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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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7-31 08:26 조회3,436회 댓글0건본문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2006년 05월 12일(금요철야)
본문 / 고린도전서 13:11
고린도전서 13장 11절에 보면,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의 인격, 신앙, 됨됨이를 알려면,
첫째,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제일 어리석은 사람은 말이 많은 사람입니다. 말이 많은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미련하고 어리석고 바보스러운지를 보여줍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가만히 듣는 사람입니다. 들으면서 상대편을 알게 됩니다. 지식이 더해지고 깨닫습니다.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은 항상 손해 봅니다. 미련한 자라도 입을 다물고 있으면 지혜롭게 보입니다.
말이 많은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요, 말이 적은 사람은 아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보면, 어린 아이인가, 장성한 사람인가 알 수 있습니다.
둘째, 깨닫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똑같은 말을 해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선입관, 자기고집, 그리고 잘못된 지식으로 인해 깨닫는 것이 다릅니다.
한 마디를 해도 열 개를 깨닫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열 마디를 해도 하나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잘 깨닫는 만큼 지혜로워지고, 은혜 받은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은혜 받은 정도에 따라 멀리 깊이 넓게 높이 깨닫습니다.
셋째, 생각하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생각은 지배하는 힘이 대단합니다. 생각하는 것에 따라 인격이 달라지고 행동이 결정됩니다.
그 사람의 생각이 지혜로운지 어리석은지, 좁은지 넓은지, 단순한지 복잡한지를 살펴보면, 사람 됨됨이와 인격과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하는 것, 깨닫는 것, 생각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로마서 8장 5~8절에 보면,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육신을 따르는 자의 생각,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사망입니다. 세상적으로, 영적으로 다 망합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따르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레미야 6장 19절에 보면,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거절하였음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평소에 생각하는 것은 자유인 것 같지만,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축복을 받을 수도 있고, 심판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생각을 잘못하기 때문에 재앙이 옵니다. 우리나라 정치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오는 것입니다.
그만큼 생각이 중요하고 지배하는 힘이 큽니다.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시는 이유는 생각의 결과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4절에 보면,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의 마음을 감찰하십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경에 비추어 보면, 내 뜻이 바른지 그른지, 축복받을 생각인지 망할 생각인지 다 드러납니다. 말씀 앞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다 드러납니다. 바른지 그른지, 복 받을 생각인지 아닌지, 지금 내 뜻이 옳은지 아닌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인지 아닌지, 성공할 수 있는지 실패하는 것인지가 말씀을 통해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9장 1~5절에 보면,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이 생각하는 것을 꿰뚫어보시고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생각은 아주 중요합니다. 누가복음 11장 17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여러분의 생각을 아시고 여러분을 보고 계십니다.
잠언 24장 12절에 보면,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좋은 생각을 하는지, 약삭빠른 생각을 하는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솔직해야 합니다. 우리는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쁘면 기쁘고, 슬프면 슬프고, 화나면 화나고, 솔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껍데기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을 보십니다.
육신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입니다. 잠언 12장 5~7절에 보면, “의인의 생각은 정직하여도 악인의 도모는 속임이니라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거니와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 악인은 엎드러져서 소멸되려니와 의인의 집은 서 있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24장 9절에 보면, “미련한 자의 생각은 죄요 거만한 자는 사람에게 미움을 받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타락된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을 하며 삽니다. 마태복음 15장 15~20절에 보면,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마음 자체가 타락하여 언제나 악한 생각을 합니다. 그러므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악한 생각이 악한 사람이 되게 합니다. 그래서 악한 말을 하고, 악한 것을 계획하고, 악한 것을 꿈꾸고, 악한 행동을 하고, 악한 인생이 됩니다. 그 시작은 생각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4~3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각이 악하여 악한 말을 하고, 악한 말 자체가 악함을 보여줍니다. 자기가 얼마나 악하지를 보여주고 심판하는 것입니다. 평소에 악한 생각을 하여 악을 쌓고, 결국 말과 생각과 행동이 악해집니다.
빌립보서 1장 17절에 보면,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열심히 전도하는 사도 바울이 감옥에 있는데, 괴로움을 더 할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예수를 믿는 사람의 마음이 마귀 같을까요.
