에서 서울로 오셨는데, 가난하니까 친구에게 돈을 빌려 조그마한 사무실을 얻어 인쇄하는 가게를 내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장로님은 믿음이 좋은 분이었습니다. 본래 계시던 시골 교회에서 예배당을 짓는데, 시골이니 땅은 넓습니다.

그 교회의 목사님께서 믿음이 좋으셔서 그런지 ‘내 평생에 두 번 성전 짓겠나?’라고 생각하시고 아주 크게 설계했습니다.

그런데 시골 사람들이 돈이 있습니까? 성전을 짓다가 돈이 없어 중간에 멈추고 말았습니다. 성도들이 술렁대면서 목사님이 욕심이 많았다고 하며 말하기 시작하니까 목사님은 특별 기도를 하셨습니다. 지붕이라도 덮어야 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기도하다가 생각해보니 서울에 가신 장로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짓다가 중단되었는데 나머지는 장로님이 다 지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이 무슨 돈이 있어서 성전을 짓겠습니까? 장로님은 편지를 받고 목사님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권사님의 믿음이 좋아서 장로님에게 “여보,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하나님께서 주시면 지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장로님에게 믿음이 생겼습니다.

주시면 짓고 안주시면 못 짓는 것입니다. 부담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일단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날마다 주시는 대로 조금씩이라도 모아 시골에 가는 사람이 있으면 돈도 보내고 물건도 사서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하겠다고 결단하고 실천했습니다.

실천하는 사람이 무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면 하나님 망신입니다. 하나님께서 많이 주시면 많이 보내고, 적게 주시면 적게 보내며 실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급하셨는지,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켜주셨습니다.

큰 회사에서 인쇄물을 장로님의 인쇄소에 맡겼습니다. 조그만 인쇄기가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큰 회사가 보증을 서고 은행에서 돈을 빌려 최신식 컬러인쇄기를 사서 큰 공장에서 맡기는 인쇄물을 도맡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주시는 대로 바치는 가운데 회사가 크게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예배당만 지으신 것이 아니라 장로님의 집도 2층으로 크게 지었습니다.

그때부터 장로님은 부자가 되었습니다. 큰 집을 가지니 시골에서 목사님, 장로님, 집사님, 전도사님들이 서울에 오면 장로님한테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축복하셨는지 그 장로님을 통해 성전을 여러 채를 지었습니다.

제가 서울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갔더니 소문을 듣고 호텔에 찾아오셨습니다. 올림픽 주경기장 옆에 성전을 크게 잘 지었는데 한번 구경하러 가자고 하셔서 집회 없는 시간에 가서 보았습니다. 그것이 세 번째 지어 바친 성전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계획을 세우시고 소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야곱처럼, 이 장로님처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제게 이렇게 해주시면 이렇게 살겠습니다. 이렇게 주를 위해서 드리겠습니다.”라고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기도한 후,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축복의 문이 열리면 기가 막힌 일이 시작됩니다. 간증거리가 생깁니다. 여러분들 한 분도 빠짐없이 야곱과 같은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요셉이 축복의 문을 연 것은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 뿌리치는 순간이었습니다. 바로 이때가 축복의 문을 여는 순간이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요청을 거절하고 단호하게 뿌리친 것은 죽기를 각오하고 결단한 것입니다. 이 순간에 죄를 범한 것과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비록 그 일로 인해 감옥에 들어갔지만, 감옥에 들어가서 오히려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의 일생에 결정적인 축복의 문을 여는 순간은 유혹을 받고 단호하게 뿌리쳤을 때입니다.

요셉처럼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치고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거룩하게 산다면 여러분들에게는 축복의 문이 활짝 열려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시는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포로로 붙잡혀가 왕이 주는 음식과 포도주로 더럽히지 아니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목숨을 걸지 않고서는 이렇게 결심할 수 없습니다. 왕의 기분을 건드리면 그 자리에서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목숨을 걸고 거룩하게 살기로 결단합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겠다고 결단한 순간은 다니엘에게 축복의 문을 활짝 여는 순간입니다.

 

성경에 보면, 다니엘이 결단한 이후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모든 박사들보다 지혜를 백 배나 더하시고 해몽하는 특별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의 앞길에 대로가 열렸습니다. 바벨론의 총리가 되어서 나라가 바뀌고 왕이 바뀌어도 계속해서 죽는 날까지 총리로 있으면서 포로 된 지 70년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자기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이런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죄 많은 세상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다니엘처럼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죄와 싸우되 목숨 걸고 싸우며 피 흘리기까지 싸우시기 바랍니다.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죄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보십시오.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그냥 두시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함께하십니다. 축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십니다.

