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주신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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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4-08 18:45 조회1,316회 댓글0건본문
주님이 주신 자유
주님이 주신 자유
2007년 06월 08일(금요철야)
본문 / 갈라디아서 5:13
에베소서 2장 1~5절에 보면,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구원 받았습니다.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얻었다고 했는데, 이것은 특별 은혜입니다.
은혜는 일반은혜와 특별은혜가 있습니다. 일반은혜는 믿지 않아도 베풀어지는 은혜입니다. 공중의 참새, 들의 풀 한 포기에게까지도 베풀어지는 은혜로, 인간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특별한 은혜는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은혜입니다. 첫째, 창세 전에 택함 받은 것, 둘째,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 사함을 받은 것, 셋째, 복음을 듣고 구원 받았고,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아 천국백성이 된 것, 이것이 모두 특별한 은혜입니다.
일반은혜와 특별은혜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10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자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 자유는 죄로부터 자유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죄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지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가 해결되었습니다.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죄가 다 해결되었으므로 죄로 인한 심판으로부터도 자유롭습니다. 그리고 저주로부터도 자유롭습니다. 마귀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우리를 손댈 수 없습니다.
본문 갈라디아서 5장 13절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에서 중요한 것을 두 가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모든 죄를 다 사함 받고 저주를 속량 받았습니다. 영생을 받았습니다. 심판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보면,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을 따르면, 이런 죄를 범합니다. 이런 죄를 범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로 우리의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7~8절에 보면,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자유를 육체의 욕심대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눈물로 호소할 수밖에 없을 만큼 타락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8~21절에 보면,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육체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면, 일시적으로는 만족할 뿐, 그 만족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전도서 2장 4~11절에 보면,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나를 위하여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을 주기 위하여 못들을 팠으며 남녀 노비들을 사기도 하였고 나를 위하여 집에서 종들을 낳기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도 내가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으며 은 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더 창성하니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도다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솔로몬은 ‘어떻게 하면 낙을 누리며 살까’라고 생각하여 여러 짓을 다 해보았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이렇습니다. 전도서 2장 17절에 보면,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신에게 다 괴로움이고,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사는 것을 미워했습니다.
전도서 2장 22~26절에 보면,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아,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 해보아도 하나도 즐거움이 되지 않고 괴로운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
왜 이렇게 말했습니까? 머리로는 알지만 문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는 알아도 실제로는 반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삶의 목적을 잘못 알았습니다. 하나님 외의 다른 것에 삶의 목적을 두고 살았습니다. 쾌락에 삶의 목적을 두면 안 됩니다. 내가 무엇을 해서 즐겁게 살까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솔로몬과 같이 육체의 쾌락을 위해 살다보면, 마귀의 종이 됩니다. 하나님을 즐겁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괴로워집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쾌락에 삶의 목적을 두고 살면, 지옥과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육체의 욕망에 삶의 목적을 두고 삽니다. 이것은 끝이 오는데, 그 끝은 늙고 병들 때입니다.
사람이 늙고 병들면 모든 것이 맛이 없고 만사가 귀찮습니다. 마음은 지옥과 같아서 빨리 죽고 싶어 합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보며 얼마나 후회했겠습니까!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주신 어마어마한 복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고 생각하지 않고, 썩어질 육체를 위해 살려고 했습니다. 나중에는 1천 명이나 되는 후궁을 데리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요구대로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솔로몬 자신도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리하여 마음을 돌려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솔로몬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고 자신만을 위해 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귀의 종 노릇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이 괴롭습니다.
솔로몬이 이렇게 살았으니 하나님 앞에서 면목이 없었을 것입니다. 솔로몬의 말년은 괴롭고 귀찮았을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7~9절에 보면,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전에 사도 바울은 자신을 위해 유익한 것을 다 가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진 후에는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얼마나 좋은지, 이전에 자신을 위해 유익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살면,
1. 마태복음 6장 33절의 복을 누립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이 정말 많습니다. 그러나 우선순위의 첫째를 하나님, 하나님의 나라에 두어야 합니다.
