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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생활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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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27 12:28 조회5,5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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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생활의 축복

 

감사생활의 축복

2004년 11월 21일(주일예배)

본문 / 골로새서 3:15~17

 

독일의 전 재무장관이었던 마르티 바텐은, 젊었을 때 생활이 가난하여 지방으로 출장을 가면, 최대한으로 여비를 아끼기 위해 값이 아주 싼 여관을 골라 투숙했습니다.

한번은 출장 중에 허름한 여관에 투숙하여 밤을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자신이 신고 왔던 구두가 없어졌습니다. 그는 허탈한 마음으로 “하필이면 왜 나같이 가난한 사람의 신발을 훔쳐가게 하시나.”라고 중얼거리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마침 그 날이 주일이어서 교회에 가기 위해 여관 주인에게 헌 신발을 빌려 신고 교회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교회에 들어가 예배를 드리는 중에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이 밝은 얼굴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쁨이 넘치는 모습으로 예배드리고 있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신발을 잃어버렸다고 하나님께 원망하고 투덜댔던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워졌습니다. 생각해보면 아무리 좋고 비싼 신발이 있어도 그 신발을 신을 다리조차 없는 그 사람을 통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 후로부터 그는 무조건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좋은 인품에서 배어나오는 온화함으로 인해 날로 더욱 존경받는 장관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며 산다는 것은 깨달음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축복을 많이 받고, 가진 것이 아무리 많아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감사할 것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감사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기 때문에 도무지 감사할 줄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가진 것이 적어도 깨달음을 얻은 사람에게는 얼마나 감사할 것이 많은지, 무엇을 먹든, 무엇을 하든 저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오게 됩니다.

 

헬렌 켈러 여사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말하지 못하는 3중 장애인이었지만, 그녀가 쓴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책에서, 그녀는 그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만약 사흘간 볼 수 있다면, 첫 날에는 나를 가르쳐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겠습니다. 그리고 산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에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이 터오는 태양의 경이로운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을 보겠습니다.

셋째 날에는 아침 일찍 큰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싶습니다. 점심 때에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저녁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와 사흘간 눈을 뜨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 글을 보면 온통 감사할 것뿐입니다. 사실 우리가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우리에게 감사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두 눈을 뜨고 있습니다. 귀로 듣고 있습니다. 또 마음대로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실상은 어떠합니까? 남들과 비교하며 남들이 가진 것을 나도 다 갖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때때로 욕심의 끝이 없는 일그러진 모습이 나도 모르게 표출되지 않습니까.

성경은 말세에는 고통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 보면,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오늘날의 부모들은 자녀교육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예전에는 먹고사는 일이 힘겨워서 자식을 제대로 돌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저절로 크기를 바랄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비교되지 않습니다. 잘 먹이고, 잘 키우려고 얼마나 애쓰는지 모릅니다.

오늘날 신세대의 자녀는 예전의 못 먹이고 못 입히고 키운 자녀와 다릅니다. 정신 상태부터 다릅니다. 아무리 잘 입히고 잘해줘도 도무지 부모에게 감사할 줄 모릅니다. 저만 알고, 버릇없이 구는 아이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알게 모르게 이런 모습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예전보다 몇 배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고 있지만, 솔직히 과거에 못 살았을 때보다 감사가 줄었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삶을 살 때가 많습니다.

 

감사에는 두 가지 감사가 있습니다. 상대적인 감사와 절대적인 감사입니다.

상대적인 감사는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 달라집니다. 기분이 좋으면 감사하고, 기분이 나쁘면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뜻대로 일이 잘되면 감사하지만, 잘 되지 않으면 원망불평이 앞섭니다.

그러나 절대적인 감사는 주변 상황이 어떠하든지, 내 형편이 어떻게 변하든지, 내 기분과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 무조건 감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감사하되 주변의 여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장사가 잘되면 기분이 좋고 감사하지만, 장사가 잘 되지 않으면 불평불만으로 얼굴빛이 우울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매사에 이기적입니다. 자기중심적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에게 잘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의 믿음은 좀처럼 자라나지 않습니다. 항상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깨달음이 있는 성도는 항상 감사하며 삽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은 것만 생각해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천국 백성이 된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생각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좀 고생하며 살아도 이 땅에서 눈을 감으면 천국에서 눈을 뜨게 될 것을 생각하면, 결단코 슬퍼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곧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항상 감사하며 기쁨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발명왕 에디슨이 어린 시절, 기차에서 신문팔이할 때의 일입니다. 그는 발명을 위해 온 시간을 바치는 사람인지라, 기차 안에 자그마한 실험실을 만들어놓고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차가 덜커덩거리는 바람에 약병 하나가 떨어지면서 연구실에 불이 났습니다. 그 불로 인해 그동안 연구해왔던 자료들이 몽땅 타버렸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그런 위험에 처한 줄도 모르고 그곳에 머물러 있던 그를 차장이 달려와 차창 밖으로 내던져 목숨을 구해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때 귀를 심하게 다쳐 귀가 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이에 좌절하지 않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결과 발명왕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연구를 하게 되었는지 물었을 때, 그는 “나는 듣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지만, 아무리 주위가 시끄러워도 듣지 못하기 때문에 연구에 몰두할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바꿔서 생각해보면,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감사할 것밖에 없습니다.

