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가 축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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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4-09 17:12 조회2,203회 댓글0건본문
저주가 축복으로
저주가 축복으로
2007년 12월 21일(금요철야)
본문 / 야고보서 2:5
창세기에 보면, 이 세상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주만물과 이 세상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친다고 그것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진화론이 잘못된 것이 드러나서 미국에서는 진화론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목사, 신학박사라도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갑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녀만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을 믿습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죄가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죄를 범하게 되었는가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3장 14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창세기 3장 17절에 보면,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이 범죄한 이후, 저주가 시작되었습니다. 뱀이 저주받았고, 땅이 저주받았습니다. 땅이 저주 받았기 때문에 인간이 고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얼굴에 땀이 나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 16절에 보면,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첫 번째 죽음이 나타납니다. 창세기 4장 8절에 보면,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쳐죽었습니다.
죄를 범한 후 사람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고난이 왔습니다. 그리고 멸망합니다. 이것이 순서입니다.
범죄한 세상에는 저주가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에게는 저주가 축복이 됩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면, 저주를 축복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면 모든 저주가 해소됩니다. 아브라함처럼 축복받습니다.
성경에 보면, 여러 가지 저주가 나옵니다.
첫째, 가난입니다.
가난은 저주입니다. 신명기 28장 17~19절에 보면,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소와 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신명기 28장 44절에 보면, “그는 네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그에게 꾸어주지 못하리니 그는 머리가 되고 너는 꼬리가 될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신명기 28장 53절에 보면, “네가 적군에게 에워싸이고 맹렬한 공격을 받아 곤란을 당하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자녀 곧 네 몸의 소생의 살을 먹을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신명기 28장 55절에 보면, “자기가 먹는 그 자녀의 살을 그 중 누구에게든지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 적군이 네 모든 성읍을 에워싸고 맹렬히 너를 쳐서 곤란하게 하므로 아무것도 그에게 남음이 없는 까닭일 것이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신명기 28장 57절에 보면, “자기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가 낳은 어린 자식을 남몰래 먹으리니 이는 네 적군이 네 생명을 에워싸고 맹렬히 쳐서 곤란하게 하므로 아무것도 얻지 못함이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 야고보서 2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셔서 믿음을 부요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 19:24)”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부자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십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부자는 예수님을 믿기 참 힘듭니다. 가난한 사람의 믿음을 부요하게 하셔서 부자가 되게 하신 것은 있어도, 부자가 예수님을 잘 믿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잘 믿는 가난한 사람도 훌륭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겸손한 부자는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요셉도 거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변함없이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택하셔서 믿음을 부요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꾼을 부르실 때에 가난에 처하게 하셔서 가난 중에 겸손을 배우게 하십니다. 울부짖으며 기도하게 하셔서 큰 은혜를 받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목회자들 중에도 아주 가난했거나 죽을병에 걸렸다가 기적적으로 다기 살아나신 분이 많습니다. 저주기 축복으로 변한 것입니다.
탕자가 계속 부자였다면 아버지께 돌아왔겠습니까. 탕자는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도 먹을 수 없고, 굶어죽을 지경이 되어서야 아버지께 돌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극한 가난을 주셔서 흉년의 때에 기도를 많이 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신 후에 백 배의 축복을 주십니다.
창세기에 보면,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삭이 기도를 많이 했을 것입니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에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그랄 땅에 거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에 농사를 지어 백 배의 열매를 거두고 마침내 거부가 되었습니다.
흉년이 들어 가난해지고 굶어죽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가난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 되었습니다. 가난 때문에 기도하다가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다면, 가난은 축복이 됩니다.
둘째, 질병입니다.
질병도 저주입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을 때에 나타나는 다양한 증세가 나옵니다.
신명기 28장 21~2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네 몸에 염병이 들게 하사 네가 들어가 차지할 땅에서 마침내 너를 멸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폐병과 열병과 염증과 학질과 한재와 풍재와 썩는 재앙으로 너를 치시리니 이 재앙들이 너를 따라서 너를 진멸하게 할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신명기 28장 27~28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애굽의 종기와 치질과 괴혈병과 피부병으로 너를 치시리니 네가 치유 받지 못할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너를 미치는 것과 눈 머는 것과 정신병으로 치시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저주하시는 목록입니다.
질병은 죽음으로 인도하는 지름길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질병은 저주입니다. 그러나 질병으로 인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다면 질병은 축복이 됩니다.
