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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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8-30 10:52 조회3,696회 댓글0건본문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신 목적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신 목적
2008년 03월 21일(금요철야)
본문 / 갈라디아서 3:13~14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나서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실 때에는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1:28, 29~30).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사람에게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엄청난 축복을 베풀어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2장 8~14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에덴동산이 아름다웠던 것 같습니다. 생각하기만 해도 낙원과 같은 곳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를 주셔서 아름다운 동산에서 먹고 싶은 대로 먹고, 놀고, 편안히 쉬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창세기 2장 15~17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에덴동산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음은 저주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함으로 저주 받게 된 것입니다.
신명기 28장 15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면 모든 저주가 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저주의 내용이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죄는 모든 저주를 받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죄를 저질러서 모든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육신의 죽음은 물론이고,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가난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때로는 흉년이 오고, 때로는 질병으로 고생하고, 환난이 오고, 재난이 오고 이로 인해서 그들의 마음은 불안하고 초조하고 원망, 불평이 많고, 증오심이 가득하고, 슬픔이 있고, 고민이 있고, 낙심이 있고, 절망에 빠지고, 늘 원망 불평을 하면서 사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저주 중에서 가장 무서운 저주는 지옥의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죽음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것을 가리켜 ‘둘째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육신이 죽는 것이 첫째 사망이요, 영원히 지옥에 가서 멸망당하는 것은 둘째 사망입니다. 죄를 범한 인생들은 육신만 죽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지옥의 멸망을 당하는, 영원한 죽음을 당합니다.
자비하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12:1~3).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순종하는 아브라함을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는 축복이었습니다. 그리고 범사에 형통하게 하셔서 모든 것이 잘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면, 모든 복이 따라오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 중에 가장 큰 복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6절에 보면,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손’은 복수가 아니고 단수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한 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태어나셔서 만민이 구원받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자손인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보면,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뱀에게 저주하시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뱀은 곧 사탄을 가리킵니다. 사탄은 여자의 후손,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예수님과 원수가 되는데, 여자의 후손인 예수님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한다.’고 하십니다. 머리를 박살낸다는 것은 아주 끝장내는 것입니다.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신 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이면 승리할 줄 알았는데, 부활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의 모든 저주를 속량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저주를 속량하시기 위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무에 달리신 것만 저주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탄생하는 그 날부터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해산의 고통은 임신한 여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출생하는 아이도 얼마나 고통이 크겠습니까. 어린아이가 말을 못해서 그렇지, 태어날 때부터 고통 속에서 태어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셔서 오갈 데 없는 가난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출생하자마자 헤롯왕이 죽이려고 해서 애굽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평생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땅 한 평, 집 한 채 가지신 적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가난의 저주를 속량하심으로 우리 대신 가난해지셨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요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나 평생 가난의 저주를 짊어지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도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채찍을 맞아 피투성이가 되셨고, 가시면류관을 머리에 쓰셔서 머리에서 피가 솟구쳐 나왔습니다. 두 손과 두 발은 십자가에 못을 박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옥의 고통을 그 곳에서 당하신 것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으셨습니다. 모든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기 위해,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하기 위해, 믿음으로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기 위해, 주님께서 저주를 받으셨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어떤 죄인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입을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29절에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으면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약속된 아브라함의 축복을 모두 받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는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는 자에게는 모든 복이 따라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령의 복을 받았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복,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성령을 모시고 사는 복입니다. 보혜사 성령이 우리 안에 계셔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원수 마귀들의 공격을 막아주시고,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가 이 모든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십자가 자체는 저주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소중히 여기고, 십자가를 바라보고 감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죄를 속량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셔서 우리가 아브라함의 복을 받아 누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하며 성찬예식을 갖습니다. 이 예식은 예수님께서 세우신 예식입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우리가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곧잘 잊어버리고 삽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잊지 않고 살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직전에 성찬예식을 세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피를 쏟으시고, 살을 찢기셨습니다.
우리의 허물을 인하여 찔림을 당하시고,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상함을 당하셨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으심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그가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대속의 죽음을 당하신 주님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것이 성찬예식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예식은 참으로 거룩하고 엄숙한 예식입니다. 눈물 없이는 참석할 수 없는 예식입니다. 회개의 눈물 감사의 눈물 없이는 참석할 수 없는 예식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에 보면, 고린도교회에는 주님의 떡과 잔을 합당하지 않게 마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기를 살피고 이 떡과 잔을 마셔야 하는데, 그렇지 아니한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과 같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 11:27~29).
그래서 고린도교회에는 약하고 병든 자도 많고 잠든 자도 많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 11:30). 징계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이 고린도교회의 성도처럼 징계 받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성찬예식에 어떻게 참여해야 합니까?
첫째, 우리가 받아 먹는 떡과 잔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똑바로 알고 받아먹어야 합니다.
