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서 기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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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25 11:16 조회3,427회 댓글0건본문
주 안에서 기뻐하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
2003년 09월 21일(주일예배)
본문 / 빌립보서 4:1~4
우리나라는 그동안 벼농사가 풍작을 이루어 왔습니다. 넓지 않은 국토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흉년을 겪은 반면, 남한은 계속해서 풍년을 맞이한 것은 우리나라를 향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금년에는 잦은 비로 인해 흉년을 예상하고 있던 차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태풍 매미로 인한 강풍과 수해로 영남지방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도 크고 작은 피해를 입은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그동안 정치적인 혼란이 계속되어 왔고, 노조의 강경 파업으로 경제적으로도 큰 피해를 입고 있으며, 한국 경제가 큰 위기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태풍으로 인한 재해로 경제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경영상태가 악화되어 적정 이윤을 내지 못하고 도산하는 기업이 늘고 있으며, 구직자들도 취직하기가 힘들다 보니 자연히 살아가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 우울증환자가 늘어나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작년 통계에 의하면, 하루 평균 36명, 두 시간에 세 명 꼴로 자살하고 있다는 수치가 나왔습니다. 신고 되지 않은 사람까지 합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생을 포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금년에는 작년보다 형편이 더 어려워졌기 때문에 이 숫자는 더 증가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금년에는 태풍 매미로 인해 손해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금년에만 태풍이 온 것이 아닙니다. 매년 적지 않은 수의 태풍이 우리나라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기상대는 앞으로 늦가을까지 태풍이 몇 차례 더 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나라가 태풍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것은 잃어버려도,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쁨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기쁨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스코틀랜드의 제이니라는 학자는 학생들 앞에 나타날 때마다 매우 행복해 보였습니다. 학생들은 그 교수가 날마다 천국을 구경하고 오는 줄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마치 성 위에 깃발이 걸려 있으면 지금 성 안에 임금님이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성도들에게 있어서 기쁨이 있다는 것은 곧 그 사람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성도들은 그 안에 예수님이 계시는 증거가 얼굴에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표식은 바로 기쁨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형편 가운데 살아도, 얼굴에 기쁨이 있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불교는 초상집 같고, 유교는 제삿집 같으며, 기독교는 혼인 잔칫집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신부로, 신랑 되신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는 신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모일 때마다 교회는 잔칫집처럼 즐거운 곳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은 아무리 환난과 재난을 당하고 고난이 찾아오더라도 마음에 기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기쁨을 잃지 않는 성도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요, 건강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암담한 상황 가운데서도 늘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더구나 자신만 기뻐한 것이 아니라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서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빌 4:4)”고 권면했습니다.
과연 사도 바울에게 어떤 비결이 있었기에 이처럼 기뻐할 수 있었을까요? 그에게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과 같이 기쁨이 되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본문 빌립보서 4장 1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빌립보교회의 교인들은 사도 바울의 큰 기쁨이었습니다. 하나님도 이들을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성도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민족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사 62:4).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켜 ‘헵시바’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에서 헵시바는 “나의 기쁨이 너에게 있다”라는 뜻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헵시바 같은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을 향해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권면한 것은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주님과 함께 기뻐하는 자가 되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서 기쁨을 얻고 있습니까? 기쁨에는 물질의 풍요로부터 얻는 기쁨이 있습니다. 명예로부터 오는 기쁨이 있고, 잘 먹고 잘 살 때 육신의 쾌락에서 오는 기쁨이 있습니다. 또 사람으로부터 얻는 기쁨도 있습니다. 부모로부터, 형제로부터, 자녀로부터, 친구로부터,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으로부터 얻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은 불완전한 기쁨입니다. 그 순간뿐입니다. 영구적이지 못합니다. 이런 종류의 기쁨에서는 참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상담학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사람은 사랑을 받을 때 기뻐하고, 소중한 것을 소유할 때 기뻐하며, 자신의 형편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기뻐하고, 자신이 소유한 소중한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눌 때 기쁨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갖추어져도 다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흡족할 정도로 자신을 사랑해 줄 사람을 이 세상에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자신이 원했던 소중한 것도 소유하는 순간만 기쁠 뿐, 시간이 지나면 그 기쁨도 자연히 사라집니다.
더구나 자신의 형편에서 자족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다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특별한 사람 외에는 불가능합니다.
또 자신의 소유를 나누는 일도 그렇습니다.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고 여러 가지 문제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쁨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의 기쁨은 이 세상으로부터 얻는 불완전한 기쁨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완전한 기쁨이었기에 항상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정한 기쁨의 근원이 되십니다.
사도 바울이 범사에 늘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기쁨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계신 성령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에 그 기쁨이 자기 안에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다고 강조하며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롬 14:8). 또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고전 10:31).
