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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후서3장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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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1 18:09 조회3,3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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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2008년 09월 28일(주일예배)

본문 / 데살로니가후서 3:13~18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에게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라고 권면했습니다(살후 3:10). 이 말은 과격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평소에 열심히 일을 하거나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사람들은 이 말씀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쁨으로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평소에 일하지 않고 게으름을 부리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말일 것입니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깊이 생각하면서 자숙하면 좋겠는데, 속이 부글부글 끓으니 가만히 있지 못하고 불평했습니다. 심지어는 사도 바울을 원망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3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젖먹이 신자’라고 합니다. 교회에 다닌 지 오래되었거나, 연세가 아무리 많아도, 영적으로 보면 젖먹이 신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듣기 좋은 소리를 하면 받아들이고,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면 화를 냅니다. 다시 말하면 젖만 먹고 밥은 먹지 못하는 젖먹이 신자입니다.

교회는 이런 사람들 때문에 참 시끄러워집니다. 이런 사람으로 인해 시기와 분쟁이 그치지 않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충고 한 마디라도 하면 몇 배로 욕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에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몇 가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 사도 바울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보면,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낙심할 줄 몰라야 합니다. 사람들이 낙심하는 이유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않을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가 수고한 것은 헛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높이 들어 쓰시며,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군가에게 선을 행했다면, 그것은 예수님께 한 것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1~46절에 보면, 양과 염소의 비유가 나옵니다. 먹을 것 없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것을 주고 옷 없는 사람에게 입을 옷을 줍니다. 그리고 병든 사람, 다친 사람들을 돌봐줍니다.

이때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5:40).

우리가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것은 예수님께 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선을 행하는 사람으로부터 대접받으신 후에는 몇 배의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마태복음 10장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을 행한 사람이 어찌 상을 받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정말 선한 목적으로 선을 행했는가’입니다. 선한 목적을 가지고 선한 일을 했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대접한 것이요, 하늘에 보화를 쌓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은혜를 생각하면서,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감사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선한 일을 합니다. 이렇게 선한 목적으로 일한 사람은 모든 일이 예수님을 대접하는 일이고, 하늘의 보화를 쌓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지 못하고 비방을 들었다고 해도 낙심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절대로 헛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설교 말씀이 명료하고 간결하면서도 사람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사회문제도 외면하지 않고, 미국의 노예제도에 대해서 비난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러 개의 학교와 고아원, 요양원을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사회의 존경을 받던 목사님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했습니다. 그가 계란을 판매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펄전 목사님 부부는 여러 마리의 닭을 직접 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닭이 낳은 달걀을 그냥 나누어 주지 않고, 꼭 돈을 받고 계란을 건네주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사람들은 스펄전 목사 부부가 구두쇠요, 돈만 아는 욕심쟁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스펄전 목사는 사람들의 비난에 대해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스펄전 목사의 부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에 스펄전 목사 부부가 왜 그렇게 돈을 받았는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부부가 계란을 판 돈은 두 명의 늙은 과부의 생활비로 고스란히 사용되었습니다.

스펄전 목사 부부는 자신들의 선행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늙은 과부를 도와야 했기에 많은 비난을 침묵으로 지켜왔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선한 일을 하다가 어떤 비난을 듣더라도 낙심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선한 일을 하다가 비난을 받으면, 낙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기대하고 선을 행했기 때문에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선행을 알고, 칭찬해주고 높여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주고 칭찬해주고 높여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선을 행했다면, 이것은 선이 아닙니다. 바로 위선입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는 선한 일이 아니기에 이것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그 선을 행한 동기가 잘못된 것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그런 기대를 가지고 선한 일을 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선행이 소문이 나서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오히려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이것이 믿음이 좋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과 믿음이 부족한 사람은 이렇게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은 자기가 기대한 것이 나타나지 않으면, 화를 내거나 불평합니다. 그러다 보면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한 선한 일은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때가 되면 그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때가 되면 그 열매를 반드시 거두게 됩니다.

요셉은 꿈을 꾸었다고 해서 그 꿈이 바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꿈으로 인해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에 팔려가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13년이 지나서 하나님의 때가 되니, 감옥에 있는 요셉을 총리로 세워서 그 꿈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때가 오면 반드시 열매가 나타난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둘째, 사도 바울은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순종을 잘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교역자들은 속이 상할 때가 많습니다.

 

히브리서 13장 17절에 보면,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쓸데없는 소리나 진리에 어긋나는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면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비록 자신의 의견과 맞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종이 하라고 하면 복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교역자들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교역자들의 목회를 즐겁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가 바로 부흥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순종하지 않으면 교역자들이 근심하므로 교회에 유익하지 않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에는 사도 바울의 의견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음이 완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애굽 왕 바로를 보십시오. 바로는 완악해서 더 많은 재앙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완악한 마음을 가졌기에 죽었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고 교훈한 것입니다. 그 사람을 깨닫게 하여 부끄러움을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 교훈의 목적은 그 사람들을 회개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겸손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애굽 왕 바로처럼 멸망할 사람들은 더욱 완악해집니다. 이런 사람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못된 일을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나쁜 소문이 퍼지자 그의 아버지인 엘리 제사장은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마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이 강퍅하여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전쟁에 나가서 한 날에 같이 죽임을 당합니다.

사울 왕도 너무 완악하여 사무엘 선지자도 그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사울은 완악한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멸망했습니다.

히브리서 3장 13절에 보면,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완악하면 망합니다. 완악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셋째, 사도 바울은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들을 회개시키는 데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합니다. 그런데 한 번의 실수로 인해 그 사람을 원수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인자한 마음으로 서로 서로 용서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형제에게 권면하듯이 사랑으로 권면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사람은 이렇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권면하는 사람입니다.

 

넷째, 사도 바울은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을 축복하며 기도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무엇보다 원한 것은 평강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평강의 주님께서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축원했습니다. 언제 어떤 일이 생겨도 평강이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보다 더 귀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에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형편에 처해 있어도 마음에 평강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마음에 평강이 있을 때, 영적으로 가장 건강할 때입니다. 평강이 있을 때, 무슨 일을 하든지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마음속에 하나님의 평강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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