떡은 예수님의 살을 가리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던 주님의 몸을 가리킵니다. 두 손과 두 발에 못 박히셨던 주님의 몸을 가리킵니다. 가슴을 창으로 찔리신 주님의 몸을 가리킵니다. 머리에 가시관을 쓰셨던 주님의 몸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아먹는 잔은 예수님의 피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쏟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떡을 받아먹고, 잔을 받아 마실 때, 그냥 먹고 마실 수 없습니다. 십자가 위에 못 박히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먹고 마셔야 합니다. 주님께서 당하신 고난을 생각하며 먹고 마셔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다는 것을 머리로는 아는데, 십자가의 고통이 크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바라보아도 감격이 없고 눈물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모든 고난의 극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1.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영원한 미래까지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도 십자가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손바닥이 찢어지는 아픔을 알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모르고 있다가 당하는 것과 당하기도 전에 미리 알고 당하는 것은 다릅니다. 처녀가 시집을 가서 첫날 밤 얼떨결에 임신하고 얼떨결에 첫 아이를 출산했지만, 두 번째에 출산할 때는 첫 번째 해산의 고통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더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둘째 아이를 낳기 전에 고통이 미리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신 그 순간부터 고통이 시작된 것이 아니고, 십자가를 지시기전부터 고통까지 다 알고 계셨으니까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그러므로 십자가를 생각하지 않고 다른 일에만 골몰할 때는 괜찮지만, 십자가에 못 박힐 시간이 다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통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 고통은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2, 가장 높고 존귀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더 컸습니다.
예수님의 좌우편에 있던 강도들은 밑바닥 인생으로 평소에도 천대를 많이 받으며 지냈습니다.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고 멸시, 천대를 당했던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다고 해도 사실상 괴롭긴 하지만 그들의 죄를 생각해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높으신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조롱을 당하시고, 매를 맞으시고, 침 뱉음을 당하시고, 채찍을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으니, 고통이 얼마나 크셨겠습니까.
3.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아 보셨습니까? 그 아픔이 얼마나 큽니까. 하물며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았을 때의 아픔은 얼마나 크셨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잠시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입니다.
여러분, 지옥의 고통은 얼마나 클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옥은 영원히 죗값으로 고통 받는 곳입니다. 지옥은 캄캄하고, 끝없는 목마름이 있습니다. 답답한 곳입니다. 고통만 있고 길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지옥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미치지 못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미치지 못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미치지 못하는 곳입니다.
마가복음 9장 48절에 보면,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무의식 상태도 아니고, 맑은 정신으로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지옥에는 안식이 없습니다. 잠도 없고, 쉬는 것도 없습니다. 불 속에서 사람이 타죽을 때에 느끼는 목마름의 고통과 몸이 이글이글 탈 때의 고통을 계속 당하는 곳이 지옥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순간,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우리는 죗값으로 영원히 지옥의 고통을 받아야 할 죄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사랑과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십자가 은혜를 잊지 않고 살게 하기 위해서 성찬예식을 세워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떡을 나누어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고전 11:24). 식후에는 잔을 가지고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고전 11:25).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던 것을 잊지 말고, 항상 기억하고 살게 하기 위해 이것을 행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것을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해 이 예식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우리가 떡과 잔을 받을 때에 음식으로 배를 채울 때처럼 먹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는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먼저 가져다가 먹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잘못된 일입니까.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두 손과 두 발에 못 박히시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피와 땀과 눈물을 쏟으신 주님을 생각하며 떡과 잔을 받아야 합니다.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처럼 무례하게 어리석은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보통 음식을 먹을 때처럼 받아먹어서는 안 됩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7~30절에 보면,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둘째, 우리 자신을 살피고 그 후에 떡과 잔을 받아먹어야 합니다.
떡과 잔을 받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가?”라고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만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믿는가?”라고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라도 예수님 앞에 모든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기 원하는 마음이 있는지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아직까지도 끊어버리지 못한 죄가 있는지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죄를 자백하고 시인했다고 해서 회개한 것은 아닙니다. 참 회개를 한 사람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있습니다.
참 회개한 자에게는 회개의 눈물이 있습니다. 뉘우침이 있습니다. 죄에 대한 아픔이 있습니다. 범죄한 자신이 밉습니다. 이자기 자신의 죄 때문에 몸부림칠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은혜가 임할 때까지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같이 뜨거워집니다. 주님을 위해 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경건한 사람이 됩니다. 변하여 새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떡과 잔을 받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 사함을 얻었고,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함을 받았고,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찌 이 은혜를 감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우리가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입으로도, 찬양으로도, 글로도, 물질로도 감사하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셋째, 새로운 결심을 하면서 떡과 잔을 받아야 합니다.
“바르게 살겠습니다. 성경을 읽겠습니다, 주일을 지키겠습니다, 다시는 십일조 도둑질을 절대로 하지 않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형제를 사랑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앞장서겠습니다. 늘 감사하는 생활하겠습니다.”라고 결심하며 떡과 잔을 받아야 합니다.
넷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함 받았고, 예수님으로 인하여 구원받는다는 복음을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전하기로 결심하면서 떡과 잔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붙잡아주시고 도와주심을 간구하면서 떡과 잔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결심은 너무나도 약합니다. 우리는 약함을 알면서도 죄를 범하고,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안 될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붙잡아주시고 도와주셔야 합니다. “주여, 내 힘이 부족하오니 도와주옵소서. 붙잡아 주옵소서. 성령의 충만함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가운데 떡과 잔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성찬예식에 동참한다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주의 음성을 듣는 사람, 암 덩어리가 떨어져나가는 사람, 막혔던 문이 열리는 사람,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는 복이 임하는 사람도 생길 것입니다. 모든 복이 따라오는 축복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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