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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11장

오직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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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22 12:36 조회3,6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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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믿음으로

 

오직 믿음으로

2003년 10월 03일(금요철야)

본문 / 히브리서 11:4~6

 

히브리서 11장을 읽어보면,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천국에서까지 영원한 보배가 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1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보배 중의 보배는 믿음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형편없는 사람,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보배로운 믿음을 가졌다면, 그 사람은 보배로운 성도가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왕 노릇을 하고 굉장한 부자라고 해도 믿음이 없다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모든 것을 갖추었다고 할지라도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 들렸던 여자였습니다. 돈, 재산, 학벌, 가문 등 내 놓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에 믿음이 좋아졌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내놓을 것은 믿음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막달라 마리아를 만날 때는 금 면류관을 쓰고 만나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평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나이나 힘이나 재산이나 학벌 등을 보지 않으십니다.

믿음이 크면 큰 자로 보시고, 믿음이 작으면 작은 자로 보십니다. 세상에서 보기에 굉장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믿음이 작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작은 자입니다.

 

다윗은 8형제 중에 막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믿음의 장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장자처럼 족보에 나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나이가 많든 적든, 서열이 앞이든 뒤든, 믿음이 크면 큰 자이고, 믿음이 작으면 작은 자입니다. 믿음이 귀하면 귀한 자이고, 믿음이 시시하면 시시한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만큼 우리를 인정하시고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를 쓰십니다. 믿음만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은 믿음인데, 우리의 문제는 믿음이 너무 작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이 작은 것을 많이 책망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30~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적을수록 많이 염려하는 것은 믿음이 적을수록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약속하시고, 눈동자같이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셨어도 그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걱정이 태산입니다.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 위를 걸어오실 때 베드로가 자신도 걸어가게 해달라고 할 때 예수님이 걸어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부니까 예수님을 바라보던 그 눈을 돌려 바다를 바라보는 순간, 물에 쑥 빠졌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4:31). 믿음이 작은 사람일수록 의심이 많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서 버리시지 않을까 의심하고, 사랑하지 않으시는 줄 알고 실망합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바다에 큰 너울이 일어서 제자들이 탄 배가 뒤집어지려고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피곤하셨는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흔들어 깨우면서 우리를 구원해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8:26).

 

환난이 일어나고 풍파가 일어났을 때, 두려움을 갖는 것 자체가 믿음이 적은 것입니다. 아무리 환난이 일어나고 풍파가 일어나도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내가 죽고 사는 것, 흥하고 망하는 것, 부하고 가난하게 되는 것은 풍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사밧 왕 때에 적들이 연합군을 이루고 쳐들어왔다고 손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어서 굉장히 어렵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그들이 찬양하며 나갈 때에 원수들이 자기들끼리 싸워서 다 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지고 온 물자들을 다 놓고 죽어서 그것들을 옮기는 것만도 나흘이 걸렸습니다. 환난이 오히려 축복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역사는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아무리 사업이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함께하시면 더 잘 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죽으면 천국에 가지 않습니까! 왜 두려워하십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어떤 사람이 간질병 가진 아들을 제자들에게 데리고 와서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고쳐주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아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 후에 제자들이 자신들은 왜 고쳐주지 못했는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7:20). 제자들이 항상 지적을 당하고 책망을 듣는 것은 너무 믿음이 적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부족한 것이 문제입니다. 믿음만 크고 강하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정말 우리에게 문제인 것은 믿음이 너무 작은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큰 믿음이 있어 보여도 행함이 없으면, 믿음의 행위가 없으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나에게 믿음이 있는 만큼, 말로 행위로 믿음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이 평소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그 사람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굉장히 중요합니다.

 

바리새인들은 큰 믿음이 있어 보였지만, 사실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의 행위를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율법의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과 천국과 지옥과 천사와 부활과 하나님의 심판을 믿었습니다.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까지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철저히 드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은 옷깃에 계명들을 써서 다닐 정도로 굉장한 믿음을 가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고 말씀하시며 책망하셨습니다(마 23:13, 15, 23, 25, 27, 29). 믿음으로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행위가 없어서 믿음이 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지 못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죽은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첫째, 그들은 외식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3:27).

겉으로 볼 땐 번듯하고 신령한 것 같지만, 마음 중심을 꿰뚫어보시는 주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속이 얼마나 음란하고 더럽고 악한지, 썩은 시체와 같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책망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이중적이고 겉과 속이 달랐습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둘째, 그들은 살인자요 악한 자들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3장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2장 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깨서 책망하셨으면 회개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할 텐데, 그들은 오히려 ‘어떻게 하면 저 예수를 죽일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선지자들이 바른 말을 하면, 그들을 다 죽였습니다. 예수님도 바른 말을 하시니까 죽이려고 생각했습니다.

