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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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10-28 13:26 조회3,242회 댓글0건본문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19년 10월 27일(주일예배)
본문 / 에베소서 1:15~23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한 내용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며 먼저 그들의 믿음과 사랑을 듣고 감사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먼저 감사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무조건 감사하라는 의미입니다. 모든 일에 무조건 감사하라는 의미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왜 하나님의 뜻일까요?
예레미야 29장 11~13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 분이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평안을 누리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안을 주기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이사야 38장 17절에 보면,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큰 고통이 있지만, 그것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을 통해 우리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고통을 주십니다. 우리를 멸망의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고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잘 되고 형통한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통이 오면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잘 되고 형통한 것은 좋은 일이지만, 모든 것이 잘 되고 형통하면 걱정거리가 없기 때문에 해이해지기 쉽습니다. 방심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자기 쉽습니다. 기도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에는 안타까워하며 기도했는데, 모든 것이 잘 되고 형통하면, 기도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잠을 자게 됩니다.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며 죄 가운데 살게 됩니다. 이것은 축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무엘하 11장에 보면, 다윗이 전쟁에서 항상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나이가 들었습니다. 다윗은 전쟁하러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래서 다윗은 낮잠을 잤습니다. 급한 일이 있었다면, 낮에 잘 수 있었겠습니까. 밤에도 자지 못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잘 되고 나라가 부강하니 다윗은 낮잠을 잤습니다.
저녁에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보니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다윗은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했습니다.
전쟁터에 나가있는 우리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였습니다. 다윗은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동침하여 임신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것을 감추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아 장군을 전쟁터에서 죽게 했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엄청난 죄를 범했습니다.
나라가 부강하고 전쟁에서 항상 이겨서 왕이 전쟁에 나가 싸울 필요가 없게 되자 그것이 다윗으로 하여금 죄를 범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축복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려움이 있어서 깨어 기도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는 것이 오히려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축복인가를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세상의 복을 다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받고 싶어 하는 복을 다 받았습니다. 전도서 2장 3~8절에 보면, “내가 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을 지혜로 다스리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내가 어떻게 하여야 천하의 인생들이 그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떤 것이 선한 일인지를 알아볼 때까지 내 어리석음을 꼭 붙잡아 둘까 하여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나를 위하여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을 주기 위하여 못들을 팠으며 남녀 노비들을 사기도 하였고 나를 위하여 집에서 종들을 낳기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도 내가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으며 은 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솔로몬은 모든 것을 다 해봤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저절로 생겼겠습니까.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국민이 고생했겠습니까. 세금을 얼마나 많이 냈겠습니까.
솔로몬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했습니다. 이것을 간단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국민들이 얼마나 고생했겠습니까.
전도서 2장 10~11절에 보면,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전도서 2장 17절에 보면,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쾌락을 누리며 살았지만, 하루하루 살아있는 것을 괴로워했습니다. 솔로몬에게 주어진 복은 죄를 짓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가진 권세를 이용하여 온갖 나쁜 짓을 다 했습니다.
서로를 행복하게 해줄 때 참으로 행복해집니다.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1천 명의 여자와 살았습니다.
부부 사이에서는 상대방을 불행하게 하면, 자신이 불행해집니다. 솔로몬은 1천 명의 여자를 불행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불행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솔로몬의 자녀는 1천 명이 넘었을 것입니다. 한 아이에게 사랑을 쏟아 키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그 많은 자녀에게 사랑을 쏟을 수 있었겠습니까. 아마 이름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식을 알아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자녀들이 아버지 솔로몬을 얼마나 원망했겠습니까. 자녀들을 불행하게 하니 솔로몬 자신도 불행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것이 저절로 됩니까. 그래서 백성들은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솔로몬은 말씀과 기도에서 멀어졌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꿈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만약 솔로몬이 날마다 성전에 가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더라면, 성전에 가서 성경을 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만일 솔로몬이 자신을 찾아오는 외국의 왕들에게 전도하려고 생각했더라면,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했더라면, 그만큼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에게서 이런 모습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솔로몬은 결국 죄를 짓다가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전도서에 보면, 헛되다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솔로몬이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며 무익한 짓을 많이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기도 많이 하고, 겸손해지고, 거룩하게 살게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살게 된다면, 고통 당하는 것이 오히려 큰 축복입니다.
시편 119편 67절에 보면,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119편 71절에 보면,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난 당하는 것이 왜 축복이고 유익입니까? 비뚤어진 삶을 고난을 통해 고쳐 말씀대로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에베소서 1장 16절에 보면,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기도할 때마다 반드시 감사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사도 바울을 본받아야 합니다.
기도할 때마다 감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도할 때마다 감사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면,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든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축복이 되게 하십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중ㆍ고등학교 6년, 대학교 4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저를 달달 볶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학교 졸업식 후에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내가 너를 그렇게 묶어놓지 않았다면, 네가 나의 종이 될 것 같으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하나님께서 저를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하시려고 고난 당하게 하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감사했습니다.
