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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성공적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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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7 11:19 조회3,3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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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성공적인 삶

 

그리스도인의 성공적인 삶

2010년 03월 26일(금요철야)

본문 / 빌립보서 4:10~13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한 마디로 쉽게 대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공적인 삶은 하나님을 잘 섬기며 마음의 천국을 이루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을 잘 섬기며 자신의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지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자기 마음에는 천국이 이루어져서 행복하고 기쁘고 즐겁게 사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성공적인 삶입니다.

 

우리가 이런 삶을 살려고 할 때, 부요하고 좋은 환경 가운데서 그렇게 사는 것이 쉬운지, 아니면 가난하고 좋지 않은 환경에서 그렇게 사는 것이 쉬운지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환경이 좋으냐 나쁘냐, 부요하냐 가난하냐는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신앙이 성숙했느냐 성숙하지 못했느냐가 문제입니다. 신앙이 성숙한 사람은 부요해도 잘 믿을 것이고, 가난해도 잘 믿을 것입니다. 좋은 환경에서도 잘 믿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믿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부요해도 하나님을 잘 섬기지 않고, 가난해도 하나님을 잘 섬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환경이 좋으면 환경이 좋아서 예수님을 잘 믿지 않고, 환경이 좋지 않으면 환경이 좋지 않아서 예수님을 잘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이 문제입니다.

 

죽은 물고기와 산 물고기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죽은 물고기는 물이 흐르는 대로 둥둥 떠내려갑니다. 물결 따라 떠내려갑니다. 그러나 산 물고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산 물고기는 물결을 따라 떠내려가기도 하지만, 물결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먹을 것이 있으면, 열심히 움직입니다. 물결 따라 움직이기도 하지만, 물결과 전혀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입니다.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죽은 물고기와 같습니다. 그래서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환경을 지배하지 못하고, 환경을 따라갑니다. 은혜로운 자리에 오면, 은혜로운 척 하고 삽니다. 그러나 술집에 가면, 한 잔 마십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춤추고 노는 곳에 가면, 믿지 않는 사람들과 같이 춤추고 놉니다.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 유치한 사람, 어린 아기와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은 환경을 따라갑니다.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물질을 지배하지 못하고, 오히려 물질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래서 물질을 따라갑니다. 돈이라면 어쩔 줄 몰라 합니다. 돈이 생긴다고 하면, 교회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환경과 물질의 노예가 되어있습니다.

 

첫째,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환경이 좋지 않고 가난하면, 원망 불평을 많이 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은 지 몇 년 되었는데, 왜 하나님은 나에게 축복해주시지 않으시는가.”라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얼굴에 원망과 불평이 가득합니다.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환경이 좋지 않으면, 원망 불평을 많이 합니다. 돈이 없고 가난하면, 원망 불평하며 삽니다. 세상을 원망하고, 가족을 원망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자식을 원망하며 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 있을 때에 원망 불평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그들은 입만 벌리면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그들은 밤낮 불평하기만 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살게 된 것은 이들의 신앙이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만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광야만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땅만 쳐다보며 삽니다.

 

그러나 신앙이 성숙한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삽니다. 우리가 죽고 사는 것, 흥하고 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잘 섬기려고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땅만 바라보며 삽니다. 세상만 바라보며 삽니다.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만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광야는 땅이 모두 사막입니다. 그러니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땅만 바라보면 살 소망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물렀던 광야의 생활은 하나님을 잘 섬기면서 마음의 천국을 이루고 살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날마다 함께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해주시니 그들이 애굽에서 나오기 직전에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이 내릴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눈동자같이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별하셨습니다. 재앙이 열 번이나 내렸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해주셨습니다. 이것이 보통 체험입니까.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뿐만 아니라, 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름기둥으로 인도해주셨다는 것은 기둥만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낮에는 광야가 뜨겁고 태양빛이 강해서 머리가 아프고 생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구름기둥이 나타나 태양을 가려줘서 햇빛이 내리쬐지 않으니까 마치 양산을 쓴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어 캄캄해지면, 불뱀과 전갈이 나타나서 매우 위험합니다. 그런데 불기둥이 나타나서 환하게 비춰주었습니다. 그래서 밤에 움직일 수 있었고, 밤에도 행진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 길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그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홍해 앞에 섰을 때에는 홍해가 갈라져서 육지처럼 건너갔습니다. 그들을 따라왔던 애굽 군사가 물에 빠져 죽는 것을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사흘 만에 마라라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물이 써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하고 야단법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한 나무를 던지게 하셔서 모세가 던졌더니 쓴 물이 단 물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보통 체험입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날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주셔서 아침에 일어나면 만나가 내려있었습니다. 거두어 와서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반석에서 생수가 나오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막히게 좋은 생수를 마시게 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십계명을 말씀해주시고, 축복 받는 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에 받게 되는 복과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을 때에 받게 되는 저주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을 받게 되는지 확실히 말씀해주셨습니다.

