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도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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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0 18:54 조회3,929회 댓글0건본문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도 바울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도 바울
2008년 07월 13일(주일예배)
본문 / 데살로니가후서 1:1~5
사도 바울의 서신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형편과 처지에 상관없이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건강한 신앙의 일면을 볼 수 있습니다.
감사는 가진 것이 많다고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하는 일마다 잘 된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도 아닙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깨달음이 있어야 생깁니다.
솔로몬 왕은 형들이 많았지만,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이 ‘항상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오히려 솔로몬은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했습니다(전 1:2, 12:8). 그는 자신이 살아온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인생이 얼마나 허무하고, 얼마나 헛된 짓을 많이 하는가를 깨닫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기보다는 괴로워하며 살았습니다.
그에 비해 사도 바울은 소유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 있었고, 언제 순교를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항상 기뻐하고, 항상 감사하면서 살았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깨닫는 만큼 가질 수 있습니다. 감사할 것이 아무리 많은 자라도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는 감사함이 없습니다.
멕시코에 가면, 온천과 냉천이 나오는 마을이 있습니다. 이 마을의 아낙네들은 빨래 광주리를 가지고 와서 온천에서 빨래를 삶고, 냉천에서 헹궈서 깨끗한 옷을 집으로 가져갑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관광객이 “이곳 부인들은 참 좋겠습니다. 찬물과 더운 물을 마음대로 가져다가 쓰니까. 이곳 사람들은 온천과 냉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겠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멕시코 안내원이 말합니다. “천만에요. 이곳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하기보다는 불평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관광객이 그 이유를 묻자 안내원은 “이곳 사람들은 비누가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185년 전 독일의 정치가 마티는 재상의 직위에 있다가 자유적 사상가인 형 때문에 정계에서 쫓겨났습니다. 생활고를 겪던 그는 신발이 없어 맨발로 외출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다리를 잃은 장애인이 예배당 앞에 앉아 구걸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얼마나 감사한가! 비록 신발은 신지 못했지만, 이렇게 두 다리가 있으니,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한 이유는
첫째, 성도들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왜 사도 바울이 생각하기만 하면 감사한 교회가 되었을까요? 성도들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믿음이 좋아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데살로니가후서 1장 3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자라는 것을 볼 때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중요합니다. 믿음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귀한 보배입니다. 세상에 좋은 것이 많이 있지만, 믿음보다 좋은 것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믿음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면, 절대로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천국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가장 귀한 보배입니다.
믿음의 보배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이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믿음은 자신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똑똑하다고 해서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의심을 더 많이 합니다. 자신의 지식으로 판단하려고 하니,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지식이 없어도, 똑똑하지 않아도 믿음이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믿어집니까? 하나님이 믿어지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이 믿어지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과 절대주권과 신실하심과 큰 사랑이 믿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축복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갈 때에 믿음이 없으면 살지 못합니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간에도 서로 믿고 살아야 행복하지, 믿지 못하면 아무리 대궐 같은 집에 살아도 불행합니다.
어떤 의사는 부인이 의부증에 걸려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하루 종일 환자를 돌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남편을 끝없이 의심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며, 불안해합니다. 남편을 믿지 못하니, 아무리 남편이 생활비를 풍족하게 가져다주어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오면 천장만을 올려다봅니다. 교회가 무너지지 않을까 불안해서입니다. 어떤 사람은 식사도 하지 못합니다. 혹시 먹는 음식에 독이 들어 있을까봐 음식을 먹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비행기를 탔는데, 잠도 자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비행기가 추락할까봐 그렇다는 것입니다.
속을 때 속더라도 믿고 사는 것이 낫습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안 죽는다고 믿고, 먹는 것이 낫습니다.
평안할 때에는 믿음이 잘 자라지 않습니다. 평안할 때에는 믿음이 미지근해집니다. 라오디게아교회처럼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습니다.
아무 걱정 없이 평안하게 사는 사람은 별로 기도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한 마디 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기도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은혜 받을 기회도 없고, 믿음도 자라지 않습니다.
