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가까와 옴을 볼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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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26 10:30 조회3,405회 댓글0건본문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2004년 07월 16일(금요철야)
본문 / 히브리서 10:23~25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가리켜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음을 믿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여 죄를 사함 받고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천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릴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40일 후에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 것을 믿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천국에서 우리가 있을 곳을 예비하시고 다시 오셔서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히브리서 10장 25절에 보면,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그 날’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든 환난과 시험이 끝나는 날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환난을 많이 겪습니다. 불이익을 당합니다. 그래서 신앙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은 모든 환난과 시험이 끝나는 날입니다. 모든 수고가 끝나는 날입니다. 더 이상 눈물 흘리지 않습니다. 그 날은 복된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이 세상을 떠난 그리스도인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여 공중에서 예수님을 만날 것입니다. 그때까지 살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어서 공중에서 예수님을 만날 것입니다.
충성한 그리스도인들은 천 년 동안 왕 노릇 할 것입니다. 사탄은 천 년 동안 결박되어 무저갱에 들어갈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3절에 보면,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용, 옛 뱀, 마귀, 사탄을 결박하시고 무저갱에 던져 넣으실 것입니다. 천 년 동안 활동하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까지 우리는 신앙의 지조를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신앙의 지조를 지키며 신앙생활을 아름답게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우리의 숙제입니다.
사탄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잘 알지도 모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7~12절에 보면,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7절에 보면,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귀는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성도들을 타락하게 하려고 합니다. 성도들을 거꾸러뜨리려고 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8~9절에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의 대적 마귀는 굶주려 화가 난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으러 다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굳게 하여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는 물러갑니다(약 4:7). 믿음이 강한 사람은 마귀를 대적합니다. 믿음이 굳건해야 마귀를 대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귀를 대적하지 않고, 마귀를 겁내거나 마귀에게 굴복하면, 마귀가 오히려 왕 노릇 합니다.
마귀는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라도 그 사람에게 큰 기사와 표적을 보여 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을 미혹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대적 마귀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라도 타락하게 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대적 마귀는 악한 영입니다. 거짓 영입니다. 음란한 영입니다. 저주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는 물러갑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귀는 도둑입니다. 마귀는 모든 축복을 도둑질해갑니다. 우리에게 있는 보배로운 것들을 모두 도둑질해갑니다.
우리에게 있는 보배로운 것 중 최고는 믿음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서 믿음을 빼앗아가려고 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믿음을 잃어버리게 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약하게 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병들게 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없어지게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타락하게 하려고 합니다.
마귀가 때로는 우리의 건강을 빼앗아갑니다. 우리의 재물을 빼앗아갑니다. 마귀는 도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귀는 살인자입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아벨을 죽인 가인 속에서 왕 노릇 했습니다.
마귀는 사람들로 하여금 타락하게 해서 사람들의 영혼을 죽게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멸망시키는 것이 마귀의 최종 목표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우리의 원수입니다. 우리는 마귀를 내버려두거나 마귀에게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마귀는 악한 영입니다. 저주의 영입니다. 우리는 마귀와 싸워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마귀는 욥의 모든 소유를 쳤습니다. 욥기 1장 14~19절에 보면, “사환이 욥에게 와서 아뢰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양과 종들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갈대아 사람이 세 무리를 지어 갑자기 낙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들의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데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한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욥은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라고 말했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욥기 2장 4~10절에 보면,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의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욥은 재산을 모두 잃었습니다. 자녀를 모두 잃었습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욥이 처음에는 잘 이겨냈습니다. 그런데 고통이 오랫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욥은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잠시 고난을 겪는 것은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이 오랫동안 계속되면 이겨내기 힘듭니다. 물질의 고난만 겪어도 오랫동안 계속되면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이 생깁니다.
욥기 3장에 보면, 욥은 너무 괴로운 나머지 자신의 생일을 저주했습니다. 욥이 하나님을 원망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욥은 살아있는 것이 괴로웠습니다.
너무 괴로운 나머지 자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것은 괴로운데,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니까 그런 선택을 합니다.
내세를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선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살은 돌파구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자살해서는 안 됩니다. 생명은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거두어 가실 때까지는 생명을 잘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다가 하나님 앞으로 가야 합니다.
욥은 너무 괴로워서 자신이 왜 태어났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범위 안에서만 욥을 시험할 수 있었습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삼키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탄은 목이 쇠사슬에 매여있습니다. 사탄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사탄이 자기 마음대로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이 굉장한 짓을 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사탄은 우리에게 손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 10:29)”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핍박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만큼 핍박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 11~18절에 보면,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또 다른 짐승’은 기독교를 핍박하는 적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하는 적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매매할 수 없게 합니다. 우상 앞에 절하지 않으면 죽이려고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요한계시록 13장 8절에 보면,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구원 받은 사람, 장차 천국에 갈 사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구별된 사람입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입니다. 이들은 무시무시한 핍박을 당해도, 우상 앞에 절하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환난과 핍박을 이깁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5절에 보면,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데 내가 들은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이 그 거문고를 타는 것 같더라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승리자의 모습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9~12절에 보면,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패배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사탄을 그대로 두십니까?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하나님께서 사탄을 묶어버리셨으면 좋겠는데,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하나님께서 사탄을 그대로 두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그리스도인에게 믿음의 시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2~4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탄 마귀는 여러 가지로 우리를 시험합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온전한 성도가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시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가나안 땅을 쉽게 주시면 좋은 텐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40년 동안 광야에서 생활하게 하셨습니다. 그 후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광야생활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련이었습니다. 믿음의 시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만큼 믿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셔도, 믿음이 준비되지 않으면, 가나안 땅이 축복이 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당하지 못합니다. 가나안 땅으로 인해 타락해버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가나안 땅을 복된 땅이 되게 하려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온전한 믿음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 광야 생활 40년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빈 땅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전쟁을 통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보통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을 단련하셨습니다.
