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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심령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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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7 20:52 조회3,3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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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심령을 갖자

 

상한 심령을 갖자

20020628

본문 / 베드로후서 2:5~8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우선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요?

첫째,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역사하고 계시고 주장하고 계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시고, 아주 신실하신 분이시고, 만복의 근원이 되심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심을 믿는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찾고 가까이하는 사람은 모든 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가까이하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신 여러분은 참으로 복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서 만복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열심히 하나님을 찾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비밀을 모르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어도 어리석게 믿습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믿는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실 뿐만 아니라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2장 4절에 보면,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를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천사를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의 심판을 내리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베드로후서 2장 5~6절에 보면,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5절에서는 노아 시절의 홍수 심판에 대해, 6절에서는 소돔과 고모라가 받았던 유황불 심판에 대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마치 천천히 도는 연자맷돌과 같습니다. 너무 천천히 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연자맷돌이 돌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연자맷돌은 변함없이 계속 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들어버립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느린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9절에 보면,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범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즉각 심판하신다면 여기에 나와서 앉아 있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죄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인자하심 때문입니다.

심판이 너무 느리지만 반드시 있으므로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쁜 짓을 하는 것은 심판 날에 임할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로마서 2장 5절에 보면,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 심판으로 사라져버리고, 오늘날 사해가 되어 버린 것 등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노아 시대에는 어떠했는지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서 알 수 없지만, 죄악이 세상에 가득차서 어디를 가든지 모든 인간들이 죄 가운데 살았습니다. 특히 마음의 생각이 얼마나 나쁜지, 밤낮 나쁜 짓할 생각만 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냥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창세기 6장 5~7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구체적인 타락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이 타락하면 마지막의 모습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소돔과 고모라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이 계속 타락하다 보면 마지막에는 짐승보다 더 더러운 모습이 됩니다.

짐승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는 모습이 똑같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릅니다. 특히 성적으로 타락하다 보면, 동성연애자가 되어서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섹스를 하게 되는데, 소돔(sodom)이라는 말에 -y를 붙인 sodomy라는 말은 변태성욕을 의미합니다. 짐승들은 그런 짓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짐승이 하지 않는 짓을 사람이 합니다.

 

창세기 19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에 죄악이 가득한 것을 아시고 천사 둘을 롯의 집에 보내셨습니다. 그 천사가 남자의 모습으로 롯의 집에 갔더니 그날 밤에 온 동네 남자들이 찾아와서 “오늘 밤에 내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고 했습니다. 남자들이 두 남자를 데리고 밤새도록 음란한 짓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회 전체가 일반화되어 사람이 할 수 없는 나쁜 짓을 으레 할 수 있는 사회라면 그것은 이미 끝난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나쁜 짓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이 나라의 질서가 유지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은 그들과 동조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서 그 사람들에 대해서 야단칠 수 있는 성도들이 남아 있기 때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동네 사람들도 극소수지만 교회를 향해서 항의하는 것을 저는 단순하게 보지 않습니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쁜 짓에 얼마나 집단적으로 동조하는지도 유심히 봅니다. 양심도 팔아버리고 그들이 다 그렇게 될 때가 오면, 하나님께서 다 쓸어버리실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아직 소망이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열 명 중에 한 명이 “나는 동성연애자”라고 공식적으로 밝힙니다. 이들은 동성연애자들끼리 결혼해서 살 수 있게 법적으로 허락해달라고 합니다.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소돔 고모라가 유황불로 심판을 받은 것은 이와 같이 성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6절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소돔 고모라를 유황불로 완전히 잿더미가 되게 하신 것처럼,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 중에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시겠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해 소돔과 고모라를 하나의 본으로 삼으셨습니다.

