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 데살로니가전서4장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회원로그인

데살로니가전서4장

너희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08 10:38 조회3,501회 댓글0건

본문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2008년 02월 24일(주일예배)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4:9~12

 

사도 바울은 여러 교회에 서신을 보냈습니다. 바울이 쓴 서신의 내용을 보면, 앞부분에는 교리적인 문제가, 뒷부분에는 윤리적인 문제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믿어야 된다’는 신앙적인 교훈을 먼저 말해주었고, 나중에는 ‘이렇게 살아라’는 생활의 교훈을 말해주었습니다.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바로 알고,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바로 알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르쳐줍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믿음과 인격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열매는 중요합니다.

 

믿음은 열매가 있으며, 그 열매는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만큼 형제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형제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모두 믿음의 형제들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 가서 영원히 하나님을 모시고 함께 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증거는 ‘형제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형제에게 불의한 짓을 하는지 불의한 짓을 하지 않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인지 마귀의 자녀인지 알 수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똑같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마귀의 자녀였습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했습니다. 그래서 동생인 아벨을 죽이는 살인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가인의 행동을 보면, 그가 마귀의 자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4~15절에 보면,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요 필수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반드시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44).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도해야, 원수라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은 형제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문 9~10절에서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욱 그렇게 행하고”라고 말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참 좋은 교회였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교회,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 행복한 교회였습니다. 믿음을 사랑으로 보여주는, 믿음이 살아있는 교회였습니다. 성령의 열매가 있는 교회였으니, 얼마나 좋은 교회였을까요!

 

성령 충만했던 예루살렘교회에도 성령의 열매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4~47절에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 4장 32~35절에 보면,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부부사이에도 재물을 나누어 쓰는 것이 어려운데, 교회 안에서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썼다는 것은 얼마나 크고 놀라운 사랑입니까! 그야말로 천국과 같은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도 예루살렘교회처럼 형제를 사랑하는 교회였지만, 이런 사랑이 많은 교회에도 문제는 있었습니다. 그 문제는 성도들이 예수님의 재림이 다가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곧 오실 것이니, 예수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곧 재림하신다고 하는데, 일하고 돈 버는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하는 일도 그만두고, 산으로 올라가서 기도하기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빨리 오셨으면 되는데, 예수님께서는 오시지 않고, 세월만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가진 재산을 다 써버리고 나니, 더 이상 먹고 살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직장을 잃어 돈이 없는 사람들은 이 집 저 집 다니며 얻어먹고 살았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에는 이렇게 일하지 않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교회에 많다보니 아무리 사랑이 많은 교회라 할지라도 큰 부담으로 느껴졌습니다.

재산을 나누어 주는 사람은 주는 기쁨이 있어 좋습니다. 그러나 받기만 하는 사람은 거지근성이 생깁니다. 그래서 당연히 받을 것을 받는 줄 알게 된 것입니다.

 

사랑은 주고받아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주고받을 때, 사랑은 점점 더 커집니다. 그래서 좋은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고 사랑을 주지 못하면, 누구에게나 부담을 주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특히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는 사람은 자기가 받고자 하는 사랑을 누군가 대신 충족시켜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사랑을 충족시켜 줄 사람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사랑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니까 불만이 생깁니다. 교회를 원망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받기보다는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밤낮 주면서 사는 사람은 손해 보는 것 같고, 망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베풀면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서 산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누가복음 6장 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누어 주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에게 몇 배로 안겨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에게

첫째, 조용히 자기의 일을 하라고 권면했습니다(살후 3:12).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1~4).

성도 여러분, 조용히 일하십시오! 은밀하게 일하십시오! 사람들 앞에서 떠들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시는 일은 하나님만 아시면 됩니다.

 

둘째,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고 권면했습니다(살후 3:12).

데살로니가후서 3장 12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자신은 일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열심히 일해서 애써 모은 양식을 얻어먹으려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열심히 일을 해서 내가 먹을 양식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탈무드에 보면, “자녀에게 스스로 돈을 벌어서 사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은, 도적질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일하여 그 대가로 먹고 사는 법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일해서 돈을 벌지 못하면, 자연히 남이 일해서 번 것을 얻어먹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땀 흘려 일해서 먹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땀을 흘리지도 않고, 일도 하지 않고, 먹고 살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바로 불한당이요 도둑놈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에 보면, “누구든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일을 책임지고 해야 합니다. 작은 일이라도 자기의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사람 노릇을 제대로 못한다는 것입니다.

 

1947년 미국 시카고 근교에 있는 천체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던 첸드리스카 박사에게 시카고대학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겨울 방학 동안 고급 물리학에 대한 특별 강의를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몇 주 뒤에 학교에서 다시 연락이 왔는데, 등록한 학생이 두 명뿐이어서 강의를 취소해야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첸드리스카 박사는 학생 수가 적은 것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등록한 두 학생이 어떤 학생인지 묻고 강의를 수락했습니다.

시카고의 겨울은 무척 춥습니다. 그런데도 첸드리스카 박사는 2시간 이상 떨어진 시카고대학까지 일주일에 두 번씩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가서 두 학생을 가르쳤습니다.

그로부터 10년 후, 첸드리스카 박사에게 강의를 들었던 두 사람은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한 분은 첸넝 양 박사이고, 한 분은 충도 리라는 중국계 미국 과학자들입니다.

그들은 수상의 자리에서 “우리가 이 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우리 두 사람만을 앞에 놓고 강의했던 첸드리스카 박사의 강의 때문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학생이 두 명 밖에 없었지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을 때, 아름다운 결실이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충성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셋째,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권면했습니다(살전 4:11).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9절에 보면,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사도 바울의 생활을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천막 치는 일을 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30세까지 목수 일을 하셨습니다.

 

어느 마을에 구두를 수선하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이 노인은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었지만, 진실하고 성실했습니다. 손님이 오면 환하게 웃으며 정성껏 구두를 수선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이번에는 구둣가게를 차리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정성을 다해 구두를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노인은 부자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노인에게 “성공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이제는 연세도 많으시고 돈도 많으셔서 일하는 사람을 고용해서 구두를 만들면 될 텐데, 왜 힘들게 직접 일을 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노인은 “나는 한 번도 부자가 되려고 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내일을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내가 하는 일에 정성을 다했을 뿐입니다. 우리 가게에 오는 손님은 내가 만든 구두를 신으려고 온 분들입니다. 그러니 이 일을 그만둘 수 없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난 이 일이 즐겁다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본문 12절에 보면,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일하지 않고, 밤낮 게으름을 피우면, 믿지 않는 자들에게 덕을 끼칠 수 없습니다. 믿는 자들이 게을러서 가난하게 산다면 전도길이 막힙니다.

왜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해야 할까요? 그 이유는 불신자들에게 존경받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하여, 믿지 않는 자들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일을 기쁨으로 즐거워하며 일해야 합니다.

이렇게 일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 존경 받게 됩니다.

 

전도서 3장 22절에 보면,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이 땅에 사는 동안,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십시오. 그리하여 믿음의 형제들에게 사랑을 베풀고,도움을 주며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2장

3장

4장

5장

 

 

 

 

 


접속자집계

오늘
945
어제
1,471
최대
7,648
전체
1,343,861
회사소개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Copyright © dalant.or.kr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