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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1장

에베소 교회에 보낸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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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10-04 17:33 조회3,3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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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

2019년 09월 08일(주일예배)

본문 / 에베소서 1:1~2

 

에베소 교회는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 받은 사도 바울을 통해 세워진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항상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이들이 금식할 때, 성령께서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행 13: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온 교회가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바나바와 사울에게 안수하고 두 사람을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절에 보면,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가는 곳마다 제자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통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만약 사도 바울이 한국에도 다녀갔다면, 한국에도 사도 바울의 제자가 생겼을 것이요, 한국에 교회가 세워졌을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과 함께 일하는 사도 바울을 통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18장 19~21절에 보면,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잠시 들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9장 1~12절에 보면,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있는 2년 동안 에베소 교회는 성령으로 충만해졌고 놀라운 기적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20장 17~38절에 보면,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떠나기 전에 한 고별설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은 사도 바울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사도 바울과 좋은 관계를 가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을 사랑하는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은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은 낙심하여 근심 중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엡 3:13)”,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6:19~20)”고 썼습니다.

 

사도행전 28장 30~31절에 보면,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무엇을 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쳤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을 때에 에베소서를 기록했습니다. 에베소서는 감옥에서 쓴 편지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를 ‘옥중서신’이라고 합니다.

신약성경 가운데 사도 바울은 총 13권을 썼습니다. 그 중에서 에베소서는 바울서신의 꽃이요 면류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에베소서는 중요합니다.

 

에베소서 1~3장은 신앙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믿어야 한다, 즉 우리가 어떤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를 말합니다.

에베소서 4~6장은 생활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즉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합니다.

 

신앙과 생활은 다 중요합니다. 둘 중 어떤 것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만 강조하고 생활을 무시해서도 안 되고, 생활을 강조하고 신앙을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신앙과 생활은 언제나 일치해야 합니다.

신앙과 생활을 나무에 비유하면, 신앙은 뿌리와 같고, 생활은 열매와 같습니다. 뿌리가 튼튼하게 뻗어나가야 올바르게 자랄 수 있습니다. 올바른 신앙으로 튼튼하게 무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활을 통해 열매가 나타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어떻게 좋은 열매를 맺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쓴 다른 서신들은 서신을 받는 교회에 문제가 있어서 사도 바울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쓴 것입니다.

고린도전ㆍ후서를 보면, 고린도 교회에 문제가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ㆍ후에서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하나씩 다루며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바르게 가르쳤습니다.

빌립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고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쓴 편지가 빌립보서입니다.

 

그런데 에베소서는 다릅니다. 에베소 교회에 문제가 있어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를 쓴 것은 아닙니다.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모든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도들이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좋은 교회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기를 바라며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를 썼습니다.

 

에베소서를 에베소 교회에게 보내는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에베소서 1장 1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신을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하나님의 사자(使者), 하나님의 대사(大使)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나지, 왜 한국에서 태어났나’라고 하며 자신의 형편을 비관하는 사람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이 나라에서 내가 할 일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셨다’라고 확신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확신하며 사는 사람은 삶의 자세가 다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은 이 시대에 여기서 할 일이 있어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도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자신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자신이 원해서 사도가 된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가리켜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 바울을 택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자신을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사람으로 말미암아 사도가 된 것이 아니요,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9~10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도 항상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것, 하나님을 위해 살게 된 것, 교회에서 충성하게 된 것은 자신이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았다는 확신, 사명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보내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로마서 8장 31~39절에 보면,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며 살았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신앙이 흔들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절망하고 좌절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직업을 가졌든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직업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자신의 직업을 자신이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일할 수 있습니다.

 

저는 서울 토박이였기 때문에 서울 밖에 몰랐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에서 공부했습니다. 서울에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서울에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저를 부산으로 보내셨습니다.

 

오래 전의 일입니다. 부산시장을 비롯한 부산시청 직원들과 같이 식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는 서울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가 왜 부산에 왔는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저를 부산으로 보내셔서 제가 부산에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왜 부산으로 보내셨을까요? 부산을 복음화하라고 저를 부산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반드시 부산을 복음화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시장님,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지 않으려면 다른 곳으로 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시대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확신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환난을 당하고 핍박을 받는 등 온갖 어려움을 당해도, 변함없이 끝까지 충성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순교하는 순간까지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로 말미암아 유럽이 복음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럽의 나라들은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사도 바울 덕분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소개할 때,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엡 1:1)”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께 소속된 사도라는 의미입니다.

로마서 1장 1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빌립보서 1장 1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에베소라는 도시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성도(聖徒)는 거룩한 무리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가볍게 사용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거룩하게 살아야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룩하게 살지 않는데, 성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통칭하여 교인이라고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다닌다고 성도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 성도가 있습니다. 정말 거룩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둘째, 신자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셋째, 교인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지 믿지 않는지 알 수 없는 사람입니다. 단순히 교회에 나오는 사람입니다.

 

‘거룩’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ἅγιος(하기오스)입니다. 거룩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하나님께 속한 것을 말할 때에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본래 거룩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래 거룩하지 못합니다. 온전히 거룩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죄가 많고 부족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가리켜 ‘성도’라고 합니다.

