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을 행하지 않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3-03-22 14:37 조회1,620회 댓글0건본문
긍휼을 행하지 않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다
20210530
본문 / 야고보서 2:13
에베소서 2장 1~5절에 보면,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습니다. 우리는 진노를 받아야 하지만,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는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큰 사랑으로 인해 우리가 구원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것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신의 행위가 완전해서 자신의 행위로 구원 받을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말과 행실, 마음으로 죄를 범합니다.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본문 야고보서 2장 13절에 보면,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야고보 사도가 왜 이렇게 말했을까요?
마태복음 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긍휼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긍휼을 베풀며 사는 사람은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긍휼을 베풀며 사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십일조를 철저히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긍휼을 행할 줄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긍휼을 버린 사람은 살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여러 번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는 죄를 범했습니다.
긍휼을 행하지 않고 악을 행했을지라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해주실 뿐 아니라 과거의 죄를 완전히 도말하십니다. 과거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했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저와 여러분은 긍휼을 행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5장 11절에 보면,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시고 긍휼이 풍성하십니다.
느헤미야 9장 30~31절에 보면, “그러나 주께서 그들을 여러 해 동안 참으시고 또 주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의 영으로 그들을 경계하시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열방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고도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사오니 주는 은혜로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악했습니다.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니느웨 성을 망하게 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성을 멸하지 않으셨습니다.
요나는 화가 났습니다. 요나는 성읍 동쪽에 초막을 짓고 니느웨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살폈습니다.
해가 뜨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박넝쿨을 예비하셔서 요나를 가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벌레를 보내셔서 다음 날 새벽에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셨습니다.
해가 뜨거워서 요나는 하나님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욘 4:8)”라고 말했습니다.
요나 4장 10~1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긍휼이 많은 분이십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나쁜 사람들입니다. 멸망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사람들을 멸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 3~11절에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여인을 예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비하십니다.
디모데전서 2장 1~4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용납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죄 가운데 멸망하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돌이켜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북한의 김정은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김정은의 마음을 붙드셔서 악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선한 마음을 갖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북한의 동포들이 편하게 살 수 있도록, 우리나라에도 평화가 오도록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를 닮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이 풍성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우리는 긍휼을 행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9장 9~13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가까이하지 않으시고, 죄인들을 가까이하셨습니다. 불쌍한 사람들을 가까이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만큼 긍휼이 풍성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5장 10절에 보면,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해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원수까지도 사랑하려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원수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괴롭힌다 할지라도, 원수를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둘째, 믿음으로 구원 받았기 때문입니다.
평생 교회 다녔다 해서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 다니면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평생 교회 다녔다 해도, 믿음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구원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마귀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를 구분하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믿음은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이 좋아질수록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웃을 사랑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웃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합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형제에게 불의한 짓을 하거나 형제를 괴롭힙니다. 형제를 사랑할 줄 모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요한일서 3장 14~15절에 보면,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살인은 미움에서 시작합니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미워하는 그 사람을 죽인 것과 같습니다. 살인죄를 범한 것과 같습니다.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에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가, 형제를 사랑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은 형제를 사랑합니다. 형제에게 긍휼을 행합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성도는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설교를 들어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긍휼을 행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로마서 12장 8절에 보면,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긍휼 베푸는 것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믿음이 충만합니다. 사랑이 충만합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을 긍휼히 여깁니다. 긍휼 베푸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둘째, 긍휼 베푸는 것을 즐거워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긍휼히 여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긍휼 베푸는 것을 즐거워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러므로 빨리 응답 됩니다.
다윗 왕은 긍휼을 많이 베풀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괴롭히고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긍휼을 베풀었습니다.
다윗은 어려움을 많이 겪었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책임져주셨습니다. 이처럼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십니다.
저는 설교하면서 성도들의 얼굴을 봅니다. 그런데 표정이 굳은 성도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게 깨닫게 하셨습니다. 제게 불만이 있기 때문에 굳은 표정으로 저를 바라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설교하다가 표정이 굳은 사람이 보이면, 저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분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주셔서 저를 용서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분의 얼굴이 밝아질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그분의 얼굴이 밝아진 것을 보며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제가 미워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목회는 제대로 하지 않고 나쁜 짓을 하는 목회자들과 나쁜 짓을 하는 장로님들을 미워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죽으면 비참하게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죄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몰랐습니다.
제가 미워하는 사람을 볼 때, 제 표정이 굳습니다. 그러니 제가 미워하는 사람들이 저를 싫어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을 방해했습니다. 그러니 더 미워졌습니다.
제가 마음으로 그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저를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너는 왜 그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느냐, 그들을 불쌍히 여길 수 없겠니,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없겠니, 그들을 위해 울 수 없겠니, 그들을 사랑할 수 없겠니, 그들을 안아줄 수 없겠니, 그들을 축복할 수 없겠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그들을 사랑하겠습니다. 그들을 축복하겠습니다. 그들을 안아주겠습니다.”라고 대답한 후,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만져주셔서 그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제가 하는 일을 도우려고 했습니다.
30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미국 LA에서 목회자세미나를 인도했습니다. 세미나를 인도하면서 그곳에 참석한 목회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교포들은 1주일 동안 생활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교회에 와서 해소합니다. 그러니 이민 목회하는 목회자들은 한국에서 목회하는 목회자보다 10배 이상 힘듭니다.
그래서 저는 세미나에 참석한 목회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세미나를 인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세미나에 참석한 목회자들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세미나를 인도하거나 집회를 인도하는 제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세미나와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말씀을 전할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긍휼을 행하지 않아 긍휼 없는 심판을 받는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모두 긍휼을 행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 평생의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항상 긍휼을 베풀며 살게 하여주시옵소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긍휼히 여김을 받는 복된 사람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