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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의 시련을 주시는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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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7 09:23 조회4,2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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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의 시련을 주시는 목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의 시련을 주시는 목적

2009년 10월 23일(금요철야)

본문 / 야고보서 1:2~4

 

시편 119편 67~71절에 보면,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교만한 자들이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들을 지키리이다 그들의 마음은 살져서 기름덩이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난은 참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면, 그 고난은 축복입니다. 고난 때문에 회개하게 되었다면, 그 고난은 축복입니다. 고난 때문에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다면 그 고난은 축복입니다.

 

어린 아이에게 쓴 약을 먹이기가 어렵습니다. 먹지 않으려고 발버둥 칩니다. 그래서 숟가락에 약을 담아 입을 손으로 벌려 아이의 입에 넣어 아이가 삼켜버리게 만듭니다. 왜 그렇게 강제로 먹입니까? 비록 쓴 약이지만, 약을 먹기만 하면 병이 낫고, 아이가 건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고난당하지 않고, 평안하게 살고 싶고, 아무런 고생을 하기 싫어해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강제로 고난당하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시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를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셋째, 우리에게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에 보면, 야곱은 고난을 많이 당했습니다.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하여 도망가기 전까지는 그가 고생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야곱은 형님의 장자 명분을 빼앗으려고 별별 짓을 다해놓고, 형이 죽이려고 하는데, 잡히면 장자의 명분과 재산이 무슨 쓸데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만사를 제쳐놓고 도망 갔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고난이 시작되었지만, 그 고난을 통해 점점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나중에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으로 변화되고,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열한 번째 아들로, 어렸을 때부터 채색 옷을 입고, 특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계획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형님들로부터 죽임 당할 뻔 했다가 겨우 목숨만 건지고,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고생문이 열렸습니다.

그때부터 그에게 큰 시련이 왔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시련을 당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요셉은 더 온전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이 되고, 큰 축복을 받아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여 살려서 수십 명의 가족이 나중에는 수백만 명의 민족으로 커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도 고난을 많이 당했는데, 고난의 목적은 똑같습니다.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으로 만들고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해 고난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특히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론이고, 그리스도인들과 성경을 아는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위대한 신앙과 인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13장 2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도 다윗에 대하여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 바치고 싶은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역대하 6장 7~9절에 보면, 솔로몬은 “내 아버지 다윗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더니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그러나 너는 그 성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요 네 허리에서 나올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 하시더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마음을 보시고 아주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을 위해서 성전을 지어 드리고 싶은 마음을 하나님이 보시고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성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지만, 다윗은 성전 건축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며 준비했습니다.

 

다윗은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지만, 다윗이 겪은 믿음의 시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 시련은 짧지도 않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오랫동안 큰 고통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믿음의 시련을 당하게 하실 때에는 목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데, 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사는데도 왜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실까요? 그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도 상하게 할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고, 계획이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

 

다윗과 같이 훌륭한 사람에게 고난과 시련을 많이 당하게 하신 데에는 중요한 세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좀 더 깊이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압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크게 축복하셔서 크게 쓰시려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좀 더 깊이 알아가게 하기 위해 믿음의 시련과 고난을 허락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길은

첫째,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똑바로 알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에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시는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려면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꿰뚫어야 합니다. 자신의 나이만큼은 읽어야 합니다.

 

둘째,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기 좋은 장소가 바로 광야입니다. 광야에서는 사방에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소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절망할 수밖에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그래서 광야야말로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입니다.

여러분이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을 당할 때, 낙심하지 마시고, 지금이야말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때, 광야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함께해주시는 하나님을 아주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모든 것을 준비해놓고 계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당장은 아무것도 없어서 걱정할 수밖에 없지만, 배고파서 먹을 것이 필요하면, 만나가 하늘에서 내려오고 메추라기가 날아왔습니다. 광야에서 사는 40년 동안 굶어죽거나 발이 부르튼 사람, 옷이 해어진 사람도 없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광야 길은 참으로 고달픈 길입니다. 힘들고 괴로워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 불평을 많이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보며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알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순종하기만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면, 또한 책임지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책임지십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하나님이 인도해주시는 것을 체험하면서 살았습니다. 때때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응답 받았는데, 하나님이 모두 책임지시고 다 준비해놓으셨습니다. 한 번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걱정거리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보면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날마다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주시는데도, 밤낮 걱정하고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이었던 사람들은 가나안 땅을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항상 찾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원망 불평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낙심되거나 절망할 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반드시 만나주십니다. 때로는 말씀을 주시고, 때로는 만나와 메추라기와 생수를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게 됩니다.

 

욥은 큰 시험을 당했을 때,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욥 42:5).

