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속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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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08 10:50 조회3,960회 댓글0건본문
낮에 속한 자
낮에 속한 자
2008년 03월 09일(주일예배)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5:1~11
세상의 모든 것이 시작할 때와 끝날 때가 있는 것처럼, 사람도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때가 있지만,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때가 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면서도, 자신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생각합니다. 종말의 징조가 확실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도, 종말이 오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고 삽니다.
성경에 보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장 3절에 보면,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세상의 종말이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멸망은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믿지 않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성경에 보면, 세상에 종말이 오는 날을 ‘주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주의 날’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으로 오시는 날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되는 날입니다. 이 날에는 이 땅에서의 수고가 끝나고, 오직 하늘의 영광만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날은 ‘심판의 날’이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심판받아 영원히 멸망하는 날입니다. 이 날에는 진실과 거짓이 다 드러납니다.
이 세상에는 거짓된 일이 참 많습니다. 사람들은 거짓말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셔서 심판하시는 날에는 진실과 거짓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천국에 가면 세 번 놀란다고 합니다. 첫째, 천국에 꼭 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지옥에 간 것을 보고 놀랍니다. 둘째, 천국에 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천국에 있는 것을 보고 놀랍니다. 셋째, 나 같은 죄인이 천국에 있는 것을 보고 놀랍니다.
이 세상에는 억울한 사람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모든 억울함이 해결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당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억울해도 참고, 손해 봐도 참고, 고통 중에도 참으며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십니다. 순교자들을 보십시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그들은 저주받은 것 같고, 비참한 종말을 맞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순교자들은 가장 큰 영광을 받을 사람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천 년 동안 왕 노릇할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의 날’이 정확하게 몇 년, 몇 월, 몇 날, 몇 시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마태복음 24장 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것은 알지만, 정확하게 어느 날 오시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임신한 여인은 반드시 해산의 날이 옵니다. 그러나 언제 해산할지 그 날과 그 시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임신한 지 10개월이 되면, 해산할 것이라고 짐작할 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의 날’이 언제인지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장 1~2절에 보면,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도둑은 미리 예고하고 오지 않습니다. 몇 날, 몇 시에 도둑이 오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일까요? 예수님께서 언제 오시든 상관없이 언제나 예수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평소에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은 언제 시험을 치든 걱정이 없습니다. 평소에 열심히 공부하여 실력을 쌓아놓으면, 예고 없이 시험을 친다고 해도 걱정이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예수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은 자고 있을 때 오셔도 되고, 직장에서 일 할 때 오셔도 되고,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 오셔도 됩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오시든 예수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해놓고 사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25장 1~13절에 보면, 열 처녀의 비유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 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 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랑을 맞이하러 열 처녀가 갔습니다. 그런데 다섯 처녀는 등만 준비하고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고, 다섯 처녀는 등과 기름을 같이 준비했습니다.
신랑이 온다고 해서 맞이하러 나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신랑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잠을 자기도 하고, 졸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신랑이 온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모두 신랑을 맞이하러 갔습니다. 등과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등만 준비하고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심지가 타는 순간만 잠시 불이 켜질 뿐 금방 꺼졌습니다. 기름이 다 닳았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면, 잘 믿는 것 같고, 믿음이 좋은 신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알맹이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다섯 처녀와 같습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다섯 처녀들은 기름을 준비한 처녀에게 기름을 나눠달라고 했지만, 슬기로운 처녀는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이하러 갔습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다섯 처녀가 기름을 사서 잔칫집에 갔지만, 잔칫집의 문은 닫혔습니다.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소서”라고 말했지만, 신랑은 “나는 너를 알지 못하노라”고 하며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3)”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지 모르니 항상 준비해놓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장 4~8절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깊은 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죄악이 점점 깊어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밤이 깊었다는 것은 새벽이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잠을 자지 말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새벽이 되면,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 사함을 받았고, 예수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릴 자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장 10절에 보면,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므로 우리를 모든 죄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 사람들입니다.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첫째, 가슴을 잘 무장해야 합니다.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장 5절에 보면,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도는 모두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고 살아야 합니다.
옛날에는 전쟁할 때에 칼을 휘두르거나 활을 쏘거나 창으로 찌르면서 적과 싸웠습니다. 전쟁 중 싸움할 때, 사람의 몸에서 가장 보호해야 할 곳이 심장입니다. 심장이 찔리면 한 순간에 죽습니다.
또 머리도 보호해야 합니다. 머리를 맞으면 생명이 위험합니다. 그래서 가슴에 단단한 흉배인 호심경을 붙이고, 머리에는 투구를 써서 생명을 보호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가슴을 잘 무장해야 합니다. 무엇으로 무장해야 할까요? 믿음과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믿음과 사랑은 동전의 안팎과 같습니다. 믿음만큼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에는 언제나 사랑이 따라다닙니다.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믿음의 성도들은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려고 합니다. 거룩하게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소원을 가지고 삽니다. 하나님을 위한 꿈을 가지고,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정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위해 받는 고난을 영광으로 알고 기뻐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주를 위해서 죽도록 충성합니다. 순교를 당해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기쁨으로 순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의 몸 된 교회와 형제들을 사랑합니다. 심지어는 원수까지도 사랑합니다.
요한일서 4장 20~21절에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은 만큼 믿음이 커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 믿음이 충만하고,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 성령 충만합니다.
사도행전 6장 3절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루살렘교회에서 집사를 세울 때에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을 집사로 세웠습니다.
믿음이 충만한 사람은 성령이 충만하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은혜 받은 모습, 믿음이 충만한 모습은 사랑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둘째, 머리를 잘 무장해야 합니다.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써야 합니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하나님의 소망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주의 날’을 바라보는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소망으로 무장되어 있는 사람은 이 세상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이 세상을 바라보면 실망할 것 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을 바라보면 걱정과 불안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흥하고 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이 세상이 돌아가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사람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사람이 아무리 훌륭해 보여도, 허물이 있고 부족함이 있습니다. 자녀들이 아무리 훌륭해도, 자녀를 바라보지 마십시오. 자녀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면, 그만큼 실망합니다. 오직 주님만 바로 보고, 소망 중에 기뻐하며 사십시오.
우리는 빛의 아들입니다. 낮의 아들입니다. 비록 깊은 밤을 맞이하고 살지만, 우리는 어둠에 속한 자가 아니고, 낮에 속한 자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낮의 아들’입니다. ‘낮에 속한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오시더라도,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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