믿음은 환난과 시련이 있을 때 잘 자랍니다. 환난과 시련이 오면, 평안할 때보다 기도를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당하시는 분들, 병에 걸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분들, 사업에 실패하신 분들, 재난을 당하신 분들은 얼마나 사는 것이 힘듭니까. 그들은 부르짖으면서 기도합니다. 기도하다보면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를 받다 보면 믿음이 쑥쑥 자랍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환난을 겪어야 자랍니다.
영국의 조지 왕이 도자기 공장을 방문했습니다. 순찰하는 길목에 두 개의 꽃병이 있었습니다. 한 도자기는 윤기가 자르르 흘렀으며, 생동감이 넘쳤고, 예술품으로써 그 자태가 출중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도자기는 우선 외모가 볼품없을 뿐 아니라 빛깔조차도 흐릿하고 가치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조지 왕이 안내자에게 “이 도자기는 이렇게 윤기가 나는데, 저 도자기는 왜 저렇게 볼품이 없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안내자는 “이 윤기 나는 도자기는 불에 구워졌기 때문에 윤기가 나고, 저 도자기는 아직 불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윤기가 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환난 가운데 있는 분이 있습니까? 시련 가운데 있는 분이 있습니까? 낙심하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빛나는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둘째, 사랑이 더욱 풍성해졌기 때문입니다.
본문 데살로니가후서 1장 3절에 보면,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면, 사랑이 성장합니다. 예전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이웃을 더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 믿음이 자란 사람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열심과 믿음을 혼동하는 것입니다. 열심이 있다고 해서 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 중에도 열심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열심과 믿음은 전혀 상관 없습니다. 올바른 믿음의 성장은 열심만 보아서는 모릅니다. 그러나 사랑이 풍성해졌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확실히 성장한 것입니다. 옛날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더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원수를 위해 눈물 흘려 기도하고, 원수를 위해 축복 기도하는 사람은 대단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축복하기를 원하시고, 서로 사랑하고 축복할 때 기뻐하십니다.
요한복음 13장 34~3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박해와 환난을 당하면서도 잘 참고 인내했기 때문입니다.
환난과 고난과 핍박과 시험을 잘 참느냐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이 얼마나 성장했는가 알 수가 있습니다. 믿음만큼 오래 참고 잘 인내합니다.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 성공합니다. 인내는 성공의 열쇠입니다.
영국군이 전쟁에 참패를 당하여 전멸되고 말았습니다. 몇몇의 패잔병들이 모두 숲속으로 도망쳤는데, 그 중 ‘부수’ 장군도 함께 끼어 동굴 속으로 숨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 참패한 것이 수치스러운 그는 칼을 빼어 자살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동굴 어귀에서 거미가 거미줄을 치기 위해 애쓰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거미는 바람으로 인해 여섯 번이나 실패했으나, 일곱 번째에 성공했습니다. 이것을 지켜본 장군은 무언가 깨달은 듯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난 겨우 한 번 실패했을 뿐이다!”라고 외쳤습니다. 그 후 그는 다시 전쟁터에 나아가 대승리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끝까지 참고 견디면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인내는 사랑의 열매가 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만큼 오래 참을 수 있고, 사랑하는 만큼 고난을 견딜 수 있습니다.
벤자민 워필드 박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자입니다. 그는 1921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34년 동안 프린스턴신학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스물 다섯 살에 애니와 결혼하여 독일로 신혼여행을 떠났는데, 풍랑 속에서 애니는 벼락을 맞아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워필드는 아내를 위해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39년 동안 간호했는데, 결혼 생활 내내 두 시간이상 집을 비운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여러분, 사랑이 없다면 어떻게 이 고난을 참으며 견딜 수 있을까요? 사랑은 위대합니다. 사랑은 기적을 가져옵니다. 또한 인내는 소망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어떤 고난이 와도 잘 참고 견딥니다.
결과를 아는 사람은 잘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결과를 아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이 세상 험한 일이 와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갈 곳을 아는 사람입니다. 결과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걱정거리가 생겨도 걱정하지 않고, 불안해도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결과를 알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와 여러분은 소망이 있습니다. 결과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하여 받는 고난을 영광으로 알고, 장차 받을 영광이 얼마나 큰지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위하여 받는 고난을 오히려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아가십시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처럼 믿음이 점점 더 자라나고,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해지고, 어떤 환난과 핍박과 고난이 와도 잘 참고 견딤으로써 하나님 앞에 늘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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