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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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21 17:38 조회3,432회 댓글0건본문
왜 사는가
왜 사는가
2003년 03월 21일(금요철야)
본문 / 빌립보서 1:19~26
인생의 3대 질문은 “인생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어디로 가는가, 왜 사는가.”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은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디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고, 어디로 간다는 것을 알고, 왜 살아야 하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되는가를 아는 사람에게는 삶의 기쁨이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은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러 다니면서도 매를 많이 맞고 헐벗고 굶주리고 고생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그런 사람에게는 기쁨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데, 사도 바울은 항상 기쁨이 넘쳤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매를 맞으면서도 기뻐했습니다.
그의 서신 빌립보서에 보면,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고 했습니다. 자기 마음속에 기쁨이 없으면 그렇게 기뻐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은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은 모든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을 가장 많이 닮은 존재이므로 인간은 아주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사람이 원숭이로부터 왔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진화론을 믿고, 인간을 동물로 봅니다.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왜 사는지 모르는 사람은 생의 목적을 모르기 때문에 결국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화론은 사탄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인간을 타락시키고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아버리고 동물과 다름없이 그저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무신론자를 만듭니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진화론만 믿기 때문에 사람을 동물과 별 차이 없이 생각합니다. 탈북하신 분이 쓴 책 〈꼬리 없는 짐승〉에 보면, 수용소에 있는 사람이 죽으면 과수원의 비료로 쓰기 위해 그 속에 묻어버린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인생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릅니다.
인생은 어디로 갑니까?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천국에 간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어디 간다는 것을 알고 삽니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죽으면 천국에서 눈뜬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믿음이 좋은 분들은 죽음을 기뻐합니다.
이화여대 총장을 지낸 김활란 박사는 “찬송만 불러라. 내가 가거든 절대로 울지 마라.”고 유언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기 때문에, 주님 계신 곳,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 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 아예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내세를 믿지 않는 사람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왜 삽니까? 무엇을 위해 삽니까? 인생의 목적을 무엇에 두고 삽니까? 이것은 굉장히 큰 숙제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이기적으로 자신의 낙을 추구하면서 삽니다.그래서 낙을 누릴 때에는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낙을 누리지 못하거나 고난이 있으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항상 낙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며, 낙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낙에는 육체적인 낙과 정신적인 낙이 있습니다. 육체적인 낙은 쾌락인데, 육체적인 낙보다 정신적인 낙이 축복입니다.
그리고 신령한 낙과 세상적인 낙이 있습니다. 신령한 낙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즐거움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합니까.
전도서 2장 24절에 보면,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신령한 낙은 물질과 상관없습니다. 이것은 죽고 사는 것과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신령한 낙을 축복으로 받는 사람은 사도 바울처럼 어떤 환경에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낙이 있을 때, 인간은 행복해지고 만족하게 되고,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돈이 많다거나 명예가 높은 것으로 인해 즐거워하는 세상적인 낙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세상 낙은 낙을 누리는 그 순간만 만족할 뿐, 시간이 지나면 더 갈급해집니다.
마치 소금물을 마시면, 물을 마시는 그 순간은 시원함을 느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심한 조갈이 나는 것과 같습니다.
은을 좋아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금덩어리를 좋아하는 자는 금으로 만족함이 없기 때문에 세상적인 낙은 절대로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둘째, 세상 낙을 누리면 누릴수록 인간은 더 타락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약점입니다. 솔로몬과 같이 믿음이 좋은 사람도 세상 낙을 너무 누리다가 타락해버렸습니다.
호세아 4장 7절에 보면,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번성하고 잘될수록 하나님을 잘 섬기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그렇지 못한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축복을 어느 정도 받아도 타락하지 않을 수 있는지가 큰 숙제입니다.
내가 남보다 부요해지고 남보다 낙을 많이 누려도 하나님을 잘 섬기고 타락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보통 축복의 사람이 아닙니다. 보통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셋째, 세상의 낙은 하나님과 멀어지게 합니다.
인간은 세상적인 낙을 누리면 누릴수록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고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넷째, 세상적인 낙은 고난이 반드시 따라옵니다.
쾌락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고난이 반드시 따라옵니다. 보고 싶으면 보지 말아야 할 것까지 보게 되고, 너무 좋으니까 거기에 빠져 잠자는 시간도 줄어들어 피곤해집니다. 믿음도 약해져서 영육 간에 병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쾌락을 추구하는 자에게 고통을 주시고 고난을 주십니다. 세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은 타락하게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죄 가운데 살게 되고, 많은 고난을 당합니다.
시편 107편 10~11절에 보면,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세상 낙을 추구하다 보면, 하나님과는 멀어지고 말씀을 저버리게 되어 엄청난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예레미야 2장 19절에 보면,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
예레미야 30장 6절에 보면, “너희는 자식을 해산하는 남자가 있는가 물어보라 어찌하여 모든 남자가 해산하는 여자 같이 손으로 자기 허리에 대고 모든 얼굴이 겁에 질려 새파래졌는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33절에 보면,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세상 낙을 추구하다보니 자기 스스로 악한 가운데 빠져 고통을 당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본마음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시고, 우리를 잘되게 하시려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잘되게 하고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낙을 누리면서 살게 하고, 우리를 잘되게 하시려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행하십니다.
그런데 인간들의 죄와 허물이 그것을 자꾸 가로막고 물리칩니다. 예레미야 5장 25절에 보면,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책임은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타락해도 낙을 누리는 것이 좋습니까, 고난이 있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는 것이 더 좋습니까?
타락하고 죄 가운데 빠진 자에게 고난이 있는 것은 오히려 축복입니다. 타락하는 자가 계속 낙을 누리는 것은 가장 불행한 것이고 저주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에게 반드시 고난을 주십니다.
