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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신앙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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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7 16:02 조회3,3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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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신앙의 사람들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

2010년 09월 24일(금요철야)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1:6~8

 

성경을 보면,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모두 믿음으로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3절에 보면,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브리서에 나오는,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은 모두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으로 경건한 모습으로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지막을 그렇게 장식했습니다.

 

훌륭한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나 믿음으로 잘 자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생 믿음으로 경건하게 사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훌륭한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났다고 해서 누구나 믿음으로 경건하게 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경건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경건하게 살았다는 구절은 성경에 없습니다. 이삭의 두 아들인 야곱과 에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은 경건하게 살았지만, 에서는 신앙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고 경건한 다윗의 자녀들도 모두 경건하게 산 것은 아닙니다.

 

훌륭한 부모님에게서 태어나서 신앙으로 잘 교육받으면서 자라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평생을 믿음으로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다가 죽느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일생의 마지막을 어떤 모습으로 살다가 가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평생 훌륭하게 살았어도, 인생 말년에 타락하여 엉망으로 살면, 평생 훌륭하게 산 것이 사라지고 맙니다.

 

성경에 보면, 아사 왕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말년에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사람을 의지하고, 다른 나라의 군대를 의지하며, 충고하는 선지자를 감옥에 넣고 핍박했습니다.

자기 발이 병들었는데도 의사들만 의지하려 하고, 기도하려고 생각하지 않다가 그만 죽었습니다. 그의 마지막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히스기야 왕은 기도를 많이 하고, 많은 기적을 체험하고, 응답을 많이 받은 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15년을 더 살게 해주셨을 때, 하나님께서 덤으로 주신 시간을 거룩하고 경건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하는데, 오히려 교만해져서 감사할 줄도 모르고, 바벨론에서 사자들이 왔을 때 자기가 가진 것을 자랑하다가 결국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생명을 15년 연장 받은 지 3년 만에 낳은 아들 므낫세를 어떻게 교육시켰는지, 므낫세는 왕이 되자마자 성전에 별별 우상을 다 가져다놓고 숭배했습니다. 결국 나라가 뒤집어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히스기야의 마지막 삶이 엉망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든지 오늘 이 순간부터 천국에 가는 그 시간까지 마지막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아시고,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경건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둘째, 마지막을 믿음으로 살다가 경건한 모습으로 죽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6절에 보면,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는지,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인정하시고 자랑스럽게 여기셔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마 3:17).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은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면서도 믿음으로 경건하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노아는 세상이 음란하고 죄악이 넘쳤지만, 믿음으로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창세기 6장 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극도로 타락했습니다. 생각하는 것도 마음도 계획하는 것도 죄악으로 꽉 차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한탄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창세기 6장 11절에 보면,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인간이 타락했는데, 하나님께서 땅까지 멸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땅은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을 멸하시면, 인간을 위해 주신 땅도 같이 멸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북극과 남극의 얼음이 녹아내리고, 비가 짧은 시간 안에 한꺼번에 쏟아져서 그 물이 빠져나갈 길이 없으니 도시가 물에 잠겨버립니다.

 

지금 바다에도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차가워야 할 바다가 뜨거워지고, 뜨거워야 할 바다가 차가워지면서 뒤죽박죽되고 있습니다.

지구가 마치 지독한 감기에 걸린 것처럼 난리입니다. 죄악이 가득하고 포악한 세상이 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그만큼 악해진 것을 뜻합니다.

짐승들보다 더 악한 것이 인간입니다. 어느 짐승이 혼자서 6백만 명의 사람을 헤칠 수 있겠습니까. 사자가 아무리 사나워도, 한 마리 잡아먹고 배가 부르면 더 이상 잡아먹지 않습니다. 인간처럼 계획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죽이는 악한 존재가 없습니다.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믿음으로 경건하게 산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보십시오.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가나안 땅에 온 사람으로, 아브라함으로부터 경건한 삶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소돔과 고모라에 들어가서 살 때, 그 지역은 아주 타락한 지역이었는데, 그런 곳에서 살다보니 믿음으로 경건하게 살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자기 자신을 믿고 큰 소리 치지 마십시오. 인간은 환경 앞에 얼마나 약한지 모릅니다. 아무리 경건하고 믿음이 좋아보여도, 좋지 않은 환경에 들어가서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좋지 않은 소리를 듣고, 좋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비슷해져버립니다.

연탄공장에 들어가면 검어지고, 밀가루공장에 들어가면 하얗게 됩니다.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언제나 갈 데와 가지 말아야 할 데를 잘 구별합니다.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롯이 소돔 고모라에서 살다보니 롯의 부인도 믿음이 없었습니다. 집에서 아내의 영향력은 상당히 큽니다. 아내가 살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집안을 꾸며나가기 때문에 상당히 영향력이 큽니다.

그래서 아내가 기도 많이 하고, 은혜 충만하고, 경건하게 살면, 남편도 영향을 받고, 자녀들도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소돔에서 끌고 나갈 때 뒤돌아보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도 뒤를 돌아봐서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두 딸은 결혼하지 않은 처녀들인데, 그들이 아버지에게 한 짓을 생각해보십시오.