하나님을 체험한 후에 욥은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하나님에 대해 귀로 듣고 아는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자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확실히 보았습니다. 의심하래야 의심할 수 없는 체험을 한 것입니다. 욥의 이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전에는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아는 하나님, 주일학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실제로 체험하고,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체험적인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은혜 받고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다가 주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해드리는 방법은 전도라는 것을 알고,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나라 전체를 복음화 해야겠다는 소원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너무 가난해서 중학교에 입학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예전에는 겨울이 되면 집이 얼마나 추운지, 두꺼운 솜이불을 덮고 잤는데, 겨울에는 집에서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1시간 가까이 지나면 온 몸이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는데, 그때 저의 기도제목은 두 가지였습니다. ‘중학교에 가게 해주세요. 우리 식구 모두가 예수님을 믿게 해주세요.’ 이 두 가지를 놓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제 기도에 응답해주셨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해서부터 졸업할 때까지의 학비로 걱정하지 않도록 해결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된 후에는 더 가난해졌습니다. 너무 가난하니까 필요한 것이 더욱 많았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 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제가 필요한 것을 쓰고,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을 쓰고, “아버지,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겠사오니 나에게 필요한 것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제가 기도한 대로 필요한 것이 다 채워졌습니다.

 

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서 없어서 저를 가난하게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인색하셔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제가 하나님을 알아가도록 연단하시는 데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지만 걱정하지 말고 살 수 있는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고등학교 때에는 더 어려워졌습니다. 여동생이 학비가 없어서 못 내니까 동생 때문에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 다음날 학비를 가지고 가야 했기에 저는 수업을 마치고 “아버지, 주실 때가 되었는데요.”라고 기도하며 집으로 왔습니다. 집에 가니까 한 아주머니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분에게는 외아들이 있었는데, 제게 하루에 두 시간씩 아들을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주머니를 따라가 공부를 가르치고, 저녁을 먹고 나오는데, 한 달 사례비를 미리 주셨습니다. 집에 와서 봉투를 열어보니 여동생의 학비를 3번 내고도 남는 액수가 들어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무것도 없으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데, 하나님은 다 준비해놓고 계신다는 것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가난하여 대학에 갈 수 없으니 고등학교 3학년 때에는 추운 겨울에 삼각산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 기도하고 응답 받고 내려오려고 갔는데, 산에 얼마나 눈이 쌓였는지, 무릎까지 빠져가며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꼭 응답받고 내려가리라’라고 생각하고 기도했습니다. 산에 올라가면서 땀에 옷이 다 젖었는데, 산꼭대기에서 기도하는 동안 옷이 다 얼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너무 추우니 오히려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얼어 죽을 것 같아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 준비해놓으셨습니다. 합격자 발표가 나기도 전에 몇 학기 학비를 낼 수 있을 정도로 해결해주셨습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려움을 통해 기도하다보니 그것이 제게 기도훈련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기도로 해결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도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기도하면 해결된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체험했기 때문에 철야기도를 하든지, 산에 가서 기도하든지, 금식기도를 하든지, 기도하면 반드시 문제가 해결되고, 전화위복되고, 간증거리가 생겼습니다.

여러분 중에 큰 고난을 당하시는 분이 계시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응답 받습니다. 반드시 은혜 받습니다. 반드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반드시 주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시련을 당하게 하시는 두 번째 목적은 거룩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것이 풍성하고 잘 되기만 하면, 타락하기 쉽습니다. 하나님 앞에 구할 것이 없으니 자연히 기도생활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살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다보니 하나님을 점점 멀리하게 되고, 세상일에만 마음을 쓰게 되어 결국 세상향락에 빠져 타락하게 됩니다.

 

성전을 아무리 크게 금으로 잘 지어 놓아도, 기도와 예배와 찬양이 없는 성전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비록 천막을 친 성전이라도 그곳에 깊은 기도가 있고, 찬양이 있고, 예배가 있다면, 하나님은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다윗에게는 많은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항상 깨어 기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살았습니다. 항상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윗은 왕이 되어서 부귀영화를 누려도 타락하지 않고, 거룩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에게는 모든 고난이 축복이 되었습니다.

다윗처럼 고난당할 때 기도하는 사람은 그 고난이 축복이 됩니다. 다윗처럼 고난당할 때 은혜 받는 사람에게는 그 고난이 축복이 됩니다. 다윗처럼 고난당할 때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 그 고난이 축복이 됩니다. 다윗처럼 고난당할 때 회개하고 거룩하게 살면, 그 고난이 축복이 됩니다. 다윗처럼 고난당할 때 말씀대로 살게 되었다면, 그 고난은 축복이 됩니다.

