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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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22 15:52 조회3,525회 댓글0건본문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2004년 01월 16일(금요철야)
본문 / 빌립보서 2:25~30
본문 29절에 보면,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존귀’라는 말은 높고 귀하다는 의미입니다.
가장 존귀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느헤미야 9장 5절에 보면, “주의 이름이 존귀하여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남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매우 존귀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이름도 존귀하십니다. 하나님은 아주 존귀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리는 것이 합당합니다.
요한계시록 4장 8절에 보면, 천상(天上)에서 벌어지는 광경이 기록되어있는데,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천군천사와 함께 밤낮 쉬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 앞에 경배했습니다.
요한계시록 5장 12절에 보면, 예수님을 찬양하는 광경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존귀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매우 존귀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귀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은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다이아몬드와 정금이 아무리 귀하다 해도 그것은 피조물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존귀하신 하나님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금덩어리로 우상을 만든다 해도 그것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존귀하신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다이아몬드를 다 모아 쌓아놓고 우상을 만든다 할지라도 그것을 어떻게 존귀하신 하나님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가치 있는 것을 모아서 우상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모독입니다. 우상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하고, 그 앞에 절하고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주 괴로워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상숭배 하는 사람들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우상숭배를 많이 한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친척들이 우상숭배를 열심히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에 잘 살아보겠다는 목적으로 우상숭배를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장사가 잘 될까’하는 생각으로 열심히 무당과 점쟁이를 찾아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무당과 점쟁이를 찾아다니느라 돈을 많이 썼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 가난해졌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귀한 것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섬겨도 그것은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기에 세상의 시시한 것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놓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섬기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보시고 얼마나 화나시겠습니까. 그래서 우상숭배를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20:4~5).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가장 존귀하신 분이심을 알고,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존귀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속한 것은 모두 존귀합니다. 하나님이 매우 존귀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날, 주일은 아주 존귀한 날입니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날을 귀한 날이라고 생각하고, 주일이 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잘 섬겨서 주일 하루를 잘 보내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이 존귀하신 분이심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날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날을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축복을 받습니다.
이사야 58장 13~14절에 보면,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안식일, 하나님의 성일(聖日)을 즐거운 날이라 여기고, 그 날이 되면 행복해하고, 그 날을 사모하고 기다릴 뿐 아니라, 그 날을 존귀한 날로 여기고, 그 날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거룩하게 보내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낙(樂),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세상에서 존귀하게 높여주시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존귀하신 분이심을 알고, 하나님의 날을 존귀하여 여기며 그 날을 거룩히 보내는 사람은 이렇게 복을 받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주의 날은 나의 날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월요일부터 시험을 친다고 할지라도 토요일 밤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밤 12시가 되면, 책을 덮어두고, 기도하고 잤습니다.
그리고 주일에는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봉사했습니다. 공부할 것이 많은 경우에는 저녁예배 드리고 집에 돌아와 몇 시간 자고 밤 12시가 지난 후에 일어나 공부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주일 하루 24시간을 주님을 위해 구별해드렸기 때문에 남들보다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잘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시험을 쳤을 때 낙방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시험을 치면, 하나님의 은혜로 늘 합격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날도 존귀하게 여겨서 그 날을 하나님을 위해 잘 보내면,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께서 어찌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반드시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장사를 하는데, 주일에도 장사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집사님은 주일에는 가게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손해를 봐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날을 거룩하게 보내기 위해 손해 볼 것을 각오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정직하게 장사하고, 손님에게 친절하고, 다른 가게의 물건보다 좋은 물건을 파니 많은 손님이 몰려왔습니다.
이처럼 축복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저도 주일을 거룩하게 잘 보내어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주일을 거룩하게 보내어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집인 성전도 존귀하게 여깁니다. 교회의 의자는 나무로 만든 것이지만,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사용하도록 만든 것이기 때문에 ‘성구(聖具)’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물건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교회의 물건을 소중히 다루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일도 잘 해야 하지만, 하나님의 일이 존귀한 줄 알고,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는 정성껏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많은 일을 하다 보면, 예배를 드리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것은 빼놓고, 다른 것만 열심히 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교역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리는 것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천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하는 일 중에 가장 귀한 일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예배를 정성껏 드려야 합니다. 정성껏 예배드리기 위해 집에서부터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정성이 담긴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솔로몬은 왕이 되니 얼마나 바빴겠습니까.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그러나 솔로몬은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약 3년 동안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렸습니다.