자신을 위한 생각을 다 버리고, 먼저 하나님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것을 지키시고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요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되지 않으면, 예수님을 믿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성벽을 쌓고 강도와 도둑을 막아도 마음의 평안은 생기지 않습니다.
진정한 평안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근심할 것, 두려워할 것이 많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있으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3.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이 우리 안에 생깁니다. 이것은 세상의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쓴 서신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기쁨은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예수님이 좋아서 살아도 죽어도 예수님을 위해 살겠다는 믿음으로 살 때 이런 축복을 받습니다.
둘째. 자유로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종 노릇 해야 합니다. 이런 곳에 천국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대접 받으려고 하지 않고, 서로 잘 해주고, 받들어 섬기는 가정과 교회는 천국이 될 것입니다.
사랑은 성령의 9가지 열매 중 첫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형제를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라면, 열매가 나타나는데, 반드시 하나님의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귀에게 속한 사람은 의를 행하지 않습니다. 불의를 행합니다.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불의를 행하지 않습니다. 형제를 사랑합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구원받은 자의 증거입니다.
요한일서 3장 14~15절에 보면,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형제를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사람입니다. 영생을 얻었습니다. 구원 얻은 증거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7~8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처음에는 어머니의 배에서 태어났고, 두 번째로는 하나님으로부터 났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요한일서 4장 12절에 보면,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면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비결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21~24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나 스스로 나를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말과 혀로만 형식적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함으로 진실하게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부끄러울 것이 없어야 합니다.
사랑을 행하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다 받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사랑의 하나님께서 보시고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우리가 지키고 행할 때, 말로만 사랑하지 말고 실제적으로 행해야 합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산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감동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사랑을 실천하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하지 않아도, 할 사람이 많은데.….’라고 생각하면, 그런 감동이 오지 않습니다. 축복받을 기회를 저버리고 성령을 거스르면 그 후로는 무뎌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면, 저버리지 말고 실천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사랑을 실천하면,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십니다.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지, 몇 배나 채워주십니다. 그러나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머릿속에만 남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천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살아보면 설교를 통해 은혜 받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확신과 기쁨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느낍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 보면,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는 것, 생각하는 것에 능히 넘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체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느끼고 체험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 축복을 받으려면,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구원받았으니까 죄 지어도 되고, 저주받을 짓을 해도 된다고 어리석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로지 사랑으로 종 노릇 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 사랑을 온전히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할 때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 중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셋째, 가족과 이웃 중에 가족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다른 곳에 가서 사랑을 베푼다고 하면서 내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내 가족은 내가 책임져야 하므로 내 가족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영과 육 중에 영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먼저 영이 잘 되어야 합니다. 자식에게 공부를 많이 시키고 세상에서 훌륭한 성공자를 만드는 것보다 그에게 믿음의 유산을 주고 하나님을 잘 섬기게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식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주일에도 공부하라고 학원에 보내는데, 그것은 자식의 영을 죽이는 것입니다. 사랑의 순서가 잘못되었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점점 더 커져 마지막에는 원수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핍박하는 자를 사랑하는 단계에 이르면, 주님의 인격과 형상을 닮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 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려운 것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저는 아주 미운 짓 하는 사람을 자꾸 봅니다. 미운 짓 하는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미운 마음이 드는지, 제가 영적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 속상합니다.
그러니까 부정적인 생각을 합니다. 그 사람이 하는 짓이 미워서 자꾸 진노를 생각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은 제 마음에는 그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기는 방법은
첫째, 사도 바울처럼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하면, 그 사람에 대해 나쁜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둘째,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축복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축복기도를 할 때에는 내 마음에 미움이 없어질 때까지 해야 합니다. 미운 마음이 생기면, 축복하며 기도하시고 중보기도하십시오. 그래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실로 사랑하고 축복하는 마음이 생기면, 사랑의 영이신 성령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고,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말씀을 기억하고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모든 죄로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심판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저주로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마귀로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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