 

하박국 3장 17~18절에 보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겠다고 고백하는 모습을 볼 때, 하박국 선지자는 참으로 위대한 선지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어떤 역경 속에서도 항상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이 세상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기고, 오직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살았던, 위대한 인물입니다.

그의 생애를 보면 가난과 굶주림과 고통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핍박을 받고, 많은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고 마침내 순교했습니다.

 

그러나 본문 골로새서 3장 15~17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교회에 보낸 이 편지를 쓴 곳은 화려한 궁궐도 아니요, 안락한 집도 아니고, 차디찬 로마의 감옥이었습니다. 언제 사형을 당할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성도들에게도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왜 이렇게 감사하며 살라고 강조했을까요? 이는 감사하는 생활이 가져오는 축복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감사생활을 하면

첫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시며, 그의 축복을 교만한 자의 손에서 거두시고, 겸손한 자에게 언제나 허락하신다.”라고 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이는 영안이 어둡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잘 모를뿐더러 자신이 얼마나 한심한 인간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항상 원망 불평하며 살았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비참한 자들을 하나님이 구원하셔서 홍해를 갈라 육지같이 건너가게 하시고, 날마다 만나를 먹이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으나, 이들은 어리석게도 원망불평만 하다가 광야에서 멸망했습니다.

만일 이들이 항상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았다면, 40년의 광야생활도 단축되었을 것이고, 모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둘째,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항상 “고마워요”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예쁩니까. 달라고 하지 않아도 무엇이든 다 주고 싶어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도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께 감사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키케로는 “감사하는 마음은 가장 위대한 미덕일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미덕의 근원이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셋째, 자신에게 많은 유익을 줍니다.

스피로스 J. 히아테스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시든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마귀가 발붙일 자리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원망 불평하는 마음을 가질 때 찾아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순간, 마귀가 물러갑니다.

 

탈무드에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이 누구인가? 모든 사람에게 늘 배우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신이 가진 것을 만족하면서 항상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돈을 많이 가졌다고 해서 다 부자는 아닙니다. 자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결코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비록 가진 것이 적어도 그것으로 만족하며 항상 감사하는 사람이 가장 부유한 사람입니다.

늘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건강하고 행복합니다. 혈액순환이 잘 되고, 얼굴 표정이 밝아서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게 되므로 좋은 일이 생깁니다.

남은 생애를 건강한 몸으로 행복하게 살기 원합니까? 현재보다 더 감사지수를 높이십시오. 감사지수가 높을수록 건강지수와 행복지수가 높아집니다.

 

감사는 마치 수증기와 같습니다. 뜨거운 햇빛이 비치면, 물은 수증기가 되어 위로 올라가고, 증발된 수증기가 모이면 구름이 되고, 구름이 모이면 하늘에서 비가 되어 땅으로 쏟아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늘 감사하면서 살면 감사의 수증기가 하늘 보좌로 올라가 쌓여서 마침내 하나님의 큰 축복의 소낙비로 쏟아져 내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감사생활은 더 큰 복을 받게 해 줍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기 위해 집과 땅과 재산을 다 버리고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러나 오랜 항해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었고 막상 신대륙에 도착했을 때에도 혹독한 추위와 질병으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처음 출발했을 때의 반 이하로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들었습니다.

신대륙에 도착한 그들은 친절한 인디언의 도움으로 농사를 지어 1621년 가을에 첫 수확한 농산물로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이후로도 매년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다가 링컨 대통령 때에 공식적으로 국경일로 선포되었습니다.

사실 이처럼 국가적으로 감사하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또 어디 있습니까? 아마 우리 하나님께서 감동받으셨을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미국을 축복하셔서 오늘날 어느 나라도 무시할 수 없는 세계 최강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일에 인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축복은 만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이 주셔야 받게 됩니다.

아무쪼록 남은 삶 동안 감사하며 살아서, 갈수록 더 큰 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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