이런 기적을 볼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며 광야생활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좋은 환경에 있으면서 어떻게 원망 불평할 수 있었을까요?

 

만약 우리가 광야 길을 가고 있는데,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증거를 날마다 보여주신다면,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무조건 싫어했습니다. 그리고 매사에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들은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낫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은 중노동에 시달리며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으면, 무조건 물에 갖다버려야 했습니다. 씨를 말리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 있는 것보다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이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이들은 성공적인 삶이 무엇인지 모르는, 무지몽매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의지와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신앙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출애굽할 때 20세 이상이었던 사람들 중에 밤낮 원망 불평하던 사람들은 다 죽고, 한 사람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까? 하나님을 잘 섬기고, 믿음으로 사는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나이가 어린 후손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둘째,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환경이 좋지 않고, 매우 가난해지면, 낙심하고 불안해하고, 근심 걱정을 많이 합니다.

 

제가 중ㆍ고등학교 시절에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은혜 받았다고 생각하고,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했지만, 제 신앙이 미숙했기 때문에 가난하고 환경이 좋지 않으니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낙심하여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걱정이 많은 사람은 얼굴에 드러납니다. 숨길 수 없습니다. 얼굴에 수심이 있으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속일 수 없습니다. 마음에 고민이 있으면, 얼굴에 다 나타납니다.

저는 중ㆍ고등학교 때, 고민이 많고, 걱정이 많았습니다. 수심이 가득하여 얼굴이 일그러져있었습니다. 그래서 학생 때에 찍은 사진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

 

이때 돌파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신앙이 아직 성숙하지 못해서 걱정에 사로잡혀있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야 합니다. 매우 답답하면 목숨 걸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차라리 저를 불러가 주세요.”라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몸부림쳐야 합니다.

전심으로 기도하다 보면, 반드시 은혜를 받습니다. 속상하고 마음에 걱정이 있어서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부르짖었는데, 불이 임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응답 받게 됩니다. 응답 받으면, 체험적인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기도 하고, 주님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병이 낫기도 하고, 암 덩어리가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앙이 성숙한 사람으로 자라게 됩니다.

급하면 급한 대로 세게 기도하세요. 화가 나면, 화가 나는 대로 바닥을 치며 기도하세요. 하나님께 따지세요. 하나님께 부르짖어보세요.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만나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축복해주십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좋지 않은 환경에서 가난하고 어려운데도, 낙심하고 불안해하고 걱정하면서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절망에 빠지게 되고, 자살하거나 하나님을 떠납니다. 그래서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됩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런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찾으시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 있더라도 부르짖으면, 살 길이 열립니다. 부르짖으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셋째,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환경이 좋아지고 부요해지면 교만해지고 타락하게 됩니다.

좋은 환경에 산다고 해서, 부요하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닙니다. 환경이 좋아지고 부요해지면, 건방진 인간이 되고, 교만해지고 타락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솔로몬입니다.

