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열매를 맺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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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8 14:00 조회3,437회 댓글0건본문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열매를 맺자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열매를 맺자
2010년 12월 31일(금요철야)
본문 / 에베소서 5:8~14
본문 에베소서 5장 8~9절에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저와 여러분은 과거에 어둠에 속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사탄의 지배 하에 사탄의 종 노릇 하며 죄 가운데 살았습니다. 마귀가 시키는 대로 살면서 못된 짓만 하다가 지옥에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주 예수를 믿고 영접하므로 구원 받아서, 빛 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빛에 속한 자가 되었습니다.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는 마귀의 자녀였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진심을 믿고 영접함으로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증거는 우리에게 빛의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빛의 열매가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해 줍니다.
빛 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반드시 빛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성품이 착해지고 의로워지고 진실할 뿐만 아니라 착하고 의롭습니다.
마귀의 자녀였을 때는 성품이 악하고 불의하고 거짓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는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한 성품이 없어지면서 점점 착해지고 불의한 것이 없어지고 의로워집니다. 거짓된 삶이 없어지고 진실해집니다. 그 열매를 보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영접하지 않은 사람은 어둠의 일을 하면서 삽니다. 어둠의 일이라는 것은 사탄의 종 노릇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탄이 좋아하는 못된 일을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사람은 어둠을 일을 버리고 빛의 열매를 맺으며 삽니다. 그래서 빛의 열매가 거듭난 증거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 변화되어서 착하고 의롭고 진실한 열매가 나타나면, 그 사람이 거듭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변화되는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예수님을 믿고 나면 성품이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축복입니다.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신 지 20~30년 되신 분 중에 세월이 갈수록 더욱 아름답게 변화되는 분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에 처음 나왔을 때에는 성질이 아주 포악해서 많이 거칠고 싸움을 잘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성품이 온유하고 마치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변화되어 있습니다.
교회에 처음 나왔을 때에는 아주 간교하고 교만하던 사람이 지금은 아주 진실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교회에 처음 나왔을 때에는 말이 많고 시끄러웠는데, 지금은 말없이 묵묵히 충성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존경스러운지 모릅니다.
우리 교회의 안수집사님 중에 한 분은 부산에서 꽤 유명한 분이십니다. 부인 권사님이 먼저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그 당시 남편에게 신앙이 전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심방을 갔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심방 온 목사를 앉혀놓고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제가 입을 열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제가 심방을 받고 왔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데, 돈도 많이 버시고 아주 자신만만하셨습니다. 그러니 목사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변화되었습니다. 제가 그분을 보고 반가워서 인사하려고 하면,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서 계십니다. 겸손해지셨습니다.
우리 교회에 나와서 1년, 2년, 10년 신앙생활을 하니까 얼마나 아름답게 변화되는지, 누가 그렇게 변화시키셨습니까? 성령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의 성도들 중에는 변하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아주 단순해집니다. 은혜 받기 전에는 사람이 복잡했는데, 은혜 받으면 사람이 단순해지고 순수해집니다. 그리고 사람이 겸손해지고 온유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복잡한 사람은 아직 은혜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마치 설익은 과일과 같습니다.
우리 교회의 성도들이 변화되는 것을 볼 때, 저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우리 교회에 나온 지 몇 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얼마나 많이 우시는지, 예배 시간에 보면 눈물을 닦고 계십니다. 찬양할 때에도 눈물을 흘리십니다.
예수님을 믿은 지 불과 몇 개월 되지 않았는데, 수십 년 동안 예수님을 믿은 사람 이상으로 변화되는 것을 봅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성수주일, 십일조, 감사헌금을 철저히 합니다. 보살 노릇하던 시어머니와 믿지 않는 식구들을 다 전도했습니다. 온 집안을 예수님 믿게 했습니다. 변화되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온 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은혜를 받지 못해 변화되지 못한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인들이 은혜를 받지 못하고 세월을 보내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더 완악해집니다.
몇 십 년 동안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고 신앙생활을 하며 은혜 받을 기회가 있었는데도 은혜를 전혀 받지 못한 사람은 얼마나 완악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됐으니까 직분자가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어른 노릇을 합니다. 은혜를 전혀 받지 못한 사람이 교회에서 어른 노릇을 하니 그 교회가 부흥되겠습니까.
교회 역사가 수십 년 되었지만, 교회가 부흥되지 않습니다. 부흥될 수 없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변화가 없습니다.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에게는 변화된 증거가 나타나는데 빛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본문 에베소서 5장 10절에 보면,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빛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일시적으로 열심을 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만 열심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불교에도 열심은 있습니다. 신천지 같은 이단들의 열심은 대단합니다. 얼마나 열심인지 모릅니다. 열심은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열심만 가지고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변화된 모습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섬기는가가 중요합니다. 평생 예수님을 믿었는데 하나도 변화되지 않고 열심만 가지고 있으면 무엇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참으로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은 빛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5장 5~6절에 보면,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빛의 자녀입니다. 낮의 자녀입니다.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면 아직도 버리지 못한 어둠의 일이 남아 있습니다.