그 사람의 믿음의 수준을 알려면,
첫째, 예수님의 성품을 얼마나 닮았는가, 얼마나 변화되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수준을 보여줍니다. 집사, 장로가 되었다고 믿음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마음과 인격이 변화되었는가를 보면, 믿음이 자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일 좋은 믿음은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직분과 상관없습니다. 그 사람의 성품이 얼마나 변화되었느냐가 중요합니다. 빌립보서를 보면 전도는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생각이 악한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실패자들은 모두 생각을 잘못한 사람입니다. 창세기 6장 5~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노아 시대에 홍수로 심판받은 사람들은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했습니다. 소망이 없었기 때문에 의인 노아의 식구가 살아갈 수 없어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셨습니다.
생각을 잘못하여 실패한 사람으로, 사울 왕을 들 수 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왔을 때, 사울 왕이 생각을 잘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생각을 잘못하여 집안과 나라도 망했습니다.
솔로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하면, 육신의 쾌락을 즐길까 고민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즐겁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자기의 육신과 쾌락을 위한 생각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쾌락을 위해 술을 즐기고 연못이나 집을 만들고 노래하고 금은보화를 찾으면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잘못한 솔로몬은 그 이후로 낙이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사는 것을 미워했습니다(전 2:17). 차라리 죽기를 원했습니다.
여호사밧 왕도 생각을 잘못하여 망했습니다. 하나님께 저주받아 멸망하고, 절대 용납하지 말아야 할 아합 왕을 찾아가 바알 신을 섬기고 사돈을 맺어 망했습니다. 생각을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잠언 13장 20절에 보면,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을 가까이하면 지혜로워집니다. 은혜 받은 사람을 가까이하면 은혜 받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습니다.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좋은 생각을 많이 합니다.
잠언 17장 12절에 보면,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곰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 9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음행하는 친구도 사귀어서는 안 됩니다. 친구를 내가 다스릴 수 있으면 그 친구와 지내지만, 그 친구 때문에 나쁜 영향을 받는다면 그 친구를 피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6장 14~18절에 보면,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경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망하므로 이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업은 믿음의 사람끼리 해야 합니다.
또 생각을 잘못하여 망한 사람으로는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 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위선적이고 교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시골 청년이 말씀을 잘하고 능력이 있고 인기가 있게 되자 시기심이 생겼습니다. 결국에는 망했습니다. 그래서 은혜도 받지 못하고,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가룟 유다도 생각을 잘못했습니다. 예수님을 3년이나 모셨으면서도 예수님을 모르고 끝까지 예수님을 속이다 결국에는 목매어 죽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미련한 다섯 처녀들도 생각을 잘못했습니다. 신랑이 늦게 오자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다가 정작 신랑이 왔을 때에는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오늘 밤에 주님이 오시더라도 준비해놓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언제 오시더라도 주님께 “잘했다 충성된 종이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롭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은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언제 오시더라도 맞이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이 등에 기름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상태로 성령의 은혜에 사는 것입니다. 등은 기름이 있어야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빛이 없는 것은 어리석은 다섯 처녀와 같습니다. 여러분은 지혜로운 다섯 처녀인줄 믿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도 생각을 잘못했습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여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염소와 같은 사람은 이기주의입니다. 다른 사람은 굶어죽든 감옥에 가든 상관하지 않고, 자기만 편하기만 바라고, 말씀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로마서 8장 5~6절에 보면,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 안에 성령께서 계시면, 우리는 육신에 속한 자가 아니요 영에 속한 자가 됩니다.
로마서 8장 11절에 보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불가능해 보여도 성령께서는 살리십니다.
로마서 8장 14절에 보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 속에는 육신의 세력과 영의 세력이 함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육신을 따라가면 육신에 속한 자가 되고 영을 따르는 자는 신령한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 충만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영을 따릅니다. 육신의 생각을 다 버리고, 영의 생각을 따르면 삽니다.
