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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곧 죄 사함 받은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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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10-04 17:44 조회3,3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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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곧 죄 사함 받은 복

 

구속 곧 죄 사함 받은 복

2019년 09월 22일(주일예배)

본문 / 에베소서 1:7~12

 

크게 두 가지 복이 있습니다. 세상의 복,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은 세상의 복보다 귀한 복입니다.

세상의 복을 아무리 많이 받았다 해도,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지 못하면, 이것은 정말 불행한 일이요, 저주입니다. 세상의 복을 다 받았다 할지라도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지 못하면, 죽으면 바로 지옥에 가서 영원히 멸망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매우 불행한 사람입니다.

 

저주 중에 가장 큰 저주는 지옥에 가서 멸망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지 못한 사람은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 매우 귀한 복임을 알고 자신이 어떻게 해서 이런 복을 받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며 늘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은 첫째,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해주신 복입니다. 둘째, 모든 죄를 사함 받은 복입니다.

우리는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큰 죄, 작은 죄, 말하기도 부끄럽고 생각하기도 부끄러운 죄 등 모든 죄를 사함 받았습니다. 이것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

 

본문 에베소서 1장 7절에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죗값은 사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고 말씀하셨는데도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심판을 받아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기 전에는 죽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이후 죽음이 생겼습니다.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멸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죽게 되었습니다. 죽은 후에는 지옥 불에 들어가 영원히 고통 당하게 되었습니다.

죗값은 이렇게 무겁습니다. 죄를 짓는 것은 자유이지만, 죄를 범한 결과로 받는 하나님의 심판은 크고 무섭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물 마시듯 밥 먹듯 죄를 짓습니다. 모르고도 죄를 범하지만, 알면서도 죄를 범합니다.

믿음이 약해서 죄를 범할 때도 있고, ‘한 번은 괜찮겠지’,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하고 죄를 범할 때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데’라고 생각하고 죄를 범할 때도 있습니다. 이것은 마귀에게 속는 것입니다.

 

어떤 죄를 범하든 죗값은 사망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합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전도서 7장 20절에 보면,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선을 행하고 죄를 범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전혀 없습니다.

 

아무리 바르게 산다 해도,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야고보서 2장 10~11절에 보면,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율법을 모두 지키다가 하나를 범했습니다. 이것은 모두 범한 것과 같습니다. 한 가지의 죄를 짓든 열 가지의 죄를 짓든 죗값을 받아야 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죄를 범하면서도 그것이 죄인 줄 모르고 계속 죄를 범하며 자신은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은 회개할 수 없습니다. 죄를 지으면서도 죄인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자신은 죄를 지은 적 없다고 생각합니다. 죄를 모르는데, 어떻게 회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은혜를 받으면 깨닫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깨닫습니다. 자신에게 죄가 많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회개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이 회개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 깊이 깨닫습니다. 더 밝게 깨닫습니다. 구체적으로 깨닫습니다. 그래서 은혜 받은 사람은 자신의 죄가 많다는 것을 깨닫고 가슴을 치고 통곡하며 회개합니다.

 

사도 바울은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세상에서 자기보다 더한 죄인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은혜 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자신의 죄를 깨닫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겸손해집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신보다 더 큰 죄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참으로 은혜 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 목사님이 목회를 아주 잘 하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성도들에게 은혜를 끼치지 못했습니다. 성도들이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다.

은혜가 넘쳐야 교회가 부흥합니다. 은혜가 넘쳐야 사랑이 많아집니다. 은혜가 넘쳐야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행복한 교회가 됩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 목사님이 목회를 잘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에게 은혜를 끼치지 못했습니다. 성령께서 은혜를 주셔야 성도들에게 은혜를 끼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습니다.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은혜를 끼치지 못하니 교회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힘들게 목회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가장 큰 이유는 그 목사님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면 될 텐데,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성도들이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다.

목회자가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 교회가 부흥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성도들이 은혜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상처를 받았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그 목사님은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한 것으로 인해 평생 고생했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어렸을 때에 동생들을 무진장 때렸다고 합니다. 동생들을 얼마나 때렸는지, 동생들의 마음에 한이 맺혔습니다. 얼굴이 행복해보이지 않았습니다.

