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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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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2 21:44 조회3,4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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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고난

 

그리스도인의 고난

2009년 04월 05일(주일예배)

본문 / 베드로전서 4:12~19

 

욥기 5장 7절에 보면, 데만 사람 엘리바스는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 가는 것 같으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사람은 고통 속에서 태어나서 평생 고생하면서 살다가, 고통 속에서 세상을 떠나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 보면, ‘고난의 시작’은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고통이 시작됨을 알 수 있습니다. 여인들은 해산의 수고를 해야 되고, 남자들은 얼굴에 땀이 흘러야 겨우 먹고 살 수 있습니다. 고생이 항상 따라 다니는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대부분의 고난은 ‘죄’에서 옵니다. 본문 15절에 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라고 했습니다.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한 행동, 남의 일을 간섭 하는 일로 고난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절대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은 얼마든지 하나님의 백성들을 고난당하지 않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조차 고난을 당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고난당하도록 하신 목적은

첫째, 그리스도인을 연단하기 위해서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2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연단하기 위해서 오는 불 시험이라는 의미입니다.

 

불 시험은 마치 불순물이 섞여 있는 금덩어리를 용광로에 넣어 순금이 되게 하고 정금이 되게 하는 것처럼, 우리를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연단하시는 시험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불 시험이 왔을 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왜 이런 일이 하필이면 나에게 왔을까?’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연단하시기 위해서 불 시험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4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한 가지 시험만 와도 견디기가 힘든데, 여러 가지 시험이 한꺼번에 찾아오면,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그런데 주님은 시험을 당할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려고 오는 시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연단하려고 오는 시험이기에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힘들고 괴롭지만 그 시험을 참고 통과하는 가운데, 우리는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빌립보서 1장 29절에 보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왜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 주셔서, 은혜 가운데 살게 하실까요? 은혜를 받음으로서 주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은혜 받은 만큼 예수님을 잘 믿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을 위해서 고난도 잘 감당하는 사람으로 만드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은혜 받은 성도들에게는 고난이 축복이 됩니다. 은혜 받은 사람에게 오는 고난은, 고난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반드시 고난을 축복으로 바꿉니다.

 

중국의 모택동이 문화혁명을 일으켰을 때, 중국에 있는 모든 선교사들을 추방시켰습니다. 마지막으로 떠나는 선교사 한 분이, 제자 훈련을 받고 중국 교회의 훌륭한 지도자로 자란 중국 목사님과 차를 마시면서 “앞으로 많은 환난과 핍박이 몰려올 텐데 견딜 수 있겠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중국 목사님은 가만히 차를 바라보며 “선교사님, 차가 뜨겁죠? 이 티백이 뜨거운 물속에 들어가서 그 맛을 잃었나요? 아마도 뜨거운 물속에서 진짜 맛을 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저는 이 신앙이 진실이라는 것을 이 환란 속에서 주님 앞에 입증해 보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티백이 뜨거운 물속에 들어가 있으니, 차의 맛이 더 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은혜 받은 성도들은 고난 가운데 더 빛이 납니다.

 

어느 교회 장로님이 공장을 인수받았는데, 3년 동안 계속 적자였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언젠가는 반드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것을 확신하며,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십일조 하는 것은 물론 주일 성수까지 철저히 지켰습니다. 어려움이 가슴을 짓누르면 공장에서 밤새도록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 결과 주변의 모든 공장들이 문을 닫았으나 그 장로님의 공장은 흑자를 내는 유일한 공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고난이 왔을 때, 하나님을 더 가까이하십시오. 고난이 왔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응답 받습니다. 은혜 받습니다. 체험적인 신앙을 가지고 사는 축복의 사람이 됩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받으신 고난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이 고난은 가장 가치 있는 고귀한 고난입니다.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영혼들을 구원하셔서, 천국에 갈 수 있게 하기 위해 받으신 고난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 위하여, 어떤 고난을 당해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핍박이 와도 신앙의 지조를 지키며, 순교를 각오하고 오히려 더욱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고난이 왔을 때, 그 사람이 취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을 알 수 있습니다. 평안할 때에는 참 신앙의 모습을 알 수 없습니다. 고난이 왔을 때, 그 사람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를 보면서 믿음이 있는 사람인지, 믿음이 약한 사람인지 실상이 드러나게 됩니다.

