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할 세가지 마음 > 요한일서3장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회원로그인

요한일서3장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할 세가지 마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7-04 22:37 조회3,600회 댓글0건

본문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세 가지 마음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세 가지 마음

2005년 07월 15일(금요철야)

본문 / 요한일서 3:11~15

 

하나님께서는 이새의 아들들 중에 한 명을 택하셔서 왕으로 세우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이새의 집에 보내셨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이새의 아들들을 한 명씩 살펴보았습니다. 사무엘의 눈에는 이새의 아들들이 모두 잘 생겨 보였습니다. 늠름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왕이 될 만한 외모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이새의 첫째 아들 엘리압을 보고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삼상 16:6)’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새의 둘째 아들, 셋째 아들 역시 사무엘의 눈에는 훌륭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그들이 왕이 될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에게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새의 첫째 아들, 둘째 아들, 셋째 아들을 외모로 보면 훌륭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다 부족해 보였습니다.

이새의 막내아들 다윗은 아직 어렸습니다. 들에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두 다윗은 왕이 될 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윗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보시고 사무엘 선지자에게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삼상 16:1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사람을 볼 때에 사람의 외모를 봅니다. 외모가 얼마나 잘 났는가를 봅니다. 학벌이 얼마나 좋은가를 봅니다.

출세해서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는가를 봅니다. 재산이 얼마나 많은가를 봅니다. 얼마나 부자인가를 봅니다. 물론 이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가,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나라에 인재가 많습니다.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돈 많은 부자가 많습니다. 굉장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삐뚤어져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뒤에서 나쁜 짓 한 것이 다 드러나서 망신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외모는 훌륭합니다. 훌륭한 인물이 많습니다. 사람을 볼 때, 먼저 외모를 봅니다. 학벌이 얼마나 좋은가를 봅니다. 사람의 마음은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가져야 하는 세 가지 마음이 있습니다.

첫째,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가는 길이 완전히 다릅니다.

당장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면,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천국에 가 있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지옥에 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생명은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생명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본문 요한일서 3장 14절에 보면,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사망 가운데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없습니다.

본문 요한일서 3장 15절에 보면,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며 사는 사람은 살인자입니다. 살인은 미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미워하는 마음이 심해지면 죽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미워하는 마음이 살인하게 합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가 어느 날 미움의 영, 악령이 역사하면 제정신이 아닙니다.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없습니다.

 

생명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육신의 생명이 있습니다.

육신의 생명이 있는 사람은 그 안에 영혼이 있습니다. 그래서 분별합니다. 이런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의식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습니다. 죽은 사람입니다.

 

2. 영혼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 안에 하나님, 예수님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생명이 있는 사람과 생명이 없는 사람으로 구분됩니다.

요한일서 5장 12절에 보면,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있어서 그 안에 하나님의 영, 성령이 계시는 사람은 영적 생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지 않는 사람 안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의 안에는 마귀가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마귀가 마음대로 끌고 다니며 죄를 짓게 만듭니다. 나쁜 짓을 하게 합니다. 방탕하게 합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믿어 성령 충만하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소망이 없습니다.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그 사람의 속에 하나님, 예수님께서 계셔야 합니다.

그런데 속에 마귀가 들어있으면, 마귀가 그 사람을 끌고 다닙니다. 마귀가 끌고 다니는 사람이 어떻게 바르게 살 수 있겠습니까. 바르게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은 다 타락했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 그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성령이 계셔서 우리를 붙잡아주셔야 우리가 바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3.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이것은 천국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는 육신의 생명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주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에 영이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영생을 얻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언제 영생을 얻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영생을 얻습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믿음으로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영생을 얻습니다.

행함으로 구원 받지 못합니다. 인간은 행위가 완전할 수 없습니다.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다 죄가 있습니다. 다 부족합니다. 행위로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를 모두 대속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를 모두 사함 받고 구원 받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됩니다. 영생은 믿는 사람이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믿음의 증거는 자신이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압니다.

자신이 믿음이 있어 구원 받았는가, 믿음이 있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가, 믿음이 있어 영생을 얻었는가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 안에 증거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압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자신이 압니다. 자기 안에 증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증거가 있지만,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사람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합니다. 교회를 사랑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증거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열심히 믿는다고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봉사하지만,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보고도 관심이 없습니다.