동생들을 때리고 괴롭혔음에도 자신은 형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동생을 괴로움 속에 자라게 하여 동생의 마음에는 형에 대한 한이 맺혀있는데, 그것이 죄인 줄 몰랐습니다. 그것이 죄인 줄 모르고 회개하지 않은 상태로 목회를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회개할 수 없습니다. 죄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마태복음 5장 23~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을 괴롭히고 많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원망들을 일이 많은데,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물을 드린다 한들 하나님께서 받으시겠습니까.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형제와 화목한 후에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원하십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가슴을 치고 통곡하며 회개한 경험이 없는 사람은 큰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신앙생활하면서 그런 시간이 한 번도 없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왜 주님을 만나지 못합니까. 왜 성령의 불을 받지 못합니까. 놀라운 은혜 가운데 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철저히 회개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적당히 회개할 뿐입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요한복음 16장 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죄에 대해 책망하십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목소리 같은 소리가 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성령은 우리에게 확실하게 말씀하십니다.

사도들은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순종했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고 우리의 죄를 책망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소리만 들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귀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모든 죄를 깨닫고 통회 자복함으로 죄 사함을 받을 뿐 아니라 성령의 선물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왜 오셨는가를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모른다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 알아주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를 안다. 네 마음을 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씀하시며 예수님께서 알아주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말씀’으로 표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예수님도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도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마태복음 1장 23절에 보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육신이 있어야 우리를 위해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모두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사람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습니다. 죄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죄가 있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야 하는데, 죄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모두 대속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실 그리스도는 중보자이십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이십니다.

중보자는 두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첫째, 죄가 없어야 합니다. 죄가 있는 인간은 중보자가 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죄로 인해 죽을 인간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둘째, 신성과 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이기 때문에 신성과 인성을 다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중보자가 되려면, 죄가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결혼하지 않은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이 세상에 탄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오셨습니까?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신 동안 천국 복음을 열심히 전하시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구세주가 되십니다. 예수님만이 메시아가 되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 받습니다. 다른 사람을 믿으면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모두 자기의 죄로 인해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보면,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받은 축복이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현대인들은 ‘죄’라는 말을 듣기도 싫어하고 생각하기도 싫어합니다. 그래서 요즘 교회에서는 죄에 대해 설교하지 않습니다. 죄에 대한 설교를 들을 기회가 없습니다. 죄에 대한 설교는 인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 목회자들은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이야기만 합니다. 사람들의 귀에 솔깃한 이야기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재미있게 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귀한 축복입니다.

 

시편 32편 1~2절에 보면,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4장 7~8절에 보면,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에게 죄가 많은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모두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죄함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범한 죄가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모두 도말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모두 가려주셨습니다. 죄가 없는 것처럼 해주셨습니다. 이런 복을 받은 사람은 얼마나 복된 사람입니까.

 

예수님으로 인해 죄 사함을 받은 것이 축복이 되는 이유는

1. 사람의 방법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예수님께서 해주셨다면, 물론 감사한 일이지만, 크게 감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전혀 할 수 없어 절망적인 것을 대신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매우 귀하고 큰 축복입니다.

 

찬송가 544장 울어도 못하네

1. 울어도 못하네 눈물 많이 흘려도 겁을 없게 못하고 죄를 씻지 못하니 울어도 못하네

2. 힘써도 못하네 말과 뜻과 행실이 깨끗하고 착해도 다시 나게 못하니 힘써도 못하네 .

3. 참아도 못하네 할 수 없는 죄인이 흉한 죄에 빠져서 어찌 아니 죽을까 참아도 못하네

4. 믿으면 되겠네 주 예수만 믿어서 그 은혜를 힘입고 오직 주께 나가면 영원 삶을 얻네

[후렴]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 고난 당했네 나를 구원 하실 이 예수밖에 없네

 

