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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15장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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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7 15:28 조회4,5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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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

2010년 07월 30일(금요철야)

본문 / 고린도전서 15:9~10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다만 그것을 깨닫는 사람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 5:44~45)”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다 죄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셔서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태양이 뜨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비가 내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불신자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차이인줄 모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거듭난 신자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의 은혜로 깨닫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삽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하루 동안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오늘 이 시간 이렇게 살아있다는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자신이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사실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죽을 고비를 넘긴 것임을 알아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잠자리에서 눈을 뜰 때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나에게 생명을 연장해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잠자리에 들며 “아버지,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라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몸이 건강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일할 수 있는 것도 은혜입니다. 두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있는 자체도 은혜입니다. 하루만이라도 눈을 가리고 살아보십시오. 얼마나 답답한지 모릅니다. 눈을 뜰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걸을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교회의 권사님 중에 날마다 수영하시고 운동하시며 건강하시던 분이 갑자기 걷지 못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알고 보니 무릎에 관절염이 생겨서 걷지 못하셨습니다.

걷지 못하니 운동도 하지 못해 근육의 힘이 약해졌습니다. 그래서 몇 개월 사이에 딴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걷기만 해도 건강에 도움이 되는데, 걷지 못하니까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걸을 때마다 감사하십시오.

 

우리가 날마다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후두암에 걸려서 물을 쉽게 넘길 수 없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물 한 모금을 마시는 것도 매우 힘들었습니다.

이분이 소천하신 후, 침대 머리맡에 보니 ‘물 한 모금, 하나님의 은혜’라고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물 한 모금을 마시는 것도 하나님의 큰 은혜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날마다 물을 마음껏 마시니까 감사한 줄 모릅니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삽니다. 모르고 살 때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살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없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없고 평강이 없습니다. 그래서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니까 기쁨이 넘칩니다. 평강이 넘칩니다. 그래서 행복하게 삽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더욱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아주 특별한 은혜가 있습니다.

첫째,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범한 죄, 지금 범하는 죄, 미래의 범할 죄, 모든 인류의 죄에 대한 죗값은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순간 모두 청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어떤 죄인이라도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습니다. 이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저주받았고, 죄로 말미암아 지옥의 멸망을 당하게 되었고, 죄로 말미암아 불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 문제를 다 해결해주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은혜는 없습니다.

교회마다 성전 꼭대기에 십자가를 높이 세우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십자가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은혜를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십자가의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을 믿는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은혜를 베풀어주셨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셨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그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아무나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어져야 믿습니다. 믿을 마음이 있어야 믿습니다.

부산에서도 열 명 중에 아홉 명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아무리 나가서 전도해도, 믿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90%나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보통 은혜인줄 아십니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누가 예수님을 믿습니까? 창세 전에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만 예수님을 믿습니다. 에베소서 1장 4~5절에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6~48절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러분처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하신 사람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마시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믿고 고백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6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교회에 나오도록 이끄신 사람입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도록 하나님께서 이끄신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에게 내가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마음을 감동시켜주시고, 깨달음을 주시고, 예수님을 믿을 마음을 주셔서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게 해주신 사람이 예수님을 믿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해주시지 않으시면, 예수님을 믿을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순간,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탕자가 굶어죽지 않고 자기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마음이 생겨 깨달음을 얻고 아버지께로 돌아온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회개하는 은혜가 얼마나 큰 은혜인지 아십니까. 이것은 특별한 은혜입니다. 회개는 쉽게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죄를 고백하면서 눈물 콧물 흘리고 회개한 적이 있다면 이것은 특별한 은혜입니다. 이것은 거듭난 신자라는 증거입니다.

 

셋째, 경건하게 사는 은혜입니다.

야고보서 1장 26~27절에 보면,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것이 경건한 삶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경건한 사람은

1. 혀를 잘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경건해지면 할 말, 못할 말을 잘 구별합니다. 그러므로 혀가 경건해야 참 경건한 사람입니다. 경건한 사람은 말하는 것이 은혜롭습니다.

 

2.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보는 사람입니다.