어둠의 일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우리가 범하던 죄악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이므로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도 없으니까 마귀가 시키는 대로 욕심을 따라 거짓말하고 사기 치고 남을 해하기도 하고 음란한 짓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어둠의 일입니다.
타락한 사람들의 습관,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 나오기 전에 가졌던 구습들이 어둠의 일입니다. 예를 들면, 만나기만 하면 남의 험담을 하는 것, 죄책감도 없이 거짓말하는 것, 원망 불평 잘하는 것, 포르노 영화 같은 성인영화 보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 밤낮 술집에서 취해있는 것, 그곳에서 여자들과 음란한 짓 하는 것, 노름하는 것, 탈세를 위해 이중장부를 만들어서 불의한 방법으로 재산을 쌓는 것 등이 어둠의 일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어둠의 일이 남아있으면 안 됩니다. 구습이 남아있으면 안 됩니다.
습관은 영향력이 대단합니다. 좋은 습관은 좋은 결과를 낳고 나쁜 습관은 나쁜 결과를 낳습니다. 습관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고, 후천적으로 반복할 때에 생깁니다. 그래서 습관을 제2의 천성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나쁜 습관을 버리고 좋은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빌리 선데이라는 부흥사는 유년시절에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셔서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열네 살 때부터 학교에서 급사 일을 했는데, 추운 겨울이 되면 새벽 2시에 일어나서 열 개의 석탄 난로에 불을 지펴야 했습니다.
그런데 월급은 25달러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월급 받은 어음을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 은행에 갔는데, 직원의 실수로 40달러를 받았습니다. 15달러를 더 받았습니다.
그때는 예수님을 몰랐기 때문에 그냥 가지고 왔습니다. 얼마 후에 친구에게 이야기했는데, 양심적인 친구가 아니었는지, 그 돈으로 연극을 보러 가자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에 용기를 얻어 그 돈으로 양복을 샀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는데, 주님께서 “너는 은행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느냐? 너는 은행 빚이 15달러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빌리는 “은행에서는 모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은행에서는 모르고 있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절대로 잊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5년 동안 기도할 때마다 주님께서 기억나게 하시고 말씀하셨지만,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너무 괴로워서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겠다 결심하고 사과문과 15달러를 동봉해서 은행에 용서를 구했다고 합니다.
그 후 기도하는 가운데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빛의 자녀입니다.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입니다. 그런데 어둠의 일을 우리가 습관적으로 행할 수 있습니까? 철저히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13장 11~14절에 보면,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둠의 일이 무엇입니까? 방탕한 것, 술 취하는 것, 음란한 것, 호색하는 것, 다투는 것, 시기하는 것 등 이런 것이 다 어둠의 일입니다.
누가복음 13장 1~3절에 보면,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차 사고로 죽고 화재로 죽고 암에 걸려서 죽었는지 모릅니다.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죄가 더 많아 죽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들과 똑같이 망합니다.
누가복음 13장 4~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4~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그냥 읽고 넘어가면 안 됩니다. 모든 죄를 철저히 회개하지 않으면, 두루마기를 빠는 것처럼 죄악을 회개해서 깨끗이 씻음을 받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어둠의 일을 끊어버리지 못하고 사는 것일까요?
첫째, 환경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믿는데, 바르게 살고 싶은데, 환경이 너무 좋지 않아 본의 아니게 어둠의 일을 하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많이 받습니다. 은혜로운 좋은 환경에 있으면, 은혜 받기 쉽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살면, 은혜 가운데 살기 아주 좋습니다.
그러나 죄짓기 쉬운 환경에 있으면, 죄를 범하기 쉽습니다. 예를 들면, 창녀촌 한가운데 산다면 동으로 가도 창녀들이 많고 서로 가도 창녀들이 많아 죄 짓기가 참 쉬울 것입니다.
그런 환경에서 살면서 자기는 기도를 많이 하고 신앙생활을 잘하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오산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환경 자체가 죄짓기 쉬운 환경이 되면 죄를 짓게 됩니다. 취직이 되지 않아 술집 종업원으로 취직했다면, 일하며 술 마실 일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과 같은 세계적인 부흥사는 전 세계를 이동하면서 집회할 때마다 많은 직원이 따라다니며 준비하는데, 그런 곳에서 일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항상 모이면 기도하고 말씀 듣고 구원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뻐하며 산다면, 얼마나 은혜 받고 좋겠습니까.
