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의 진정한 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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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28 16:31 조회3,362회 댓글0건본문
성도들의 진정한 교제
성도들의 진정한 교제
2005년 09월 25일(주일예배)
본문 / 골로새서 3:12~17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과 교제하기를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축복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믿음의 형제들이 서로 교제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예수님만 잘 믿고 교회에 다니면 되지, 뭐 하러 이 사람 저 사람 만나 머리 아프게 교제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교제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따라서 내 생각에 따라 교제해도 되고 교제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와의 교제에 있어서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에 보면,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듯 믿음의 형제들을 사랑하라는 의미입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5장 2절에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양과 염소의 비유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예수님께서는 양과 같은 성도들과 저주받은 사람들인 염소로 나누어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양과 같은 성도들을 향해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4~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고 말씀하십니다.
평소 우리가 사랑으로 서로 대접하고 돌보는 것이 주님께 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한편 염소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주님께서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마 25:41~4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 25:45)”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제할 때에 상대편방을 예수님이라고 생각하고 정성을 다 해야 합니다. 이는 그 사람에게 하는 것이 곧 주님께 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0장 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를 만나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하고 주님께 하듯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처럼 많은 성도가 모이는 곳에서는 함께 예배드릴 수는 있어도, 교제는 잘할 수 없습니다. 성도의 이상적인 교제를 하려면, 10명을 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소수의 사람을 택하시고, 12명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소그룹을 만들려면 12명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그룹은 작을수록 좋습니다. 인원이 많아지면 ‘나 하나쯤이야’라고 생각하고 참석하지 않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결국 소수의 사람만 모임을 이끄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10명 이내로 모이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성도는 누구나 소그룹 모임에 참여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모이는 사랑방 모임, 주일학교 모임, 성경공부 모임, 기도회 모임 외에도 여러 모임에 참여해야 합니다.
교회를 큰 배에 비유한다면, 소그룹은 구명보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해 큰 배가 좌초되더라도 구명보트로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듯이, 교회가 공격을 받고 어려움을 당할 때에 구명보트와 같은 소그룹이 교회 안에 많다면 그 교회는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소그룹 모임을 귀중히 여기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모임에서 진정한 교제가 다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지면
첫째, 그들의 삶 가운데 일어난 일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게 됩니다.
서로 상처를 나누기도 하고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며, 실패를 고백하기도 하고 의심되는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도 하며, 두려움을 시인하고 약점을 털어놓으며 기도를 부탁하게 됩니다. 이런 가운데 깊은 나눔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곳에서는 진실하고 인간적인 분위기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가식적인 모습들이 더 많이 보입니다.
자신의 본래 모습은 감추고 자기 방어를 하며 가식적인 친절을 베풀고 형식적인 대화를 나눕니다. 서로 경계하고 눈치를 많이 봅니다.
이런 곳에서는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진정한 교제는 솔직해야 합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7~10절에 보면,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어두움에 감추려고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진정한 교제는 빛 가운데 드러나야 합니다. 죄가 있으면서 죄를 감추면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사실 평소의 삶 가운데 일어난 일들을 진심으로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은 어떻게 보면 위험한 일입니다. 대단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또 겸손해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이 솔직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 것을 매우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만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6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병을 감추면 병이 쉽게 나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솔직해야 성도의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둘째, 상호 의존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2장 44~47절에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성도들이 마치 한 가족처럼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지면 내 것, 네 것이 없어집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0~27절에 보면,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 몸의 각 지체들이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것처럼, 성도들 사이에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지면 상호 의존하여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셋째, 서로 공감합니다.
공감한다는 것은 고통에 함께 참여하고,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실수했거나 문제를 안고 고민하는 성도에게, 그것은 이상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위로하고, 실은 그런 경험이 있었다고 말해줄 때 그 문제를 공감하게 됩니다.
골로새서 3장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상대방의 감정을 정당하다고 확인하고 이해해 줄 때, 더욱 깊은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교제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가장 기초적인 단계는 ‘나눔의 교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공부하며 교제하는 것입니다.
더 깊은 단계는 ‘섬김의 교제’입니다. 선교여행을 함께하거나 봉사활동을 함께하며 섬기게 됩니다.
가장 깊고 친밀한 단계는 ‘함께 고통을 나누는 교제’입니다. 서로 고통과 슬픔을 나누고 함께 짐을 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순교도 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2절에 보면,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법은 곧 사랑의 법입니다. 교회 안에 이런 사람이 많을 때 좋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가장 필요할 때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을 때입니다. 깊은 슬픔에 빠져 있거나 의심에 사로잡혔을 때, 그리고 믿음이 흔들릴 때, 믿음의 친구가 필요합니다. 우리를 이끌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넷째, 자비를 경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완전하시지만, 인간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만나 교제하다 보면 자연히 허물이 드러나고 실수가 드러납니다. 이럴 때 판단하고 불평하기 쉽습니다.
진정한 교제가 이뤄지면, 모든 것을 덮습니다. 서로 이해하고 자비를 베풀며 그 모습 그대로 받아줍니다.
고린도후서 2장 7~8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서로 용서하지 않고는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골로새서 3장 13~14절에 보면,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은 자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처럼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용서하시면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주님께서는 우리도 서료 용서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런 자세로 살아간다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천국과 같은 세상이 될까요.
진정한 용서는 상대방이 용서를 구하든 말든 무조건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계속 내게 상처를 준다 할지라도, 절대로 보복하지 않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중보기도하며, 원수라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사랑할 때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지는 줄 믿습니다. 진정한 용서가 있을 때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지난 2천 년 동안 기독교는 많은 환난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점점 더 커지고 부흥해 온 것은 소그룹을 통한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경우, 과거 공산당의 핍박으로 인해 교회의 문이 닫혔을 때, 믿음의 사람들이 없어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을 빗나갔습니다.
문호가 개방되었을 때, 지하 교회는 폭발적으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비록 드러나는 예배는 드리지 못했다 할지라도, 지하로 숨어든 믿음의 사람들이 소수의 단위로 모여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살겠다는 진정한 교제의 관계가 끈끈하게 이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한 이들의 전도로 인해 성도가 계속적으로 늘어난 것입니다. 북한에도 지하 교회에 이런 소그룹 모임들이 많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수영로교회의 성도라면 한 분도 빠짐없이 사랑방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한 주간동안 받은 은혜를 서로 나누고 간증하며 어려운 일들을 내어놓고 같이 기도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간섭하시고 축복하시는지 눈으로 보면서 같이 기뻐하고 같이 행복을 나누며 진정한 교제를 이루어나가시기 바랍니다.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어떤 환난이나 핍박이 와도 승리하는 비결은 소그룹 모임을 통해 진정한 교제를 가지는 데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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