고난을 당할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본문에 보면, 우리 성도들이 이렇게 고난을 당할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자세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13절).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기도 하고, 감옥에 가기도 했습니다. 그가 당한 고난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빌립보서 4장 4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라고 기록했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고난이 왔을 때에 어떤 태도를 가지십니까? 고난을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대단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리처드 범프란트(Richard Wurmbrand) 목사님은 공산 치하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14년간 캄파넬 감옥에서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도 죽을 각오로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범브란트 목사님은 그의 책에서 “감옥 생활을 이 세상 어느 것에도 견줄 수 없는 특이한 황홀경과 같은 기쁨을 맛보면서 살았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 받을 때, 기쁨이 넘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본문 13절에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해야 하는 이유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언제 나타날까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2천 년 전에 오셨을 때는 마구간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오셨지만, 재림하실 때에는 천군천사, 부활한 성도들과 함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오실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심판주가 되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의 영광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는 주님과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7절에 보면,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장차 주님과 함께 받을 영광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주님과 함께 받을 영광만 생각하며,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기쁨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 당하면 복 있는 자”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14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 당할 때,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우리 위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핍박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면, 그들과 친구가 되어 잘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들과 같이 행동할 수 없습니다. 구별되게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순간부터 핍박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믿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5장 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 때문에 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게 된다면 축복으로 알고 기뻐하십시오.

 

마태복음 5장 11~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욕을 먹고, 박해를 당하고, 고통을 당하면 반드시 복이 있습니다. 천국에 가면 엄청난 영광과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당하면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을 때, 얼마나 기뻐했는지, 얼굴이 마치 천사와 같았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스데반이 복음을 전할 때, 하늘 문이 열리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주님이 보좌에서 일어나 스데반을 보고 계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7장 55~56절을 보면,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스데반의 마음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래서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너무 기뻐, 고통이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셋째,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했습니다(16절).

모든 사람들이 금 신상 앞에 절할 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 왕 앞에 끌려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당당했습니다. 왕은 “이제라도 악기소리를 들으면 절을 해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래도 너희들이 절을 하지 않으면 맹렬히 타는 풀무 불에 집어넣을 것이라고 협박했습니다.

그러면서 왕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라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그 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고 담대하게 대답했습니다(단 3:16~18).

저와 여러분도 예수 믿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다가 어려움을 당한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십시오.

 

본문 17~18절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때,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세상을 심판하기 이전에 이 교회 안에서 심판이 먼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면 누가 알곡이고, 누가 가라지인지 알 수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인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인지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순간에 드러납니다. 양인지 염소인지 드러납니다. 등과 기름을 준비한 지혜로운 다섯 처녀인지, 빈 등만 들고 있던 다섯 처녀인지, 마귀의 자녀인지, 하나님의 자녀인지 정확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예배드리다가 들리어 올라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대로 남아서 발을 구르며 가슴을 치며 애통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다 드러납니다.

또 교회가 박해를 받게 되어도 드러나게 됩니다. 평소에는 그 사람의 믿음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박해를 받으면, 배신하는 사람이 많이 나옵니다. 교회가 박해를 받으면,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예수 믿지 않겠다는 사람들조차 많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에 박해가 시작되면 둘로 나누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 양과 염소, 거듭난 자와 거듭나지 않는 자가 구별될 것입니다. 미지근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박해가 오면, 어떤 자세를 취할 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한 성도가 되어서 평소에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하면서 살 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할 수 있는 각오를 하면서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4.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19절).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악한 자에게 욕하거나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눅 23:34). 그리고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7장 59~60절에 보면, 스데반도 돌에 맞아 죽을 때 예수님처럼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죽더라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죽음이 오면, 오히려 기뻐할 것이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눈을 감는 날, 천국에서 눈을 뜨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 황제가 기독교를 핍박할 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자의 밥이 되기도 하고, 화형에 처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찬양하면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로마 황제와 핍박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죽었습니다. 예수님처럼 죽기 위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그들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선을 행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순교했습니다. 이런 성도들로 인해 2천 년이 지난 오늘날, 이 땅에 수십억의 기독교인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 가운데 가장 가벼운 고난이 물질의 고난입니다. 오늘날 미국을 비롯해서 전 세계가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오실 날이 가까워졌다는 증거입니다.

앞으로 더 큰 고난이 올 것입니다. 물질의 고난이 왔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난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고난이 왔을 때,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1930년 초에 미국은 심각한 고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클레어린스 목사가 공장이 밀집된 지역의 한 흑인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 교회의 신자들은 대부분 극빈자들이었으며, 60% 이상이 실직 당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인들이 부르는 찬송은 힘과 희망으로 넘쳐 있었습니다.

그래서 클레어린스 목사님은 교인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지금은 대공황입니다. 도무지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무엇이 그리 즐겁습니까?” 그때 한 교인이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곁에 계신다는 사실이 최고의 희망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땅에 어떤 일이 생겨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어떤 고난이 와도 기뻐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사는 것이 어렵습니까?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더 열심히 기도하고 기쁨으로 찬양하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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