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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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12-26 14:22 조회3,132회 댓글0건본문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2019년 12월 08일(주일예배)
본문 / 에베소서 1:17~19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을 만드신 후에 아담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을 모두 아담에게 주시며 아담에게 “정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모두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준비해주셨습니다.
에덴동산은 낙원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를 거기서 살게 하셨습니다.
아담이 범죄하기 이전까지는 하나님은 아담과 관계가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아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6~17)”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만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피조물이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아담과 하와가 따먹음으로 인해 사람은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첫째, 땅에서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나와 사람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생해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신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하나님의 일만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돈 때문에 걱정할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여자에게 임신하는 고통이 더해졌습니다.
셋째, 하나님과의 관계가 나빠져서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노아 시대에는 노아의 식구 여덟 명 외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사신 우상을 섬겼습니다. 죄를 범했습니다. 그리고 홍수 심판을 받아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노아의 후손들도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타락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집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이것은 불행한 일이요 저주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깁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모르고, 하나님이 계신 것도 모르는 사람은 우상을 숭배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만나야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야 합니다.
성경 인물 중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많이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모세가 하나님의 계시를 많이 받았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십계명 돌판을 받았지만, 모세는 시내 산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는 가운데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모세오경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계시를 많이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셋째 하늘에 이끌려 올라갔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을 보면, 사도 바울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한 비밀을 많이 알았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2장 1~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아브라함을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큰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12장 4절에 보면,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모두 이단으로 생각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스데반을 돌로 쳐죽이는 일에도 앞장섰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다메섹에 많다는 것을 알고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중에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계시를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받았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계시를 직접 받은 후,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사도 바울은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7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을 보면, 사도 바울이 받은 계시가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한 비밀을 많이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7~9)”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을 잘 아는 사람은 예수님을 신뢰합니다. 예수님을 잘 아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계시를 받아 예수님을 알게 된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교회의 성도들도 예수님을 알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에베소서 1장 17~18절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 눈이 있습니다.
첫째, 물체를 보는 육안이 있습니다.
눈을 가리고 살아보세요.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육안이 열린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둘째, 지식의 눈이 있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식이 곧 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배움을 통해 지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잘 배워야 합니다. 올바르게 배워야 올바른 지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엉터리로 배우면 엉터리 지식을 가집니다. 잘 배워야 좋은 지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도 부모님들이 논 팔고 집을 팔아서 자식을 공부시키셨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무식해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식들을 공부시키느라 부모님들이 고생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부모가 뒷바라지할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중학생이었을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중학교 3학년 학생을 가르치며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학비를 마련하여 공부했습니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에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배워야 지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이 있어야 우리나라가 발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식을 공부시키려고 애썼습니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중세 시대만 해도 전염병이 퍼지면 수십만 명이 죽었습니다. 일종의 재앙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병이 어떻게 전염되는지, 그 병을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지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책 없이 죽어갔습니다.
지식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만약 지식이 있었다면, 전염병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전염병으로 인해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식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6ㆍ25한국전쟁 때의 일입니다. 아이들이 불발탄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그러다가 많은 아이들이 죽었습니다. 무식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지식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20여 년 전만 해도 세계의 반 이상이 공산화되었고, 사회주의국가가 되었습니다. 공산화되고 사회주의국가가 되면 지상 낙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두 같이 일하고 같이 나누어먹으며 잘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70년 만에 완전히 거지가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독재자들이 국민의 사유재산을 다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노예로 만들어 강제 노동을 시켰습니다. 이것은 큰 문제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시키는 대로 단순노동만 하게 되었습니다. 일을 많이 하든 적게 하든 똑같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누가 열심히 일하려고 하겠습니까. 자신이 열심히 일한 수익은 없고, 그저 시키는 대로 일하는데, 누가 일하려고 하겠습니까. 의욕을 상실했습니다.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국과 캐나다는 사회주의국가입니다. 사회주의가 왜 망하는지 아십니까? 사회주의국가에서는 노인들이 택시를 타면 택시비가 나라에서 나옵니다. 병원에서도 무료로 진료를 받습니다.
그런데 그 돈이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국민에게 세금을 거둬야 합니다. 세금을 많이 내야 하니 국민들은 고생하지만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일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사회주의를 외치는 정치인이 왜 지도자가 됩니까?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자신이 일하는 만큼 자신이 살 수 있고 남도 도와줄 수 있습니다.
