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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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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02 16:21 조회3,5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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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007년 08월 12일(주일예배)

본문 / 갈라디아서 5:1

 

광복절인 1945년 8월 15일은 우리나라가 1910년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매우 뜻 깊은 날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 날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국민들이 손에 태극기를 들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부르며 해방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미국에 의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이 투하되어 일본 천황이 항복했고, 그 결과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우리나라가 독립했습니다. 드디어 자유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해방은 우리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헨리는 “나에게 자유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달라”라고 외쳤습니다.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마치 자유는 공기와 같아서 있을 때에는 잘 모르나, 자유가 없으면 마치 숨이 막힐 듯이 죽을 것처럼 살아가기 매우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간에도 공산독재자들에 의해 자유를 잃어버리고 노예처럼 살면서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가고 있는 북한 동포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오늘날 남한처럼 북한 동포들에게도 자유를 준다면, 앉아서 굶어 죽을 사람들이 아닙니다. 6ㆍ25때 남한으로 피난 온 분들을 보면 얼마나 부지런한지, 그분들 중에 자수성가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북에 있는 분들도 얼마든지 살 길을 찾아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유를 주지 않아서 마음대로 농사도 짓지 못하고 장사도 못하며 자신의 적성에 따라 일하지 못하고, 오로지 공산당이 시키는 대로 노예처럼 살다가 굶어죽어가는 그들을 볼 때에 같은 동포로서 세상에 이보다 더 안타깝고 비통한 일이 또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실 때 생명과 함께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에서 나는 모든 실과를 먹도록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6~17)”고 말씀하셨습니다.

더불어 우리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지도 주셨습니다. 인간들이 그 열매를 따먹을 수도 있고 따먹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지구상의 모든 독재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까지도 빼앗고 인간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분단국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남한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게 된 것에 대해 매순간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자유를 누리며 산다 해도 예수님께서 주시는 자유가 없는 사람은 참 자유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자유가 있어야 참 자유인입니다.

본문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는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요한복음 8장 34~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는 우리에게 고통과 저주를 줄 뿐만 아니라 불행과 지옥의 멸망을 가져다줍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죄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고 저주를 받아 불행하게 살다가 결국 지옥의 멸망을 당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려고 십자가의 피로 엄청난 값을 지불해주신 참으로 소중한 자유입니다.

 

참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는 것으로, 죄로부터 자유함이 주어져야만 우리가 참 자유를 누립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참 자유인이 되지 못합니다.

참 자유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십자가 앞으로 나오는 사람들만 모든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고 모든 저주로부터 자유함을 얻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께서 주시는 참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으나, 여전히 종의 멍에를 벗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1~24절에 보면,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죄의 종노릇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토록 소중한 자유를 우리에게서 빼앗아가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죄가 우리에게서 소중한 자유를 빼앗아갑니다. 그러므로 죄의 문제는 매우 심각한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 중에도 돈에 대한 욕심에 매여 돈의 종노릇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6~10절에 보면,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에 겪었던 일입니다. 친구의 어머니가 주일 아침에 곗돈을 받으러 갔다가 그 사람들과 심하게 언쟁이 붙어 그 자리에서 졸도하여 세상을 떠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그 문제를 내려놓고 기도했더라면 이런 불행한 일은 없었을 텐데, 성도라면 주일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이므로 아무리 급한 돈일지라도 하루만 더 참았어도 될 텐데, 하필이면 왜 그리 성급하게 가셨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 저녁마다 돈 세는 재미로 살던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이런 한심한 모습을 본 부인은 몹시 화가 나서 “내가 원하는 것은 가정의 행복이니 돈에 중독된 껍데기가 아니다.”라고 폭탄선언을 하고 친정으로 가버렸습니다.

이에 충격을 받은 변호사는 삶을 뒤돌아보며 아내의 말대로 껍데기뿐인 자신의 인생을 점검한 후 부인을 찾아가 용서를 빌고, 다시는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공유의 청지기가 될 것을 선언했습니다.

이들 부부는 아프리카로 가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바로 미국의 ‘밀라드 풀러’로,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5만여 채의 집을 지어준 ‘사랑의 집 지어주기 운동본부’의 창시자입니다.

 

19세기 독일극 중에 ‘돈불’이라는 단막극이 있습니다. 이 극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어떤 가정에 부자인 아버지와 사별한 아내 대신 들어온 계모와 아들과 딸 이렇게 네 식구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행복했던 집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장례를 앞두고 재산 문제로 가족들끼리 큰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비록 내가 계모지만 아내인 만큼 재산권이 내게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아들은 아들대로 “그게 무슨 말이냐? 진짜 상속자는 아들인 나다.”하고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딸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요즘 법이 바뀌었다. 내게도 동등한 권리가 있다.”라고 소리쳤습니다.