환경이 부요해지고 좋아지고,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하나님을 예배할 줄도 모르고, 기도할 줄도 모르고, 밤낮 술이나 마시며 즐기고, 이방 여인들을 천 명이나 데리고, 세상 향락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솔로몬은 점점 타락하여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솔로몬에게 부요함이 축복이었습니까. 그렇게 좋은 환경이 그에게 축복이었습니까. 하나도 축복이 되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은 열심히 죄만 짓다가 나중에는 우상숭배까지 했습니다. 후손들에게 불행을 남겨주었습니다.

 

웃시야 왕도 환경이 좋고 부요해졌을 때, 교만해져서 하나님 앞에 범죄했습니다. 웃시야 왕은 16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52년간 왕 노릇 하다가 죽었습니다.

역대하 26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가 언제나 하나님을 찾았던 것은 아니고, 스가랴 선지자가 살아있는 동안에만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하나님을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그를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웃시야의 신앙은 자기 신앙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중에 가족들에게 끌려오는 분이 있다면, 빨리 자립하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남에게 끌려가지 마시고, 여러분이 선두에 서서 남을 이끌어 가시기 바랍니다.

 

웃시야 왕이 스가랴 선지자가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은 스가랴 선지자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웃시야의 미래를 다 아심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나님을 찾을 동안에는 그를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해도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시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역대하 26장 16절에 보면,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나라가 부요해지고 강해졌습니다. 그러자 그의 마음이 교만해졌습니다. 그래서 향단에 분향하는 일을 자신이 하려고 했습니다. 향단에 분향하는 일은 제사장에 하는 것인데, 자기가 하겠다고 했습니다.

제사장이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웃시야를 말렸습니다. 그러자 웃시야는 도리어 제사장에게 화를 냈습니다. 그가 화를 내는 순간,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을 때까지 별궁에 혼자 있다가 죽었습니다.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환경이 좋은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부요해지는 것이 그에게 좋은 것은 아닙니다. 환경이 좋고 부요하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잠언 30장 7~9절에 보면,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잠언을 기록한 아굴은 자신이 쓸데없는 짓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거짓말하는 습관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굴은 자신이 죽기 전에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어지게 해달라고, 바르게 신앙생활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굴은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가난하게도 마시고, 부하게도 마시고, 다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을 다 내려놓았습니다. 이 사람은 특별히 부요하게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깨달은 사람이 아니면, 이렇게 기도할 수 없습니다.

 

신앙이 성숙한 사람은 가난하거나 부요하거나 높아지거나 낮아지거나 변함없이 하나님을 잘 섬깁니다. 이들은 살아있는 물고기와 같습니다. 물질의 노예가 아닙니다. 환경의 노예가 아닙니다. 물질이나 환경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잘 섬깁니다.

요셉이 그런 사람입니다. 요셉은 애굽에 노예로 끌려가도 신앙생활을 잘 했습니다. 죄 짓지 않고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잘 섬기니까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셔서 그로 하여금 범사에 형통하게 하시고, 전화위복되게 하시고,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후에도 그는 교만해지거나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잘 섬기면서 복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갔지만, 그는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그리고 그는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먹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이것은 죽을 각오를 한 것입니다.

자신은 고향을 떠나고 조국을 떠나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끌려왔지만, 변함없이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총리가 된 후에도 변함없이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고, 사자 밥이 된다고 할지라도 기도생활을 멈추지 않고, 하나님을 잘 섬기면서 거룩하게 살았습니다. 살아있는 물고기와 같은 사람입니다.

 