사람의 능력은 똑같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능력이 다릅니다. 능력이 100인 사람, 능력이 50인 사람, 능력이 20인 사람 등 사람의 능력은 제각각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자유를 주지 않으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 동포에게 자유가 주어진다면, 북한도 금방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 동포에게는 자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굶어 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만큼 자유가 중요합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국가에서는 반대하는 사람을 다 죽입니다. 그러니 그 나라는 지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사람을 불행하게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따라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체사상과 복음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주체사상과 교회는 공존할 수 없습니다. 둘 중 하나는 죽습니다.
셋째, 마음의 눈이 있습니다.
신령한 눈, 영안이라고도 합니다. 마음의 눈을 가진 사람은 육안으로는 하나님을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고 믿습니다.
마음의 눈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마음의 눈은
1. 주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 마음의 눈이 밝아집니다.
요한복음 4장 25~26절에 보면,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과 이야기하는 가운데 예수님이 선지자요, 메시아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30~31절에 보면,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예수님과 이야기하면서도 처음에는 예수님이신 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눈이 밝아진 후에는 자기들과 이야기하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1~18절에 보면,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덤 밖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야”라고 부르셨을 때, 마리아는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자기를 부르신 이가 예수님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2. 성령을 통해 마음의 눈이 밝아집니다.
사도행전 7장 55~56절에 보면,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마음의 눈이 열립니다.
열왕기하 6장 17~18절에 보면,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 9장 17~19절에 보면,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3. 회개함으로 마음의 눈이 밝아집니다.
죄는 마음의 눈을 어둡게 합니다. 타락한 사람은 영적 맹인입니다. 마음의 눈을 밝게 하려면,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의 눈물은 죄를 씻어 깨끗하게 합니다. 회개의 눈물은 죄로 더러워진 마음을 깨끗하게 합니다. 그래서 영안이 밝아집니다.
회개의 눈물은 마음을 성결하게 합니다. 마음이 성결하게 되어 마음의 눈이 밝아집니다. 마태복음 5장 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래서 육안으로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눈이 밝아지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마음의 눈이 밝아져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눈이 밝아지려면,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2~3)”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은 소망을 가집니다. 희망은 자신이 원하는 것입니다. 희망은 이루어질 수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망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소망한 대로 100%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의 말씀이므로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것을 믿는 사람은 소망을 가집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이 소망을 가집니다. 소망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직접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될 줄 믿고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환난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든 단을 쌓았습니다. 예배의 제단, 감사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은 장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말씀하시면 아브라함은 언제든지 떠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항상 순종할 준비를 하고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언제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살았습니다. 이것은 경건 생활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신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를 사함받았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천국 시민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천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 죽든 천국에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을 바라보고 소망 중에 인내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천국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이 세상을 빨리 떠나 하나님께 가기 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세상에 있는 성도들과 교회들을 위해 자신이 남아있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천국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옥중에서도 찬송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항상 기뻐했습니다. 박해를 당해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북한 지하 교회에 성도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숨어서 예배드리고, 숨어서 기도합니다. 그들이 고통 속에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을 믿고 소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가나안 땅에 가까이 왔을 때, 열두 명의 정탐꾼을 먼저 보내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했습니다. 열두 명의 정탐꾼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민 13:30)”,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민 14:9)”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열 명의 정탐꾼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만 보았습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성과 장대한 백성들만 보았습니다. 전쟁하면 패할 것 같았습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보면,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맹세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말한 대로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 없는 말, 어리석은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말을 듣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말을 들으시고 우리가 말한 대로 되게 하시겠다고 맹세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언제나 믿음의 말을 하세요. 어려움이 있습니까? 로마서 8장 28절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말씀대로 될 것을 믿어야 합니다.
IMF 금융위기 때에 우리 교회에서는 성전부지를 매입하고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그때 우리 교회의 성도들은 오히려 큰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는 IMF 금융위기 때에 복 받은 교회입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걱정하지 마세요.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하나님께서 부르신 백성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언제 죽어도 천국에 간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삽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의 성도들도 모두 마음의 눈이 밝아져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가 알고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7~19)”고 말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희의 영안을 열어주옵소서.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게 하여주옵소서. 세상을 바라보며 낙심하지 말게 하옵소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므로 우리는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믿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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