 

넷째,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구원을 믿는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3절에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떤 형편에 있든지, 얼마나 죄를 많이 범했든지, 과거에 어떤 짓을 했든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우편 강도를 생각해보세요. 그는 평생 강도 짓을 하고 남을 죽이고 빼앗는 등 못된 짓을 한 강도였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제대로 믿었겠습니까. 안식일을 제대로 지켰겠습니까. 십일조를 제대로 했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일을 뭘 하나 제대로 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는 아슬아슬한 순간에 그는 예수님께서 메시아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주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 23:42)”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부탁한 것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 이름을 부른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자살해버렸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 못 박히실 때, 가룟 유다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주여, 나를 용서해주세요.”라고 했다면 구원받았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승리합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어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롯의 믿음을 보면, 믿음이 별로 신통치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롯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 지방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곳을 떠날 때 조카 롯을 데리고 왔을 뿐입니다.

롯은 아브라함이 믿음이 약해져서 애굽으로 내려갈 때도 따라갔고,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때도 함께 돌아왔습니다. 그 후에 롯이 너무 부자가 되어 복잡해지니까 그 때 아브라함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롯이 아브라함의 곁을 떠난 것은 롯에게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아브라함과 함께 지낸다는 것은 큰 축복인데, 롯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여러분, 은혜 받는 교회에 나오는 것은 축복입니다. 은혜로운 주의 종의 곁에 있다는 것도 축복입니다. 기도생활하고 은혜생활 많이 하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과 함께 교회에 나오고, 그분과 함께 봉사하고, 그분과 함께 지내는 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그러니 아브라함과 산다는 것도 축복이고, 아브라함이 사는 동네에서 사는 것도 축복입니다. 그런데 롯은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떠났습니다.

 

롯은 소돔 고모라 지방으로 이사 갔습니다. 물이 맑고 기름진 땅이었고, 에덴동산같이 아름다웠습니다. 롯은 육신적으로 살기 좋은 것만 생각했지, 그곳이 가장 음란하고 성적으로 타락된 땅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소돔과 고모라 쪽을 택하여 그곳으로 갔습니다. 너무나 불행하고 비극적인 일입니다.

롯은 절대로 소돔과 고모라 지방으로 가면 안 되었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한다면, 절대로 그런 곳에 들어가서 살면 안 됩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은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롯을 그곳에서 끌어내시기 위해 전쟁이 일어나게 하시고, 그 전쟁에서 패하여 모든 재물을 빼앗기고, 포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징계요, 경고요, 사인입니다. “너 여기 있으면 죽는다. 빨리 떠나라.”라고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다 죽이고 다 빼앗겼는데, 롯은 하나님의 은혜로 죽지 않고 포로로 잡혀갔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롯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소돔과 고모라로 들어갔습니다. 모든 재물을 빼앗기고 포로에서 돌아왔을 때 “이제 소돔과 고모라에는 가지 않겠습니다. 잘 살든 못 살든 그저 삼촌 옆에서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라고 결심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듯이, 롯은 또 소돔과 고모라로 들어갔습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에 돌아가서 날마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음란한 짓을 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을 것입니다.

 

두 천사가 찾아왔을 때,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창 19:5)”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롯의 태도를 보면 그가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 같이 되어버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롯은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창 19:7~8)”라고 말했습니다.

자기 집에 온 손님을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말했지만, 어떻게 시집도 가지 두 딸을 나쁜 사람들에게 내주며 “너희 눈에 좋을 대로 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소돔 고모라 땅에서 살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물들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롯의 신앙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롯은 수십 년 동안 그곳에서 살았지만, 불행하게도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했습니다. 자기 두 내외와 두 딸과 사위 될 두 사람을 모두 합하면 6명입니다. 4명만 더 전도했다면, 의인이 열 명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열심히 기도해서 하나님께서 의인이 10명만 있어도 멸하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롯은 전도하지 못했습니다. 자기 때문에 의롭게 살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롯의 신앙 상태를 보면 그가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롯은 두 천사가 소돔과 고모라를 떠나라고 했을 때에 순종했을 뿐입니다. 그것도 억지로 순종한 것입니다. 자꾸 지체하고 떠나지 않으려고 하니 천사가 그를 강제로 끌고 갔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이후, 롯은 산 속에 들어가서 두 딸과 살면서 두 아들을 얻었습니다. 큰딸을 통해 모압이라는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는 모압 족속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작은 딸을 통해 벤암미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는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롯이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인데도 성경은 그를 보고 의인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구약성경에 나오는 의인은 믿음이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롯도 작은 믿음이었지만 믿음이 있기 때문에, 부끄럽고 한심한 롯이지만 성경은 롯을 의인이라고 한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2장 7절에 보면,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구약의 의인은 신약의 성도들과 같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에 대한 별명입니다. 그래서 믿음만큼 의로운 것입니다.

