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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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4-10 16:23 조회2,891회 댓글0건본문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2020년 03월 15일(주일예배)
본문 / 에베소서 4:1~12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를 기록할 때에 둘로 나누어서 기록했습니다. 에베소서 1~3장에는 ‘우리는 이렇게 믿는다’ 우리의 신앙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에베소서 4~6장에는 ‘우리는 이렇게 산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은 이렇게 산다’ 생활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죄로 말미암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류에게 구원의 소망을 주는 복음이었습니다. 죄가 아무리 많아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옆에 있는 십자가에 못 박혔던 두 강도처럼 타락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이보다 복되고 귀한 복음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되 예수님이 누구시며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신실합니다. 하나님께는 거짓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토록 변함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사랑하시면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예수님만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똑바로 알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똑바로 알고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에 보면,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5절에 보면,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4절에 보면,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께서는 진리가 되시고,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종교나 철학에서도 진리를 말합니다. 그러나 진리라고 말할 뿐이지, 사실은 진리가 아닙니다. 그들이 진리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된 진리입니다.
거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구원이 없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생명을 얻는 것도 아니요, 구원 받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 진리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는 생명이 있고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철학이나 종교에서 진리라고 말하는 것을 믿는 사람은 모두 속고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9~12절에 보면,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탄도 큰 능력을 행합니다. 하나님의 종만 큰 능력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을 행하는 것만 보면 하나님의 종인지 사탄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탄에게 미혹되도록 허락하십니다. 이것이 심판입니다.
이들은 구원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버림 받습니다. 이들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들을 추종하는 사람들 역시 불행한 사람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한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했다 해도 그들은 불법을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요한일서 3장 4절에 보면,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들은 불법을 행하면서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고 말씀하셨습니다.
불법을 아무리 많이 행했다 해도, 불법인 줄 알고 회개하면 구원 받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불법을 행하면서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불법 행한 것을 회개하려면, 불법이 잘못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불법 행한 것을 뉘우치고 돌이켜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불법 행한 것을 뉘우치지도 않고, 돌이키지도 않았습니다. 불법 행하는 것을 오히려 좋아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구원 받지 못합니다.
요한복음 1장 12~13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영접했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이것은 혈통으로 된 것도 아니요, 육정으로 된 것도 아닙니다. 사람의 뜻으로 된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5~18절에 보면,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떻게 베드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알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똑바로 알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믿게 됩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마태복음 22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창세 전에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지만,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였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지만, 에서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 매우 적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도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은 소수였습니다.
에베소서 2장 5절에 보면,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100%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자랑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어도 구원 받는 사람이 있고, 구원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행하는 것에 따라 결정됩니다.
행하는 것을 보면, 구원 받는 믿음의 사람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약 2:17).
야고보서 2장 26절에 보면,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행위를 보면, 아브라함의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라합이 어떻게 구원 받았습니까? 라합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라합은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라합의 행위가 라합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행위가 완전한, 100점짜리 믿음은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만큼 행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아주 만족해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가리켜 “나의 벗(사 41:8)”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41장 8~13절에 보면,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진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시고, 믿음의 사람에게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사람을 보시고 마음 아파하십니다.
사람들에게 신임을 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마음 아프겠습니까. 그런데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1982년에 제가 안식년으로 미국에 갔습니다. 제가 교회에 없는 동안 나쁜 소문이 퍼졌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는 교회에 부임하여 설교했다는 헛소문이 교회에 퍼졌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아보지도 않고 헛소문을 그대로 믿고 실망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성도들이 믿지 못하는 목회자가 된 절망감으로 인해 울면서 “성도들이 믿지 못하는 목회자가 되었으니 저는 실패자입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제게 “너는 나를 믿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성도들이 저를 믿지 못하는 것만 생각하고 괴로워했는데, 제가 하나님을 100%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하나님을 100% 신뢰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우리의 믿음은 부족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굉장한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비하면, 우리의 믿음은 매우 작습니다.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한 사람이 귀신 들린 아이를 데리고 제자들에게 왔으나 제자들은 그 아이를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은 아이를 데리고 예수님께 갔습니다.
마태복음 17장 18~20절에 보면,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믿음이 좋아야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구원 받습니다.
시력이 좋아야 겨자씨가 보입니다. 시력이 좋지 않으면 겨자씨가 보이지 않습니다. 겨자씨가 작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겨자씨 한 알처럼 작아도,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길 수 있고 못할 것이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 작아도, 믿음이 있는 사람은 구원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의 옆에 있는 십자가에 못 박혔던 강도에게 믿음이 있었을까요? 그는 평생 나쁜 짓을 했습니다. 죄를 많이 범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9~43절에 보면,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두 명의 강도 중 한 명은 십자가에 못 박혀있는 동안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강도를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자신은 자신의 죄로 인해 심판 받을 수밖에 없고 죽어 마땅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예수님께 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임할 것을 알았고 그것을 믿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에 보면,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령의 은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의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행위가 완전해서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똑바로 알고 믿는 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박해했습니다. 예수님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는 것, 예수님을 믿는 것은 보통 은혜가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확실히 알게 해주는 믿음의 열매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있는 사람, 형제에 대한 사랑이 있는 사람은 구원 받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다가 고난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열매입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에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우리의 믿음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믿음의 열매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통해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구원 받은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열매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계명을 기쁨으로 지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요한복음 13장 34~3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4~15절에 보면,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구원 받는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인가, 구원 받지 못한 마귀의 자녀인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형제를 사랑하는가 사랑하지 않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살인자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영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구원 받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열매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주인으로부터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두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한 달란트를 땅 속에 묻어두었다가 내놓았습니다.