환난 중에는 나도 먹고 살기가 힘든데, 그 어려움 속에서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3.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음란해져도 거룩하고 깨끗하고 경건하게 사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세상의 유행을 따라가지 않는 사람, 세상의 풍습을 따라가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귀한 성도입니까.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경건하게 사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창세기 6장 5절에 보면, 노아는 아주 타락한 세상에서도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창세기 6장 5~9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노아가 경건하게 살 수 있었던 비결이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지금은 노아시대보다 몇 배로 더 악하고 음란합니다. 그러므로 거룩하게 살 수 있는 경건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경건의 은혜는 거룩하신 성령의 은혜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받으면, 노아처럼 거룩하고 경건하게 살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뿐 아니라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자가 됩니다. 이것은 보통은혜가 아닙니다.

날마다 내 죄와 허물과 실수를 깨닫고 회개하는 삶을 사는 자체가 특별한 은혜입니다. 이 은혜 가운데 사는 사람은 거룩한 삶을 삽니다. 아주 겸손한 자가 됩니다. 날마다 자기 잘못을 깨달으니까 자신이 죄인인줄 알기 때문에 겸손해집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으면, 육신의 정욕을 이기고, 악령을 이기고, 환난과 시험을 이기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릅니다.

성령 충만하면 성령의 완전한 지배를 받아 성령의 인도하심을 온전히 받습니다. 그래서 세속에 물들지 않고 거룩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경건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아 경건의 능력을 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저절로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1.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날마다 시간을 정해놓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순간 순간 대강 기도하는 것 말고도 하나님 앞에 정식으로 기도하는 시간이 날마다 있어야 합니다. 항상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 충만한 은혜가운데 계속 살아갈 수 없습니다.

 

2. 말씀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고,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고, 설교를 열심히 듣는 가운데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 있을 때에 날마다 만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내려주실 때에 이틀씩 사흘씩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루에 필요한 만나를 주시고, 하루가 지나면 만나가 벌레 먹고 썩어서 먹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안식일 전날만 안식일에 일하지 않게 하기 위해, 이틀이 가게 하셨습니다. 평소에는 딱 하루치만 주셨습니다.

우리가 오늘 만나의 은혜를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오늘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내일은 그냥 넘겨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일은 하나님 앞에 또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생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생수를 한번 마셨다고 해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목마를 때마다 생수를 마셔야 합니다.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차의 배터리를 충전해야 모든 시동이 걸리는 것처럼, 우리의 심령도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계속 유지하려면, 계속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믿음이 점점 약해지고 영안이 점점 어두워집니다. 그래서 분별력이 없어지고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믿음이 약해지면 마귀를 이기지 못하고 죄를 이기지 못합니다. 육신의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환난 시험 세속을 이기지 못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현재가 중요합니다. 과거는 지나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 상태인가가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 6:11)”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날마다 육의 양식이 필요한 것처럼 영의 양식도 날마다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한 은혜 가운데 날마다 경건의 능력을 가지고 거룩하게 살려면, 하나님의 일에 날마다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입니다. 또 하나님의 전에 나아와 봉사하는 것, 전도하는 것, 선교하는 것, 구제하는 것이 모두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할수록 죄 지을 시간은 적어집니다. 하루라는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까 그 시간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시간으로 많이 채울수록 죄지을 시간은 점점 적어집니다. 우리가 이 비결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빠지면 딴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그 시간이 제일 행복했습니다. 그 시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시간이니까 그런 시간을 많이 가질수록 좋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일을 참 좋아하고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설교하는 시간도 참 행복합니다. 주일에 다섯 번씩 설교하려면 육신적으로는 힘듭니다. 그런데 너무 좋아서 감당합니다. 성도들의 얼굴만 보아도 좋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서 24시간 살게 해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학생시절에도 되도록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교회 지하실에서 공부했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죄를 멀리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살면, 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막아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죄악에 빠질 수밖에 없을 때, 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막아주십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자기 누이동생이라고 하니까 애굽 왕 바로가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를 아내로 삼으려고 데리고 갔습니다. 애굽 왕은 아브라함의 아내를 빼앗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사라에게도 물어보니 남편을 오빠라고 했습니다. 바로는 죄 지을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가 사라에게 손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바로가 사라를 데리고 온 순간부터 바로의 집에 난리가 났습니다. 바로가 죄 지을 마음이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보호하셨습니다.