죄가 없어서, 나쁜 짓을 한 번도 하지 않아서 의인이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거짓말한 때가 있고 실수한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을 의인이라고 했습니다. 그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의인이라고 한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2장 8절에 보면,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은 소돔 고모라와 똑같습니다. 우리가 TV를 보거나 영화를 보면, 본의 아니게 음란한 짓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때 음란한 영이 역사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음욕이 마구 생기고, 음란한 짓을 하고 싶은 충동이 생깁니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목사님 장로님이라고 그것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똑같이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 중에도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음란한 충동을 받으면 흔들립니다.

음란의 영의 힘이 얼마나 센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로잡힙니다. 특히 청소년들은 걷잡을 수 없습니다. 마치 화약고에 불붙이는 것과 같아서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롯은 그들의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을 때 괴로워했고, 그 의로운 심령이 상했다고 베드로는 증거하고 있습니다. 소돔 고모라에 살다 보니까 음란한 짓을 보고 듣게 됩니다. 그래서 롯은 괴로워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설교하는 핵심이 이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롯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본의 아니게 음란한 것을 접하거나 음란한 소리를 들었을 때, 그것을 괴로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탄식하고 괴로워하고 상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들이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베드로가 롯의 그 모습을 성경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기서 롯의 의로운 심령을 상했다는 것은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 때문이요, 그들의 음란한 행위를 볼 때마다 믿음이 흔들리고 음욕에 시달리는 자신의 연약함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꾸 흔들리는 연약함을 생각하니 괴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상합니다.

롯은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했을 것이고, 괴로운 마음으로 기도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롯을 성경에서는 의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51편 16~17절에 보면,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입니다. 죄를 범한 사람이 죄를 끊어버리지 않고 번제만 드리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잠언 15장 8절에 보면,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악한 인간이 죄를 범하면서 제사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죄를 범하는 사람이 죄를 끊고 하나님 앞에 통회하고 자복하는 것을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시고 기뻐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다윗도 간음죄, 살인죄 범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철저하게 통회하고 자복했습니다.

다윗처럼 철저하게 통회한 사람이 없습니다. 한 주간씩 금식하는 것은 물론이요, 얼마나 울면서 기도했는지, 눈물이 침상을 썩힐 정도로 눈물 흘리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용서받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상한 심령은 우리가 가져야 할 심령입니다. 죄악이 가득하고 음란하고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상한 심령을 가져야 합니다.