한국 교회의 성도들에게 믿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합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합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많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어떤 문제든 해결됩니다. 사랑이 있으면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개인의 문제, 가정의 문제, 교회의 문제, 사회의 문제, 국가의 문제 등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사랑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가 그렇게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 믿음이 작은 사람입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줄 알았는데, 마귀의 자녀인 것이 드러납니다.

마귀의 자녀는 형제를 사랑할 줄 모릅니다. 불의한 짓을 합니다. 못된 짓을 합니다. 그것을 통해 마귀의 자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귀의 자녀인 것이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한일서 3장 12절에 보면,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가인이 얼마나 악독합니까. 동생 아벨을 미워하여 죽여버렸습니다. 그러므로 가인은 마귀의 자녀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잘 되는 것을 보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마귀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사랑이 있습니다. 마귀의 자녀에게는 사랑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귀의 자녀는 사람을 미워합니다. 못된 짓을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행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행복이 없습니다.

학벌이 좋은 사람이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희락, 화평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모이면 항상 기쁩니다. 즐겁습니다. 보기만 해도 좋습니다. 사랑하는 마음만 있어도 좋습니다. 기쁘고 즐겁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 모인 곳은 평안합니다. 서로 화평합니다. 언제나 하나가 됩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화평이 있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서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평화, 행복, 축복이 있습니다.

 

헬라어에 사랑을 표현하는 말이 네 가지 있습니다. 에로스는 남녀 간의 사랑, 육체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남자는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는 남자를 좋아하는 사랑입니다.

필레오는 우정을 의미합니다. 친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좋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입니다.

스톨게는 혈육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낳아 기르며 자녀를 얼마나 사랑합니까. 피를 나눈 형제를 사랑합니다. 자신을 낳아주신 부모를 사랑합니다.

아가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완전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온전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최고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가페 사랑을 강조하셨습니다.

 

요한일서 3장 16~18절에 보면,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가페 사랑은

첫째, 주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은 항상 주면서 삽니다. 말로만 사랑하고 아까워서 주지 못한다면, 거짓된 사랑입니다.

사랑은 진실해야 합니다. 정말 사랑한다면, 자꾸 주고 싶습니다. 나누어주고 싶습니다. 베풀어주고 싶습니다. 진실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주면서 삽니다.

그런데 줄 줄도 모르고 받을 줄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사랑이 없는 사람입니다. 성품이 좋고 착하고 훌륭한 것 같은데, 줄 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정을 행복하게 하려면, 서로 아낌없이 주면서 살아야 합니다.

 

둘째, 희생하는 것입니다.

목숨이라도 내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귀한 생명을 우리를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생명을 희생한 것은 다 희생한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숨을 버린 것은 모든 것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희생하는 것입니다.

희생하지 않으면서, 손해 보지 않으면서 사랑하려는 사람은 진실하게 사랑할 수 없습니다. 정말 사랑한다면, 희생하려고 해야 합니다. 희생하려고 해야 베풀 수 있고, 나누어줄 수 있습니다.

 

셋째, 무조건적입니다.

조건을 따지면 안 됩니다. 친구, 가족, 민족은 당연히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친구라서, 가족이라서, 민족이라서 사랑한다면, 그것은 아가페 사랑이 아닙니다.

아가페 사랑은 무조건적입니다.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안아줄 수 있어야 합니다. 품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아가페 사랑입니다.

상대방이 어떠하든지 상대방에게 베풀려고 해야 합니다. 대접하려고 해야 합니다. 희생하려고 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넷째, 선행적입니다.

먼저 행하는 사랑입니다. 상대방이 주었기 때문에 내가 주는 것은 아가페 사랑이 아닙니다. 아가페 사랑은 상대방이 줬든 말든 상관없이 먼저 베푸는 사랑입니다.

상대방이 대접했기 때문에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먼저 대접하는 것입니다. 먼저 인사하고, 먼저 손 내밀어 악수하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 조심해야 합니다. 결혼하면 상대방이 자기에게 얼마나 잘해주는가를 생각합니다. 상대방이 먼저 사랑해주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불행해집니다.

사람에게 기대하지 마세요. 사람에게 기대하면 기대한 만큼 실망합니다. 그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 사람을 만났는데, 돈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뭔가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뭔가 기대했는데, 기대한 대로 되지 않으면 얼마나 밉고 속상하고 실망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기대하지 마세요.