산당이 가까이에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번제를 드리러 기브온까지 갔습니다. 옛날에 길이 좋았겠습니까.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은 솔로몬을 위해서라면 축복을 다 부어주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하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지혜만 주신 것이 아니라, 부귀와 영광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고, 하나님 섬기는 일을 존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은혜도 많이 받고, 축복도 받게 되고, 범사에 잘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직분, 성직(聖職)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장로, 권사, 집사, 목사, 전도사 등 하나님의 일을 하는 직분 자체를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회사에서 사장의 직책보다 교회에서 서리집사의 직분이 더 귀한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존귀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집에서 수고하는 직분이 더 귀한 것입니다.
예전에 초량교회에 양 장로님이 계셨는데, 그분은 농림부 장관을 하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총회에서 “장로가 장관이 될 수 있는가?”라고 논란이 되었습니다.
그때 양 장로님은 “저는 장관은 그만둘 수 있지만, 장로는 그만둘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귀한 직분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양 장로님은 이 세상에서 출세하고, 유명해지는 것보다 하나님의 집에서 받은 직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고, 충성스럽게 봉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분들을 얼마나 기뻐하시고, 얼마나 축복하시겠습니까.
본문 빌립보서 2장 29절에 보면,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날을 존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집을 존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일을 존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직분을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을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존귀하시므로 하나님의 백성도 존귀합니다. 시편 16편 3절에 보면, 다윗은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존귀하신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존귀한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성도들은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 자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존귀한 자임을 아는 사람들은 함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아무렇게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몸은 성령의 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존귀하신 성령이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존귀합니다.
이기적인 생각으로 자신의 몸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존귀하신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몸은 아주 존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몸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에 보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존귀한 몸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존귀한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사람들이 천해지는 이유는 자신을 스스로 천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살게 됩니다. 그래서 타락하게 됩니다.
자신을 천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고,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가고, 더러운 짓을 쉽게 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도 천한 사람이 되고, 다른 사람도 천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도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합니다.
그렇게 할수록 자신은 더 천해집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천하게 만들게 됩니다. 이것은 비극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절대 이렇게 행동하면 안 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멀리하면, 마귀와 가까워집니다. 하나님의 집을 멀리하다 보면, 세상으로 깊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누구든지 마귀의 밥이 되고 맙니다. 마귀의 종이 되어버립니다. 마귀에게 묶여서 마귀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귀가 시키는 대로 말하고, 마귀가 시키는 대로 보고, 마귀가 시키는 대로 먹고, 마귀가 시키는 대로 행동하다 보면, 죄 가운데 타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죄를 범하면 누구든지 죄책감을 갖게 됩니다. 근심이 따라옵니다. 수치감이 따라옵니다. 불안과 공포가 따라옵니다. 두려움이 따라옵니다. 번민이 따라옵니다. 이것이 심해지면, 절망감에 빠지게 되고, 죽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자포자기 하게 되고,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아무렇게나 살게 되고, 더욱 악해지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닙니다. 그래서 멸망할 짐승처럼 살다가 자기도 망하고, 국가적으로도 얼마나 해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가장 존귀하신 분이심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존귀하신 분이심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인 자신도 존귀한 자임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렇게나 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존귀한 자임을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존귀하게 여깁니다.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말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은 사마리아 수가 성에 있는 우물가에서 죄 많은 여자를 만나셨습니다. 이 여인은 과거에 남편이 다섯 명이나 있었고, 지금 같이 사는 남자도 자신의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이 여인은 그런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기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아무도 밖에 나오지 않는 시간에 우물물을 길으러 왔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여인에 대해 다 알고 계셨고, 이 여인이 언제 우물물을 길으러 나오는가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물에서 그 여인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만나기 위해 그곳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자신이 메시아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여인은 물동이를 놓아두고, 수가 성으로 달려가서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라고 말했습니다(요 4:29). 자신이 행한 모든 일,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꿰뚫어보고 말씀하시는 이분이 바로 메시아가 아닌가, 그리스도가 아닌가 와서 보라고 말했습니다. 이 여인은 이제 부끄러운 것도 잊었습니다. 메시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메시아는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분이십니다. 메시아가 해결하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모든 저주를 받게 되었는데, 모든 저주와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주신 분이 메시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저주를 속량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해결하시지 못하실 것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고통스럽고 괴로운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다 해결하실 수 있으십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면 삽니다.