 

셋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누가복음 11장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저버렸다는 것은 믿음을 버린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좋으면 좋을수록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큰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아느냐도 중요하고 하나님을 얼마나 의지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찬양하고 헌금하는 것이 곧 믿음의 행위입니다.

 

넷째,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마태복음 23장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가복음 11장 5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섯째,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3장 7절에 보면, 세례 요한은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이런 책망을 들은 이유는 그들은 회개할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은혜롭고 좋은 말씀을 많이 전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회개할 마음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예수를 죽일 궁리만 했습니다. 이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도 않습니다.

 

결정적인 회개는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등을 돌리던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 돌이켜서 예수님을 사랑하고 바라보고 예수님 앞에 나아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참 회개는 완전히 돌아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절대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1:31).

바리새인들은 끝까지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기들은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듣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사랑을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을 압니다.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는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를 보면 압니다. 그 사람의 말과 행실 속에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를 보면,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3~27절에 보면,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스스로 경건하고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데, 그 혀에 문제가 있어서 말에 덕을 못 세우는 사람은 결국 자기 마음속에 악함이 너무 많은 사람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경건은 헛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실제로 과부와 고아를 돌보고 자기를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믿음의 행동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5장 6절에 보면,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상 낙과 사치와 향락을 좋아하는 사람은 육신은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구원해야 할 영혼에는 관심도 없고, 돈 버는 것과 노는 것 등 세상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믿음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고 성공합니다. 아무리 잘 된 것 같아도 믿음으로 하지 않으면 실제로 실패입니다.

 

첫째, 믿음으로 말해야 합니다.

믿음의 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축복을 가지고 오고, 기적을 일으킵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좋게 이야기해도, 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확대해서 이야기해도, 더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무리 크게 표현해도 너무 커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말을 담대히 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말을 하는 대로 축복 받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 개척할 때,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해 언제나 좋은 것을 주신다”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제일 좋은 것을 주신다는 믿음으로 가장 좋은 곳을 찾아봤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아무것도 없었던 수영로터리에 아주 싼값으로 땅을 샀습니다. 여러분도 믿음으로 말하시기 바랍니다.

 

이 성전을 지을 때에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생겼습니다. 계산해보니까 300억 원이 넘는 돈이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런 돈을 가져본 적이 없지만 제 안에 믿음이 생기는데 종이쪽지 수표 하나에 300억이라고 적으면 끝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보다 돈 많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제 마음에 믿음이 생기니 돈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확신이 생겨서 성도들에게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네 믿음대로 되리라”라고 말씀하신 대로 다 되었습니다.

 

여러분 앞으로 어떻게 살까 생각해보십시오. 가장 잘된 모습, 가장 잘되게 해주실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그런 믿음의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음 없는 말을 하기 때문에 손해를 보고, 하나님 앞에 매를 맞고 고생합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하지 마십시오. 풍파를 보고 부정적인 것을 말하지 마십시오.

손에 잡히는 것이 없고 캄캄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 능력, 사랑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믿음의 말을 하십시오. 믿음의 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축복을 가져오고 기적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열두 명의 정탐꾼이 가나안을 정탐하고 난 후,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의 말을 했고, 그들이 말한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말을 하지 않은 사람은 그들이 말한 그대로 되어서 그 땅에서 다 죽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보면,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조심해야 합니다. 말이 중요합니다. 부정적인 말, 믿음이 없는 말, 하나님을 거스르는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3장 8절에 보면,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역하여 그의 영광의 눈을 범하였음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칼로만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혀로 말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하나님을 대적할 때가 많습입니다. 열왕기하 7장에 보면, 아람 왕 벤하닷이 사마리아 성을 포위해서 풀지 않으니까 먹을 것이 떨어져서 사람 고기를 먹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성문을 지키는 장관이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라고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많은 군사가 쳐들어오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를 듣고 포위하고 있던 군사들이 도망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먹을 것과 옷과 재물을 두고 급하게 도망갔습니다.

나병환자들이 항복하러 나가 먹을 것이 잔뜩 있고 금은보화가 있는 것을 보고 챙기고 성 안에 굶어죽을 사람들에게 알려서 잘 먹고 잘 살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장관을 밟아죽였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 없는 말, 하나님을 거스르는 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마태복음 12장 36~3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말하지 말고, 언제나 믿음의 말만 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믿음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믿음의 행위는 축복이 됩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가버나움 백부장은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백부장은 자기 하인이 중풍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 중풍을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아픈 것도 아니라, 많은 하인 중 한 명이 아픈 것을 걱정하고, 그를 위해서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면, 그의 믿음이 아주 좋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이 그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마 8:8~9). 얼마나 좋은 믿음입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8:10).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순간, 하인의 병이 나았습니다. 믿음의 행위는 기적과 축복을 가지고 옵니다.

