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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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8-18 21:02 조회3,363회 댓글0건본문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2007년 05월 18일(금요철야)
본문 / 디모데후서 2:1~4
우리는 죄인이었습니다.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섬기며 살다가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엄청난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사람에게 사랑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분이 없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참 많은 빚을 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로마서 1장 14~15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빚을 지고 있다고, 자기가 빚진 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복음을 전하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복음을 전해주는, 놀라운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의 빚을 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복음을 전하면, 그 빚을 갚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기가 빚진 자라고 말하면서 “나는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을 전하기를 원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로마서 15장 22~27절에 보면,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해서 구원 받게 하였으므로 그들은 아주 큰 사랑의 빚을 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를 통해 말씀을 받고, 신령한 복을 받게 되었으므로 그들에게 물질로 섬기는 것, 세상의 것으로 섬기는 것이 마땅합니다. 사랑의 빚을 갚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빚’은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한 빚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빚을 가리킵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사랑을 받았으나 우리는 그것을 다 갚지 못하고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이 땅에 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선교사들의 사랑은 우리가 갚지 못한 빚입니다. 나에게 복음을 전해준 사람이 나에게 베푼 사랑에 보답하지 못한 빚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지옥에 갈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베푸는 일 가운데 가장 큰 사랑을 베푸는 일은 복음을 전해 구원 받게 하여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시간을 내고, 물질을 내고, 정성을 들이고, 때로는 목숨을 바친다면,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베풀 수 있는 사랑 가운데 최고의 사랑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 받게 하기 위해 희생하는 사랑입니다. 이보다 더 귀한 일은 없습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희생을 했습니다. 우리에게 복음 전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희생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은 모두 사랑의 빚을 지고 있고, 빚 가운데서도 가장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빚을 갚아야 됩니다. 우리도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들로 하여금 구원 받게 해야 합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켜 ‘군대’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12장 41절에 보면,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애굽 땅에서 나왔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군대’라고 하면, 전쟁터에 나아가 싸우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켜서 여호와의 군대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왜 여호와의 군대라고 했을까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가나안 사람들과 큰 전쟁을 치르게 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전쟁은 가나안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과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적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영적 싸움, 즉 끝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을 지켜서 그들이 점령하는 그곳 사람들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되고, 그 나라를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로 만드느냐, 아니면 오히려 가나안 종교를 받아들여서 우상을 숭배하고, 그들에게 점령당하느냐 하는, 아주 중요한 영적 전쟁이 이제 벌어지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무장을 잘 해서 가나안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다윗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다스리고, 온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구약성경을 보면, 구약 이스라엘의 왕들 중에서 다윗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매우 적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왕들의 대부분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바알 신을 섬기거나 가나안 사람들의 종교를 받아들여서 온갖 우상을 믿고, 성전에 우상을 다 갖다 놓고 얼마나 못된 짓을 했는지 모릅니다.
유다 왕 므낫세는 이방인들보다 더 극심하게 우상 숭배를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 왕 때에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사람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모릅니다.
열왕기하 21장 16절에 보면, “므낫세가 유다에게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 외에도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겨야 된다고 말하는데, 그들을 다 죽이면 어떡합니까. 그런데 므낫세는 예루살렘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피가 가득할 정도로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때 얼마나 많은 순교자가 생겨났는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지금도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성도들보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먹히느냐, 아니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들을 예수 믿는 사람으로 만드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영적 전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군대였던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들입니다. 십자가 군병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여호와의 군대인 것처럼, 우리는 이 세상을 복음으로 정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하는 십자가 군병,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을 복음화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 날마다 영적 전쟁을 날마다 치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배후에는 짐승이 있습니다. 이것은 적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우상숭배하게 만들려는 적그리스도들이 각 나라와 여러분의 직장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짐승과 싸우는 십자가의 군병들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 1~8절에 보면,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바로 이때가 가장 어려운 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런 환난과 핍박을 허락하시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 알곡과 가라지를 나누기 위함입니다.
그러니까 정말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과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이 누군지 그때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무서운 환난과 핍박이 오면, 알곡과 가라지가 그대로 다 드러나게 됩니다.
