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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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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5 14:26 조회3,3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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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2010년 07월 18일(주일예배)

본문 / 빌립보서 4:4

 

북한에 큰 병원을 건축하고, 개원식에 참석하고 돌아온 장로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북한에 가서 북한 동포들을 많이 만나보았지만, 웃는 얼굴은 한 번도 보지 못했고,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자유가 없는 공산 독재 치하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다 보니, 모두 웃음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기쁨을 잃어버리기 쉬운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생활고와 질병과 여러 가지 근심걱정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빌 4:4)”고 했습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항상 기쁨으로 사는 자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기쁨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기쁨으로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쁨이 넘치는 가운데 충성하고 봉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헌금할 때, 하나님께서 보시고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오래 전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부자 장로님이 담임목사님을 찾아가 “목사님, 우리 교회 여 집사님 한 분이 혼자 살면서 어린 아이 다섯을 키우느라 무척 어렵게 삽니다. 남의 집 빨래를 하는 등 고생이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분이 주일이 되면 5센트를 헌금합니다. 큰 액수는 아니겠지만, 그 집사님에게는 적지 않은 액수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장로님은 2불씩 헌금했습니다. 5센트의 20배에 해당하는 액수였습니다. 장로님은 여 집사님의 몫까지 자기가 대신 헌금할 테니 그 집사님께 헌금하지 말라고 얘기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권면을 받아들여 여 집사님을 불러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그 집사님은 앉은 자리에서 목을 놓아 울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제가 비록 남의 집에서 빨래하며 고생스럽게 살지만, 하나님께 5센트씩 드릴 때에는 더할 수 없이 기쁜데, 그 기쁨을 왜 빼앗으려고 하십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장로님도, 목사님도 회개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일 자체가 엄청난 기쁨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둘째, 기쁨으로 사는 것이 우리에게 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강철 왕 카네기가 마음으로 ‘저 사람에게 회사를 맡긴다면 틀림없이 잘 경영할 거야!’라고 생각하며 눈여겨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진지했고 성실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늘 즐거워했습니다.

어느 날 카네기는 철공에게 다가가 공장장이 되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철공은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사장님, 저는 다른 일은 못합니다. 평생 해본 일이라고는 쇳물에서 철관을 뽑는 일뿐입니다. 철공 일만은 제가 대통령이지요. 그러나 다른 일은 사양하겠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철공 일만 계속하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카네기는 철공의 진실한 마음을 알고 “내가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말해서 참 미안하오. 당신 말이 맞소. 당신은 철공 일에 대해서는 대통령이오. 그러니 오늘부터는 대통령 봉급을 주겠소.”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 철공은 카네기의 회사에서 봉급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똑같은 일을 해도 기쁨이 넘치는 가운데 일을 한다면 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우리가 기쁨으로 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밝은 세상이 됩니다.

모든 사람이 기쁘고 항상 웃는 얼굴로 산다면, 천국과 같은 밝은 세상이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건강에도 복이 됩니다.

 

미국 의학자의 말에 의하면, 15초 동안 웃으면 이틀을 더 산다고 합니다. 웃음이 건강에 좋다는 의미입니다. 지구상에 웃을 수 있는 동물은 사람뿐입니다.

동의보감에 보면, 웃음은 보약보다 좋다고 했습니다. 웃음은 암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여자들이 남자보다 7년 정도 더 오래 산다고 하는데, 이것은 여자들이 남자보다 더 잘 웃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웃는 것이 그렇게 건강에 좋다는 의미입니다.

 

웃음이 건강에 주는 효과를 보면, 웃을 때 뇌하수체에서 엔돌핀이나 엔케팔린 같은 자연 진통제가 생성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혈액 내 코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량이 줄어든다고 합니다.

동맥이 이완되어 혈액 순환이 잘되고 혈압이 안정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체 전기관의 긴장이 완화된다고 합니다. 또, 심장 박동수를 높여서 혈액순환을 돕는다고 합니다.

 

웃으면 몸의 근육 650개 중 231개의 근육이 움직이는 운동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얼굴 근육 80여 개 중 15개가 움직인다고 합니다. 가슴과 위장, 어깨 주위의 상체 근육이 운동을 한 것과 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스트레스와 우울함이 해소되며, 하루에 15초간 크게 웃을 때마다 이틀을 더 살 수 있다고 합니다. 한번 크게 웃는 것은 에어로빅을 5분 동안 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웃을 때마다 몸속의 나쁜 공기가 배출되고 깨끗한 공기를 공급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항상 기쁨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건강에 효과가 있는지는 심리학자뿐 아니라 의학적으로도 증명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의학교수인 헤르베르트 벤슨은 수술환자가 과거에 체험한 좋았던 추억들을 생각하는 것은 빠른 회복에 도움이 되고, 전체적인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는 논문을 써서 증명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기뻐하면서 살면 복을 받는다는 것을 믿으시고 항상 기뻐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뻐하는 것만큼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가 24시간, 365일을 항상 기뻐하며 산다면, 우리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기뻐하며 살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셋째, 우리가 항상 기뻐하면서 살면 전도의 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가난해서 잘 먹고 잘 살지 못하지만, 항상 기쁨이 넘치는 가정은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부럽고 예수 믿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기쁨이 넘치는 사람의 얼굴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 ‘왜 저렇게 얼굴이 밝고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전도가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부흥하려면 성도들의 얼굴에 기쁨이 넘치고 밝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누구나 가고 싶어 할 것입니다.

