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 것을 찾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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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10 09:32 조회3,335회 댓글0건본문
위의 것을 찾으라
위의 것을 찾으라
2011년 04월 29일(금요철야)
본문 / 골로새서 3:1~2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주일이 되면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찬양하고, 말씀의 은혜도 받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교회 생활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교회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을 소홀히 하면, 은혜도 받지 못하고, 복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예배를 드릴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는 예배를 드릴까’하는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예배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삶을 잘하면, 그 사람은 신앙이 삽니다. 그런데 예배를 소홀히 하고 예배를 경홀히 여기고 정성도 없이 예배를 형식적으로 참석하면, 그 사람은 신앙이 살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평생 교회를 다녀도 믿음이 신통치 못합니다.
여러분이 여러 가지가 부족하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 하루 세 번 기도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기도하면 사자 굴에 들어가게 되는 시험이 왔을 때에도 아예 죽을 각오를 하고 기도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배하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어렸을 때 저와 아주 친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서울대학교 법과대에 가서 판검사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학교에 간 후에 교회 다녀도 되니까 고등학교 3년 동안 교회에도 가지 않고 공부하고 학원에 다니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3년 동안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공부를 얼마나 잘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합격 되고 안 되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공부를 아주 잘했지만, 시험 치는 날 시험지만 받으면 정신이 멍해져서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학입시에 세 번이나 도전했지만, 서울대에 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불행한 것은 그가 신앙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서울대가 뭐기에 서울대에 가겠다고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일을 3년 동안 중단했습니다. 그러고도 복을 받는다면,얼마나 그것이 불행한 일이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불택자라면 그래도 합격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절대 합격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밥은 굶더라도, 주일에 돈은 못 벌더라도 예배는 참석해야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중ㆍ고등학교 12년 동안 학교에 개근한 사람입니다. 몸이 아무리 아파도 죽지 않는 한 무조건 학교에 갔습니다.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너무 딱해서 집에 가라고 하면 갔습니다. 저는 학교를 빠진다는 것을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예배는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하루에 세 번씩 교회에 가서 기도한다. 성경은 매일 한 장 이상 읽는다.”라고 3가지를 결심하고 계속 지켰습니다. 목숨 걸고 예배드린다는 마음을 가지고 사니까 아무리 마귀가 타락시키려고 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은 아무도 이길 수 없습니다. 이 마지막 환난의 때에 아무리 큰 박해가 있고, 고난이 있다 해도 예배에 목숨을 걸고, 기도생활에 목숨을 걸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그런데 똑같이 주일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봉사하는데 신앙이 쑥쑥 자라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신앙이 전혀 자라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한 주간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신앙이 쑥쑥 자라는 사람은 위의 것을 찾고, 위의 것을 생각하며 살기 때문에 신앙이 자랍니다. 반대로 땅의 것을 찾고, 땅의 것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이란 위의 것을 찾는 생활입니다. 위의 것을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보고, 말씀을 기억하고, 말씀을 붙잡고 살고, 하나님 앞에 늘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일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위의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땅의 것을 찾는다는 것은 이 세상일에만 관심을 두고 살고,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쾌락을 누리고 출세하고 잘 먹고 잘살까 하는 것만 바라고 사는 것이 땅의 것을 생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신앙은 위의 것을 찾으면 찾을수록 좋아지고, 땅의 것에만 관심을 두고 땅의 것을 찾을수록 신앙은 점점 약해지고, 신앙이 병듭니다.
그래서 본문 골로새서 3장 1~2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위의 것을 찾고 위의 것을 생각하며 산 사람들은 성공자가 되었고, 반대로 땅의 것을 찾고 땅의 것을 생각하고 산 사람들은 모두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북아메리카 청교도들은 하나님을 마음껏 잘 섬기기 위해서 자기 집과 땅, 모든 것을 버리고, 목숨을 걸고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서 아메리카로 온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려고 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잘 섬겨보려고 온 사람들입니다. 땅의 것은 포기하고 위의 것을 생각하고 위의 것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에게 하늘의 복을 주셨을 뿐 아니라 오늘날까지 이 세상에서 최강국이 되고 제일 부유한 나라가 되고 세상 적으로 축복받은 사람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남미 사람들은 그곳에 황금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금덩어리를 모으기 위해서 금을 찾으러 사람들입니다. 남미에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들은 얼마나 못살고, 그곳에는 도둑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경찰과 변호사와 세관들이 제일가는 도둑들입니다. 그곳에는 질서라는 것이 없습니다. 군인들이 열 명 정도 떼를 지어 한국 여자를 데리고 다니면서 총을 가지고 강도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은행에 돈을 맡기면, 오히려 이자를 내야합니다. 그러니 은행에 돈을 맡길 수 없어서 벽을 뚫어 보관하니까 한국 사람들이 돈을 많이 모아 놓는다는 것을 알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돈을 내놓지 않으면 강간하고, 돈을 빼앗아 도망갔습니다. 돈에 눈이 어두워진 나라는 경제적으로도 못살지만, 사회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엉망이고, 신앙도 타락했습니다. 땅의 것만 생각하고 좇아가면, 땅의 것을 얻을 것 같지만, 위의 것, 땅의 것을 모두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삭은 먼저 위의 것을 찾아 성공한 사람입니다. 창세기 26장에 보면, 아브라함의 때에 첫 흉년이 들었는데, 이삭의 때에 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그랄 지방으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갔습니다. 그때 이삭은 하나님 앞에 기도를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응답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26장 2~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삭은 하나님께 응답을 받고 순종했습니다. 흉년이 들었지만. 이삭은 잘 살기 위해 애굽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고,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흉년 든 그랄 지방에 그냥 머물렀습니다.