산 속에 들어가 피해있을 때, 아브라함에게 가서 의지하고 다시 살 길을 찾았으면 얼마든지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회복될 텐데, 그들은 아버지에게 술을 먹여 아들을 하나씩 낳아 하나는 모압 족속의 조상이 되었고, 또 하나는 암몬자손이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 두 족속이 얼마나 악독하고 타락한 족속인지, 결국 하나님 앞에서 못된 짓만 하다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환경이 좋지 않은 곳에 있다 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 6장 9절에 보면,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노아는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면서도 흠잡을 데가 없었고,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았습니다.

창세기 7장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7장 5절에 보면,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시대에 전 세계의 인구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지만, 구원받은 사람은 노아의 여덟 식구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노아시대보다 몇 배로 더 악하고 더 타락한 지금 이 세상에서 과연 끝까지 믿음으로 경건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생각해보면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함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구원받을 사람을 한 사람도 찾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은혜를 받으면, 우리도 노아와 같이 살 수 있습니다. 노아가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믿음으로 경건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창세기 6장 8절에 보면,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노아는 아주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악하고 모든 인간이 타락해도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과 동행하며 거룩하고 의롭게 살 수 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성도들도 보십시오. 잡혀갈까봐 문을 닫아 걸고 벌벌 떨고 있던 사람들이 성령의 은혜를 받으니까 얼마나 담대하고 늠름합니까. 그들은 채찍에 맞아도 주님을 위해 받는 고난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더 기뻐하고 담대하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으니까 이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악하고 타락해도 경건하게 살 수 있도록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둘째, 큰 환난을 당하면서도 낙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경건하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한 후, 이 세상에는 환난이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그러므로 환난은 죄악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죄악이 가득할수록 환난이 더 커지고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믿음으로 경건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도 큰 환난이 닥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환난은 무조건 죄의 결과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믿음으로 사는 경건한 사람들에게도 환난이 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환난 당하는 사람이 죄를 지어서 그렇다고 평가하지 마십시오.

 

욥은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큰 시험과 환난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습니까. 그런데도 욥은 환난을 당했습니다. 이런 때에는 누구나 낙심하기 쉽고, 하나님을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가정에 큰 시련이 오고,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자녀들이 모두 죽었지만, 그는 겸손하게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예배드리며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욥 1:21). 그리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욥 1:22).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욥기 2장 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라고 욥을 자랑하셨습니다.

욥도 인간인지라, 고통이 심하고 계속되니까 죽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도 있었고, 차라리 태어나기 전에 죽었든지 태어나다가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난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욥기 23장 10절에 보면, 욥은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라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욥의 위대한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욥이 큰 환난과 시험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믿음으로 경건하게 살아감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고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야고보서 5장 7~11절에 보면, 야고보 사도는 욥을 예로 들면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라고 설명했습니다.

욥은 인내의 조상입니다. 어려움을 끝까지 잘 참고 견뎌 갑절의 축복을 받은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생사고락과 흥망성쇠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도 뽑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생각하지 않고, 나를 괴롭히는 사람만 생각하고,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환난이 있을 때,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음을 알고, 욥처럼 끝까지 인내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인정을 받고 갑절의 축복을 받는 자가 될 줄 믿습니다.

 

요셉도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노예가 되어서 애굽으로 끌려가는 큰 환난을 당했습니다.

노예가 되어 고생하는 것은 가난으로 고생하는 것과 비교되지 않습니다. 가난한 것은 마음대로 먹지 못하고 고생하는 것이지만, 노예가 되면, 짐승과 같은 취급을 받습니다.

요셉은 고통의 큰 환난에 빠졌지만, 낙심하거나 원망하거나 자포자기하지 않고 오직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경건을 사수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아무리 유혹해도 뿌리치고 이겼습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어도, 오직 믿음으로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셔서 범사에 형통하게 하시고, 꿈을 잘 해몽하게 하시고, 모든 것이 전화위복되게 하셨습니다. 결국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애굽과 전 세계를 다스리고, 자기 민족을 먹여 살렸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복이 특별히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물질의 복입니다.

이것은 아주 초보적인 복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 중에도 물질의 복을 받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둘째, 은혜 충만한 복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받는 복이 아닙니다. 은혜 충만하면 큰 믿음의 사람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을 닮게 되고,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여기에 한 가지 복을 더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쓰임 받는 복입니다.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복, 복의 근원이 되어 많은 사람이 복 받게 해주는 복, 많은 사람을 세워주고 양육해서 하나님의 집의 일꾼을 만드는 복. 이 복을 꼭 받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큰 환난 중에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 믿음이 얼마나 좋은지,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습니다.

환난이 많은 세상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믿음으로 경건하게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셋째, 위대한 신앙의 사람은 축복을 많이 받아도 교만해지지 않고 방종하지 않고 경견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축복을 받은 줄 아십니까? 자기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천명도 넘었습니다. 그 중에서 군대에 나가서 싸울 만한 사람만 해도 318명이나 될 정도로 굉장한 부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변함없이 믿음으로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위대합니다.