성경에 보면. 백부장의 하인이 중풍으로 고생할 때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얼마나 귀합니까!
질병으로 인해 예수님을 믿고 은혜 받았다면, 그 사람에게는 질병이 축복입니다. 질병을 고치려고 기도원에 갔다가 은혜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병자가 병이 나은 것도 큰 은혜이지만, 병 낫기 위해 기도하다가 주님을 만났다면, 그것은 더 큰 축복입니다. 질병에 걸렸다가 기적적으로 나은 분들은 체험적인 믿음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저는 중학생이었을 때에 축농증이 나았다고 믿음으로 고백했습니다. 그 후 온전히 나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더 이상 재발하지 않습니다. 이런 체험을 하신 분들은 믿음이 보통 믿음이 아닙니다.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질병 자체는 고통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나은 사람은 체험적인 믿음을 가집니다.
히스기야 왕이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왕하 20:1)”라고 말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울며 기도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고 하여 가져와 그의 상처 위에 올리니 그의 병이 나았습니다. 그리고 생명이 15년 연장되었습니다.
셋째, 죽음입니다.
죽음도 죗값이요 저주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죽음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축복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요 11: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 만에 예수님께서는 그를 살려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나사로의 죽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죽으면서도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위해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라고 기도했습니다.
스데반은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영접하시는 것을 보며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스데반의 순교 이후, 성도들은 가는 곳마다 주님을 전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 이후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어나 오늘날 전 세계에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이사야 57장 1~2절에 보면,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 감을 당할지라도 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가도다 그들은 평안에 들어갔나니 바른 길로 가는 자들은 그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개역한글성경을 보면, “의인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 줄로 깨닫는 자가 없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큰 환난이 일어나기 전에 천국에 가도록 하나님께서 편안히 인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잘 죽는 것은 축복입니다. 평소에 유언하십시오. 자녀들에게 남기고 싶었던 말을 평소에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언제 우리를 불러 가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큰 환난이 있기 전에 하나님께서 데려가시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열왕기상 14장 10~11절에 보면, “내가 여로보암의 집에 재앙을 내려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다 끊어 버리되 거름 더미를 쓸어 버림 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 버릴지라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로보암의 집의 모든 사람들은 개들과 새들이 시체를 뜯어먹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아비야는 그 재앙이 있기 전에 편안히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아비야만 편안히 죽게 구별하셨습니까.
열왕기상 14장 13절에 보면, “온 이스라엘이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장사하려니와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는 오직 이 아이만 묘실에 들어가리니 이는 여로보암의 집 가운데에서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음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비야는 하나님을 위해 선한 뜻을 품었고 좋은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려는 뜻을 품은 것만으로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죽을 때에 잘 죽어야 합니다.
넷째, 고난입니다.
고난은 죗값으로 온 저주입니다. 범죄한 이후, 모든 고통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베드로전서 4장 1~3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난이 옴으로 인해 죄 짓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된다면, 그 사람에게는 고난이 오히려 축복입니다.
시편 119편 67절에 보면,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119편 71절에 보면,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아무렇게나 살았습니다. 그런데 고난이 왔을 때, 그릇된 생활을 청산하고, 말씀대로 산다면, 그 고난은 유익이 되고 축복이 됩니다.
고난으로 인해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말씀대로 살며 하나님을 위해 산다면, 그 사람이 당한 고난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어떤 종류의 고난이든지 고난을 당한 분이 많을 것입니다. 그 고난으로 인해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면, 고난이 축복이 됩니다.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사기를 보면, 타락했을 때에 고난이 왔습니다. 고난이 너무 심하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기 시작합니다.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온다면, 고난은 축복입니다.
모세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을 많이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모세를 사용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응답하셨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난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편하게 살면서 애굽 사람들처럼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통해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고난으로 인해 다윗은 많이 기도했습니다. 시편에 보면, 다윗이 많이 기도함으로 거룩하게 살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고난 당할 때마다 엎드리고 기도하고 찾으십시오. 고난은 축복이 됩니다. 고난으로 인해 더 거룩해지고 은혜 받고 큰 축복을 받습니다.
선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는 고난입니다. 전도하고 충성하다가 고난 당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더 큰 영광으로 채워주실 것을 기대하십시오.
사도 바울에게는 육체의 가시가 있어서 그로 인해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12:9)”고 고백했습니다.
