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의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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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2-10 11:34 조회2,971회 댓글0건본문
사도 바울의 간증
사도 바울의 간증
2020년 02월 09일(주일예배)
본문 / 에베소서 3:1~13
우리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복음만 전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은혜 받은 것을 간증하면 복음을 잘 전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습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간증할 것이 반드시 있습니다. 받은 은혜가 많기 때문입니다.
어느 권사님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이 교회에 나오지만, 예수님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일마다 교회에 오는 것 때문에 남편과 실랑이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수영로교회라면 가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권사님은 남편을 위해 우리 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권사님의 남편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에도 울지 않을 정도로 눈물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 와서 자리에 앉자마자 울기 시작했습니다. 몇 개월 동안 계속 울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어느 성도님의 이야기입니다. 친구들이 교회에 가자고 전도했는데도 자기는 예수님을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교회에 한 번만 가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 번만 가기로 약속하고 교회에 왔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들어서는 순간, 밝은 빛이 비쳤습니다. 그래서 울기 시작하여 몇 개월 동안 계속 울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다니면서 은혜를 받고 변화되었습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에게는 간증이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의 간증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있는 영광스러운 것 세 가지를 간증했습니다.
첫째, 사도 바울은 복음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이 자신의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에베소서 3장 1~6절에 보면,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비밀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비밀은 알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주 귀한 보물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감추어둡니다. 귀한 보물이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알면, 도둑과 강도들이 몰려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가진 보물을 자랑합니다. 히스기야 왕이 그러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죽을병에 걸렸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15년 생명을 연장받았습니다.
그때 바벨론의 왕이 히스기야 왕에게 위문단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 왕은 흥분하여 자신이 가진 보물을 위문단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위문단에게 왜 보물을 보여줬을까요?
1.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은 교만한 마음입니다. 사람이 교만해지면 미련해집니다. 교만한 사람만큼 미련한 사람은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교만한 사람을 싫어합니다.
히스기야 왕은 자신이 부자라고 생각하고 자랑했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2. 바벨론의 위문단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히스기야 왕이 결정적으로 실수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 왕을 무섭게 책망했습니다.
비밀은 아무에게나 말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믿을 만한 사람에게만 비밀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선택하신 하나님의 종들에게만 비밀을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상 3장 1절에 보면,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3장 2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거기서 사는 롯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중보기도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자신을 나타내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지키는 사람에게 자신을 말씀으로 나타내십니다. 하늘의 비밀을 말씀해주십니다. 이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계명대로 사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도 사랑하시고, 예수님도 사랑하셔서 그 사람에게 예수님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는 그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모스 3장 7절에 보면,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5~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아버지를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의 소원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3~4절에 보면,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복음을 전해도 복음이 가려 있으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복음을 알지 못합니다. 이 사람은 망할 사람입니다. 지옥에 갈 사람입니다.
세상의 신, 악신, 사탄은 복음을 가립니다. 그래서 복음을 들어도 알지 못하게 합니다. 받아들이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지옥에 가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된 것, 예수님을 알게 된 것, 복음을 깨닫고 복음을 믿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기 전에는 영안이 밝았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하나님과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지냈습니다.
그런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후, 타락하여 영안이 어두워졌습니다.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이렇게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 우상을 숭배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안경을 써야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안경을 써야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5~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은 최고의 교수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본문 에베소서 3장 6절에 보면,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유대인과 함께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이 비밀을 사도 바울은 깨달았습니다.
로마서 8장 17~18절에 보면,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속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지체가 되었습니다. 한 몸이 되었습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이 연합하여 화평하게 지내게 되었을 뿐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유기체가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결합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약속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축복을 약속 받았습니다. 구원의 약속, 축복의 약속, 영생의 약속, 성령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인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을 믿으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됩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보다 놀라운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저주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모든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주에서 속량 받았습니다.
믿는 자는 아브라함과 함께 아브라함의 복을 받습니다. 그뿐 아니라 성령의 약속까지 받습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 중 중요한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십니다. 거듭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십니다.
2. 성령의 은혜로 믿음이 자라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3. 권능을 부어주셔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십니다.
아무에게나 성령의 선물을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1. 사모하고 간구하는 사람에게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14절에 보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오순절에 성령의 불을 받았습니다.
2. 철저히 회개하는 사람에게 주십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보면, 베드로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말했습니다.
3.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기 원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성령의 은혜를 부어주셔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게 하십니다.
4. 주님 때문에 고난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 순교를 각오하고 사는 사람에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강하게 붙잡아주시고 이런 사람과 함께해주십니다.
사도 바울 당시에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믿어야 할 뿐 아니라 할례를 받아야 하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 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을 때, 이것은 폭탄적인 선언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1~22)”고 선언했습니다.
이제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이방인이라도 구원 받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유대인들은 사도 바울의 말을 듣고 충격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도 바울을 따라다니며 핍박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1~5절에 보면,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 11장 12~18절에 보면,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너와 네 온 집이 구원 받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1~16절에 보면,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둘째,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위해 일하는 일꾼 된 것이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의 비밀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복음의 비밀을 전하는 일꾼이 되었으니 큰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8~9절에 보면,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 에베소서 3장 7~8절에 보면,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 보면,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분수를 알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큰 일을 보잘것없는 자신에게 맡겨주신 것은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복음 전하는 일보다 귀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복음 전하는 일은 영혼을 구원 받게 하는 것입니다. 지옥에 가서 영원히 멸망하고 고통 당해야 할 인간을 구원 받게 하는 일보다 귀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의 생애 중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거듭난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사랑 중에 가장 큰 사랑은 복음을 전해서 예수님을 믿게 하여 구원 받게 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도 예수님처럼 영혼 구원하는 일에 동참하기를 원하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귀한 일은 없습니다.
다니엘 12장 3절에 보면,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주님을 위해 살게 된 것을 감사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2절에 보면,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을 감사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영광스러운 직분은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절에 보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절에 보면,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보면,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하시는 복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힘으로 많은 일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바울과 함께해주셨습니다. 때로는 바울에게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8장 9~10절에 보면,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 22장 17~21절에 보면,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가라고 하셔서 사도 바울은 이방인에게 갔습니다.
사도행전 23장 11절에 보면,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때로는 책망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했습니다. 그것이 축복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하면, 하나님께서 다 책임지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시는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지금은 마지막 때입니다. 큰 환난의 때입니다.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지만, 고센 땅에 있었던 유대인들은 재앙과 상관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앞으로 이 세상에 이보다 어려운 일이 많이 생길 것입니다. 그때마다 자신을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참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가를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를 분명히 구별하실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난다 해도,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보면,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약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긴다고 말씀하셨으므로 이길 줄 믿습니다. 혼자 있으면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이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정신 차려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을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인가를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셋째,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 받게 된 것이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에 보면,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 에베소서 3장 13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에서 출세하고 부자가 되는 것이 영광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 당하는 것을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어 복을 받고 모든 것이 잘 되고 항상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다가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려고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복음을 위해 고난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이후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다가 순교했습니다.
빌립보서 1장 29절에 보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 24절에 보면,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8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13절에 보면,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살다가 고난 받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사람은 장차 주님께서 영광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함께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즐거워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 평생의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고 평안하기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을 위해 살기로 결심하게 하시고, 주님 때문에 고난 받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주님 오실 때까지 충성하다가 주님을 만나게 하여주옵소서. 그리하여 장차 주님과 함께 영광을 받고 주님과 함께 즐거워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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