 

제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에는 형편이 더 가난했지만, 이제는 가족의 생활을 다 책임져야 되는 입장이 되었기 때문에 입시생들을 맡아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다섯 시간도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학교 공부할 시간이 없으니까 학생들이 노는 시간에 도서관에 가서 열심히 공부해야 했습니다. 대학 4년을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졸업식을 하고 나서 교회 가서 엎드려 기도하면서 “왜 저는 대학 4년을 이렇게 보내야 합니까?”라고 물으니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이렇게 묶어놓지 않으면 네가 목사가 될 것 같으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학 다닐 때, 학생들이 탈선을 많이 하니까 제게는 시간이 없게 하셔서 하나님의 종을 만들기 위해 거룩하게 살게 하신 것입니다.

욥기 23장 10절에 보면 욥은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라고 고백했습니다. 욥의 고백이 우리의 믿음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시련을 당하게 하시는 세 번째 목적은 겸손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렘 50:31).

그러므로 교만한 자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약 4:6).

그러나 우리가 어리석고 미련해서 남보다 조금 더 나아지면, 마음이 교만해집니다. 남보다 돈이 조금 많으면 교만해지고, 학식이 조금이라도 많으면 교만해집니다. 남보다 힘과 권력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교만해집니다. 남보다 조금이라도 성공하면 교만해집니다.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한 인간입니까.

 

작은 사람일수록 쉽게 교만해집니다. 큰 사람은 쉽게 교만한 마음을 갖지 않습니다. 꿈이 큰 사람, 생각이 큰 사람, 계획이 큰 사람, 마음이 큰 사람은 웬만큼 성공해도 교만한 마음을 갖지 않습니다.

사울 왕은 처음에는 겸손했습니다. 겸손할 때 하나님이 그를 높여주시고, 왕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17장에 보면,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스스로 작게 여길 때, 겸손한 마음을 가졌을 때에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세워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세워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사울이 교만해지니까 불순종하고, 얼마나 교만한지,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들을 수없이 많이 죽였습니다. 그리고 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사울 왕은 키는 컸지만, 작은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겸손했습니다. 특별히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에게 겸손했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책망할 때, 다윗은 겸손히 무릎 꿇고 회개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비판하거나 미워하거나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정죄하지도 않았습니다. 언제나 말과 행동으로 사울을 높였습니다. 사울을 죽일 수 있었지만, 칼을 대지 않았습니다. 원수이지만 원수를 갚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다 맡겼습니다. 그리고 일평생 하나님 앞에 순종하면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목적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기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 길로 인도하신 것도 그들의 마음을 낮추기 위해서입니다.

신명기 8장 2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신명기 8장 16절에 보면,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길로 인도하시고, 자기 힘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로 먹고살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낮추기 위해서입니다. 목적이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가난이라는 고난을 주신 목적은 겸손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얼마나 교만한 인간인지요. 그 교만을 꺾기 위해 하나님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다 채워주시면서도 더 가난하게 하셨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들어갔을 때, 주님은 제게 “너는 신학교 3년 동안 겸손을 배우면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얼마나 교만한 사람인지, 하나님이 제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 성전을 지을 때에도 저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예배당을 크게 짓는데 예배당이 다 차기는커녕, 텅텅 비면 어쩌나’라고 걱정했습니다. 그렇게 걱정하며 기도하니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아무리 커져도 제가 겸손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모두 책임져주시겠다고 하시며, 제게 겸손을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업의 어려움을 주시고, 고난을 주시고, 낮추시는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가 겸손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좀 더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하게 살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공할수록 겸손하기를 원하십니다.

겸손할수록 큰 사람이 됩니다. 겸손할수록 큰 그릇이 됩니다. 겸손할수록 큰 일꾼이 됩니다. 겸손한 만큼 큰 축복을 받게 됩니다.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훌륭해도 교만해지면, 그때부터 하나님이 쓰지 않으시고, 대적하시고 원수로 취급하시니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많은 고난을 주시고 많은 시련을 주시는 첫 번째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좀 더 알아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두 번째 목적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세 번째 목적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성경을 열심히 보고, 하나님 앞에 늘 깨어 기도하며, 체험적인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알아 가면, 고난이 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깨어 기도하고, 거룩하게 살면, 고난이 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겸손하면, 고난과 시련이 오지 않습니다. 지혜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 새 출발하십시오.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모두 준비해놓으셨습니다.

1년 후에 일어날 일을 미리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때가 되면 하나님은 다 준비해놓고 계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난 속에서, 고통 속에서, 아무것도 없을 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생생하게 체험하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체험하다 보면 걱정거리가 없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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