고린도후서 5장 8~9절에 보면,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소원을 가진 사도 바울을 보시고 어찌 기뻐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사도 바울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처럼, 가장 완전한 기쁨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될 때에 얻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녹은 3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에녹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았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일평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가므로 항상 기쁨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을 때에도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관심과 사랑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 기쁨도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합니다. 영원합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넓고 깊은지, 측량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도 영원하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 땅에 사는 동안 반드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납니다. 무엇보다도 영안이 밝아지고 깨달음을 얻습니다.
은혜 받은 자의 첫 번째 증거는 회개의 눈물입니다. 자신이 죽어 마땅한 죄인임을 인정하게 되며,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가 아니면 결단코 구원받을 길이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처럼 회개의 눈물이 있는 자는 진실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요 구원받은 사람이며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큰지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격하여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되고,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은혜 받은 성도의 얼굴에는 기쁨이 있고 행복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 받은 사람인지 아닌지 그 사람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보니 하나님께서 저를 끔찍하게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날 목회자모임에서, 하나님께서 목사님들도 다 사랑하시지만 특별히 저를 더 사랑하신다고 믿는다면서 그 증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화를 버럭 내는 목사님도 계셨습니다. 제가 교만한 마음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다른 목사님들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특별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감사와 기쁨을 느껴본 사람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느낄 것입니다.
셋째, 주님을 소유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소유할 때에 무척 기뻐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것들은 아무리 소중하게 보여도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기쁨도 불완전합니다.
어떤 청년이 꿈에 그리던 미모의 아가씨를 만났습니다. 그 아가씨를 아내로 맞이하는 것이 그의 생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그 여자와 살면 평생 행복할 것이라는 무지갯빛 환상을 가지고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몇 날이 되지 못하여 그의 기대는 무너졌습니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단점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전심전력합니다. 그러나 박사학위도 받고 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박사가 되었다고 해서 자신의 꿈이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장관이 되면, 국회의원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지만, 막상 그 자리에 앉고 나면 얼마나 골치가 아프고 고민이 많은지 모릅니다.
권력에 대한 욕망도 이루고 나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합니다. 그로 인해 부끄러운 망신을 톡톡히 당하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서 소중해 보이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얻게 되는 기쁨은 잠시 뿐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했기 때문에 항상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영생을 소유하고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영원한 기쁨이 있습니다.
어떤 부자가 말을 타고 길을 가는 중에 남루한 옷차림을 한 사람이 춤을 추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좋아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쁘게 길을 걸어가는지 그 이유가 몹시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도대체 기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물 중에 가장 귀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신 것이 감사하고, 비록 한쪽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졌으나 걸을 수 있으니 감사하고, 가진 것은 없어도 이 세상을 떠나면 천국에 가서 하나님의 품에 있게 될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기쁘고 좋아서 춤이 절로 나온다”고 자랑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항상 기뻐해야 할 이유가 많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천국백성입니다. 영생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눈을 감는 순간 천국에서 눈을 뜰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죽는다고 해도 기쁨으로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스데반 집사는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하는 사람들이 던진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을 때 기쁨이 충만하여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고 성경에 기록되어있습니다(행 6:15). 비록 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매우 고통스러웠겠지만, 잠시 잠깐 후면 천국에서 만날 주님을 생각했기에 그는 기쁨으로 충만할 수 있었습니다.
넷째, 복음을 전하는 기쁨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들어갔을 때,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1장 17절에 보면,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들은 사도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빌립보서 1장 1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낙을 삼고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고 교회에 나오고 천국백성 되는 것을 보며 기뻐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기뻐하십니까? 혹시 이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너무나 걱정한 나머지 불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비관하며 사는 분은 계시지 않습니까?
이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비관적인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은 사탄의 짓입니다. 사탄에게 속지 마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면 믿음이 생기고, 세상을 바라보면 믿음이 약해집니다. 사실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세상만을 바라보면, 믿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눈을 감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생각하며 신령한 세계를 생각하면 믿음이 살아나고 강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절대주권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죽고 살고, 흥하고 망하는 것이 이 세상이나 사람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면 회복됩니다. 아무리 전염병이 창궐해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시면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며, 이 세상 끝 날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이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기뻐할 때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고, 우리가 괴로워할 때 하나님께서도 괴로워하십니다.
부모는 사랑하는 아기가 방실방실 웃는 얼굴만 봐도 기쁩니다. 그런데 아기가 밤낮 괴로워하고 짜증내고 고통스러워하면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부모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항상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기쁨이 있는지 슬픔이 있는지 고통이 있는지 살펴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기뻐할 때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고, 우리가 괴로워할 때 하나님께서도 괴로워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날과 같이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항상 주 안에서 기뻐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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