12절에 보면, 그 결과 그 해에 농사를 지어 100배의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심으로 마침내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흉년 들었을 때 땅의 것을 찾았습니다. 무조건 먹고 살 생각만 하고 하나님께 응답 받을 것은 생각하지 않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서 부인도 빼앗길 뻔하여 망신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실패하지 않고, 이삭처럼 성공하려면, 먼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이것이 성공하는 비결입니다. 흉년 든 세상만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절대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앞으로 흉년이 와도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흉년이 들어도 이 세상만 바라보고, 이 세상일을 걱정하거나 땅의 것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위를 바라보고, 위의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잘 섬길 생각만 하십시오. 절대주권은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고 사는 것, 흥하고 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지, 흉년들었다고 다 굶어 죽는 것은 아닙니다. 흉년이 들었어도 하나님이 축복하시니 거부가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 중에도 IMF 때 돈을 더 많이 벌고, 이전보다 더 잘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IMF 때 우리 교회도 더 많이 복을 받았습니다. 헌금이 20%가 더 들어오고, 성전부지의 값이 떨어져 싼 가격에 땅을 매입하여 교회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흉년을 겁내지 마십시오. 땅의 것, 세상을 너무 바라보지 마십시오. 언제나 위의 것,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나라와 말씀과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마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스무 살 이상의 모든 사람은 땅의 것만 생각하고 땅의 것만 바라봄으로써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광야만 바라보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광야만 보니, 풀도 물도 나무도 없고 살 길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봐야 하는데 광야만 보니, 자꾸 불평과 원망, 부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날마다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날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는 데도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광야만 바라보고 걱정하고 원망했습니다.
우리가 과거를 돌이켜 보면, 고생한 때도 많고, 앞이 캄캄한 때도 많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어려움을 기적적으로 극복하게 하시고, 돕는 자를 보내주시고, 피할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을 기억하고, 기록해놓으시기 바랍니다.
항상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신 하나님, 망할 것 같지만,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셨던 것을 하나하나 잘 기억하고 간증하십시오. 그러면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쓰나미가 오고, 토네이도가 오는 등 이 세상에 일어나는 어려운 일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흥하고 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는 위의 것을 찾고, 위의 것을 바라보고, 위의 것을 생각하고 살면 됩니다.
열두 명의 정탐꾼이 가나안땅을 정탐했을 때에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생각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성공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가나안 사람만 바라본, 나머지 열 명은 다 실패했습니다. 다 패배하고 다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민수기 13장 30절에 보면, 하나님만 바라보는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라고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그리고 민수기 14장 7~9절에 보면,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위를 항상 바라본 여호수아와 갈렙은 얼마나 담대합니까.
그러나 나머지 열 명은 하나님 바라보지 않고 땅의 것, 사람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니 믿음이 없는 말을 합니다.
민수기 13장 31~33절에 보면,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런 믿음 없는 말을 하니 온 백성이 그 말을 듣는 동안 절망감이 생기고 믿음이 없어져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가나안 사람만 생각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민수기 14장 1~3절에 보면,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붙잡았습니다. 그래서 담대한 믿음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열 명은 눈에 보이는 세상, 인간만 바라보았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다 잃어버리고, 결국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이 세상의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한 분만 두려워하십시오. 생사화복은 하나님 손에 있지,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승리하고 형통하고 잘 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상 17장에 보면, 블레셋 사람 장수 골리앗이 40일 동안을 낮이고 밤이고 나타나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힙니다. 엄청나게 키가 크고 힘이 센 골리앗이 큰소리를 치니 사람만 바라보는 사울 왕과 이스라엘 군대는 부들부들 떨고 아무도 나서지 못합니다. 사람만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보지 않고 사람만 보니까 두려워 떨며 아무도 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이 어린 다윗은 육안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이기고 지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고,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골리앗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상 17장 41~47절에 보면, “블레셋 사람이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로 점점 가까이 나아가니라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그 블레셋 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나아가 물맷돌을 던지니 골리앗의 이마에 박혀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빼서 골리앗의 목을 베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기겁하고 도망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사기충천하여 그들을 다 물리치고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성공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승리합니다. 우리는 항상 주님이 계시는 위를 쳐다보며 살아야 합니다.