 

재앙을 만난 것으로 인해 죄악에 빠지지 않았다면, 그 재앙을 내리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죄악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큰 병을 주셔서 죄를 범하지 않게 되었다면 병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막아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창세기 20장에 보면, 그랄 왕 아비멜렉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그랄 지방에 있을 때 그의 아내 사라를 또 자기 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 사라를 데려갔습니다.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셔서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창 20:3)”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비멜렉은 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아비멜렉은 하나님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고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창 20:4~5)”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의 꿈에 또 나타나셔서 아비멜렉에게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창 20:6~7)”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랄 왕 아비멜렉이 범죄하지 못하도록 막아주셨습니다.

 

요셉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감옥에 들어감으로 요셉은 더욱 경건하게 살 수 있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1. 보디발의 아내의 접근을 막아줌으로 경건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2,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몇 배로 열심히 기도하여 그는 더 경건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감옥은 여러 가지로 고통스러운 곳이지만 경건하게 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입니다. 유혹거리가 없으니까 죄 지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도 말년에 감옥에서 보내게 하셨습니다.

기도 많이 할 수 있어 좋고, 순교할 준비를 해놓고 사니 좋고, 시간이 많으니 좋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각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귀한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그래서 그 편지를 우리가 지금도 읽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사도 바울은 감옥을 지키는 군인들에게 전도하여 로마에 복음이 전파되도록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감옥에 두신 것을 생각하면 답답한 면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가장 경건하게 살게 하셔서 가장 귀한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인줄 믿습니다.

 

넷째, 하나님의 집에서 일꾼이 되는 은혜입니다.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9~10절에 보면,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은 과거가 좋지 않은 죄인이지만 사도로 칭함 받게 된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2~14절에 보면,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직분을 맡겨주신 것에 대해 감사해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변화가 있습니다. 성품의 변화가 있고, 가치관의 변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 받은 사람인지 알려면, 그 사람의 가치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은 이 세상보다 저 세상, 천국을 더 귀하게 생각합니다.

 

이 세상은 잠시 살다가 가는 곳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은 하나님의 나라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이 세상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이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 세상일보다도 하나님의 일을 더 귀하게 여깁니다.

 

어떤 사람은 이 세상일을 더 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세상일에 주력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시간나면 하고, 생각 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별로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 큰 은혜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더 중하게 여기는가 세상일을 더 중하게 여기는가 여러분 자기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물질의 복을 받아 부자가 되는 것보다 하늘나라에 보물을 얼마나 쌓았느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냉정하게 자기 자신을 비판해보십시오. 내 삶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보물을 땅에 쌓아두고 있느냐 하늘에 쌓아두고 있느냐, 하나님의 일을 위해 쓰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있는가를 살펴보십시오.

 

큰 은혜 받은 사람은 이 세상에 보물을 쌓으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려고 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은 이 세상 영광보다 하나님 앞에 가서 받을 면류관을 더 귀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십자가를 집니다. 주님을 위해 받는 고난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로마서 8장 17~18절에 보면,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장차 받을 영광을 생각하니 너무 좋아서 이 세상에서 고난 받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습니다.

 

빌립보서 3장 5~9절에 보면,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가치관이 분명했습니다. 그는 세상의 영광, 자랑거리를 모두 배설물과 같이 여겼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게 된 것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주님을 위해 살며 영광을 돌렸습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일에 크게 쓰임 받는 은혜입니다.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른 사도들보다 일을 많이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선교 사역을 했는데, 사도 바울이 가는 곳곳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것은 보통 은혜가 아닙니다.

그뿐 아니라 사도 바울은 서신을 통해서 교회를 말씀으로 무장시키고, 교회를 믿음으로 무장시켰습니다. 환난을 이길 수 있도록 무장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2천 년 동안 성도들에게 전파되어 우리도 바울 서신을 통해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그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사도 바울 한 사람이 수고한 것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 다섯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둘째, 예수님을 믿게 된 은혜입니다. 이 은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죄 많은 세상에서 세속에 물들지 않고 경건하게 사는 은혜입니다. 마지막 때에 이 은혜를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넷째. 하나님의 집에서 일꾼이 되는 은혜입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일에 크게 쓰임 받는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시고 영광 받으시고, 우리를 통해 교회가 세워지고 교회가 부흥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면, 이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모두가 이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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