평안할 때에는 모릅니다. 그런데 순교할 수밖에 없는 위험에 빠졌을 때, 그 사람의 참 모습이 드러나게 됩니다.
둘째, 순교자의 수를 채우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순교자가 몇 명이 될지를 미리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정해놓으신 순교자의 수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6장 9~11절에 보면,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셋째, 우리에게 상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26~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보좌에 같이 앉아서 심판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순교자가 된다는 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20장 4~6절에 보면,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환난의 때, 핍박의 때에 순교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받는 축복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순교할 때의 고통이 크겠지만,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가기만 하면 영원히 그 영광을 누리면서, 천 년 왕국 시대에는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면서 심판하는 권세를 받아서 주님의 보좌에 앉아 얼마나 영광을 얻는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잠시 누리는 영광과 장차 그 나라에게 가서 누리게 될 영광은 시간적으로나 영광의 질적인 면에서나 이 세상의 영광과는 비교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담대한 믿음입니다. 여호수아 1장에 보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수 1:9).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정복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고 할 때에 가져야 하는 마음입니다.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보면,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이 만주의 주가 되시고, 만왕의 왕이 되시고, 주님이 이기실 것이므로 주님과 함께 있는 자들, 주님 앞에 부르심을 받은 자들도 함께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담대한 마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담대해야 합니다.
세상을 크게 보고, 하나님을 작게 보는 사람들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일수록 세상이 아무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크게 보입니다. 생사화복과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암에 걸리면, 암을 하나님보다 더 크게 여깁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암 앞에서는 꼼짝 못하시는 줄 알고, ‘나는 죽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믿음이 클수록 하나님이 크게 보입니다. 하나남은 말씀으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앗수르 군사 18만 5천 명을 하룻밤 사이에 시체가 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원수들을 하룻밤 사이에 다 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담대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절대 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0장 16~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8~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절대 주권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어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분이시므로 순교 당할 사람은 순교 당하지만, 순교 당하지 않을 사람은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공중에 나는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다가 붙잡혀서 매를 맞고 죽임을 당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이 순교자 반열에 세울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손댈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절대로 떨어뜨릴 수 없습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손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마세요. 죽음도 인간들도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당하면 내가 받을 상이 클 것이고, 내가 복음을 전하다 죽는다면 내가 왕 노릇 할 것이므로 오히려 영광입니다.
사도행전 5장 41~42절에 보면,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채찍질 당할 때, 주님을 위해 고난당하게 된 것을 기뻐하고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 순교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해 고난당하는 것을 황송하게 생각했습니다. 영광스러워했습니다. 그들은 고난을 당할 때, 자신이 받을 영광을 생각하며 자신이 그 영광에 참여할 자라는 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게 되면, 장차 받을 영광이 매우 큰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도 이 말씀을 통해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이 세상의 누구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죽음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누가복음 21장 10~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 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 주어 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오시기 전에, 이 세상이 끝나기 전에 반드시 이렇게 핍박받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북한에 남아 있는 성도들이 이런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과 고난을 당하면, ‘나는 특별히 상 받을 사람이구나. 하나님이 나에게 큰 믿음을 주셔서 주님을 위해 상 받게 하시려고 고난 받는구나’라고 생각하시고, 오히려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0장 27~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절대 주권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만유보다 더 크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작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믿음이 없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모든 것을 다 합쳐도 그것보다 더 크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싸워 이길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고 계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는데, 누가 하나님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아가겠습니까. 하나님의 허락 없이 누가 우리에게 손을 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담대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담대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성경에 어린 양 예수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다 이긴다고 기록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 8절에 보면,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짐승에게 절대 굴복하지 않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만 짐승을 경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5절에 보면,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지옥불에 들어간 사람들만 짐승에게 경배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7절에 보면,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장차 우리가 영원한 천국,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데, 어린 양 예수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양 예수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은 다 이긴다고 했고, 짐승에게 숭배하지 않고, 굴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약해 보이는데, 교회가 승리하는 이유,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보면,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은 만주의 주가 되시고, 만왕의 왕이 되시기 때문에 항상 이깁니다. 그리고 항상 이기시는 주님과 함께 있는 자들도 함께 이깁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사람들, 주님과 함께 있는 성도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성도들도 주님과 함께 이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승리합니다.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저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민수기 14장에 보면, 여호수아와 갈렙이 믿음으로 멋진 말을 했습니다.