 

미국의 세인트루이스를 여행하고 있던 한 변호사가 그곳에서 하루를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마침 주일이어서 그는 낯선 이 도시에서 교회를 찾아 예배드리려고 길 한가운데 서 있는 교통경찰에게 교회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교통경찰은 이렇게 저렇게 가면 교회가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변호사는 그가 일러주는 대로 교회를 찾아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많은 은혜를 받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경찰을 또 만나게 되어서 그는 “내가 당신이 일러준 교회를 찾아가면서 보니 가는 중에도 다른 교회가 많던데, 하필이면 왜 맨 끝에 있는 그 교회를 소개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경찰은 “저는 여기서 교통정리를 하며 그동안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는데 그 교회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제일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를 소개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표정, 마음, 그것이 바로 그 교회의 성격이요, 교회의 수준이며, 교회의 성장도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도,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라도 항상 기쁨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사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기쁨으로 사는 것이 우리에게 복이 되고, 예수 믿는 사람의 기쁨이 넘치는 얼굴은 전도의 문을 열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항상 기뻐해야 할 이유를 알지만, 기쁨을 잃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왜 기쁨을 잃어버립니까?

첫째, 죄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죄를 범하면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죄는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합니다. 죄는 하나님과 담을 쌓게 하며, 축복을 가로막습니다.

 

이사야 1장 15절에 보면,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을 때리고 죽인 피 묻은 손으로 하나님 앞에 복 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겠습니까. 죄는 축복을 가로막습니다.

 

예레미야 5장 25절에 보면,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 많은 일을 계획하고 계시는데, 우리의 허물이 이런 일을 전부 물리쳐버립니다.

여러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 싫어 축복하시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허물이 축복을 물리쳐버리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의 마음을 지옥으로 만듭니다. 죄는 기쁨을 빼앗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쁨을 회복하려면,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죄 사함을 받은 확신이 생길 때까지, 성령이 임하실 때까지 회개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보면,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께 상달되어 우리가 죄 사함을 받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의 선물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선물을 받기까지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1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사람처럼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둘째, 믿음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약해지면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말을 합니다. 조금만 어려움을 당해도 근심걱정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믿음이 약해지면 기쁨을 잃습니다. 기쁨을 회복하려면 믿음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믿음, 긍정적인 믿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믿음,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성령 충만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믿음이 충만해집니다. 사도행전 13장 52절에 보면,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제자들은 기쁨도 충만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6절에 보면,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의 기쁨,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 성령이 충만할 때 우리 속에 솟아나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 우리에게 기쁨이 충만합니다.

 

로마서 5장 5절에 보면,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충만하면 기쁨도 충만해집니다.

우리가 믿음이 충만하려면,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항상 깨어 기도하면, 은혜가 충만해집니다. 은혜가 충만한 생활을 하면, 믿음이 충만해지고,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여우리의 믿음이 왜 약해지는지 아십니까? 기도생활을 게으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기도의 열기가 식으면 믿음이 약해집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믿음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믿음이 약해져서 부정적인 생각을 합니다. 부정적으로 말합니다. 세상 걱정을 하며 삽니다. 아무쪼록 믿음 충만하셔서 기쁨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감사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항상 감사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넘치지만, 감사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사라집니다.

 

히스기야 왕이 죽을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생명을 15년 연장해 주시고, 이적까지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살려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데 히스기야는 마음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니까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기 마음의 교만을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마음이 교만해지면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지 않고 자기가 영광을 받습니다. 마음이 교만한 사람은 마치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배은망덕의 죄를 범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기쁨이 사라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더 큰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자에게는 큰 기쁨이 넘칩니다.

사도 바울은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 언제 순교할지 모르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편지로 성도들을 권면할 때에도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 수 있습니까? 그것은 주님을 만난 체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은혜 충만한 가운데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구원의 확신이 있기 때문에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에 항상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 은혜 충만한 삶을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잘 알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같이 뜨겁기 때문에 기쁨이 넘칩니다.

 

베드로전서 1장 8절에 보면,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을 직접 만나지 못했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성도들은 주님을 생각하기만 해도 즐겁고 기쁨이 넘칩니다. 그뿐 아니라 주님의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항상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살면, 은혜에 감사하고, 주님 앞에 보답할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위해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집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기쁨이 넘칩니다.

 

예배 시간에 항상 앞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말씀을 듣고, 기도생활 잘하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정상인보다 키가 크고 기형의 머리를 가졌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 머리에 물이 차는 수두증을 앓아서 뇌수술을 받았고, 후유증으로 장애를 가졌지만, 자신의 불행 때문에 엄마가 자기 손을 잡고 교회에 다니게 되었으니 감사할 뿐이라고 간증하는, 믿음이 좋은 청년이었습니다.

그 청년은 어렵게 취직한 직장에서 처음 받은 월급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렸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 귀한 것을 어떻게 다 바칠 수 있느냐며, 십일조와 감사헌금만 적당히 하지 그러느냐고 하자, 그는 “첫 열매를 하나님 앞에 드릴 기회는 한번 밖에 없으니 얼마나 귀합니까. 그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당연하죠.”라고 말했습니다.

은혜 충만한 성도,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 주님의 은혜를 아는 성도들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 앞에 드리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뿐 아니라 주님을 만난 체험이 있고 은혜 충만한 성도들은 장차 받을 상급이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항상 기뻐하며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로마서 8장 18절에 보면,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고난이 있지만, 장차 받을 영광과 비교되지 않습니다. 주님 앞에 섰을 때에 받을 영광을 생각하면, 어떤 고난이 와도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1~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세상 사람들이 비방하고 거짓말하며 괴롭혀도 근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큰 상을 받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기 때문에 어떤 고난이 와도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항상 기뻐하면서 살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육 간에 복을 받고, 이 세상에서 전도의 문을 열어 많은 사람들을 예수 믿게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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