둘째, 잘못된 사람들을 가까이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친구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좋은 친구를 가까이하면 좋은 영향을 받고, 좋지 못한 친구를 가까이하면 좋지 못한 영향을 받습니다.
예를 들면 험담 잘하는 친구를 가까이하면 밤낮 험담만 듣다 보니 머리에 세뇌되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험담만 하게 됩니다. 남을 비판하기 좋아하는 친구를 가까이하면 밤낮 비판하는 말만 듣다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남을 비판하게 됩니다. 원망 불평만 늘어놓는 친구를 가까이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원망 불평하게 됩니다. 매사에 부정적인 친구를 가까이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술을 많이 마시는 친구를 가까이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술독에 빠지게 되고, 노름을 좋아하는 친구를 가까이하면 본인도 노름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잘못된 사람을 가까이하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둠의 일을 벗어버리지 못하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사귀지 말아야 할 사람을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13장 20절에 보면,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미련한 자를 사귀면 미련한 인간이 되어 해를 받습니다.
잠언 20장 19절에 보면,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 돌아다니며 남의 험담을 많이 사람을 가까이하면, 해를 얼마나 많이 받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아예 가까이하지 말라고 합니다.
잠언 22장 24~25절에 보면,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의 행위를 본받아 네 영혼을 올무에 빠뜨릴까 두려움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을 가까이하지 마십시오. 그 속에 악신이 역사하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닮습니다. 자꾸만 성질내는 사람은 그 속에 사탄의 영이 역사합니다. 노를 품고 분노가 가득한 사람을 사귀지 마십시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본받습니다.
잠언 23장 20~21절에 보면,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 자기를 즐겨 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을 사귀지 마십시오.
잠언 24장 1절에 보면,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악한 인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악한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부러워하지 말고 그와 함께 있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과 있으면 악한 짓밖에 배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잠언 24장 21절에 보면, “내 아들아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 반역자와 더불어 사귀지 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반역자의 성품을 가진 사람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디서나 반역의 행위를 합니다. 그런 사람을 가까이하면, 그 사람이 망할 때 오해받습니다. 그런 사람의 가까이에 있었으니까 한패라고 생각하고 반역자가 망할 때에 같이 망합니다. 그러므로 애초에 가까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6절에 보면,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개역한글성경에는 “규모 없이 행하는 자에게서 떠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규모 없이 행하는 자에게서 떠나라는 것은 절도도 없고 신앙생활도 제대로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고 쓸데없는 짓이나 하고 교회가 시키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제멋대로 사는 사람에게서 떠나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사람을 가까이하면 닮습니다.
디도서 3장 10절에 보면,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가까운 친구, 동네 사람, 친척이라도 이단에 속해 있다면 멀리해야 합니다.
요한이서 1장 10~11절에 보면,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잘못된 교훈을 하고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을 자기 집에 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과 인사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사람과 인사하는 사람은 못되고 악한 일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엄한 말씀입니까.
요한이서는 사랑의 사도 요한이 쓴 것입니다. 요한은 사랑의 사도지만, 이단의 세력을 절대 용납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좋은 친구를 가까이하십시오. 기도 많이 하는 분을 가까이하십시오. 은혜 받은 사람을 가까이하십시오. 은혜 받은 분을 가까이하면, 그분에게 있는 간증만 들어도 은혜 충만해집니다.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 매사에 모범적인 사람을 가까이하십시오. 그러면 배울 것이 너무 많습니다. 배울 만한 좋은 것들이 많습니다.
주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을 가까이하세요.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을 가까이하다 보면 우리도 그렇게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을 가까이하세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사람과 함께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 나오는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고, 되는 일이 없고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지 못하는는 사람을 가까이하면 나도 그 사람과 똑같아집니다.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릅니다.
셋째, 교만한 마음 때문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원수같이 취급하고 대적하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는데, 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야고보서 4장 6절에 보면,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십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습니다. 교만하면 기도 응답이 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8장 9절 이하에 보면,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가 나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들을 멸시합니다.
바리새인들은 기도할 때에 따로 서서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눅 18:11~12)”라고 기도합니다. 자기가 바르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 죄는 하나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3절에 보면,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바리새인이 굉장히 훌륭해 보이지만, 바리새인의 기도는 잘못되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인정받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세리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응답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높이고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도 응답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겸손한 자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사람이 교만해지면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는 눈이 아주 밝아집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허물이 잘 보입니다. 반대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영안은 어두워집니다.
그래서 사람이 교만해지면 자신의 잘못을 보지 못하니까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판단하고 비판하고 멸시하고 무시하고 험담합니다.
사람이 교만해지면 훌륭한 사람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보면 얼마나 부족하고 허물이 크고 죄가 많아 보이는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을 보면 자신보다 더 훌륭해 보입니다. 이런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잠언 16장 5절에 보면,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교만해지는 순간부터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말씀을 들어도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설교에 대해 비판하려고 합니다.