열왕기하 6장 14절 이하에 보면, 엘리사는 영감이 있어서 아람 군대가 어디로 쳐들어올지 미리 다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에게 "왕이여 아람군대가 올 테니 여기에 군대를 매복시키소서."라고 말하여 언제든지 미리 알고 있어 아람군대가 언제나 패했습니다.
그러니 아람 왕이 간첩이 있지 않고는 어떻게 이스라엘이 미리 알고 방어하겠냐고 하니 신하들이 이스라엘에는 엘리사라고 하는 선지자가 있는데. 왕이 침실 속에서 이야기해도 다 안다고 했습니다. 그 엘리사를 없애야 한다고 하니 엘리사가 도단에 있다는 것을 알고 한밤중에 도단을 에워쌌습니다. 엘리사의 심부름을 하는 사환이 일찍 일어나서 보니 말과 병거가 성읍을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6장 15~17절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엘리사가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람군대가 몇만 명, 몇십만 명이 쳐들어와도 엘리사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엘리사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는 죽고 사는 것, 이기고 지는 것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다고 믿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위를 쳐다보고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영안이 밝으니까 천군 천사가 지키고 있는 것을 사환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엘리사와 같은 믿음의 눈, 영안이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고 엘리사와 같은 담력이 있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마태복음 6장 25~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염려하게 됩니까? 세상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눈앞에 닥쳐 있는 어려움만 바라보니까 염려가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위를 쳐다보고, 위의 것을 생각해야 하는데, 세상만 바라보고, 문제만 바라보니 염려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신실하심,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생각하지 않고, 세상만 바라보니 자꾸 걱정하게 됩니다. 걱정하는 자체가 믿음 없는 행동이고, 믿음을 잃어버리고 약하게 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세상만 바라보지 않고, 위의 것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 전지전능하심, 절대주권이 하나님 손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신실함과 사랑을 생각하고, 언제나 담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
리가 먹고사는 것을 염려하는 것은 땅의 것,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염려하는 것은 믿음이 작아지고, 약해지는 것입니다. 염려는 하면 할수록 믿음이 약해집니다. 염려는 하면 할수록 영적으로 병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염려 자체가 우리에게 해가 되고, 전혀 유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염려해도 이 세상에서 먹고 사는 것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하는 것, 하나님의 영광을 살지 못하는 것을 염려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염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염려입니다.
고린도후서 7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상 걱정은 우리의 믿음을 약하게 하고, 병들게 하고,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근심은 복이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감동하십니다. 그런 사람은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너무나 가난하고 어려웠습니다. 고등학교 입시 시험을 쳐야 하는데 고등학교에 갈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1년 동안 특별히 기도했습니다. “저는 평생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일만 하고 하나님의 종으로 살기를 바라는데, 고등학교에 합격해서 공부하는 것이 제가 주님을 위해 사는 데 도움이 되고 유익하고 필요한 일이라면, 합격하게만 하지 말고 학비까지 주세요. 그러나 고등학교에 가서 제가 교만해지고 타락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다면, 저는 고등학교에 가는 것을 원치 않으니 떨어지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루에 3번 이상 1년 동안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한 결과 하나님께서는 합격하게만 하실 뿐 아니라 상상하지 못한 장학금을 받게 하셨습니다.
고3 때에도 중3 때와 똑같은 기도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합격 발표하기도 전에 장학금을 받게 하셨습니다. 학비는 걱정할 것도 없고, 양복, 시계, 구두, 책을 사고도 남는 액수의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세상 걱정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 뜻대로 살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살까 하는 걱정하며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땅의 것을 바라보고 걱정하지 말고 위를 바라보고 기도하십시오.
지금은 말세입니다. 말세의 징조가 너무나 확실하게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문을 보기가 겁납니다.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집니다. 지금은 마지막 때이기 때문에 창세 이후로 전무후무한 환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환난의 때에는 절대로 세상을 바라보면 안 됩니다. 땅의 것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믿음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두렵고 불안해서 못 삽니다. 세상이 너무 악해지고 타락하기 때문에 세상을 따라가면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때에는 하나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붙잡고 위의 것을 찾고 위의 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6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썩을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말씀을 위해서 이 세상에서 일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썩어질 세상, 심판 받을 세상, 고난받을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잘 살까 생각하고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속히 이 땅에 이루게 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할까,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것을 위해서 영생의 말씀을 전하고 영혼들을 구원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산다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주시겠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주권을 가지신 신실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이 말씀을 붙잡고 사십시오. 그래서 하늘의 복, 땅의 복을 다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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