우리는 울어도 되지 않고, 힘써도 되지 않고, 참아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평생 도를 닦아도 죄를 사함 받을 수 없습니다. 절에 있는 불상 앞에서 1천 번, 1만 번 절해도 죄를 사함 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방법으로는 죄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2. 죗값을 치러야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죗값은 사망입니다(롬 6:23).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실 때,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열 번째 재앙은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 왕위에 앉아있는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위에 있는 몸종의 장자와 모든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모두 죽는 재앙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서운 심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에는 그 재앙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집집마다 들어가 장자를 죽이는 천사가 문설주에 묻은 피를 보고 그 집에 들어가지 않아 그 집에는 재앙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이 날을 기념하는 날이 유월절입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속죄제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유월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잡은 어린 양은 장차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모두 대속하실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보면,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모두 사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양과 같은 제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람의 방법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서만 우리의 죄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보면,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늘 보좌를 버리고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피를 쏟으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모두 대속해주셨습니다.

 

히브리서 9장 12~14절에 보면,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흘리신 속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모두 죄를 해결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죄 사함을 받은 것을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3. 죄 사함 받은 것은 죽음에서 건짐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범한 사람은 심판을 받아 죽습니다. 육신의 죽음보다 무서운 것은 영원한 죽음입니다.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 사함 받은 것은 죽음에서 건짐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죄 사함 받은 것을 감기 몸살을 앓다가 나은 정도로 생각합니다. 죗값은 사망입니다.

 

로마서 1장 32절에 보면,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죗값은 사망입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형 당해야 마땅한 인간입니다. 그런데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사형 당해야 마땅한 죄인이 모든 죄를 사함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에서 건짐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보통 축복입니까. 이것은 매우 크고 귀한 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죄 사함을 받은 것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둘째,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밀은 공개되지 않은 것입니다. 공개된 것은 비밀이 아닙니다. 게시판에 공개된 것을 알게 된 것을 알게 해주셨다면, 물론 감사한 일이지만, 크게 감사할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공개되지 않은 비밀을 우리에게 알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귀한 축복입니까.

 

디모데전서 3장 9절에 보면,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신앙은 믿음의 비밀입니다. 아무나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신앙생활을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학교에 아주 유명한 철학교수가 한 분 계셨습니다. 부산에 있는 기독 대학생들이 그분을 초청해서 그분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 교수는 대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아주 부럽습니다. 젊은 시절에 기독교 신앙을 가진 것이 부럽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교수는 믿어지지 않아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미국 시카고에 있는 한인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며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수의 아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 교수의 아들은 그 교회의 장로였습니다.

서울대학교의 교수인 아버지는 믿어지지 않아 믿지 못했지만, 다행히도 그 교수의 아들은 교회의 장로였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믿음의 비밀을 알기 전에는 신앙생활을 바르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비밀은 누군가가 알게 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스스로는 알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3~18절에 보면,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 에베소서 1장 7~9절에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령한 지혜, 하나님이 누구신가 알게 하는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주셔서 믿음의 비밀을 알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육신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 예수님이 누구신가 이것은 비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누구신가, 예수님이 누구신가 모르기 때문에 믿지 않고 멸망합니다. 얼마나 불행합니까.

 

누가 예수님을 믿습니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아는 사람은 예수님을 알기 때문에 예수님을 신뢰합니다. 예수님을 의지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이 누구신가, 예수님이 누구신가 똑바로 압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 예수님이 누구신가 똑바로 아는 사람은 하나님, 예수님을 신뢰합니다. 하나님,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내용입니다.

 

믿음만큼 하나님을 압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압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체험적으로 압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누구신가, 예수님이 누구신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해주셨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셋째,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시편 33편 12절에 보면,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 에베소서 1장 11절에 보면,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5절에 보면,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살 백성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천국 시민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천국이 나의 집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 사함 받게 해주시고 천국에 들어가 살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은 생각하기만 해도 기쁜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

 

로마서 5장 6~11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경건하게 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저주와 심판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어주셨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우리는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까지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무엇이 아까워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고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복 받을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릇이 없는데 어디에 담겠습니까. 그러므로 복 받을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깨달아 해결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은 첫째,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저주는 끝났습니다. 둘째,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셋째,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아야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이 얼마나 큰가를 기억하고,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요. 우리가 이 말씀을 붙잡고 살아서 평생 흔들리지 않게 하여 주옵시고,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게 하여 주옵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복된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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