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저주를 속량하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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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7-31 08:14 조회3,618회 댓글0건본문
율법의 저주를 속량하신 예수님
율법의 저주를 속량하신 예수님
2006년 04월 14일(금요철야)
본문 / 갈라디아서 3:13~14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저주받은 사람입니다. 차라리 나지 아니한 것만 못한 사람입니다. 태어나지 않았으면 저주 가운데 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주의 반대는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본래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만드시고, 인간에게 축복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축복은 자연을 주신 것입니다. 우주를 주시고, 정복하고 취하고 다스리고 마음대로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만 금하셨습니다. 그것은 수천가지 열매 중 에덴동산 중앙의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만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최소한의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를 순종하므로 하나님과 우리 관계가 신뢰하고 화목하는 관계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항상 확인하고, 하나님을 잊지 않게 해줍니다. 하나님과 고리가 됩니다.
그러나 이 하나를 지키지 않음으로 등을 돌리게 됩니다. 하와는 뱀의 꼬임에 빠져 선악과를 먹고 저버렸습니다. 불순종하므로 죄를 저지르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차단되기 시작했고, 하나님을 저버리고 등을 돌림으로 하나님도 우리를 버릴 수밖에 없는 관계로, 관계가 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인간은 모든 저주를 받기 시작합니다.
모든 저주의 원인은 죄에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저주 가운데 살다 죽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죽음은 아벨의 죽음입니다. 그 후로 저주는 병, 재난 등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더욱 저주를 받게 되는 것은 죄를 한 번 범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더욱 악해지고 불의해지고 교만해지고 죄악이 더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인류역사를 보십시오. 죄악이 더할수록 환난과 심판과 고통이 더해졌습니다.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러운 이 세상, 더 심한 환난과 재앙, 고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는 사명감을 갖고 주를 위해서 살겠다는 사람이 아니면 빨리 죽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후손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속죄의 제사를 드림으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죄로 저주 받아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주셨습니다.
레위기 16장 5~6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속죄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염소 두 마리와 번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양 한 마리를 가져갈지니라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집안을 위하여 속죄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속죄를 위해 숫염소 두 마리를 선택합니다. 아론은 자신을 위해 먼저 수송아지를 준비했습니다. 자신도 역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16장 8~16절에 보면,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집안을 위하여 속죄하고 자기를 위한 그 속죄제 수송아지를 잡고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 앞 제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두 손에 채워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게 할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할 것이며 그는 또 수송아지의 피를 가져다가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쪽에 뿌리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 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레위기 16장 20~22절에 보면, “그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마친 후에 살아 있는 염소를 드리되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속죄제를 드리는 방법은 제사를 집행하는 제사장 자신을 위해 먼저 속죄제를 지내고, 백성을 위해서 제사를 드립니다.
방법은 같습니다. 두 마리 중 제비를 뽑아 먼저 걸린 염소를 죽여서 피를 제단에 뿌리고 제사를 드립니다. 다른 한 마리는 죽이지 않고, 머리에 안수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죄를 하나님께 고하면서 염소를 광야로 보내버립니다. 그러면 들에 있는 이리, 여우 등이 먹을 것이 생겨서 그 자리에서 먹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드리게 하셨습니까? 죄로 말미암아 죽어 마땅한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속죄할 수 있게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범한 죄를 생각하면, 이리에게 물려 죽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대신 속죄제를 드림으로 염소가 대신 죽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사셀 염소처럼, 광야에 버린 염소처럼 한심한 인간들이 예수님께 침을 뱉고 때렸습니다. 우리가 그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 죄인인데,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아사셀 염소처럼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동안의 죄만 해결되고, 다시 죄를 지으면 매일 반복해서 제사를 지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동안의 죄만 속죄제로 해결되지, 그 이후의 것은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더 악해지고, 죄를 더 지으므로 속수무책입니다. 구약에서 사람은 하나님과 더 원수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죄를 범하지 않을 수도 없고, 구원받을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것은 창세전에 택하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3~7절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실 때, 인간들이 연약해서 넘어질 것을 아시고, 대책을 다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예수님을 속죄양으로 택하셨습니까? 범죄한 인간들 때문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하나님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할 수 있는 중보자는 예수님 밖에 없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그 이유로는 중보자가 되려면, 두 가지 자격을 가져야 합니다.
첫째, 죄가 없어야 합니다. 석가모니, 마호메트, 공자 등 모두 죄인입니다.
둘째, 신성과 인성을 가진 자라야 중보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천사는 인성이 없고, 사람은 신성이 없으므로 중보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게 하셔서 아담의 피와 죄를 물려받지 않게 하시고, 죄 없는 깨끗하고 거룩한 중보자로 이 세상에 오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처녀, 특별히 성령을 받은 거룩한 여인의 자궁을 빌려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잉태되어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3년간의 공생애 기간 동안 여러 기적을 행하신 것은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것이므로 그분의 신성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오신 인간이지만,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만이 중보자가 되십니다.
에베소서 2장 10~18절에 보면,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7절에 보면,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0~14절에 보면,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보면,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 순간, 우리는 모든 저주에서 속량 받았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그것이 저주로 온 것이 아닌, 축복으로 온 것을 믿으십시오. 저주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마십시오.
둘째, 창세 전에 택함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위해 오셨습니다.
히브리서 2장 14~16절에 보면,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마귀가 손댈 수 없습니다.
“마귀야, 너는 내 밥이다! 까불지 마라! 네가 아무리 나를 유혹하고 시험해봤자 헛수고다! 나는 천국에 간다! 나는 창세전에 이미 정해졌다!”라고 선포하십시오.
마귀가 자신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사람도 저주받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8~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얻게 하셨으므로 우리는 영원히 멸망하지 않고 주님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 마귀를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두려워하십시오.
로마서 5장 6~11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어리석어서 망할 수밖에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며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셔서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대신 저주를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저주뿐 아니라 예수 믿는 자마다 누구든지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살게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신령한 자가 되어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서 죄와 마귀를 이기며,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을 줍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믿음과 사랑이 충만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할 일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 받고 죄 사함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행 2:38). 회개하면 죄 사함 받고 성령을 받으면 믿음으로 살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과 화평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회개와 성령 충만을 구하는 것입니다. 철저히 회개하십시오. 우리 죄 때문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주님 앞에 눈물로 회개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바르게 살고 싶어도 우리 힘으로 도저히 죄를 이길 수 없고 거룩하게 살 수 있는 힘이 없으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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