전쟁에서 패하면, 노예가 되거나 죽습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이기면, 강한 군대가 됩니다. 영적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전쟁을 치르게 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전쟁을 통해 강한 군대, 강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마귀를 그대로 두십니다.
우리는 날마다 전쟁을 치릅니다. 우리는 날마다 영적 전쟁을 합니다. 전쟁에서 지면 괴롭습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이기면 믿음이 강해집니다. 강한 군사가 됩니다. 그래서 원수 마귀를 쉽게 물리칠 수 있습니다. 죄악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습니다.
성도들에게는 믿음의 시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탄 마귀를 그대로 두셨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믿음의 분량을 깨닫게 하시려고 사탄을 그대로 두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강하면, 사탄은 머리를 숙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약하면, 사탄이 머리를 듭니다.
셋째, 우리를 항상 깨어있게 하시려고 사탄을 그대로 두십니다.
언제 사탄이 우리를 공격할지 모릅니다. 사탄이 언제 우리를 넘어뜨릴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방심하면 큰 일 납니다.
넷째, 창세 전에 택하신 백성들을 예수님을 믿게 하여 구원하시려고 사탄의 역사를 허락하실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다섯째, 상 받을 기회를 주시려고 사탄을 그대로 두십니다.
사탄의 시험을 참고 이긴 사람에게는 상급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에 보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사탄이 우리를 시험하고 우리에게 많은 고난을 주지만, 우리가 잘 참고 믿음을 지키면, 장차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칭찬을 듣고 면류관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22장 28~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많은 시험을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시험 받으실 때에 언제나 함께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지 않고 예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해 제자들에게 상을 주셨습니다. 제자들로 하여금 열두 보좌에 앉게 해주셨습니다.
핍박을 받고 재물의 손해를 경험하는 등 여러 가지 고통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의 지조를 지키는 사람에게는 상급이 있습니다.
어려운 시험을 당해도, 시험을 잘 이긴 사람에게는 상급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상급을 주시려고 사탄이 우리를 시험하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시험을 잘 참고 이기는 사람은 장차 하나님 앞에서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예수님을 맞이하는 성도들 중에는 별별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교인이라고 해서 모두 참 그리스도인인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천차만별입니다.
목회자라고 해서 믿음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장로라고 해서 믿음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직분과 믿음은 상관없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열 처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슬기 있는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가 있습니다.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준비했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은 있었지만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겉모습은 신자인 것 같지만, 신자가 아닌 사람을 의미합니다. 신자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각각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주인은 그들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23)”라고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뒀다가 내놓았습니다. 주인은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마 25:26)”라고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났습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과 같습니다. 주일 성수도 하지 않고, 헌금생활도 하지 않고, 봉사도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주인으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땅 속에 묻어둔 사람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양과 염소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양과 같은 성도는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울 줄 압니다. 먹을 것을 나눠먹습니다. 병든 사람을 돌봅니다.
그러나 염소와 같은 성도는 그렇게 할 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염소와 같은 성도들을 향해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마 25:46)”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첫째, 끝까지 신앙의 지조를 지켜야 합니다.
죄악에 빠져 타락하지 않고, 이단에게 넘어가지 않고, 핍박을 받아도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의 지조를 지켜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자신의 신앙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다가 주님 앞에 설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본문 히브리서 10장 24절에 보면,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서로 돌봐주고, 사랑을 베풀고, 선한 일을 하다가 주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셋째, 순교를 각오하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은 가장 고귀한 목표입니다.
끝까지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순교를 각오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천년왕국 시대에 왕 노릇을 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장 26~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처럼 우리가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 죽는 순간까지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는 사람은 엄청난 축복을 받습니다.
성령의 은혜 가운데서만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받아 은혜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항상 성령의 은혜 가운데 살려면, 잘 모여야 합니다. 잘 모여야 합심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잘 모여야 은혜를 받습니다. 잘 모여야 말씀으로 무장할 수 있습니다. 잘 모여야 힘이 생깁니다. 잘 모여야 믿음이 삽니다. 은혜 받을 기회가 생깁니다. 성령의 은혜 가운데 살 수 있습니다.
은혜 가운데 살아야 신앙의 지조를 지킬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고 은혜 가운데 살아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본문 히브리서 10장 25절에 보면,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심판의 날이 가까울수록 더욱 열심히 모여야 합니다. 사랑을 열심히 베풀어야 합니다. 선행을 격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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