로마서 8장 11절에 보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영의 생각은 성령께서 주시는 생명과 평안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각이요, 하나님의 뜻에 맞는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생각은 자체가 생명이요 평안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일도 생각해야 하지만, 먼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방법이 그럴 듯한 사람의 일을 생각하게 하여 하나님의 일을 망치게 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2절에 보면,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위의 것은 영의 생각이요, 땅의 것은 육신의 생각입니다.
히브리서 3장 1절에 보면,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님을 생각하고, 십자가와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해야 합니다.
영의 생각을 따라 복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야곱입니다. 창세기 28장 20~22절에 보면, 야곱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우상을 섬기지 않고 이 기둥으로 하나님의 전이 되고 십일조 생활을 철저히 지키겠다고 생 각으로 기도하여 축복의 문이 열렸습니다. 생각을 잘하면 축복이 열립니다.
창세기 32장 24~25절에 보면,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강을 건너지 아니하고 밤새도록 하나님에게 매달리기로 생각한 것은 위대한 생각입니다.
종을 먼저 보내고 뇌물도 보내고 자식도 보내는, 자기의 방법을 해도 믿을 것이 없는 이유는 생사화복은 하나님께서 주장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꾀도 통하지 않으므로 하나님께 결사적으로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어떤 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잘해야 합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예로 팔려가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해도 지조를 지켰습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맡은 일을 성실히 했습니다. 형제들이 자기를 노예로 판 것에 대해서도 형님들이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고 생각하며 형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생각을 잘하여 복을 받았습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울 왕이 못되게 굴어도 기름 부음을 받은 종은 하나님의 종이요, 잘잘못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므로 기름부음을 받은 종에게 손대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울 왕이 죽어 시체가 토막 나도, 다 모아 장례를 치러주고, 자손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므비보셋을 자기 밥상에서 같이 식사하게 하는, 선하고 하나님을 감동시킬 만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복을 받았습니다.
룻은 홀로 된 시어머니 끝까지 모시고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룻 1:16~17)”고 고백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감동 받으셨습니다.
부산의 침례병원의 역사를 보면, 설립하신 선교사님께서 일부러 돈을 떨어뜨려 놓고 일하는 사람을 테스트했습니다.
그러나 이 집사님은 동전 하나도 가지지 않고 챙겨놓았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이 안심하고 집사님께 병원을 맡겼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나는 하나님 앞에서 살겠다.’는 생각으로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보시고 감찰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저울질하십니다. 축복받으려면 마음관리, 즉 생각을 잘해야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축복의 길, 저주의 길, 성공의 길, 실패의 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까지도 다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좋은 생각을 하고 살면, 생각하기만 해도 이루어집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 보면,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우리가 생각하기만 해도 이루어집니다.
예레미야 4장 14절에 보면,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바꾸면 복을 받습니다. 나병환자 나아만도 생각을 바꾸고 순종하여 요단 강에 일곱 번 목욕하여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자기 생각이 나은 것으로 알고 살던 사람들은 이제라도 생각을 바꾸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복 받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면 복을 받습니다.
마태복음 21장 28~31절에 보면,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생각을 잘못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이 있다면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생각이 바뀌면 축복의 문이 열리고 기적이 생기고 기도 응답이 됩니다.
우리는 생각을 잘 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주는 것은 눈입니다. 그러므로 되도록이면 좋은 것을 보고 좋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좋은 책을 보고, 신문은 너무 많이 보지 말고, 성경을 많이 보고, 은혜 받은 자의 책을 보십시오.
그 다음은 귀를 통해서입니다. 좋은 말을 들으면 좋은 생각이 들어오고, 나쁜 말을 들으면 나쁜 생각이 듭니다. 설교도 은혜롭고 좋은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좋고 은혜로운 것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환경과 문화에 영향을 받습니다. 집에서 신앙생활하기 어려운 분은 교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일본에 교회가 없는 이유는 환경과 문화가 은혜 받기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환경을 이기든지 바꾸든지 그렇지 않으면 피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났듯이 떠나야 합니다. 롯이 소돔 고모라를 떠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집의 환경을 은혜롭게 해야 합니다.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것을 듣고 좋은 정보가 들어올수록 좋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나쁜 것을 보고 나쁜 것을 생각하고 나쁜 것을 보면 나쁜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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