민수기 14장 6~9절에 보면,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이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괴롭힌다 해도 그 세력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므로 짐승과 그의 백성은 우리의 밥입니다. 여호수아 갈렙처럼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담대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아무리 담대하려고 해서 담대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들을 보세요.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전에는 두려워서 다 숨어있었습니다. 전도도 하지 못하고, 다 숨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니까 믿음이 충만해져서 담대하게 나아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핍박자들이 있어도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언제나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여 항상 성령 충만함 가운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예수 믿고 구원 받은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합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은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지상명령을 준행하면,
첫째, 주님은 약속하신 대로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해주십니다. 우리는 날마다 주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체험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둘째, 나 자신의 신앙을 건강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주님의 명령을 준행하기 위해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이를 위해 기도하고, 이를 위해 성령 충만을 구하다 보니까 항상 건강한 믿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셋째, 우리가 장차 받게 될 상이 매우 많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내 일’은 주님의 일, 복음을 전하는 일, 영혼을 구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복음 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받을 상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은 축복을 받게 되는데, 이 세상에서도 백배의 복을 받게 됩니다.
마가복음 10장 29~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 주님과 복음을 위해 부모와 자녀와 형제를 희생하고, 집을 희생하고, 땅을 희생하고 사는 사람이 장차 받게 될 면류관과 영광만 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일반은혜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재벌이 많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 중에 아이를 잘 낳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반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비를 내리실 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만 비를 내리시는 것이 아니라, 죄 짓는 사람이 사는 땅에도 비를 내리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반은혜입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느라 희생하는 주의 종들을 모른다고 하시겠습니까. 그들을 외면하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들에게 백배의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것을 다 책임지실 테니 그에 대해서는 아예 걱정하지 말고 살라는 의미입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것보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귀한 사랑을 베푸는 데 이보다 더 귀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어찌 내버려두시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백 배의 복을 받는다는 것은 숫자로 100배의 복을 받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삭이 흉년든 해에 백 배의 복을 받았습니다(창 26:12). 그런데 그때 이삭이 거부가 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100배의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100배 그 이상의 복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백 배의 복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다가 우리가 희생한 것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축복으로 채워주신다는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 위험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아십니까. 아슬아슬했던 때가 많았습니다. IMF 때에도 이 나라가 망해서 빈털터리가 될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위기를 지나고 나니, 나라가 더 커지고 더 강해져서 이제는 경제대국입니다. 나라는 작고, 국민은 얼마 되지 않지만, 경제대국입니다.
어느 연세 많으신 선교사님이 “한국의 정치와 교육 등 모든 것이 엉망이지만, 나라가 점점 더 부유해지는 것은 한국이 선교를 많이 하는 나라, 복음 전하는 일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선교를 위해 아낌없이 드리고, 5천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기도하고,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선교사들을 잘 도와주고, 우리 교회에 찾아오시는 선교사들에게 잘 대접하고, 선교사들이 아프면 치료해주고, 수술 받게 하는 것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가장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만 축복 받는 일이 아닙니다. 타락한 백성이 많은 이 나라와 이 나라 국민들까지 우리 덕분에 덤으로 축복 받고 있는 것입니다. 수영로교회 때문에 부산이 덕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산시장님이 알아야 합니다. 이 동네의 주민들이 알아야 합니다. 수영로교회 때문에 주변이 얼마나 좋아졌습니까. 앞으로 더 좋아질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5천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전 세계에 선교하는 일을 하다가 주님을 맞이하게 될 텐테, 지구상에 이런 교회가 몇 개나 있겠습니까.
우리 교회에는 죽으나 사나 선교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선교하는 일에 있어서 저보다 더 열심인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는 기도할 때마다 가장 먼저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는데,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다 보면, 선교하는 일에 열심인 우리 교회 선교위원들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복을 부어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가 부산을 복음화하고, 민족을 복음화하고, 전 세계에 선교사를 많이 보내려는 마음만 가져도 복을 받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기만 해도 복을 받습니다. 그렇게 소원하기만 해도 복을 받습니다. 그것이 큰 축복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복을 받는 비결이 거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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