오직 하나님께만 기대하세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궁무진하게 축복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기대하면 절대 실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기대하면 실망합니다.

 

부부 사이에도 기대하지 마세요. 기대한 만큼 실망합니다. 저는 사람에게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에게 어떻게 해줄까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낙심하지도 않습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라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미워하지도 않습니다. 상대방에게 주려고 하지, 상대방에게 기대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삽니다.

돈이 생기면, 기회가 주어지면 그것으로 도우려고 생각합니다. 그 돈이 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아가페 사랑이 아닙니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아가페 사랑이 아닙니다.

아가페 사랑은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까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핍박하는 사람까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38~4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 우리의 인격이 온전해집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만큼 인격이 온전해집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만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때, 우리가 행복해집니다. 우리가 원수까지도 사랑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마음에 천국을 이루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지만, 원수는 사랑하지 못하여 원수가 많다면, 사랑이 깨어집니다. 부분적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행복할 수 없습니다.

마음에 천국이 온전히 이루어지고 온전히 행복해지려면, 제한적으로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누구든지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개척 교회 목사의 사모가 억울하게 누명을 썼습니다. 그것이 소문났습니다. 소문이 돌고 돌아 사모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참자니 기가 막혔습니다. 그렇다고 가서 한바탕하자니 정말 나쁜 사람이 될 것 같았습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죽고 싶었습니다.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사람에 대한 증오심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마음이 지옥 같았습니다. 그래서 울고 몸부림치며 기도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내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니? 그것은 내가 네 원수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네가 원수를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면 네 마음이 지옥과 같지 않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원수를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면 마음이 지옥과 같이 되어 괴롭습니다. 남을 미워하는 사람은 마음이 항상 지옥입니다. 마음에 분노가 있습니다. 항상 화가 나 있습니다. 행복하지 못합니다. 괴롭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남을 미워하여 지옥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을 보지 못하십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용서하지 않고 보복함으로 미운 감정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괴로워집니다. 그러므로 다 용서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원수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에게 손해를 끼치고 우리를 괴롭히는 악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그들을 증오하며 살면, 우리의 마음이 지옥처럼 됩니다.

이 세상에 원수가 많고 우리를 핍박하는 사람이 많지만,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를 용서하고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원수를 위해 기도하다 보면, 원수를 용서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원수가 아무리 핍박하고 미워해도,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희락이 있습니다. 평강이 있습니다. 자유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마음이 천국과 같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마음이 지옥과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해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형편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부족해도 받아주는 것입니다. 포용해주는 것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를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하면 위험합니다. 상대방이 싫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 사랑이 식어버립니다. 이런 사랑은 위험합니다. 이런 사랑은 참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 큰 사람은 상대방이 좋을 때도 사랑하지만,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도 사랑합니다.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아도 사랑합니다. 이것이 위대한 사랑입니다.

이렇게 사랑하면 어디를 가든지 행복합니다. 그 사람의 가정도 행복하고, 그 사람의 직장도 행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실 때, 사람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을 만드시고 사람에게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6~17)”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실 때에 자유를 제한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음대로 죄를 짓게 내버려두셨습니다. 좋은 일도 마음대로 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자유를 통제할수록 사람은 불행해집니다. 사람은 바보가 됩니다. 자유를 통제하면 안 됩니다.

 

자유를 통제하여 아무 자유가 없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북한 사람들처럼 굶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유롭게 경쟁하여 서로 발전해야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러 자유롭게 경쟁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빈부의 격차가 생기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 사랑입니다. 항상 나누어주며 살아야 합니다.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도와주며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랑을 실천하는 곳에는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하며 사는 곳에는 지옥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할 것인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제멋대로 살 것인가에 따라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왜 전도해야 합니까? 우리가 왜 이 나라를 복음화해야 합니까? 이 나라의 국민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이 나라가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나라는 엉망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롬 13:10).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강도 짓을 합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도둑질을 합니까.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도와주려고 합니다. 베풀려고 합니다. 남을 살리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는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곳에는 행복이 이루어집니다.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요한일서

1장

2장

3장

4장

5장

 

 

 

 

 


접속자집계

오늘
951
어제
1,471
최대
7,648
전체
1,343,867
회사소개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Copyright © dalant.or.kr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