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심령이 상한 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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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7 10:28 조회3,409회 댓글0건본문
의로운 심령이 상한 롯
의로운 심령이 상한 롯
2010년 01월 29일(금요철야)
본문 / 베드로후서 2:6~8
이 세상이 극도로 타락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있고 망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두 가지 사건이 구약성경에 있습니다.
하나는 노아 홍수 심판입니다. 노아 시대에 땅이 부패하고, 사람들이 매우 악하고,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비롯하여 모든 생명체를 멸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아의 식구 여덟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모두 멸하셨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심판입니다.
또 하나는 소돔, 고모라입니다. 소돔, 고모라의 백성들이 악하고 타락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황불로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지금은 그 땅이 사해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이 점점 타락하고 약해져서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시면 안 되겠다고 판단하실 때가 오면,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노아 시대에는 노아의 여덟 식구가 구원 받았습니다. 소돔 고모라가 멸망할 때에는 롯과 그의 두 딸이 구원 받았습니다. 롯의 부인은 뒤를 돌아보아서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극소수의 사람이 구원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면, 이 세상에 무서운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 받을 자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4)”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지구상에 교회가 많고, 자신이 크리스천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교회에 왔다 갔다 한다고 해서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목사 중에도 구원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장로 중에도 구원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것 같은데,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과 양심은 일치해야 합니다. 양심이 화인 맞은 사람의 믿음은 가짜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려면, 바르게 믿어야 합니다. 정직하게 믿어야 합니다. 신앙은 정직해야 합니다. 정직하지 않은 것은 다 가짜입니다.
기도를 많이 해도, 전도 많이 하도, 열심이 있어도 양심이 화인 맞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교회에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4)”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바르게 믿어야 합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에게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나홀, 하란이 데라의 아들입니다. 롯은 하란의 아들입니다.
창세기 11장 31~32절에 보면,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식구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다가 하란에 머물렀습니다. 데라는 하란에서 죽었습니다.
창세기 12장 1~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여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따라갔습니다. 날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신앙생활은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붙잡고, 말씀대로 살고,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자기 기분대로, 자기 형편대로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의 표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가를 보고, 말씀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을 때,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아브라함과 함께 갔습니다.
창세기 12장 5절에 보면,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롯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하여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잠언 13장 20절에 보면,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친구를 많은 사람은 손해가 많습니다. 쓸데없이 보내는 시간이 많고, 쓸데없는 짓을 많이 하고, 나중에는 해를 받습니다.
저는 40여 년 동안 목회하면서 누구를 만나든 인사하고 반갑게 대하지만, 마음을 나누고 함께할 수 있는 친구는 몇 명 되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사람과 동행하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인하여 자신도 지혜로워질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지혜를 얻기 때문입니다.
믿음 좋은 사람을 친구로 삼으면, 그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은혜를 받고, 감동을 받고, 새로운 도전을 받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믿음이 좋아집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고, 쓸데없는 소리를 잘 하는 사람을 가까이하면, 똑같은 사람이 됩니다.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이 가까이하는 사람을 보아야 합니다. 그 사람의 인간됨됨이를 알 수 있습니다.
미련한 자를 가까이하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미련해집니다. 그래서 미련하게 행동하고, 미련하게 말합니다.
좋은 친구를 사귀시기 바랍니다.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을 친구로 사귀세요. 가까이하면 점잖아지고, 진지해지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사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을 가까이하세요.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어떤 사람과 함께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축복의 사람과 함께하면, 축복을 받습니다.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하다가 거부가 되었습니다. 롯은 축복의 사람 아브라함을 따라다니다가 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사람과 함께하면, 믿음이 좋아집니다.
창세기 13장에 보면, 이들이 애굽에서 돌아온 후, 아브라함과 롯의 소유가 매우 많아 함께 살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축을 돌보는 목자와 롯의 가축을 돌보는 목자가 서로 다투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8~9)”고 말했습니다.
롯 자신은 조카니까 아브라함에게 먼저 택하라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입니다. 그런데 롯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13장 10~11절에 보면,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롯의 선택은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첫째,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그동안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함으로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롯이 아브라함을 떠나기로 한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롯이 아들 노릇을 하며 아브라함을 아버지로 모셔야겠다고 생각했더라면, 아브라함과 함께 계속 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롯은 아브라함의 곁을 떠났습니다.
여러분이 은혜 받은 교회를 떠나는 것은 여러분이 평생 후회할 만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은혜 받은 교회는 여러분에게 큰 축복이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은혜 받은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평생 후회할 만한 잘못된 선택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좋은 교회를 만나는 것이 평생 축복이 됩니다. 은혜 받는 교회에서 은혜 받으면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 평생 축복이 됩니다.