 

마태복음 9장에 보면,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자기 순서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능력이 있으신 분이어서 예수님의 겉옷에 손만 대도 낫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순간, 12년 동안 고생하던 혈루증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9:22).

 

마태복음 9장에 보면, 두 맹인이 예수님께 와서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라고 물어보셨습니다. 그들은 “주여 그러하오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라고 말씀하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말하고 행동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마태복음 1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에 가셨을 때, 딸이 귀신들려 고생을 많이 하는 가나안 여자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이 여인도 믿음이 좋은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않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5:26). 왜냐하면 그 여자는 개와 같은 이방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 여인의 믿음의 행동입니다.

주님께서 아무리 안 들어주실 것 같아도, 절대로 실망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을 믿고 겸손히 나아갈 때, 주님께서는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 역시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에 보면,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제사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가인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전혀 믿음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습니다. 정도를 따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물을 드린 것입니다. 양의 첫 새끼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정성을 다하는 것이 그 사람의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는 것입니다(잠 15:8). 요한일서 3장 12절에 보면,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기 제사가 열납되지 않은 것은 자기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임을 알고 회개해야 합니다. 아우를 죽인 악한 사람이 아무리 제물을 드려도 하나님께서는 그 제사를 받으시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하나님 앞에 드리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내 마음과 행위를 돌이켜보고, 하나님 앞에 악독하지는 않은지 살펴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예배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예배가 될 줄 믿습니다.

 

가인은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사람은 사랑이 없는 사람입니다. 질투가 많아서 남이 잘 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 남을 미워하거나 죽인 살인자. 믿음이 없는 사람,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을 종합해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넷째, 우리는 일평생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창세기 5장 21~22절에 보면,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5~6절에 보면,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에 올라갔습니다. 그는 하늘나라로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았습니다.

그는 65세까지는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므두셀라를 낳은 이후 3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으로 살아서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다가 천국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믿음만큼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어떤 믿음을 가지고 행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길을 갈 때도 어떤 믿음으로 행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가나안을 정복할 때도 어떤 믿음으로 행하면서 정복하느냐가 중요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 때도 어떤 믿음으로 어떤 믿음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느냐가 중요합입니다.

 

우리가 성전을 지은 것도 얼마나 크게 잘 지었느냐보다 어떤 믿음으로 지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헤롯 성전은 크게 잘 지었으나,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성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도 않은 사람, 죄를 많이 범한 악한 사람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유대인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성전을 지었지, 믿음으로 지은 것이 아닙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잘 지었지만. 성경에 보면, 다윗의 믿음만큼 믿음으로 행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믿음은 대단합니다. 그가 직접 성전을 짓지는 않았지만, 성전을 짓기 위해 돌도 깎아놓고 준비하고 백향목도 미리 준비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에게는 그만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전 건축 후에도 믿음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역대하 35장 18절에 보면, “선지자 사무엘 이후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유월절을 이같이 지키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모든 왕들도 요시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인 온 유다와 이스라엘 무리와 예루살렘 주민과 함께 지킨 것처럼은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선지자 사무엘 이후로 유월절을 이같이 지킨 적이 없다고 했으니 다윗보다 솔로몬보다 더 정성껏 유월절을 지켰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일 걸리는 것이 솔로몬입니다. 아무 어려움도 없었고, 역대 왕 중 가장 정성껏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서 유월절을 지킬 수 있었는데, 솔로몬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방여자들을 많이 데리고 왔습니다. 나중에는 우상숭배도 하고 형편없이 살았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조상들의 믿음의 행위를 본받아야 합니다. 아브라함, 요셉과 같은 믿음의 조상, 다니엘, 에스더와 같은 믿음의 조상들의 행위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누가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을 따라다닌 여인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기기 위해 항상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자기 집에서 가지고 온 것을 가지고 식사 때마다 준비하고 대접했습니다. 3년 동안 예수님과 제자들을 따라다니며 뒷바라지를 한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들입니까!

 

예수님의 열두 제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도 큰 믿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큰 믿음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과 가까이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를 다 듣고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전도훈련을 시켜 직접 나가 귀신을 내쫓고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성령의 세례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부어 주셔서 비로소 성령 충만, 믿음 충만한 제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믿음으로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큰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 이렇게 하신 것을 보면 우리도 그렇게 하면 믿음이 커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가까이하십시오. 교회출석을 자주 하시고, 성전중심으로 사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항상 데리고 다니신 것처럼, 항상 교회를 가까이 하고, 성전에 나오기를 즐거워하고. 성전에 나와서 기도하고, 예수님을 가까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를 듣고 보게 하신 것처럼,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도훈련을 시키신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전할 때 그 믿음이 살아나고 커집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려고 애쓸 때 우리의 믿음이 자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의 세례를 받을 때,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 믿음이 충만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기도생활 열심히 하고, 언제나 성령의 은혜로 충만해서 믿음 충만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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