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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된 새해를 맞이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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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01 17:00 조회3,2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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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된 새해를 맞이하려면

 

복된 새해를 맞이하려면

2006년 12월 31일(주일예배)

본문 / 히브리서 12:1~7

 

시편 90편 10절에 보면,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월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달려가는 정도가 아니라, 날아간다고 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결심을 하고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올해의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경주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100m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 경주를 하는 것 같습니다.

마라톤 경기를 보면, 출발선에 선수들이 일렬로 서 있다가 출발신호에 맞춰 동시에 출발합니다. 같이 출발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간격이 벌어집니다.

중요한 것은 결승점을 먼저 통과하는 것입니다. 시작도 중요하고, 중간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입니다.

 

전도사 7장 8절에 보면,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오늘이 가장 중요한 날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여러분은 1년 동안 신앙의 경주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곰곰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2006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 해의 성적표가 하늘나라에 기록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매우 중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본문 히브리서 12장 1절에 보면,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신앙의 경주를 잘 하려면,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모두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경주를 방해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가 버리지 못하는 죄와 죄악의 습관입니다. 이것들은 과감히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죄는 쉽게 벗어버릴 수 없습니다. 죄악의 습관은 쉽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문 히브리서 12장 4절에 보면,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은 자신의 죄악된 버릇을 고치기 위해 40일 동안 금식기도 하며 목숨 걸고 죄와 싸웠습니다.

그 결과 죄를 이기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을 뿐 아니라, 교회도 부흥되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세상 욕심을 따라 사는 것은 죄악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죄 가운데 사는 것은 망하는 길이요 죽는 길입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순종함으로 받는 축복과 불순종함으로 임하는 저주가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때, 모든 저주가 따라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축복을 받습니다.

금년 한 해 유종의 미를 거두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을 하나님 앞에 자백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8~9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죄를 자백한 후에는 회개의 열매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3장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기 위해 세례 요한을 찾아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은 자신의 죄를 자복하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3장 7절에 보면,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 3장 10절에 보면, 세례 요한은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렇다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무엇입니까?

도둑질한 사람이 도둑질한 물건을 주인에게 돌려주고 주인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도둑질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열심히 일해서 이웃에게 나누어주고 구제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더러운 말을 하던 사람이 더 이상 더러운 말을 하지 않고, 덕을 세우는 말을 하므로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것입니다.

금방 갚겠다고 약속하고 돈을 빌려간 사람이 1~2년이 자나도 갚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음을 고쳐먹고 회개하고 원금에 이자까지 다 갚았다면, 이 사람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성도 중에는 하나님께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서 잘 살아보겠다고 축복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를 구할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 드리지 않았던 것을 모두 드려야 온전한 회개를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색으로 집안을 망친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이 사나이의 외동딸이 세느강에서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심한 외도와 과음으로 인해 비참하게 사는 엄마를 보며 살 의욕을 잃었다”라는 유서가 발견되었습니다.

딸의 유서를 본 사나이는 “이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고백하며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프랑스의 교육부장관을 지나고 프랑스의 3색기의 유공자가 된 세계적인 문호 빅토르 위고입니다. 그는 독실한 신앙인으로 살았습니다. 한 사람의 회개가 자신과 세계를 바꾸어놓았습니다. 이처럼 깨닫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인간을 학술적 용어로 ‘호모 사피엔스’라고 합니다.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생물학적으로는 동물 중 하나이지만,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생각을 잘 하는 사람은 지혜가 생겨 모든 것을 잘 깨닫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잘못하는 사람은 지혜가 없고 무지하고 미련합니다. 이런 사람은 짐승과 다를 바 없이 미련하게 살아갑니다.

 

성경에 보면, 미련한 사람에 대한 말씀이 많습니다. 잠언 17장 10절에 보면, “한 마디 말로 총명한 자에게 충고하는 것이 매 백 대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22장 15절에 보면,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26장 3절에 보면,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재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어려운 시련을 겪으신 분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랑하는 이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아도, 모든 것이 잘 되고 평안하다면, 그는 사생자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반드시 징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미련한 사람은 이를 잘못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늙어서, 몸이 약해서 병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수로 사고가 났다고 생각합니다. 운이 나빠서, 못된 사람을 만나 고생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 있는 사람의 생각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우연은 없습니다.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 없으면 안 됩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가, 내가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있으면, 신앙의 경주를 잘 할 수 없고, 축복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를 가로막는 것이 많겠지만, 특별히 두 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미워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대적하십니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입니다. 교만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충고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사람은 미련한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할 줄도 모르고, 하나님의 은혜를 모릅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습니다.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눈물과 간구를 들으시고 그를 살려주셨습니다. 그러나 후에 그의 마음이 교만해졌습니다.

역대하 32장 24~26절에 보면,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교만을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둘째, 증오심입니다.

사람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사기 친 사람, 손해를 준 사람, 비방하고 다니는 사람, 이간질하는 사람, 고통을 준 사람에 대해 증오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증오심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안 됩니다. 마치 독약을 입에 물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릅니다. 자칫하면 상대방을 죽일 뿐 아니라, 자신도 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죄가 없으십니다. 그러나 당시 제사장들과 서기관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참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므로 그들을 다 죽일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미워하시지 않으시고, 그들을 용서하시고,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원수들을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 히브리서 12장 2절에 보면,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부끄러운가 알고 계셨지만, 끝까지 참으시고 고난을 다 받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를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죽음에서 일으키셔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정복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승리할 때,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모두 위임해주실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두 구원 받는 영광스러운 날이 올 것도 아셨습니다.

십자가가 부끄럽고 잔인한 죽음이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따라올 영광을 바라보고 기쁨으로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미워할 수밖에 없는 원수와 같은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용서하고 사랑할 때에 찾아오는 영광과 축복을 바라보며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를 용서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18장 3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용서하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용서해주시지만,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용서해주시지 않으십니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용서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용서하기 싫어도, 반드시 용서해야 합니다.

 

잠언 19장 11절에 보면,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31절에 보면,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억울하고 화가 나도, 끝까지 참고 견디며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기쁨으로 용서하고, 그들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보시고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우리에게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막혔던 문이 열리고 기도 응답이 빠를 것입니다. 생각하기만 해도 이루어지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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