 

교회 건물을 ‘성전(聖殿)’이라고 합니다. 거룩한 집이라는 의미입니다. 집이 어떻게 거룩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교회는 하나님께 속한 집이기 때문에 거룩한 집, 성전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 지은 집이 성전입니다.

안식일을 ‘성일(聖日)’이라고 합니다. 거룩한 날이라는 의미입니다. 날이 어떻게 거룩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안식일은 하나님을 위해 구별된 날이기 때문에 거룩한 날, 성일이라고 합니다.

 

거룩이라는 말 속에는 구별되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거룩한 무리 성도는 구별된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땅 위에 살지만, 천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똑같은 사람이요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구별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자녀가 아니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항상 거룩하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레위기 11장 45절에 보면,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거룩하게 사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거룩하게 사는 사람을 귀하게 쓰십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21절에 보면,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사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려면, 몸과 마음과 생각이 깨끗해야 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들은 말씀을 전하기 전에 몸도 씻어야 하지만, 마음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함께하실 수 있도록, 역사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거룩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써주시면, 우리는 귀한 일꾼으로 설 수 있습니다.

 

본문 에베소서 1장 1절에 보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실하다는 것은 믿을 만하다는 의미입니다.

 

열왕기상 15장 5절에 보면,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은 평생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다윗이 범죄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았으니 얼마나 신실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높이시고, 다윗을 통해 영광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축복하셔서 다윗의 자손까지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저 사람은 믿을 수 있어.”라는 말을 듣는 신실한 사람이 된다면, 세상 가운데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보면,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거짓이 섞여있으면 무효가 됩니다.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실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진실해야 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도 진실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 하나님께서 택하신 성도들, 진실한 성도들은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승리한다고 했으므로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본문 에베소서 1장 2절에 보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을 축복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은혜와 평강 두 가지를 축복했습니다.

 

첫째, 은혜가 있기를 축복했습니다.

은혜를 받는 것, 은혜가 항상 넘치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누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것이 은혜요, 예수님이 믿어지는 것이 은혜입니다. 행실을 보면, 우리는 모두 지옥에 가야 합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습니다.

 

죄를 회개하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회개하면 죄를 사함 받습니다. 회개하면 삽니다.

회개하는 사람에게 놀라운 축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회개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로 됩니다.

 

은혜 받은 성도는 감사하며 삽니다. 어려움을 당하는데도 항상 감사하고, 걱정거리가 있어도 감사하는 사람은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은혜 받은 사람은 거룩하게 삽니다. 창세기 6장 5~9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상이 타락하고 악해서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노아는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노아는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사는 의인이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노아는 온전한 사람이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 수 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항상 기뻐하며 살 수 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항상 기쁨이 넘칩니다. 항상 감사하며 삽니다. 은혜를 충만히 받지 않으면 이렇게 될 수 없습니다.

 

항상 은혜를 받는 것, 우리에게 은혜가 임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항상 은혜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예배 시간에 은혜가 넘치도록 기도하세요. 말씀을 전하는 사람에게도 은혜가 넘치고, 말씀을 듣는 성도들에게도 은혜가 넘치면,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변화가 일어납니다. 능력을 받습니다.

 

찬양할 때에도 은혜를 사모하며 찬양하세요. 은혜 충만한 가운데 찬양하세요. 기도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짧게 기도하든 길게 기도하든 상관없습니다.

기도할 때에 성령의 은혜가 임하면, 불덩어리가 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성경공부를 할 때, 얼마나 잘 가르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은혜로운가가 중요합니다. 성경공부가 은혜로우면, 성경공부 하던 중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말씀을 공부하다가 은혜를 받으면, 참으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사랑방 모임을 할 때에도 은혜로워야 합니다. 사랑방 모임을 통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방 리더가 중요합니다.

사랑방 리더는 분위기 조성을 잘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사랑방 리더가 은혜 받은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은혜로운 말을 해야 합니다.

사랑방 리더가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그렇게 흘러갑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사랑방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모두 은혜를 받습니다. 변화됩니다. 새로워집니다.

은혜가 있으면 삽니다. 그러나 은혜가 없으면 죽습니다.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은혜가 넘쳐야 합니다.

 

둘째, 평강이 있기를 축복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은 평강의 복을 받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짐을 벗겨주시고, 우리에게 평강의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사함을 받은 사람에게 평강을 주십니다. 사람들에게 평강이 없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죄는 평강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이사야 48장 2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악한 사람들의 마음은 지옥과 같습니다. 악한 사람은 꿈을 꿔도 악몽을 꿀 것입니다.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나아오면, 죄를 사함 받습니다. 그리고 평강의 축복을 받습니다. 죄악의 짐을 진 사람이라도 하나님께 나아오면 삽니다.

찬송가 287장 1절 가사를 보면, “예수 앞에 나오면 죄 사함 받으며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고 되어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오면, 죄를 사함 받습니다. 하나님의 품에 안겨서 편히 쉴 수 있습니다. 진정한 평강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에게 평강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경험할 것입니다.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에게 평강이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 천국의 소망을 가진 사람에게 평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천국의 소망을 가진 사람은 죽어가면서도 평강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것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마음의 평강을 누리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평강이 있기를 축복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 평생의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에베소서를 공부하는 가운데 큰 은혜를 받게 하여주셔서 말씀의 맛이 꿀 송이와 같다는 것과 우리에게 축복이 된다는 것을 체험하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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