평생 교회 생활을 하지만, 은혜를 받지 못하고, 다만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예배드리고 돌아가서는 1주일 동안 세상에서 살면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오래된 교회일수록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은 종교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교회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려고 교회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친구 만나기 위해 습관적으로 교회에 오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둘째, 소돔, 고모라를 택한 것이 잘못된 선택입니다.
창세기 13장 13절에 보면,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소돔 땅은 물이 좋고 기름진 땅이었습니다. 소돔 사람들은 아주 잘 살았습니다. 그러나 소돔 사람들은 여호와 앞에 악한 죄인이었습니다. 악하고 타락한 사람이 사는 곳은 지옥이 되어버립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보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축복입니다. 이에 대한 확신을 가지셔야 합니다. 잘 먹고 잘 산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인 것은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가장 가난한 나라인 방글라데시의 사람들이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고 합니다. 반면 잘 사는 나라일수록 자살률이 높고, 국민들이 불행하게 살아갑니다.
잘 먹고 잘 살면, 사람들이 보기에는 행복해보입니다. 그러나 당사자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살면,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장차 천국에 갈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복음화해서 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다 예수님을 믿게 하고, 이 세상을 천국처럼 되게 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살려고 생각하며 살면, 먹고 살 것으로 인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채워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말씀대로 실천해보세요. 저는 이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생각하기만 해도 이루어집니다. 때로는 제가 생각하지 않은 것까지 넘치게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저는 이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며 삽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을 여러분께 자신 있게 전합니다.
이 말씀대로 살아보세요. 믿음으로 살아보세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강과 즐거움과 행복이 넘칠 것입니다.
소돔 사람들은 악하고 타락한 삶을 살아서 유황불 심판을 받아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롯과 그의 두 딸은 구원 받았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해서 구원 받았을까요?
본문 베드로후서 2장 6~8절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롯이 소돔 땅에서 거룩하고 깨끗하게 살 수 있었을까요? 소돔 땅에서 롯은 거룩하게 깨끗하게 살 수 없었습니다.
죄악이 가득한 속에 들어가서 살면, 밤낮 보고 듣는 것이 죄악이요, 그곳의 문화가 죄악으로 가득하다 보니 죄를 지을 기회가 많아집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를 짓게 됩니다.
돌이 많은 곳을 걸어가다 보면, 아무리 조심해도 돌에 걸려 넘어질 수 있고, 돌 때문에 발을 다칠 수 있습니다. 돌이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롯이 말씀대로 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죄악으로 가득한 곳에 살면서 자신도 모르게 죄를 많이 지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말 속에 욕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도 아이들의 말 속에 욕이 많이 있었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고 난 후에는 ‘절대 욕하지 않겠다’라고 결심했습니다.
지금은 제가 생각하기에 제가 누군가에게 욕을 하면, 그 욕을 들은 사람이 그 자리에서 즉사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욕을 할 수 없습니다.
정말 속상해서 욕이 나오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그 사람에게 욕을 하면, 그 사람이 그 자리에서 죽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욕을 할 수 없습니다. 그 대신 축복의 말을 합니다.
특히 나라의 문화와 전통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아브라함 시대에는 일부다처제였습니다. 한 남자가 여자 여러 명과 사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의 문화와 전통이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능력에 따라 많은 여자와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말을 듣고 애굽 여자 하갈을 첩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시대에는 여러 여자와 사는 것이 일반화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네 명의 여자와 살았습니다.
다윗은 많은 여자와 살았습니다. 그런데 다윗과 함께 산 여자들 중에는 처녀가 아닌 사람도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1천 명의 여자와 살았습니다.
그러니 이복형제들 사이에 시기 질투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갈등이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형제들끼리 죽이고 반역행위를 했습니다. 다윗 가의 비극은 여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있지 않지만, 아마 솔로몬의 집은 더 심했을 것입니다. 솔로몬이 이방 여자들을 아내로 삼았으니 얼마나 복잡했겠습니까.
소돔 사람들은 동성애를 집단적으로 공개적으로 했습니다. 동성연애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회는 그나마 괜찮습니다.
동성연애 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공개적으로 하는 사회는 하나님께서 급하게 심판하십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그런 짓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을 심판하시고 멸망시키셨습니다.
사사기 19장에 보면, 베냐민 사람들은 소돔 고모라 사람들과 똑같은 짓을 했습니다. 그래서 6백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전멸했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심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가만히 두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베냐민 지파가 없어질 뻔 했습니다.
미국은 예수님을 잘 믿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미국에는 동성연애가 합법화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동성결혼을 합니다. 남자와 남자가 결혼하고, 여자와 여자가 결혼합니다.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보호하려고 법을 만들었는데, 아슬아슬하게 통과되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이렇게 타락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시지 않으십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마지막 때가 빨리 올 것 같습니다. 인간의 자유를 가장 존중해주는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저버리는 날이 오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소돔 고모라가 불 심판을 받아 멸망할 때, 롯은 어떻게 구원 받았습니까? 이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해지면, 세상 사람들에게 휩쓸려 죄악의 낙을 누리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베드로후서 2장 7~8절에 보면,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롯은 세상 사람들과 함께 죄악의 낙을 즐기지 않고, 그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말미암아 롯은 심령이 상했습니다.