그런 메시아를 만났으니, 이 여인이 얼마나 기쁘고 좋았겠습니까. 부끄러움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상관없었습니다. 돌아 맞아죽어도 상관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메시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해결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담대하게 달려가서 외쳤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이 분이 메시아가 아니냐.”라고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요한복음 4장 39~42절에 보면,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을 천하게 여길 뿐 아니라, 모든 남자들을 천하게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남자들을 똑같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도 천하지만, 세상의 남자들도 다 천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천하게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여인을 천하게 여기시지 않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도 죄인이면서 이 여인에 대해 소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이 아니십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거룩하신 분이 이 여인을 존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이 여인을 위해 시간을 내시고, 이 여인을 만나기 위해 이 여인이 우물에 나오는 시간에 맞춰서 이 여인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여인을 만나셔서 “네가 기다리는 메시아가 바로 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을 통해 수가 성 사람들을 다 구원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천하게 여겼지만, 주님은 이 여인을 천하게 여기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여인을 통해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이루셨습니다.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을 돌로 쳐 죽이려고 한 사람이 많았지만,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죄를 다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만일 그 여자에게 돌로 치려는 사람이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그를 야단치셨을 것입니다. 그의 죄를 지적하셨을 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았기 때문에 손에 쥐고 있던 돌을 놓고 갔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8:10,11).
예수님은 천한 여인을 정죄하시지도 않으셨고, 멸시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긍휼히 여겨주시고, 자비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5:32).
시편 49편 12절에 보면,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49편 20절에 보면,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은 본래 존귀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타락하므로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가를 잊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 가운데 사람을 가장 존귀하게 만드셨습니다. 사람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특별한 피조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사람보다 존귀한 존재는 없습니다. 금은보화가 귀하고,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이 있다 할지라도 사람이 그것보다 귀한 존재입니다.
여기에 기독교의 생명이 있습니다. 아무리 죄인이라도 죄인의 생명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만드셨는데, 타락하여 자신의 존귀함을 잊었습니다. 자신이 존귀한 줄 모르고, 남도 존귀한 줄 모릅니다.
사람이 멸망하는 짐승처럼 사는 이유는 자신이 존귀한 존재인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함부로 행동합니다.
예수님은 어느 누구도 멸시 천대하지 않으셨습니다. 긍휼히 여겨주셨습니다. 그들의 죄는 밉지만,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을 존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 자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실 만큼 존귀한 자입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에 보면,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시고, 절대 우리를 떠나시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버리시지 않으시고, 저를 떠나시지 않으실 줄 믿습니다.
요한복음 6장 37~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7~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외의 모든 존재를 다 합해도 하나님 앞에는 콩알보다도 작고, 먼지보다도 작습니다. 우주가 얼마나 큰지 모르지만, 우주를 하나님과 비교해보면, 우주는 하나님보다 작습니다. 하나님의 콧김에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그러므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아주아주 크신 분이시고, 존귀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이 세상의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귀하게 여겨주시는지, 우리를 멸망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이 사시는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살게 하시려고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시고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 자입니까. 우리가 얼마나 존귀하기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로 버리시지 않으시고, 절대로 우리를 떠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아무도 없는 줄 믿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세요. 담대하세요.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포기하시지 않으십니다. 결코 버리시지 않으십니다. 떠나시지 않으십니다.
이사야 43장 4절에 보면,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시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을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장차 하나님 앞에 설 때, 존귀한 자의 모습으로 설 수 있도록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존귀한 자의 모습으로 서려면,
첫째, 참고 선을 행해야 합니다.