상한 심령을 가진 사람의 눈에는 눈물이 있습니다. 죄악으로 가득한 모습을 보고 슬퍼하는 눈물, 죄 가운데 사는 모습을 보고 괴로워하는 눈물,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하는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상한 심령을 가졌던 롯의 실패한 원인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신앙생활을 소극적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롯이 구원은 받았지만 상 받을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생활을 소극적으로 하지 마세요. 예수님 우편 강도같이 살다가 마지막에 주의 이름만 부르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고, 죽기 전에 꼭 주의 이름을 불러서 구원받아야겠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는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해서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면류관 상급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거룩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거룩하게 살도록 무장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살게 하신 성전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에 보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육체는 육체의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건강할수록 몸에서는 육체의 욕심이 마구 솟아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의 소욕을 따라가지 않고 건강히 살려면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 보면,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께 사로잡혀서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성령과 함께 살아가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능히 육체의 욕심을 절제하고 그것을 결박시키고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성령을 따라 행하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 가운데 살아야 하고, 기도생활을 힘써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4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더러워집니다. 그것을 빨리 회복해서 거룩해지려면, 회개할 뿐만 아니라 은혜로운 기도생활을 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 두 가지를 통해 거룩이 회복됩니다. 여러분이 은혜로운 말씀을 자꾸 듣고 은혜 받으면, 죄악을 회개하게 되고, 죄악을 버릴 마음이 생기고, 거룩하게 살 마음이 생깁니다. 거룩의 힘이 여러분 안에 강하게 역사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며 은혜 받을 수 있습니다. QT를 하세요. 성경을 묵상하세요. 말씀을 통해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항상 성경을 읽으면서 눈물 흘리고 감사하고 감격하는 삶을 사세요. 은혜로운 설교를 듣고 성경공부를 하세요. 그리고 기도생활이 중요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에 대해 걱정하기도 해야 하지만, 제 자신이 가장 걱정됩니다. ‘어떻게 하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목사로서 경건하게 살 수 있을까?’라고 제 자신을 걱정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피곤해도 두 시간 세 시간 기도합니다. 잠이 오지 않을 때에는 한밤중에 일어나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나의 거룩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라고 머릿속에 집어넣고 마음속에 새겨놓아야 합니다.

 

둘째, 음란한 성문화를 만들어가는 세력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항해야 합니다.

구경만 하고 탄식할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서 아주 음란한 영화를 하나가 사회에 문제가 됐다면, 우리가 편지를 보내고 항의해서 극장 문을 닫지 않으면 안 되도록 아주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그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불교에서는 TV 광고에 ‘주일은 쉽니다.’라는 자막이 나와도 이런 것만 나와도 방송국에 전화해서 항의해서 기독교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다. 불과 백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여기 앉아 있는 성도들도 결의하고 뭐만 하나 생기면 수천 명이 하루에 전화해보세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 앞에 내 거룩을 지키기 위해서 말씀과 기도로 무장할 뿐만 아니라, 아주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우리가 죽으면 할 수 없지만, 살아 있는 한 이 땅에서는 절대로 안 된다.”라고 해보세요.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일을 하는 시민단체를 만들고 여러분들이 들어가세요. 아파트에서 통장, 반장 다 하세요. 못된 인간들이 나쁜 짓을 하게 두고, 믿는 사람들이 구경만 하면 안 됩니다.

 

신앙생활을 소극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가 왜 무시당하는지 아십니까? 바보가 됐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가만히 보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앞으로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하시겠습니까?

 

대한민국의 첫 여성 경찰 총경 김강자 씨에게는 딸 둘이 있는데, 그 중에 한 명을 자기처럼 경찰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매춘하는 10대 아이들이 50만 명이 넘습니다. 전국에 창녀들이 깔려있는데, 그 중에 스무 살도 안 된 아이들이 50만 명이 넘습니다.

그러니까 그 어린 아이들이 하루에 한 사람만 만나도 50만 명이고, 세 명만 만나면 150만 명입니다. 이들이 한 달 동안에 상대하는 남자가 천만 명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막아보려고 매일 밤 3시까지 돌아다니고 통제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들어와서 자기 방에서 쓰러져 자도 보람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한 여자가 나서서 그렇게 헌신적으로 일할 때, 한 사람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우리 교회 집사님들 중에도 공무원들 많이 계십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이 이 서장과 같이 사명감을 가지고 일한다면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겠습니까.

지금 공무원의 세계에 보면 불교 신자들의 모임이 굉장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신우회는 다 숨어 있습니다.

저는 부산 복음화는 각 직장마다 신우회를 철저히 조직하고, 그들 모임을 지원하고, 그들이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직장과 학교에서 신우회를 통해 부산을 복음화하는 일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앞장서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음란한 성문화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항해야 합니다.

 

셋째, 열심히 전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가 살 길은 예수님을 믿는 길밖에 없습니다.. 복음화하는 것만이 이 나라를 살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해서 나 자신을 지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 앞에서 섰을 때 칭찬 듣고 상급 받는 성도들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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