이처럼 모두가 돈에 눈이 어두워 행복했던 집이 한 순간에 지옥으로 변했습니다. 이때 핏대를 올리던 아들이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뭐하고 있는 겁니까? 도대체 돈이 뭐기에 행복했던 가정이 깨어지고 이렇게 서로 원수가 되었죠?”라고 울부짖으며 돈을 포기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자 이에 감동을 받은 어머니와 딸도 재산을 포기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 이 돈 다 버립시다. 이 돈 때문에 우리가 원수가 되었습니다. 우리 이 돈을 다 버리고 예전처럼 행복하게 삽시다.” 이 말에 동의한 세 사람이 금고 문을 열고 산더미같이 쌓인 지폐 다발을 꺼내 벽난로에 집어넣고 돈이 타들어가는 불을 쬐며 “아, 따뜻하다!”라고 소리치며 행복해하는 모습으로 연극은 끝이 납니다.

이 단막극처럼 물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종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못하고 얼마나 불행하게 사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다 보면, 유난히 내게 미운 짓을 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우리가 그 사람을 미워하는 악한 마음을 가진다면, 나도 모르게 죄를 짓게 되고 결국 미움의 노예가 되어 죄의 종노릇하게 됩니다.

그러나 비록 원수일지라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 참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미움의 노예가 되지 마시고 사랑으로 미움을 이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죄의 종노릇하지 않고 죄를 다스리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 충만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되지 않지만 성령 충만하면 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말씀대로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거룩하게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려고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합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믿음이 충만해지고, 성령이 충만하면 사랑이 충만해집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무슨 일이든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고 합니다.

 

노예 시장 앞을 지나가던 한 부자 신사가 한 흑인 노예가 팔려가며 사랑하는 친자식과 헤어지는 비통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온 가족이 부둥켜안고 울부짖는 모습을 지켜보던 신사의 마음은 너무나 쓰라렸습니다.

그는 후한 값을 지불하고 그들을 자유의 몸이 되게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가족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감격하며 평생 이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우리 가족이 모두 주인님의 종이 되겠다고 자청했습니다.

 

이에 대해 의사이며 성경학자였던 엠 알 데한(M.R.Dehaan)은 이런 비유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한 부잣집 주인이 한 여인을 하녀로 고용했습니다. 그녀는 계약에 따라 성심을 다해 주인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주인 남자와 하녀 사이에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사랑의 결실이 맺어져 그들은 정식 부부가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이 여인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요? 예전처럼 정해진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일을 할까요? 아닙니다. 저녁에도 한밤중에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할 일을 했습니다. 더군다나 주인에게 시간외 근무에 대한 급료의 지불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근무 조건을 바꾸거나 월급을 더 달라는 등 여러 조건을 내세워 파업하지도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녀는 이제 어떤 계약의 법아래 고용된 종으로서가 아닌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로서 자원하여 기쁘게 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히 죄의 종노릇할 수밖에 없는 자들을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기쁨으로 자원하여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더구나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신앙의 자세는 매우 중요합니다. 예배드리는 것을 힘들어하고 헌금 드리는 것을 아까워하며 봉사를 해도 억지로 한다면 되겠습니까. 안됩니다. 마지못해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죄로부터 자유를 얻었으니 마땅히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 자원하여 충성해야 할 줄 믿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육체의 기회, 즉 죄 짓는 일에 쓰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려면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23절에 보면,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살 때,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으며 살게 될 것입니다.

 

토레이 목사는 성령 충만 없이는 어떤 일도 행하기를 원하지 않았으며, 그 누구도 만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멘토인 무디 목사님의 일화를 전하면서, 한번은 무디 목사님의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열린 노츠휠드 성경수양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영국에서 귀족이 오면 복도에서 일하는 종이 있어 밤새 손님의 구두를 닦아놓는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무디 목사님의 참모들 중에 이 관습을 아는 이가 있어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이때 한 사람이 무디 목사님에게 이 토론 소식을 전하면서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무디 목사는 빙그레 웃으며 “글쎄 주님께 한번 물어볼까?”라고 하시더니 머리 숙여 한동안 기도한 후 잠자리에 드셨다고 합니다.

이튿날 아침, 영국 손님들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왔을 때, 그들의 구두는 모두 깨끗하게 닦여있었습니다. 무디 목사님은 스스로 섬기는 종이 되어 영국 손님들의 구두를 깨끗이 닦아놓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사랑으로 섬기는 종이 될 때 참 자유인이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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