청년의 때에 깨끗하게 살아보십시오. 평생 수지맞습니다. 젊었을 때에 기도 많이 하고, 젊었을 때 은혜 많이 받고, 하나님 앞에 충성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얼마나 축복해주시는지 모릅니다.

 

제가 아는 장로님 한 분은 젊은 시절에 시골에서 살았는데 부산에 왔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얼마나 열심히 봉사하고 충성하는지, 그 교회의 장로님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젊은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교회에서 충성하니 귀하게 여기고 어느 날 조용히 불러서 자네가 참 신앙생활 잘하고 봉사도 잘하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라면서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산도 좋고 밭도 좋고 논도 좋고 골짜기도 좋으니까 땅만 나오면 무조건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싸구려 땅이라도 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분은 싸구려 땅을 나오면 사놓았습니다. 지금은 몇 백 억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젊었을 때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신앙의 지조를 지키며 모든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치고 거룩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이 축복의 문을 여는 순간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축복의 문을 연 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 바치고 싶은 소원을 가질 때였습니다. 사무엘하 7장 1~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나단이 왕께 아뢰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기는 좋은 궁에서 사는데, 교회는 천막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 바치고 싶은 소원이 생겼습니다.

 

역대하 6장 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뭔가 해드리고 싶어 하는 소원, 그런 마음만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보시고 좋아하셨습니다.

 

사무엘하 8장 6절에 보면,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하 8장 14절에 보면,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당시 전쟁에서 지는 것은 완전히 망하는 것입니다. 다 죽고 빼앗기고 노예가 됩니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나라가 없어집니다.

그러나 이기면 그 땅도 다 내 것이 됩니다. 거기 있는 사람이 살아있으면 다 종이 됩니다. 거기 있는 금덩어리가 다 내 것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소원을 가진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소원을 가지는 순간이 축복의 문을 활짝 여는 순간입니다.

 

역대상 22장 14절에 보면,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이 준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준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한 달란트가 30㎏입니다. 거기에 10만을 곱하면 3백만㎏, 즉 3천 톤이 됩니다. 10톤을 실을 수 있는 큰 트럭 3백 대가 필요한 엄청난 양이고 은은 금의 열 배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얼마나 축복하셨는가 상상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소원을 가진 것뿐인데 그 마음을 가진 순간이 축복의 문을 여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다윗과 같은 소원은 아무나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소원을 가지는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이런 소원은 아무나 가지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어서 가지지 못합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보면,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역사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그 소원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사람, 하나님께서 크게 쓰실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는 소원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택하신 사람이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소원을 가집니다.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제가 왜 이렇게 복을 많이 받았나 생각해보니까 바로 이 말씀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예수님을 믿고 은혜 충만한 형님을 따라 부흥회와 산 기도에 다니고 철야기도도 하면서 저도 은혜를 받고 성령의 충만을 받고 믿음이 생기니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다가 주님 앞에 갈까?’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전도를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하고 전도했는데 나중에는 꿈이 커져서 이 나라 국민을 모두 예수 믿게 해야겠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완전히 복음화 해야겠다는 소원이 생겼습니다.

그런 일을 하려면 훌륭한 목사님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러려면 공부도 잘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신학교에서 공부한 후 훌륭한 목사님이 되어 이 나라 국민을 몽땅 예수 믿게 해야겠다는 소원이 생겼습니다.

누가 이야기해준 것도 아닙니다. 누구한테 말하고 다니지도 않았고, 마음속에 가지고 일기장에 쓰고 일생의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어렸을 때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소원을 가진 순간이 바로 축복의 문을 여는 순간이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받고 공부했습니다. 대학교에 갈 때에도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뒤돌아보니까 제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소원을 가졌을 때가 평생 복 받는 축복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공군 군목이 되었을 때도 전 장병을 예수를 믿게 해야겠다는 소원을 가지고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첫 날 보니 교회에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울며 기도했습니다. “전 장병을 다 구원받게 하려고 하는데, 어쩌면 이 부대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까”라고 기도했습니다. 날마다 출근하면 기지 교회에 가서 기도합니다. “아버지, 전 장병을 다 예수 믿게 해주세요.”라고 울며 기도했습니다.