교만해질까봐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시려고 고난을 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난이 축복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섯째, 죄입니다.
죄는 고통의 원인이요 저주입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회개하다가 큰 은혜를 받았다면, 그것은 축복이 됩니다. 그리고 죄로 인해 겸손해졌다면, 그 사람에게는 죄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 됩니다.
열왕기상 15장 5절에 보면,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시 아니하였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우리아의 일’이 얼마나 부끄럽고 충격적입니까. 그러나 다윗에게 그 사건이 없었다면, 다윗이 평생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았다고 기록되었다면, 아마 다윗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죄 가운데 사는 사람들을 멸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아의 일’이 너무 큰 것이었기 때문에 다윗은 남을 판단하거나 악담하거나 저주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겸손히 살았습니다. 사울 왕이 악하게 대해도, 저주하거나 악담하지 않고, 끝까지 용서하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보통 은혜가 아닙니다.
자신은 아주 깨끗하게 살았다고 큰 소리 치는 사람들은 은혜 받기 쉽지 않습니다. 과거에 범한 죄로 괴로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겸손해지면,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더 큰 은혜를 주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범죄해서 교도소에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범죄함으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으니 범죄한 것이 오히려 축복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중에는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 별로 없었으나, 죄인들과 세리들 중에는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로마서 5장 20~21절에 보면,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를 많이 범한 죄인은 하나님 앞에 빚을 크게 진 것과 같습니다. 죄를 조금 범한 사람과 많이 범한 사람이 모두 탕감 받았다면 누가 더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까? 그러므로 자신의 죄를 알수록 하나님께 크게 감사하고 크게 충성합니다.
사도 바울은 과거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핍박하고 스데반을 죽였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사도 바울은 겸손했습니다. 누구보다 더 주를 위해서 충성했습니다. 주님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을 영광을 여기고, 더욱 충성하여 크게 열매 맺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딤전 1:13~16)”고 고백했습니다.
과거에 나쁜 짓을 많이 저질렀다 해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축복하십니다. 부끄러운 죄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더 겸손해지고 더욱 충성하셔서 모든 것이 전화위복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섯째, 연약함입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무능한 것이 저주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오히려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29절에 보면,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교만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나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잘 나고 강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시지 않으십니다. 미련하고 약한 사람을 택하십니다.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수가 성 여인을 보십시오. 그 성을 구원하시려고 하실 때, 그 성에 사는 사람 중에 존경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과거에 남편이 다섯 명이나 있었던 여인을 택하셔서 자신이 메시아임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러자 수가 성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 4:29)”라고 외쳤습니다. 사람들은 이 여자가 말하는 것을 듣고 와서 메시아를 본 후에 다 믿고 구원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하고 겸손한 자를 쓰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고 용기를 가지십시오. 연약하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쓰시면,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일곱째, 환난과 재난입니다.
성경에 보면, 환난, 재난은 저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환난을 통해 영광 받은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당한 환난을 통해 요셉을 총리가 되게 하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시고 먹이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큰 민족이 되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길로 인도하셔서 40년간 고생하게 하신 것은 어떻게 보면 죗값입니다.
신명기 8장 16절에 보면, “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것은 마침내 그들에게 복을 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르게 살지 못해서 많이 고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마침내 복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축복으로 인도하십니다.
예레미야 31장 1~3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며 사랑으로 돌보셨습니다.
다윗에게도 환난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환난이 축복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역대상 22장 14절에 보면,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이 준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준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계속 전쟁이 있었고, 환난이 있었습니다. 전쟁 때에 다윗이 앞서 나가서 싸우다가 죽을 뻔 했던 때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이기게 하셔서 모든 것을 빼앗아오게 하셨습니다. 10만 달란트는 3천 톤입니다. 인류 역사상 재산이 제일 많았던 사람은 다윗이라고 과학자들은 말합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저주는 모두 축복으로 바뀔 수 있는 저주입니다. 그러면 진짜 저주는 무엇입니까?
예레미야 17장 5~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음이 하나님과 교회로부터 떠난 것이 진짜 저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지 마십시오. 죽으나 사나 하나님 앞에 나아오십시오.
저주가 축복이 되게 하려면, 예수님께 나아오면 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회개하고 은혜 받고 부르짖으면 됩니다. 어떤 저주라도 축복으로 바꾸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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