로마서 2장 6~1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상이 악해서 바르게 살기 힘들어도 참고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악하더라도 악하게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않고, 불의를 따르면 안 됩니다. 악한 짓을 하면 안 됩니다. 힘들더라도 끝까지 참고 견디면서 선을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의 모습으로 서겠다는 마음으로 참고 견디며 선을 행하며 살면, 하나님이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자는 없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며 살려고 하는데, 부족한 면이 있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용납하십니다. 우리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의도적으로 거짓말하고, 악한 짓을 하고, 불의한 짓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그런 짓을 하더라도 금방 회개합니다. 반드시 회개합니다. 그런데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그래서 반드시 교회를 떠나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받은 백성들의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망하게 됩니다.
둘째, 믿음의 시련을 이겨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6~7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어려움 없이 편안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시험이 왜 그리 많은지, 때로는 환난이 오고, 핍박을 당하기도 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어려움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어려움은 믿음의 시련입니다. 금을 정금으로 만들기 위해 용광로에 집어넣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이 있으면 괴롭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시련을 잘 견디다 보면, 정금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됩니다.
셋째, 겸손해야 합니다.
잠언 15장 33절, 18장 12절에 보면,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 가운데 가장 큰 죄는 교만함입니다. 마치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행동하고, 자신이 제일 잘난 것처럼 행동하고, 자신이 가장 의로운 척 행동하고, 마치 자신에게 죄가 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을 하나님은 가장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교만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세상에서도 존귀한 자로 인정받고, 하나님 앞에서도 존귀한 자가 되려면, 철저히 겸손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라고 고백했습니다(딤전 1:15).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고백했습니다(엡 3:8).
사도 바울처럼 겸손한 자가 된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존귀한 자로 세워주십니다.
전도서 10장 1절에 보면, “죽은 파리들이 향기름을 악취가 나게 만드는 것 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를 난처하게 만드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리석은 자 중에 가장 어리석은 자는 교만한 자입니다. 무식하면서도 자신이 가장 똑똑한 줄 알고 행동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겸손해야 할 줄 믿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정말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넷째, 거룩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3~8절에 보면,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철저하게 강조하는 것은 절대로 거룩을 저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므로 모든 죄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셔서 거룩한 백성이 되었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다는 사람들이 음란한 죄를 범한다면, 거룩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가 거룩을 지키고, 존귀한 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려면, 부부가 서로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존귀하게 여기는 만큼 존귀한 자가 됩니다.
부부는 일신(一身)이기 때문에 남편이 부인을 천하게 여기면, 남편도 천해집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존귀하고 고귀한 사람이 되려면, 남편과 아내를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고 고귀한 사람으로 여겨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존귀하게 여기고, 여러분이 저를 존귀하게 여기면, 서로가 존귀해집니다. 서로 존귀하게 여기는 만큼 존귀해지고, 그만큼 행복해집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긴 다윗을 존귀하게 하셨습니다. 역대상 17장 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들의 이름 같은 이름을 네게 만들어 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축복하시며, “세상에서 존귀한 자들의 이름 같은 이름을 네게 만들어 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약속이 이루어져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물론이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윗을 존귀한 자로 여깁니다.
역대상 17장 16~18절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께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에게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작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대하여 먼 장래까지 말씀하셨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를 존귀한 자들 같이 여기셨나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영예에 대하여 이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주께서는 주의 종을 아시나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존귀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에바브로디도도 참으로 존귀한 사람이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교회의 평신도 지도자입니다. 감옥에 있는 사도 바울을 도와주기 위해 교회에서 헌금한 돈과 물질 등을 가지고 사도 바울이 있는 감옥에 갔는데, 병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얼마나 정성을 다해 사도 바울을 받들었던지, 사도 바울은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라고 기록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생각하기에는 자기를 도우려고 온 사람이 죽으면 안 되니까 하나님께 그를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빌립보교회 성도들도 걱정하며 기도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자신이 병들어 죽게 된 것은 걱정하지 않고, 자신으로 인해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걱정하는 것 때문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라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존귀한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 자인가를 알고, 에바브로디도처럼 존귀한 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며 살다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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