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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보다 위대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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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7-31 08:32 조회3,4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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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보다 위대한 삶

 

순교보다 위대한 삶

2006년 05월 26일(금요철야)

본문 / 고린도전서 15:30~31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으로 삽니다.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고 유지됩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아버지, 오늘도 아버지께서 주시는 생명으로 제가 오늘을 삽니다.”라고 말합니다.

제가 자는 중에 하나님께서 제 생명을 거두어 가실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제 생명을 지켜주셨기 때문에 제가 아침에 눈을 뜰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으로 살다가 하나님께서 오라 하시면 하나님 앞에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사화복은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지하시고, 무소불능하십니다. 인간은 지식도 지혜도 능력도 모든 것이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에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얼마나 살다가 떠날지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 이 땅을 떠날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두려운 환경에 처했다 해도, 하나님께서 데려가지 않으시면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외에는 그 무엇도,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죽음의 위기가 있다 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가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삽니다. 암에 걸렸더라도 삽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셔서 이 세상에서 사는 시간을 ‘수명’이라고 합니다. 시편 90편 10절에 보면,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90편 12절에 보면,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속에서 지혜의 마음을 주셔야 세월을 허송하지 않고 값지게 살 수 있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시편 90편 15절에 보면,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정해진 생명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살아갈수록 우리의 남은 시간은 줄어듭니다.

에베소서 5장 15~16절에 보면,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시간을 아낍니다. 세월은 이렇게 해도 흐르고 저렇게 해도 흐릅니다. 지혜 없고 어리석은 사람은 세월을 쓸데없이 허비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시간을 소비합니다.

 

시간을 잘 쓰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똑바로 이해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는 것은 헛수고한 것입니다.

제 소원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축복받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입니다. 제 마음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소원이 있습니다. 그 소원대로 살려고 제가 애쓰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이것이 제가 축복받는 비결입니다.

 

중생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습니다. 중생한 사람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심을 믿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중생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회개합니다. 이것이 중생한 믿음의 사람에게 나타나는 믿음의 증거입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그 사람이 회개했는가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에 참으로 회개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전도사였을 때의 일입니다. 말씀을 전한 후에 성도들에게 기도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소란스러웠습니다. 살펴보니 한 성도가 마룻바닥을 구르며 회개하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보면,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철저히 회개한 사람은 그만큼 거룩하고 겸손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달라집니다. 생각이 바뀌고, 말과 행동이 달라집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 보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는 것은 세상의 것에 빠지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의 것과 성령 충만은 정반대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성령 충만하여 거룩하게 삽니다.

 

에베소서 5장 19~20절에 보면,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 찬양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3~6절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보혈의 피를 흘리신 목적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12~14절에 보면,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목적도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미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명을 똑바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43장 10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사야 44장 21절에 보면,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사야 49장 3절에 보면,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주의 종이요, 주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간, 생명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우리 마음대로 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써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첫째,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시편 14편 1절에 보면,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둘째, 자신의 사명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명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만을 위해 살고, 자신의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다가 망합니다.

 

전도서 2장에 보면, 솔로몬 왕은 자신을 위해 살다가 나중에 후회했습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이 이렇게 된 이유는 그가 하나님을 멀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가 되려면,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잠언 9장 10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가까이할수록 더 지혜로워지고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는 비결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한 기독교인이 되려면, 두 가지를 해야 합니다.

첫째. 기도 생활로 무장해야 합니다.

기도로 무장하지 않는 사람은 온전한 신자가 될 수 없습니다. 기도는 호흡과 같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호흡이 질서정연하고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호흡이 약하고 끊어지면 죽습니다. 우리의 생활에서 기도가 끊어지면, 우리의 신앙은 죽습니다.

 

솔로몬 왕은 나라가 너무 커지고 부유해지자 기도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매일 다른 나라에서 손님이 찾아오고 만나 술을 마시다 보니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예배드리고 기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믿음을 다 잃어버리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열왕기상 11장 1~4절에 보면,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열왕기상 11장 7~10절에 보면,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그가 또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씀을 지킬 수 없을 만큼 타락했습니다. 나라가 커지고 부요해지고 유명해지고 잘 살게 되니 기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것들을 구하지 마십시오. 그런 것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인가, 사명을 생각하며 살 때, 하나님께서 은혜와 지혜를 주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세상에서 유명해지고 잘 되면 바빠 솔로몬처럼 됩니다. 기도하지 않고,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솔로몬같이 되는 것이 축복입니까.

잠언 30장 8절에 보면,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기가 막힌 기도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온전한 크리스천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 타락합니다. 죄, 정욕, 세상, 마귀, 유혹, 시험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기도 생활에 성공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더 깊이 알 수 있고, 더 지혜로워져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과 축복을 받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성경을 공부해서 성경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무식하면, 신앙생활을 똑바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똑바로 알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을 사랑받는 법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수록 하나님과 더 가까워집니다.

성경을 읽는 것이 생쌀을 먹는 것이라면,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비빔밥같이 먹을 수 있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할수록 지혜가 생깁니다. 시편 119편 97~100절에 보면,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 보면,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지혜가 생기면, 길이 보입니다. 마치 어두운 밤에 등불을 비추면, 앞이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을 보면 길이 보이고, 방법과 해결책이 보이는 것입니다.

 

시편 19편 7~11절에 보면,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 뿐 아니라 말씀대로 지키며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을 받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서 계명대로 지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얼마나 축복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삽니다. 복음을 전하며 삽니다. 복음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것이요, 또 하나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므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우리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좋으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길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가치 있는 삶은 복음을 전하는 삶입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는 것보다 큰 영광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4절에 보면,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순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죽을 각오를 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21~24절에 보면,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빨리 순교해서 주님과 천국에서 머물고 싶어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죽임을 당했을 때, 죽는 순간은 힘들지만, 그 순간으로 끝납니다.

순교보다 더 위대한 것은 날마다 죽을 각오를 하고 복음을 전해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위해서는 빨리 죽고 싶었지만, 사도 바울이 살아있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게 되므로 그들을 위해 남아있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습니다. 순교보다 위대한 삶은 죽을 각오를 하고 복음을 전하는 삶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가장 위대한 삶입니다.

 

순교하는 것 자체는 하나님의 뜻에 달린 것입니다. 똑같이 순교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데도 한 명만 순교를 하고, 한 명은 살았습니다.

순교를 각오하고 날마다 죽을 각오를 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는 삶은 순교보다 더 위대한 삶입니다.

 

부산복음화를 위해 날마다 죽을 각오를 하고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의 신앙을 가지면 부산과 민족을 복음화하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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