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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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28 10:06 조회3,258회 댓글0건본문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
2005년 03월 20일(주일예배)
본문 / 베드로전서 4:12~19
예수님을 믿으므로 구원 받은 저와 여러분을 ‘그리스도인’이라 하고, 영어로는 ‘크리스천(christian)’이라 부릅니다. 크리스천은 본래, 일제 시대에 일본 사람들이 우리 민족을 비하하여 ‘조센징’이라는 말로 불렀던 것과 같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 부르는 이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음을 믿는 사람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2:1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반드시 죽습니다. 이때 육신만 죽는 것이 아니라, 영혼도 지옥에 들어가 영원히 멸망을 당하는 둘째 사망이 있게 됩니다(계 20:14).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사야 53장 5~9절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오시기 700여 년 전에 이러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3장 5~9절에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것을 옆에서 보고 기록한 것처럼,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예언한 이 말씀에 저와 여러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고난을 받으심으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 받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기록했습니다(롬 5:6~8).
다시 말해서 죽어 마땅한 저와 여러분이 영원히 지옥에서 멸망 당할, 저주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을 때,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어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하게 증거해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은혜와 사랑을 무엇으로 다 감사하며 찬양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때때로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감격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게 되는 것도 주님의 놀라운 은혜와 크신 사랑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므로 구원 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려고 할 때, 많은 고난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왕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지만, 도리어 많은 환난과 핍박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왜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일까요?
본문 12~13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 12~13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구나 고난이 오는 목적과 이유를 모른다면 답답할 뿐 아니라 고난이 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오는 목적과 이유를 알게 되고, 고난이 우리에게 축복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상하게 여기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첫째, 우리를 시련하기 위해서입니다.
본문 12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는 누구든지 예수를 믿게 되면,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붙잡혀 채찍에 맞기도 하고, 투옥되기도 했으며, 어떤 사람은 사자의 밥이 되기도 하고 화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시험은 보통 시험이 아니라 불시험입니다.
여러분 중에도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부모나 형제로부터 또는 남편으로부터 매를 맞기도 하고 핍박을 받기도 하며, 집 밖으로 쫓겨나기도 하고, 이혼을 강요당하기도 하며 어려운 일을 당하신 분이 많이 계실 줄 압니다. 저도 어렸을 때 핍박을 받았습니다.
아무튼 우리의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하고,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련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캐나다의 해안도시 밴쿠버에서 내륙인 토론토로 물고기를 운반하는 수산회사에서 일어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초기에는 물고기를 편안하게 하는 환경을 모두 갖추었지만, 2주일간 기차로 운반하는 과정에서 차가 도착하기도 전에 물고기들이 다 죽어 있었습니다. 실무진들이 실패의 이유를 면밀히 검토해 본 결과, 파도가 치고 서로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이라는 자연적인 바다의 서식환경을 생각하지 못하고, 편안하게 과잉보호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알아냈습니다.
그 후 탱크 안에 파도가 생기도록 조류를 만들어내고, 물고기들과 함께 상어 새끼와 작은 문어를 몇 마리 집어넣었습니다. 그 결과 물고기들이 이들에게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피해 다니느라 죽지 않고 모두 싱싱하게 살아있었다고 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환경이 편안하면 신앙이 죽습니다. 그래서 가끔 고난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은혜를 구하다보면 기도의 응답을 받고, 믿음이 쑥쑥 자라나며,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본문 13절에 보면,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한 행위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욕을 먹기도 하고, 고난을 받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 믿기 때문에 교회에서 봉사하고 충성하다가 또는 전도하다가, 하나님을 위해 살다가 당하는 모든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고난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우리 주님께서 영광 중에 재림하실 때, 주님과 함께, 주님을 위해 고난에 동참한 성도들은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고, 주님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보면, 베드로는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핍박을 당하고 욕을 먹게 되면, 복 있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성령이 함께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편안할 때는 성령이 함께하심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환난과 핍박을 당할 때, 불같은 시험을 당할 때, 하나님 앞에 몸부림치고 기도하다보면, 성령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을 확실히 체험하게 됩니다.
남미의 어느 섬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는 최선을 다해 복음을 증거했지만, 원주민들은 토속 종교를 신봉하며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선교사의 얼굴에 침을 뱉고, 집안에 물건을 몽땅 도적질해가고, 못되게 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선교사는 낙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중에 착한 원주민 한 사람이 찾아와 “허송세월 하지 말고 하루 속히 고국으로 돌아가라.”라는 진심어린 충고까지 했습니다. 이 선교사는 이곳에서는 아무런 열매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과연 이곳에 계속 남아있어야 하는지, 떠나야 하는지 특별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때 “나와 함께 여기 머물러 있으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이 자리에 계신다는 음성은 그에게 큰 위로와 평안을 주었습니다. 마음에 큰 감동과 깨달음을 얻은 그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한 결과,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후 이 섬은 일곱 개의 교회와 아홉 명의 목사와 성도들이 7백 명이나 되는 큰 열매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코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본문 16절에 보면, 베드로는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기록했습니다.
베드로는 과거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끌려갈 때 대제사장의 뜰에서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맹세와 저주까지 하며 그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는 복음을 전하다가 채찍에 맞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주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더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변화되었습니다.
인도의 성자 선다 싱(Sundar Singh)이 복음을 전하다가 어느 날 네팔의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그는 마치 사도 바울처럼 감옥에서도 다른 죄수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간수가 그를 냄새가 아주 고약한 독방에 감금시켰습니다. 그리고 손과 발을 묶고 옷을 벗겼습니다. 불행하게도 밤낮으로 거머리가 그의 몸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에 개의치 않고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했습니다. 그를 고발했던 자가, 선다 싱이 고통을 느끼기는커녕 노래하며 행복해한다는 그의 모습을 전해 듣고 몹시 분개하여 “그런 미친 놈을 당장 석방시키라”라고 명령했다고 합니다.
셋째, 우리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본문 17~18절에 보면,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집’은 교회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심판은 불신자들이 장차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지옥에 가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교회에도 큰 환난과 핍박을 통해 심판이 올 때가 있습니다.
요즘 한국의 일부 교회가 교회의 사명을 도무지 알지 못하는 것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환난과 핍박이 오고, 예수님을 믿으면 잡혀 죽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동안 무늬만 기독교인이었던, 믿음이 없는 가짜부터 교회 안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겠다는 참 신자만 교회에 남게 될 것이며, 교회가 깨끗하게 정화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너무나 많은 핍박과 고난 속에 살다보니 하루하루를 오늘이 마지막 날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그런 그가 먹고 살 걱정을 했겠습니까. 노후문제나 결혼을 생각했겠습니까. 오직 흠과 티와 책망 받을 것이 없는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기 위해 더욱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깊이 생각해보면 사도 바울이 당하는 환난과 핍박은 항상 자신을 거룩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교회와 성도들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때때로 고난을 허락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19절에 보면,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 성도에게 오는 고난은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닙니다. 또 이유 없이 오는 것도 아닙니다. 사탄이나 악한 자가 성도를 괴롭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더 큰 축복해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뜻에 의해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고난이 온다 해도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선을 행하는 가운데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길 때, 가장 아름답고 온전하게 만들어주시며,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면류관 상급을 받는 축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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