중ㆍ고등학교 6년, 대학교 4년 이때 실수를 가장 많이 하고, 잘못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돈도 없게 하시고 시간도 없게 하셔서 저를 묶어버리셨습니다.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묶어놓으신 것이 제게 축복이었습니다. 평생의 복이 되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저를 묶어두지 않으셨다면, 별 짓을 다 했을 것입니다.
지금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까.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통해 영광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여러분을 귀하게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날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고난이 평생의 축복이 될 것입니다.
기도할 때마다 감사하면, 큰 은혜를 받습니다. 큰 은혜를 받으면, 믿음이 좋아집니다. 믿음이 커지면, 기적을 체험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으로”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믿음이 커지면, 놀라운 체험을 합니다. 100% 불가능한 것이 해결되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불가능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100% 불가능하고 소망이 없다 해도 기도하세요.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며 기도하세요.
말기 암 진단을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기도원에 갔습니다. 기도굴에 들어가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살아오면서 감사한 일을 노트에 쓰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한 일을 생각하며 감사하다 보니 마음에 기쁨이 넘쳤습니다.
감사한 일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감사하는 믿음만큼 큰 믿음은 없습니다. 큰 믿음은 큰 기적을 일으킵니다.
우리가 항상 감사하며 기도하면, 영육이 복을 받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것 자체가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감사하는 말을 해보세요. 감사를 표현해보세요. 더 큰 복을 받습니다. 감사를 행동으로 표현해보세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본문 에베소서 1장 15절에 보면,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믿음을 보고 감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이 많이 있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믿게 된 것, 믿음을 가지게 된 것, 믿음으로 구원 받은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의 복을 다 받았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지옥에 가면, 세상에서 잠시 호강했는지 모르지만, 죽는 그 날부터 지옥 불 가운데서 영원히 고통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보다 더 큰 저주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복 중의 최고의 복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훌륭한 성도들이 많이 모이는 것, 물질의 염려 없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믿음이 없다면, 그 교회는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른 것을 다 갖추었다 해도,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교회는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어떤 믿음을 가진 교회인가가 중요합니다. 성도들의 믿음이 어떠한가가 중요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1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을 가리켜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믿음은 보배 중의 보배입니다.
우리를 구원 받게 하는 믿음은 진리를 믿는 믿음입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에 보면,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진리를 믿어 구원 받습니다.
성경의 중심은 예수님이십니다. 구약성경은 장차 오실 예수님에 대해 기록되어있습니다. 신약성경은 오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신 것에 대해 기록되어있습니다. 신구약성경의 중심은 예수님이십니다.
진리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만이 그리스도시요 메시아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를 천국에 가게 할 이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16절에 보면,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이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고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진리를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는 것은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분이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다 믿습니다. 성경 말씀이 다 믿어지는 것이 기적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의 은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이 다 믿어지고 이해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1장 3~7절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성도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사람이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 사함 받은 사람이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사람 중에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세계 4대 성자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학박사 중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참 인간이요 참 하나님이신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왜 믿지 않을까요? 그들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안에는 성령이 없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의 안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계십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안에는 성령이 없습니다. 성령이 없기 때문에 성령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 보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안에 성령이 없는 사람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일,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믿지 않습니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얼마나 좋은지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은 이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안에는 성령이 계시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을 믿지 못합니다. 자신의 머리로 이해되는 것만 믿습니다.
그들은 천지창조를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천지창조를 꾸며 쓴 신화라고 생각합니다. 홍해가 갈라진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머리로 믿어지지 않는 것은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성령께서 계시는 사람은 성경 말씀을 모두 믿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실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성경 말씀이 그대로 믿어지느냐, 믿어지지 않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믿어지지 않는 사람은 구원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믿어지는 사람은 진리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첫째, 하나님을 똑바로 아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심을 알고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항상 기도합니다. 모든 문제를 기도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므로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것과 하나님께서는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 7:7~8)”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주신 하나님께서 아까워서 주지 않으실 것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문제를 기도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셋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를 알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겨자씨 만한 믿음이라도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못할 것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17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믿음으로 하나님께 구하세요. 기도하세요. 기도하다 보면 은혜를 받습니다. 믿음이 자랍니다.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기도한 것이 축복이 되었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믿음이 작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를 항상 사모해야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은혜를 받은 만큼 믿음이 커집니다. 우리의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우리에게 얼마나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거룩하게 살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까를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 때문에 고난 당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형제를 사랑합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에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통해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요, 구원 받은 사람이요,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4~15절에 보면,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남을 미워할 자유가 없습니다. 남을 미워하는 마음을 갖는 순간, 살인자가 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 받지 못합니다. 그 사람에게는 영생이 없습니다.
본문에 보면,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은 모든 성도를 사랑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도 사랑했습니다.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도 사랑했습니다. 모든 성도를 사랑했습니다.
이렇게 사랑하면, 모든 사람과 화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천국과 같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에 대한 소식을 듣고 늘 감사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처럼 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평생의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이 말씀을 붙잡고 그대로 믿고 그대로 살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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