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적인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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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03 16:02 조회3,510회 댓글0건본문
모범적인 교회
모범적인 교회
2007년 09월 23일(주일예배)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1:1~5
데살로니가전서는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에 보낸 편지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사도행전 17장을 보면, 데살로니가교회는 사도 바울이 불과 3주 동안 머물며 복음을 전하여 세워진 아주 특별한 교회입니다. 따라서 이 교회의 교인들은 사도 바울로부터 짧게는 한두 번, 길어야 3주간 정도밖에 복음을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를 미루어 볼 때에, 이 교회의 교인들은 아직 미숙한 그리스도인이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이 데살로니가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이 교회의 미숙함이나 부족한 점을 지적하기보다는 오히려 이 교회의 좋은 점만 언급하면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 결과 데살로니가교회는 마치 옥토에 떨어진 씨가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듯이 모범적인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이 있습니다. 좋은 점도 있고, 부족한 점도 있습니다. 사람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장점을 보느냐 단점을 보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엄청 다르게 나타납니다. 남의 훌륭한 점과 장점을 보는 사람은 그 사람의 장점이 자연스럽게 자신에게도 스며들어 그 사람을 닮아가게 되고, 자신의 성품도 더 좋아집니다.
그러나 사람을 볼 때에 좋은 점을 보기보다는 단점이나 결점을 보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닮아 인간성이 더 나빠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부지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가 10년, 20년 오래 살다보면, 부부처럼 서로의 장단점을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 부족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점을 칭찬하고 격려하며 감사하고 사는 부부는 부부금술이 더 좋아지고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단점을 지적하고 비난하고 들추어내는 부부일수록 점점 더 사이가 나빠지고 불행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내 뜻과 기도대로 되지 않아서 섭섭하고 또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때 감사할 것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며 사느냐, 불만스러운 것부터 생각하고 원망불평하며 사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며 살다보면 어느새 원망할 것은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우리가 원망하며 살면 감사할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곧잘 잊어버리게 됩니다.
제가 대학생 시절, 어는 장로님 댁에서 입주과외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 장로님은 교회에서도 모범적인 분이셨고, 배울 게 많은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섭섭하게도 제게는 돈을 적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대로는 오래 이 댁에 머물 수 없어 저는 두 내외분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두 분을 만나면 어떻게 이야기를 꺼낼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한 끝에, 먼저 이분들의 좋은 점부터 얘기하고, 끝으로 과외비를 말씀드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여러 집을 다녀보았지만, 장로님 댁처럼 훌륭한 가정을 본 적이 없습니다. 자녀들도 잘 가르치시고,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두루 모범을 보이시는 모습을 뵈올 때마다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제 평생 기억에 남을 훌륭한 장로님 가정입니다.”라고 말했더니 이분들이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차마 돈 얘기를 꺼낼 수 없었습니다.
사실 믿지 않는 집에서도 이보다 더 주는데, 장로님 댁에서 이렇게 짜게 주시면 되겠느냐고 저의 정당한 사례비를 얘기하려던 계획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감사할 것을 얘기하다 보니 원망할 것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도 그 장로님께서 저를 잊지 못하시고 사랑해주시고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릅니다.
40년 간 광야 길에서 헤매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장사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을 원망하며 살아온 날들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들에게서 교훈을 받아 항상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사는 복된 성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항상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기도한 이유가 본문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믿음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또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이 얼마나 큰지 작은지 아는 방법은 그 사람이 하는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사람의 행위를 보고 그 사람의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2장 14~17, 22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의 역사는 행함과 정비례합니다. 행하는 만큼 믿음이 온전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행함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은 온전하지 못한 믿음의 소유자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나온 지 오래되어 성경도 잘 알고 말씀에 대한 지식도 박식합니다. 그러나 그의 성품이나 행동을 보면, 불신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심지어 불신자보다 더 못한 사람도 교회 안에 있습니다.
믿음은 지식이 아닙니다. 지식만 있고 행함이 없다면, 문제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성경지식이 많아도 결단코 믿음의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8장 1절에 보면,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은혜 받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교만한 사람은 전혀 은혜를 받지 못하여 믿음이 잘 자라지 않습니다.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40년간 교도소 생활을 한 죄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가죽 채찍으로 50대씩 여덟 차례나 맞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경찰과 교도소에서도 포기할 정도였습니다.
그 후 40년 만에 출소하였지만, 딱히 갈 데가 없었던 그는 교회에 속한 어느 숙박시설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그날 밤 한 성도의 진실한 전도로 그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거듭난 새 사람이 된 후 교회에서 18년간 봉사하며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그가 간증하기를 “나는 400번의 가죽 채찍이나 40년간의 교도소 생활로도 변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를 영접하고는 불과 1분 만에 새 사람이 되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에는 대단한 힘이 있습니다. 구원의 능력이 있으며, 자신을 이기는 경건의 능력이 있습니다. 환난과 시험과 마귀를 이길 능력이 있을 뿐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키는 거룩한 능력이 있습니다.
둘째, 사랑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에는 진실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사랑에는 참사랑과 거짓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의 사도로 불리는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3장 18절에서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했습니다.
믿음에는 사랑의 힘이 있습니다.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참사랑은 이기적이지 않습니다. 희생적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희생하는 마음이 없으면 거짓사랑입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그를 위해 수고하기를 즐거워하고, 희생하기를 기뻐합니다.
오늘날 가정마다 문제가 많은 것은 참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남녀가 만나서 결혼할 때는 서로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잘생겨서, 혹은 돈이 많아서, 직장이 좋아서, 학벌이 좋아서, 내 마음에 들어서 등등 다 좋아하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따라서 좋아하는 조건들이 와르르 무너지면 끝장입니다.
그러나 참사랑은 무조건적입니다. 못생겼음에도, 돈이 없음에도, 학벌이 변변찮음에도, 내 마음에 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면, 이는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참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5장 6~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에 보면,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셋째, 소망의 인내가 있었습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이 와도 잘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여인들이 해산의 고통을 잘 참고 견뎌낼 수 있는 것도 탄생할 자녀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아프카니스탄에 의료봉사를 갔다가 순교하신 두 분도 죽음의 두려움과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신앙의 지조를 지키며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은 천국에서 주님을 만날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분명하고 천국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떤 고난도 잘 견디고 이겨냅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외아들을 둔 한 회사원인 아버지가 어느 날 회사에서 그의 아내로부터 한 통의 급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보, 학교에서 귀가하던 우리 아이가 교통사고로 그만...” 남편이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아들의 몸은 이미 차갑게 굳어있었습니다.
그 후 아버지는 아들의 일기장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힌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 아빠가 예수님을 믿게 해주세요. 아빠가 예수님을 믿을 수만 있다면 저의 생명을 드려도 좋아요.” 그는 즉시 아들이 다니던 교회로 달려가 하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전 세계를 다니며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국제대학생선교회 부총재 스티븐 더글라스의 한 친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문 3~4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증거가 무엇입니까? 행함이 있는 산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택한 사람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5~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시몬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믿지 않는 것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은 물론이요, 우리의 믿음이 자라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자라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환난과 핍박이 심하여 두려운 마음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도행전 18장 9~11절에 보면,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린도에 핍박자들의 핍박이 심했지만,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도 많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5절에 보면, 데살로니가교회가 모범적인 교회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을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말로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으로 임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16절에 보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의 능력이 될 뿐 아니라 거룩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복음이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나타나게 됩니다(갈 5:22~23).
그러므로 데살로니가교회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나타나는 모범적인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사도 바울은 이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교회도 이와 같은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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