한쪽에서는 말씀으로 은혜를 받아 굉장한 역사가 일어나는데, 교만한 사람에게는 허물만 보이니까 전혀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열심히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기도 자체가 은혜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은혜 받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찬송을 불러도 은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만해지면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심령이 점점 메마릅니다. 심령이 악해지고 돌덩어리처럼 되고 완악해져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화를 잘 내고 원망 불평이 많아지고 심지어는 하나님께 대해서도 불만을 품게 됩니다.
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업이나 가정이나 자식이나 무엇 하나 잘 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저주 가운데 살기 때문에, 되는 일이 없습니다.
죄와 허물은 하나님께서 예비해주신 모든 복을 가로막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제일 처음에 무조건 복을 주십니다.
사람을 지었을 때에도 먼저 사람에게 복을 주셨습니다(창 1:28). 노아가 방주에서 나왔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복을 주셨습니다(창 9:1~7).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도 축복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미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이고, 축복받은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위해 모든 축복을 계획하고 계시고 준비해놓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축복을 차버리지 않으면 됩니다. 축복을 막지 않으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죄와 허물이 축복을 가로막습니다. 예레미야 5장 25절에 보면,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끊어버리지 못한 어둠의 일이 남아있다면 그것이 허물입니다. 허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에게 오는 좋은 것들이 막힙니다. 좋은 것을 우리가 물리칩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좋은 사람이 주변에서 떠나갑니다. 그리고 자기와 닮은 사람, 똑같이 교만한 사람들만 모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잠언 16장 18절에 보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교만하면 사업도 망하고 믿음도 잃어버립니다. 그래도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이라도 깨닫고 겸손히 회개하면, 회개하는 순간부터 은혜의 문이 열립니다. 겸손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고,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고, 기도를 은혜를 받고, 찬양을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 가운데 말씀 듣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니 모든 것이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축복의 문이 활짝 열립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는 것을 날마다 체험하며 살게 됩니다. 마음속에 기쁨과 평강이 넘치게 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살게 됩니다.
축복의 문이 활짝 열리기를 원하십니까? 겸손히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버리지 못한 어둠의 일이 남아있다면, 철저하게 씻어버리시기 바랍니다. 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회개는 축복입니다. 회개 자체가 복입니다.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회개하면 진노가 멈춥니다. 회개하면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회개하면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회개하면 수지맞습니다.
요엘 2장 25~26절에 보면,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회개한 사람들에게는 과거에 재앙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했던 것을 하나님께서 다 갚아주십니다. 이 약속을 믿습니까?
역대하 7장 14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회개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속에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축복입니다.
그런데 내 마음대로 회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아직 젊었으니까 늙은 후에 회개하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회개할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할 기회를 놓치고 나중에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
가룟 유다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가룟 유다에게 수없이 주셨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계속 주셨지만, 가룟 유다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가담했습니다.
막상 그 일이 진행되고 난 후, 뉘우쳤지만 돌이킬 길이 없었습니다. 결국 가룟 유다는 목매어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회개하게 됩니다. 회개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회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에게 회개가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에게 회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히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에게 회개의 은혜를 주십니다.
전도서 7장 8절에 보면,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솔로몬의 교훈입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이 더 중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마라톤 경기를 생각해보십시오. 출발할 때에 1등이냐 2등이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간에 얼마나 빨리 뛰는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골인할 때에 1등이냐 2등이냐입니다. 마지막 골인할 때에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모든 평가는 마지막에 내려집니다.
아무리 악독하고 못된 사람이라도 마지막에 변화되어 착하게 살았다면, 그 사람은 착한 사람으로 평가될 것입니다. 반대로 착하게 살던 사람이 변해서 악독한 짓을 하며 살다가 죽었다면, 그 사람은 악독한 인간이 됩니다.
평가는 마지막을 보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엉망이었는데 마지막에 충성했다면, 그 사람은 충성스러운 사람입니다. 이와 반대로 충성하다가 마지막에 배신했다면, 그 사람은 배신자입니다. 마지막을 보고 모든 것을 평가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의 일입니다. 근처에 있는 부잣집에 가사도우미가 있었는데, 시골에서 올라온 젊은 아가씨였습니다. 일을 열심히 하고 성실하니까 한 가족처럼 잘 지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아가씨가 그 집에 있던 은수저가 탐났는지, 그것을 가지고 도망갔습니다. 아마도 은수저가 아주 비싼 물건인 줄 알았나봅니다.
그동안에 열심히 일했던 것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결국 도둑이 되어버렸습니다. 마지막 그 일이 그 사람을 평가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올해 마지막 시간인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마지막 시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린다면, 2010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린 한 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 속에 새해를 맞이하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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