 

눈물의 기도를 보신 하나님께서 제게 “내가 너를 구원하기위해서도 하늘 보좌를 버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다음에야 구원할 수 있었는데, 네가 전 장병을 구원 받게 하려면 얼마나 희생해야 하는 줄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저는 죽어도 좋으니까 전 장병 예수 믿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아내에게 딸과 함께 친정에 가서 있으라고 하고, 월급은 전도하는 데 쓰겠다고 말했습니다. 커피를 끓이고 과자봉지를 만들어 새벽 한두 시가 되면 보초들부터 찾아가서 “수고하십니다.”라고 인사하고 커피와 과자를 주며 이야기 한 후, 기도해주었습니다. 꼭 붙잡고 기도하면 많은 장병들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주일에 교회에 와서 앉아 있었습니다.

새로 온 군목이 한밤중에 커피를 끓여 다니며 기도해준다는 것이 소문이 났습니다. 부대장이 감동을 받고 교회에 나왔습니다. 어떻게 오셨냐니까 예배드리러 나왔다고 해서 앞으로 모셨습니다.

이등병 몇 명만 앉아있는 것을 보고 사무실로 가더니 전 장병 5분 내에 기지 교회로 다 나오라고 방송했습니다. 그 날 미어터지게 모여 예배드렸습니다. 수요예배는 제가 가서 인도하겠다고 해서 1주일에 예배를 스물여섯 번 드렸습니다. 입술이 부르텄습니다.

연말이 되니 부대장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 새해 부대의 목표가 전 장병 신자화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십계명을 외우게 하고,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외우게 했습니다. 그래서 1년 만에 전 장병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소원을 가지는 순간이 축복의 문을 여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소원을 많이 가지시기 바랍니다.

 

사르밧 과부가 축복의 문을 연 것은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에 순종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아들과 함께 먹고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엘리야의 말을 듣고 순종하여 엘리야에게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서 대접했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기근이 끝날 때까지 3년 반 동안 곡식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열왕기상 17장 15~16절에 보면,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주의 종을 대접할 기회가 아무에게나 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기회를 주신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까? 그대로 믿는다면 실천에 옮기시기 바랍니다. 나도 먹을 것이 없는데 무엇을 대접하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축복의 문은 열립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을 대접한 것과 같기 때문에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돌이켜 볼 때, 목회를 하면서 이렇게 축복을 받는 비결을 알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수영로교회가 부산에 개척교회로 세워져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수만 명이 모이는 교회로 축복받은 것은 제가 마음속에 중요한 결심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기로 결심하는 그 순간이 바로 축복의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에게는 자기 생각이 있습니다. 자기 꿈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꿈을 가지고 생각한 것을 평생 따라다닙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이 없습니다. 저는 전 세계를 복음화하기 위해 일하고 복음을 전하려는 꿈과 욕심이 있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에서 목회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어디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디든지 좋으니까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는 곳에 가서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다가 주님 앞에 가리라고 결단했습니다. 그 생각이 저를 축복받게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종은 주인의 뜻대로 따라야 합니다. 그러니까 제 마음대로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공군 군목으로 제대한 후 서울에서 오라는 교회가 다섯 군데가 있었습니다. 어느 교회로 갈지 몰라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가라는 곳으로 가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제대할 때가 다 되어 마음은 급한데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먼저 연락이 오거나 찾아오는 곳에 가겠습니다.”라고 기도했더니 부산에서 개척하자는 전화가 먼저 왔습니다.

그래서 1주일 동안 특별 기도를 하는데, 목요일부터는 기도하기만 하면 수천 명이 모여 있는 환상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양떼를 버리고 어디를 가겠니?”라고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개척하라는 것인 줄 알고 순종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수영로교회입니다.

그 당시에는 상상하지 못 했지만, 오늘날 이루어진 것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그때 제게 환상을 보여주셨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영로교회에 일어나는 역사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려고 하는 종에게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자기가 계획을 세워놓고 그렇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자기 멋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주님, 내게 말씀하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옵소서. 하나님 나는 말씀에 순종하겠나이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줄 믿습니다.

 

축복의 문을 열기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위한 소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대로만 순종하기로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거룩하게 살기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축복의 문이 활짝 열릴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여러분의 생애가 완전히 달라질 줄 믿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22장

 

 

 

 

 

 

 

 


접속자집계

오늘
949
어제
1,471
최대
7,648
전체
1,343,865
회사소개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Copyright © dalant.or.kr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