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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전할 부탁을 받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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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04 21:49 조회3,4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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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전할 부탁을 받은 사람

 

복음 전할 부탁을 받은 사람

2007년 10월 07일(주일예배)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2:1~8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이 교회는 믿음의 역사가 있는 교회이고,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으면 핍박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은 교회였습니다. 또한 그들의 믿음의 소문은 각처에 퍼질 정도로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는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불과 3주간 밖에는 머물지 못했지만, 3주 동안에 복음을 전한 그 열매가 매우 좋았습니다.

 

복음의 씨는 열매를 맺습니다. 본문 1절에 보면,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에 들어가서 3주 동안 복음을 전한 것이 헛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열매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면 그 열매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1858년 보스턴에 살고 있던 주일학교 교사 킴벌(Kimball)은 구ENT방에서 일하는 10대 청소년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청소년은 후에 세계적인 부흥강사가 된 무디(D.L. Moody)였습니다.

21년 뒤 무디는 런던에서 대집회를 가졌습니다. 그 집회에 참석했던 메이어(Meyer)가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메이어는 예수님을 믿고 목사가 되어 미국에서 집회를 인도하게 되었는데, 그가 집회를 인도하는 가운데 체프만(J. Chapman)이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YMCA에서 일하고 있던 체프만은 야구선수였던 빌리 썬데이 (Billy Sunday)에게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나중에 전도자가 된 빌리 썬데이는 함 (M. Hamm)목사를 강사로 초빙하여, 샬롯에서 3주간 집회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결신자는 12세의 소년 한 명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척 실망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결신한 소년은 후에 전 세계에서 수백만 군중에게 복음을 전한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전도할 때 내가 원하는 만큼 결신자가 생기지 않고, 어린 아이 한 명 만 영접을 했다고 해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당장은 결신자가 없다고 하더라도 10년, 20년, 30년 후에 수천, 수만 명의 영혼을 구원하는 결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한 주일학교 교사가 골목길에서 놀고 있는 네 명의 어린이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받은 네 명의 아이들은 교회에 열심히 다니며, 믿음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로부터 30년 후 이 교사의 생일날에 네 통의 축하 전보를 받았습니다. 그 전보는 30년 전에 자신이 복음을 전했던 골목길의 개구쟁이 소년들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그 네 통의 발신자들이 중국 선교사, 연방정부 은행총재, 미국 대통령 비서관 그리고 미국 대통령 허버트 클라크 후버였습니다.

이 주일학교 교사처럼 소년 네 명을 전도한 것 외에는 열매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먼 훗날 어린아이들이 자라서 얼마나 큰 열매로 자랐는지 모릅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복음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3주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데살로니가에 가서 전도했는데, 전도의 결과가 매우 좋았습니다. 좋은 열매를 많이 맺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열매가 좋은 것은 바울 자신이 전도를 잘해서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합니다.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이것이 바로 전도의 성공 비결이었습니다. 이렇게 복음의 열매가 나타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복음에 큰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애리조나의 피닉스에 살고 있던 사람이 일정한 기간의 징역을 살고 출감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형무소에서 나가는 날, 자신을 감옥에 보낸 사람을 총으로 쏘아 죽이기로 결심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나를 감옥에 보낸 그 사람을 총으로 쏘아 죽인다면, 내가 사랑하는 이 아이들을 다시는 볼 수 없겠지. 나는 불행한 운명으로 이 길을 가지만, 내 자식들만은 잘되기를 원해.’라고 생각하며 그 날 저녁에 아이들과 함께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생명의 말씀이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설교를 끝낸 목사님은 “그리스도를 모시고 새로운 인생으로 살 사람은 앞으로 나와서 주님을 영접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이 사람은 두 아들의 손목을 잡은 채로 강단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의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는 가슴에 품고 온 권총을 목사님께 드렸습니다.

그 후 그는 “여러분, 저는 오늘밤에 한사람을 쏘아 죽이려고 총을 가슴에 품고 나온 악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음은 저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오늘 이후로 저는 권총을 들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들고 저를 감옥에 보냈던 사람을 찾아다니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2~25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순교할 것을 예감하고, 마지막으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본다고 했습니다.

