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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난 신자의 증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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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26 11:31 조회3,2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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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난 신자의 증표

 

거듭난 신자의 증표

2004년 07월 25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일서 5:1~3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십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에스겔 18장 23절에 보면,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사랑이 많으시기에, 죽어 마땅한 악한 자들조차 자기 죄로 인해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시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을까요.

 

마태복음 11장 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10장 13절에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3장 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거듭난 신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교회에 출석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자기 자신을 살펴서 나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정말 거듭난 신자인지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듭난 신자에게 있는 증표는

첫째, 믿음이 있습니다.

거듭난 신자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확실히 믿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6~17절에 보면,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지식을 통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믿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이기에 이러한 신앙고백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진 자체가 거듭난 자의 증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본 적 있습니까? 2천 년 전에 오신 예수님에 대해 전해 들었을 뿐, 직접 만난 적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살아계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이것을 믿는 것 자체가 기적 아닙니까.

거듭난 자가 아니면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우리가 거듭난 자임을 증거해줍니다.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 보면,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거듭난 자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고 합니다. 믿음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그의 믿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또한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씁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 괴로워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기뻐합니다. 이것이 거듭난 자의 증표입니다.

 

둘째, 회개가 있습니다.

회개는 거듭난 신자의 증표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에게는 반드시 회개가 있습니다. 회개하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믿음으로 구원 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갑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고 외쳤습니다.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회개는 천국에 들어가는 열쇠와 같습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옥에 갈 사람이 천국에 가게 되어 천국 백성이 한 명 더 늘었으므로 예수님께서 더욱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심으로 회개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열매가 다릅니다. 진심으로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3장에 보면, 세례 요한이 요단 강에서 세례를 베풀 때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나와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죄를 자복하지도 않고 회개하지도 않고 세례를 받으려고 오는 것을 보고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마 3:7~10)”고 무섭게 책망하며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 3:11~12)”고 경고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향하여 무섭게 책망한 것은 그들이 불의한 행위를 하면서도 경건한 척하며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를 받겠다고 세례 요한에게 나아온 것은 잘 한 것입니다. 다만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는 회개가 없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는데,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회개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죄가 아무리 많아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회개할 수 없습니다.

또 자신의 죄를 알고 있지만, 죄를 끊어버리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죄의 맛이 좋아서 젊었을 때에 죄의 낙을 실컷 누리다가 죽기 전에 회개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죽는 날을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데도 그때 가서 회개하겠다고 고집하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회개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감동을 주시고 깨닫게 해주셔야 회개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간섭하심으로 저절로 눈물이 흐르고 통회자복하는 가운데 자신의 죄를 회개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2장 36~39절에 보면,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때 회개한 사람이 3천 명이나 되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행 2:41). 바로 이들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거듭난 신자에게는 회개가 있습니다.

 

셋째, 사랑이 있습니다.

거듭난 신자에게는 믿음이 있고, 회개가 있을 뿐 아니라, 사랑이 있습니다. 믿음이 자랄수록 믿음만큼 사랑이 있습니다. 내게 사랑이 얼마나 있는가를 보면, 믿음의 크기를 알 수 있습니다.

한두 번 전도했다고 해서, 열심을 낸다고 해서 다 믿음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의 믿음은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작은 사랑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도 가지고 있습니다. 짐승도 자기 새끼는 사랑할 줄 압니다.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은 자기를 좋아하는 주인이 집에 들어오면 껑충껑충 뛰어오르며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합니다. 그러나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오면, 집에서 나오지도 않습니다.

 

거듭난 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다 사랑합니다.

더 나아가 원수까지도 사랑합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람은 가장 큰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거듭난 신자는 행함이 있고 진실함이 있습니다. 믿음이 큰 사람들, 큰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원수까지도 사랑하여 그를 위해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이것은 사랑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축복할 수 있는 사랑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44~4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프리카 선교사인 슈바이처는 “기독교는 사랑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내가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신이 거듭난 신자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는 증표가 사랑으로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인생은 크게 세 종류의 사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남의 것을 빼앗으려고 기회를 노리는 거비와 같은 인생이 있습니다. 둘째, 열심히 일하여 재물을 쌓아놓고 나누어줄 줄 모르는 개미와 같은 인생이 있습니다. 셋째, 부지런히 일하여 재물을 모으되 나누어주며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꿀벌과 같은 인생이 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문제가 많고 살아가기 어려운 것은 거미와 같은 인생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꿀벌과 같은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꿀벌과 같은 사람이 많을수록 이 세상은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신자는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변화가 있습니다. 은혜를 받은 만큼 변합니다. 믿음이 성장하는 만큼 변합니다.

마귀의 성품이 없어지고, 하나님의 성품이 이루어집니다. 어둠의 자녀가 빛의 자녀로,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됩니다. 착하고 의롭고 진실한 빛의 열매를 맺습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난 신자들이 남을 돕고 사랑을 베푸는 착한 행실로 인해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워지는지 모릅니다. 이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장애인 복지시설이 231곳 있습니다. 그 중에 기독교단체가 100곳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체의 44%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어느 종교에도 포함되지 않는 일반단체가 운영하는 곳이 91곳으로 39%이며, 천주교는 38곳으로 16%, 원불교와 안식교는 각각 1곳이 있습니다.

이처럼 장애인들을 돕는 일에 기독교가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외국인 근로자도 많이 있습니다. 이들을 고용하는 일부 업체에서는 일만 시키고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고 때리고 위협합니다. 병들거나 다치면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한국인이라면 이를 갈고 복수하려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그들을 돌봐주는 사람도 있고, 받지 못한 임금을 대신 받아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을 무료로 치료해주고 그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습니다.

 

북한이탈주민 중에는 처음에는 정착금으로 살았지만, 살아가기가 점점 어려워서 낙심하여 술로 방탕하다가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로 인도되어 교회에서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통해 안정을 찾고 바르게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북한이탈주민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독교인입니다. 앞으로 남북이 통일되면, 1천만 기독교인들이 2천만 북한 동포들을 감당해야 할 줄 믿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사랑은 언제나 주는 것이다. 주는 것은 받는 것보다 행복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의 표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원수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 받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은 사랑의 절정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에 보면,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대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사랑의 빚을 많이 졌습니다.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사랑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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