 

이삭도 백 배의 복을 받아서 거부가 되었지만, 이삭은 변함없이 항상 경건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야곱도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만해지거나 방탕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의 말년은 선지자와 같았습니다. 요셉이 노예에서 총리가 되었다고 해서 교만해졌습니까? 변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높여주셔도, 교만해지지 않고 방종하지 않고 경건하게 산 사람들은 정말 위대한 사람입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에만 기도를 많이 하고 거룩하게 산 것이 아닙니다. 다윗의 말년은 은혜 충만한 선지자와 같았습니다. 이들처럼 축복을 아무리 받아도 교만해지지 않고 방종하지 않고 경건하게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솔로몬을 보면, 축복을 많이 받으니까 성전에 나아가서 예배드리거나 기도하지 않고 밤낮 잔치만 벌이고 여자만 더 늘려갔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우상숭배하고 술이나 먹는 생활을 했습니다. 축복을 감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웃시야 왕도 나라가 강성해지고 축복을 받으니까 교만해져서 실수하고 말았습니다. 히스기야도 축복을 많이 받으니까 교만해져서 마지막에는 잘못 살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고난이 많았을 때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기도생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크게 축복하셔도 변함없이 깨어 기도하고 믿음으로 경건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위대한 신앙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축복을 받아도 경건을 지켰습니다. 그가 변함없이 경건하게 살았던 비결이 있습니다.

첫째,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드리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둘째, 아브라함은 장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큰 성을 쌓거나 대궐 같은 집을 짓고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가리라, 떠나라 하시면 무조건 떠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은 영원히 살 곳이 아니고 본향은 하늘나라에 있다고 생각하며 언제나 천국을 바라보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무리 축복을 받아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셋째, 나그네 대접을 잘했습니다.

창세기 18장에 보면, 나그네가 오니까 아브라함은 얼마나 반갑게 정성을 다해서 대접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천사를 대접하게 되었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욥이 끝까지 경건을 지키고 축복을 받았던 비결도 마찬가지입니다. 욥기 1장 4절에 보면, “그의 아들들이 자기 생일에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의 누이 세 명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잔치가 끝나면, 욥은 반드시 그들을 불러서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잔치를 열어서 실컷 놀았는데,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새벽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힘듭니까. 그래도 욥은 자식들이 마음속으로라도 하나님 앞에 범죄했을까봐 자녀들을 경건하게 길렀습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늘 단을 쌓았던 아브라함처럼, 욥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경건을 지켰습니다. 이것이 욥이 아무리 축복을 받아도 교만하지 않고 타락하지 않았던 비결입니다.

 

욥기 29장 8절 이하에 보면, 욥이 부요할 때 좋은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욥이 나타나기만 하면 얼마나 존귀하게 여기고 존경했는지, 젊은이들은 조심스럽게 몸 둘 바를 모르고 숨고 늙은이들은 일어나서 섰다고 합니다.

그 지방의 유지들도 함부로 말하지 못하고 손으로 입을 가렸습니다. 그리고 지도자들은 욥 앞에서 감히 큰소리치지 못하고, 욥 앞에서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욥기 29장 11~16절에 보면, “귀가 들은즉 나를 축복하고 눈이 본즉 나를 증언하였나니 이는 부르짖는 빈민과 도와 줄 자 없는 고아를 내가 건졌음이라 망하게 된 자도 나를 위하여 복을 빌었으며 과부의 마음이 나로 말미암아 기뻐 노래하였느니라 내가 의를 옷으로 삼아 입었으며 나의 정의는 겉옷과 모자 같았느니라 나는 맹인의 눈도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의 발도 되고 빈궁한 자의 아버지도 되며 내가 모르는 사람의 송사를 돌보아 주었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욥이 평소에 어떻게 살았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욥은 불쌍한 사람을 절대로 그대로 두지 않고 돌보아주었습니다. 자기 가정과 자신의 경건을 지킬 뿐 아니라, 밖으로는 구제하고 봉사하며 섬기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인다면, 영혼 구원하는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선교하고 후원하는 일을 한다면 그야말로 완벽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욥을 본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항상 경건하게 예배드리고, 언제나 나그네를 잘 대접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사랑의 손길을 뻗어 많은 사람을 돕고 섬겨야 합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하여, 복음을 전하고, 영혼 구원하는 일에 충성하고,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들을 후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가복음 10장 29~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을 위해 복음을 전파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살면,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신다는 의미입니다.

 

한국 국민은 복을 받을 백성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점점 일어나고, 나라의 위상이 세워지는 것은 한국 교회만큼 선교를 강조하는 나라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신 것에 대해 책임지시는 분이십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 그것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은 금세에 백 배의 복을 받습니다. 이것은 기복신앙이 아닙니다.

주님을 위해 사는 것 자체가 복인 줄 믿습니다. 그 복을 받은 사람에게 다른 복은 따라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다 들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복을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위하고, 그 나라를 위하고, 복음을 위해 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늘의 복, 땅의 복을 넘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아무리 이 세상에 죄악이 가득하고 환난이 온다고 해도, 아무리 축복을 받는다 할지라도 변함없이 끝까지 경건하게 사는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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