전도서 7장 1~4절에 보면,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니라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지혜자의 마음이 초상집에 있다는 것은 지혜자는 ‘나도 죽는다. 나도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고 산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쾌락을 추구하지 않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반면 어리석은 사람은 신나게 놀면서 하나님도 완전히 잊어버리고, 그날 밤에 내가 죽어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타락합니다. 어리석은 인간은 쾌락만 추구하다 타락하고 결국 큰 고난을 당합니다.
예레미야애가 4장 1~10절에 보면,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순금이 변질하였으며 성소의 돌들이 거리 어귀마다 쏟아졌는고 순금에 비할 만큼 보배로운 시온의 아들들이 어찌 그리 토기장이가 만든 질항아리 같이 여김이 되었는고 들개들도 젖을 주어 그들의 새끼를 먹이나 딸 내 백성은 잔인하여 마치 광야의 타조 같도다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 아이들이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 맛있는 음식을 먹던 자들이 외롭게 거리 거리에 있으며 이전에는 붉은 옷을 입고 자라난 자들이 이제는 거름더미를 안았도다 전에 소돔이 사람의 손을 대지 아니하였는데도 순식간에 무너지더니 이제 딸 내 백성의 죄가 소돔의 죄악보다 무겁도다 전에는 존귀한 자들의 몸이 눈보다 깨끗하고 젖보다 희며 산호들보다 붉어 그들의 윤택함이 갈아서 빛낸 청옥 같더니 이제는 그들의 얼굴이 숯보다 검고 그들의 가죽이 뼈들에 붙어 막대기 같이 말랐으니 어느 거리에서든지 알아볼 사람이 없도다 칼에 죽은 자들이 주려 죽은 자들보다 나음은 토지 소산이 끊어지므로 그들은 찔림 받은 자들처럼 점점 쇠약하여 감이로다 딸 내 백성이 멸망할 때에 자비로운 부녀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자기들의 자녀들을 삶아 먹었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쾌락만 추구하다가 타락하고, 결국 엄청난 고통을 당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내세를 믿지 않는 사람, 쾌락을 위해 사는 사람은 고난이 계속되면 악해집니다.
이런 사람은 내세를 믿지 않기 때문에 고통 받으며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자살충동을 느끼고 죽고 싶어 합니다.
요한계시록 9장 5~6절에 보면,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세에는 죄악이 가득하기 때문에 고통이 아주 심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모르고 쾌락만 추구하는 사람은 분노가 가득해지고 악독해져서 죽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죽음이 피합니다. 그래서 고통이 더 커지고 더 악해집니다.
디모데후서 3장 13절에 보면,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진정한 낙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진정한 낙은 하나님께서 주셔서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진정한 낙을 주실까요?
첫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에게 진정한 낙을 주십니다.
전도서 2장 24~26절에 보면,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아, 먹고 즐기는 일에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이런 낙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데, 지혜와 지식을 주셔서 성공하게 하시고, 희락을 주셔서 마음의 천국이 이루어져서 항상 잔치하면서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풍성한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기지 않고, 하나님께 인색하고, 마지못해서 섬기고, 마지못해 드리는 사람은 저주를 받습니다.
신명기 28장 47~48절에 보면,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기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11장 2~3절에 보면,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찬양하는 것, 예배하는 것, 바치는 것을 즐거워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신령한 복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자에게 진정한 낙을 주십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이 항상 넘쳤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 있고 싶었지만 성도들을 유익하게 하기 위해 성도들과 함께 있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성도들을 위해 삶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을 영광으로 알았습니다. 주님을 위해 고난 받는 사도 바울에게는 항상 기쁨이 넘쳤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는 기쁨과 낙은 주님을 위해 사는 낙입니다.
순교하는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와 같았던 것도 스데반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위해 살다가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아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넘치는 기쁨으로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게 되었습니다.
셋째, 회개하는 자에게 진정한 낙을 주십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 가운데 살 때에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슬프게 하지만, 죄를 범한 인간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큰 기쁨이 주어집니다.
시편 32편 3절에 보면,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지 않고, 죄를 붙잡고 있으면, 우리에게 엄청난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축복을 우리가 받아 누리려면,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를 막연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회개는 우선 죄를 깨닫고 뉘우칠 때에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죄를 깨닫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러나 뉘우치는 것에서 그치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자백해야 합니다. 기억나는 죄는 하나하나 고하면서 회개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를 범한 순간마다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슬프게 했던 것을 풀어드리는 방법은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눈물 흘리며 회개하는,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요엘 2장 12~14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통회하며 자백할 때에 형식적으로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고 했습니다. 죄지은 것을 괴로워하며 철저하게 회개하라는 의미입니다.
이사야 58장 6~9절에 보면,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스겔 36장 31절에 보면, “그 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좋지 못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스스로 밉게 보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 자체가 미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가증한 짓을 한 나 자신이 미울 정도로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게 회개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큰 기쁨과 즐거움을 주십니다.
넷째, 성령 충만한 자에게 진정한 낙을 주십니다.
성령 충만한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진정한 낙을 받아 사랑이 충만하고 기쁨이 충만합니다. 험악한 세상에 살 때에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죄와 싸워 이기려면, 성령으로 충만하지 아니하면 안 됩니다.
마지막 때가 될수록 세상이 험해지고 악해지고 고난이 많아집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 사도 바울같이 기쁨으로 살 수 없습니다.
잠언 15장 13절에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7장 22절에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신 희락은 큰 축복입니다. 마음에 항상 즐거움이 있는 사람은 보약 중에 최고의 보약을 먹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이 주신 낙, 즐거움이 항상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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