신앙이 성숙한 사람은 환난이 오거나 평안하거나 높아지거나 낮아지거나 부요해지거나 가난해지는 것에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은 신앙이 성숙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환경과 물질의 지배를 받지 않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은 사도 바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본문 빌립보서 4장 10~13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환경이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부요하거나 가난한 것이 문제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태어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최고의 공부를 한 사람입니다. 왕이 인정하고, 총독이 인정할 정도였습니다. 사도 바울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며 얼마든지 잘 살 수 있고, 이 세상에서 출세의 길이 활짝 열려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세상을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는 결혼하지도 않았습니다. 재산도 없었습니다. 집도 없었습니다. 오직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가는 곳마다 교회가 생겨나고, 신자가 생겨나고, 주의 종이 생겨나고, 제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는 곳마다 핍박자들이 있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에 보면,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14장 7~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신앙고백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를 위해 살지 않았습니다. 오직 주님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삶의 목적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에 두고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삶의 목적이 아주 분명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모시고,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기쁘고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언제 순교할지 모르는 형편에 있으면서도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라고 말했습니다(빌 4:4). 자기가 기쁘지 않은데,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하나님을 잘 섬기면서 마음에 천국을 이루고 사는,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떻게 해서 이런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본문 빌립보서 4장 13절에 보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이 비결입니다.

여기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가 누구입니까?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성령이 주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사도 바울은 이런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자기 의지나 힘으로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힘으로 그렇게 살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저와 여러분이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숙한 신앙인이 되려면,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신앙이 성숙한 믿음의 조상들은 모두 거부였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전쟁을 할 수 있는 젊은 용사가 318명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먹여 살리는 사람이 1천 명 가량 되었습니다.

이삭을 보세요. 이삭은 흉년든 해에 농사를 지어 백 배의 축복을 받아 거부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가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올 때, 거부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임금 다음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잘 살았겠습니까. 그리고 다윗이 얼마나 부요했는지 아십니까. 다윗은 어마어마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신앙이 성숙한, 믿음의 조상들은 모두 거부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절대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타락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부요하게 하셔도 교만하지 않고,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을 잘 섬기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살다가 천국에 갔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은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도, 아무리 부요해져도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겸손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언제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고, 마음에 천국을 이루고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사는 자의 마음에 이루어지는, 마음의 천국을 이루어서 천국에 가기 전에 천국을 미리 체험하면서 사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산 물고기가 되세요. 환경에 구애받지 말아야 합니다. 물질에 구애받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많이 주시면 많이 주신 것으로 주님을 위해 드리고 나누며 살고, 없으면 일용할 양식을 주신 것에 감사하며 살므로 언제나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록펠러는 2천 년 교회사에 3대 기적을 이룬 사람입니다. 록펠러는 아주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신문팔이도 하고, 공장직공도 하며 어렵게 자랐습니다. 그는 열여섯 살 때에 회사에 입사해야 할 만큼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서른한 살에 세계 최대의 석유회사를 경영하게 되었습니다. 40대에는 미국에서 제일 가는 재벌, 세계 최고의 재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돈을 많이 벌었을 때, 죽을병에 걸려서 1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가 죽으면 그 많은 재산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록펠러는 ‘죽기 전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겠다. 가난한 자들을 위해 써야겠다.’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위해 돈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록펠러는 24개의 대학을 세웠고, 4928개의 예배당을 건축해서 하나님께 바쳤고, 병원, 양로원, 고아원 등의 복지시설을 세워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십일조 헌금을 가장 많이 하는 거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의사들은 그에게 1년밖에 더 살지 못한다고 말했지만, 그는 98세까지 살았습니다.

 

록펠러가 부자가 되었어도 재벌이 되었어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에게서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어머니가 항상 그에게 강조한 것이 있었습니다.

첫째, 주일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본 교회에 가서 예배드려라. 그리고 맨 앞자리에 앉아서 예배드려라.

록펠러가 사업하다 보면, 얼마나 바쁘겠습니까. 그러나 록펠러는 주일이 되면 비행기를 타고 고향에 가서 교회의 맨 앞자리를 지켰다고 합니다. 평생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둘째, 십일조 생활을 철저히 해라.

셋째, 목사님의 말씀에 항상 순종하고,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라.

록펠러는 세계 최고 가는 재벌이 되었어도 평생 어머니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이 저를 아무리 축복하셔도 저는 겸손하게 살겠습니다. 절대 타락하지 않겠습니다. 변함없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주일을 잘 지키고, 십일조 헌금을 철저히 하고, 하나님의 종들을 잘 섬기겠습니다.”라고 하나님 앞에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남은 생애가 복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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