 

또 31~32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은혜의 말씀에 부탁할 수 있겠습니까! 3년 동안 열심히 전한 복음에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선교는 고난과 함께 이루어집니다. 로마서 1장 16절을 보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2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지방에 오기 전에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했다고 말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에는 핍박하는 자들은 반드시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선교는 고난과 함께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곳이면 순교자가 생기고 어려움을 당하는 자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사도행전 14장 8절에 보면,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전도하다가 앉은뱅이를 일으켜 걸어가게 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19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 귀신을 쫓아내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로 인해 바울과 실라는 핍박자에게 붙잡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25절의 말씀에 보면, 바울과 실라는 옥중에 갇혀서도 한밤에 일어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때 큰 지진이 일어나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고, 모든 사람들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습니다. 이처럼 선교에는 고난이 따릅니다.

 

사도행전 16장 27~34절에 보면,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빌립보교회가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참 오묘합니다. 바울과 실라가 매를 맞고 감옥에 들어가게 된 데에는 간수와 간수의 가정을 구원하고, 빌립보교회를 세우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을 전한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당합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기적을 통해 주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체험하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가운데서 믿는 자가 생기고 복음이 전파되고, 열매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고난을 허락한 이유가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두 가지를 말한다면 목숨을 걸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이고, 장차 받을 상급과 영광을 크게 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전도하는 것도 하늘의 상급을 받을 일인데, 전도하다가 매 맞고 전도하다가 순교한다면, 상급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전도한 상급에다가 고난 받은 상급까지 합쳐져 큰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4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창세전에 택하신 백성들로 하여금 복음을 믿고 구원받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다만 복음 전하는 심부름을 할 뿐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기 전에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지상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먼저 믿은 사람들은 복음을 전파할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이런 사명을 주셨을까요? 신앙의 건강과 장차 받을 상급을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교회와 성도들은 신앙이 건강합니다. 이런 교회는 은혜가 넘칩니다. 축복이 넘칩니다. 부흥이 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교회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부흥도 되지 않고, 은혜도 축복도 받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4절에 보면,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 전하는 자가 가져야 할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첫째, 사람을 기쁘게 하기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다 보면 사람도 기뻐합니다.

 

둘째, 아첨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잠언 16장 7절을 보면,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습니다.

본문 5절에 보면,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첨하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아첨하는 말을 할까요? 출세나 돈 같은 이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아첨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셋째, 탐심의 탈을 쓰지 않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바울이 살았던 당시에도 돈에 대한 욕심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이유가 생계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 기도원을 세운다거나, 취업의 목적으로 신학교를 졸업하고 교역자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병 고치는 은사에 탐심이 들어가면 위험합니다. 복음 전하는 자들은 탐심의 탈을 쓰지 마십시오.

 

넷째, 사람에게 영광을 구하지 않습니다.

본문 6절을 보면,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복음 전하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영광을 받으려고 하거나 어떤 대가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 비겁해지고 추해지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해야 합니다.

 

스코틀랜드의 에릭 리들은 파리올림픽 400m 계주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워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런데 그는 “네가 받은 메달보다 더 위대한 영광의 메달이 여기 있다. 너는 복음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에릭 리들이 중국에서 복음을 전하며, 그들을 돕자 일본군은 그를 스파이로 몰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는 42세의 젊은 나이에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지만, 숨질 때에 그의 얼굴은 빛났고, 그는 찬양과 경배 속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그를 통해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그를 감옥 옆 작은 동산에 그를 묻었습니다. 그의 묘지 비문에는 ‘하나님의 영웅, 에릭 리들 여기에 잠들다’라고 쓰여있습니다.

 

다섯째, 목숨까지도 기쁨으로 줄 수 있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본문 7~8절에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기쁨으로 줄 수 있는 사도 바울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을 사랑하는 사도 바울도 귀하지만, 주의 종인 사도 바울로부터 이렇게 사랑받을 수 있는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은 더 귀합니다.

사도 바울이 사랑했던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처럼 우리 교회의 성도들도 사랑받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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