롯은 자신이 범죄했을 때에도 마음 아파하고 괴로워하며 하나님 앞에 회개했지만, 소돔 사람들이 불법을 행하고 음란한 짓 하는 것을 보고 들으며 괴로워하고 탄식하며 마음 아파했습니다. 이것이 의인의 마음이요, 거듭난 성도의 마음입니다.
거듭난 성도라고 해서 죄를 짓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크고 작은 죄를 범하며 삽니다. 거듭난 사람이라고 해도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실수합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본의 아니게 죄를 범하면 괴로워합니다.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그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거듭난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자신도 죄를 지을 때가 있지만, 세상이 음란해지고 악해지는 것을 보며 괴로워합니다. 마음 아파합니다. 이 사람 속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계십니다. 이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허물 많은 롯을 가리켜 의인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을 의인으로 여기십니다. 그래서 소돔 고모라가 불로 심판 받을 때에 롯은 구원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소돔 고모라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죄를 범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집집마다 케이블TV가 들어와서 음란한 영화를 마음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른들은 물론이요, 아이들까지 음란한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도 세상 사람들과 비슷하게 살아갑니다. 이것은 심각한 일입니다.
거듭난 자와 거듭나지 못한 자의 차이는 죄악의 낙을 즐기느냐, 죄악을 고통스럽게 여기고 괴로워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작은 죄를 범해도 마음이 아프다면, 그 안에 성령께서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이 사람은 거룩한 백성입니다. 죄악 된 일이 세상에 벌어지는 것을 보고 마음 아파하며 기도한다면, 이 사람이 그만큼 거룩하다는 의미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음란한 영화를 보고 음란한 마음을 가지면, 성령께서 슬퍼하시고 통탄해하십니다.
그런데도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징계하십니다. 회개하지 않을 수 없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을 그대로 두시지 않으십니다.
사업이 잘 되지 않고, 고통스러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모든 것이 막혀 괴로움을 당하십니까? 자신을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슬프시게 하고 있지는 않는가 생각해보세요. 성령을 슬프시게 한 것이 있다면, 철저히 회개하세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빨리 응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입니다.
악한 세상에서 거룩하게 사는 비결은 철저히 회개하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말세에 승리하는 삶을 살려면,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전도하는 것입니다. 한 영혼을 구원 받게 하는 전도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힘써보세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8~9절에 보면,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서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허물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서로 대접하기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대접하듯 대접한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베드로전서 4장 10절에 보면,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을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열심히 충성 봉사하면, 죄 지을 시간이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11절에 보면,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신중해야 합니다.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처럼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봉사할 때에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환경은 사람이 만들지만,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타락한 인간들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속에 살면서 또 다시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는 환경을 좋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환경 속에 살면서 은혜를 받고 좋은 영향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환경을 좋게 만들어야 합니다.
어느 신학생이 창녀촌에 들어가서 창녀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에게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창녀와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도 그만뒀습니다. 환경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실 때에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보내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범죄하는 곳에서는 그곳에서 빨리 탈출하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했을 때, 요셉을 그곳을 떠났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성과 단 둘이 있으면 안 됩니다. 유혹 받는 자리에서 빨리 피하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죄 지을 수 있는 환경 속에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 있으면 안 되겠다’ 싶으면 그곳을 빨리 떠나야 합니다.
롯도 소돔 고모라에서 탈출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창세기 14장에 보면, 전쟁에서 패하여 소돔 사람들이 다 잡혀갔습니다. 그때 롯과 그의 가족도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318명을 거느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수많은 적을 물리치고, 롯과 그의 가족들을 구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롯에게 경고하신 것입니다.
롯은 이때 소돔 고모라를 떠났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롯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결정적인 실수였습니다.
은혜로운 환경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은혜롭게 만드세요. 교회도 은혜로운 교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직장도 은혜로운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직장이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곳이 되면, 하나님의 축복이 따라올 것입니다.
사랑방도 은혜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은혜 받으셔야 합니다. 교제할 때에도 은혜로워야 합니다. 말씀을 가지고 교제할 때, 가장 은혜를 받습니다.
성도들의 마음은 언제나 말씀을 통해 은혜 받는 모임이어야 합니다. 말씀을 떠난 모임은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먹고 즐기는 모임은 죄 짓기 쉽습니다.
우리는 은혜로운 환경을 만드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은혜로운 환경을 만들어 모일 때마다 은혜 받고, 믿음이 좋아져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 받으실 것이요, 우리는 복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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