남겼다는 것은 보물을 하늘에 쌓은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물질을 사용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물질을 사용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여 행하는 일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물질을 사용하는 것은 물질을 하늘에 쌓는 것입니다. 그래야 장차 예수님을 만날 때에 예수님 앞에 내놓을 것이 있습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남긴 것이 없었습니다. 한 달란트를 자신을 위해 땅에 묻어두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주인으로부터 버림 받았고,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모두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산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먹고살아야 합니까?
마가복음 10장 29~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에게 백 배의 복을 주십니다.
은행에 저금하면 이자를 받습니다. 그런데 하늘에 쌓아두면, 천국 은행의 이자는 100배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은 먹고살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마태복음 25장 31~4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재림하실 때에 심판 주로 오셔서 사람을 구분하십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를 보시고 사람을 구분하십니다.
요한일서 3장 17~18절에 보면,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분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태복음 7장 15~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열매를 보면 참 선지자인가, 거짓 선지자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의 열매를 보고 참 선지자요 거짓 선지자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양의 옷을 입고 있지만,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가 들어있습니다.
선한 목자는 자신의 양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거짓 목자는 이리처럼 행동합니다. 사랑이 없습니다.
이리가 양들 사이에 와서 양을 잡아먹듯이 거짓 목자는 양을 속입니다. 거짓 목자는 사랑이 없습니다. 자신의 유익만 챙깁니다.
우리가 항상 주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알게 된 이후에는 완전히 변했습니다.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던 사람이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런데 큰 환난과 시험과 핍박이 사도 바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고난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고난 받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이 기쁨으로 인해 사도 바울은 끝까지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우리는 이렇게 됩니다. 주님을 만나면 이렇게 됩니다.
주님께서 함께해주시는 것을 체험하면,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기뻐할 수 있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항상 함께하십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보면,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이 신실하신 주님의 말씀인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대로 우리도 이길 것을 믿어야 합니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주님께서 만주의 주,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에 우리도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기시기 때문에 주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 되시는 주님께서 이기시기 때문에 음부의 권세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이길 수 없습니다. 교회만 보면,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본문 에베소서 4장 1~3절에 보면,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즉 하나 되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교회는 저절로 하나 될 수 없습니다.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힘을 써야 합니다.
산에서 나무를 베어 와서 그대로 건물을 지을 수 없습니다. 긴 것을 잘라야 합니다. 굵은 것은 쪼개야 합니다. 나무를 깎고 다듬고 자르고 맞춰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가 하나 되려면, 많이 교육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저절로 하나 될 수 없습니다.
본문 에베소서 4장 2절에 보면,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첫째, 겸손을 훈련해야 합니다.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합니다(빌 2:3).
둘째, 온유를 훈련해야 합니다. 따뜻하고 유순해야 합니다.
셋째, 오래 참는 것을 훈련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후, 금방 변하여 새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변하여 새사람이 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넷째,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는 것을 훈련해야 합니다.
허물이 많지만 사랑으로 용납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든 다 용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랑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살면,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가정을 아름답게 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아름답게 할 수 있습니다. 사회를 아름답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볼 때, 용납하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 되게 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고, 우리와 우리 사이를 하나 되게 하시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 되게 하시려고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부, 성자, 성령께서 언제나 하나이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로마서 5장 10절에 보면,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원수 되었다는 것은 가장 좋지 않은 관계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본문 에베소서 4장 1~3절에 보면,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 되도록 힘쓰라고 권면했습니다.
우리는 오직 성령으로만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믿음이 충만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사랑으로 충만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충만할 때, 사랑으로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때,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 됩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때, 우리가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때,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이 권면한 것처럼 교회가 하나 되고 가정이 하나 되고 모두 하나 되게 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평생의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간구하오니 이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새겨져서 이 말씀을 기억하고 살게 도와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올바르게 사는, 하나님의 되기를 워합니다. 고난으로 인해, 잘못된 삶을 회개하고, 교만했던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고,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것을 회개하고, 받은 복을 감사할 줄 모르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았던 것을 회개하고, 이 고난으로 인해 우리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으로 온전히 변화되게 하여 주옵소서.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하셔서 오늘날 우리가 당하는 이 고난을 통해 많은 축복을 받고 간증할 일이 많아지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이번 한 주간 동안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모든 질고를 이 땅에서 거두어주셔서 한국 교회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고, 전 세계에서 보여줄 수 있게 해주시기 원합니다.
아버지, 우리 수영로교회를 통해 꼭 이루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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