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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10장

택함 받은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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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4-12 13:25 조회3,3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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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함 받은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

 

택함 받은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

2020년 05월 03일(주일예배)

본문 / 고린도전서 10:31~33

 

본문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중에도 성실한 사람은 자신이 맡은 일을 잘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은 자신이 맡은 일을 잘 하려고 할 뿐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삶의 표준으로 하여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참으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요,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요,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를 선택할 때에도 신중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하나님을 만나려는 마음으로 교회를 선택합니다.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십니다. 무엇을 생각하는가를 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마음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유익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이 교회에 많다 보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로마서 14장 23절에 보면,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 믿음을 따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믿음을 따라 하지 않는 사람은 무엇을 하든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하든 믿음을 따라 해야 합니다.

 

믿음은 보배와 같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믿음이 있는 사람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합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합니다.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려고 합니다. 본문 고린도전서 10장 31~33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산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자녀들이 입시를 치를 때, 부모님들이 하루 종일 기도합니다. 무조건 합격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불교 신자들의 기도와 다를 바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렇게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렇게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며 살기 원합니다.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데 도움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맡아주십시오. 모든 것을 형통하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대학교에 간 후에 교회에 가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며 산다면, 길을 막아주세요.”라고 기도한다면, 100% 응답 받습니다.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복 받는 비결입니다. 사업하는 분들은 무조건 사업이 잘 되기를 바라고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일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마음이 즐겁습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은 공부하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공부할 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십니다. 총명하게 하십니다. 공부가 재미있습니다.

 

목회자들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릴까를 생각하고 목회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설교를 잘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예배드립니까. 물론 은혜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 중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잊고 있습니다. 이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대부분은 유행을 따라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있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갑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다 보니 목회자 중에는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설교를 하려고 하는 목회자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디에 관심이 있는가,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생각하여 사람들을 만족시키고 감동시켜 구름 떼처럼 많은 사람이 모이는 교회를 꿈꿉니다.

이런 목회자는 사람들로부터 박수를 받습니다. 사람들의 인기를 끕니다. 2천 년 전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4절에 보면,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세에 많은 성도들이 타락하여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게 될 것을 알고 경고했습니다.

 

말세가 되면, 기독교인들이 타락합니다. 바른 교훈을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라 스승을 찾습니다.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릅니다. 진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큰 죄악을 범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2~13절에 보면,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진리를 믿어 구원 받습니다. 그런데 진리에서 돌이키면 어떻게 됩니까? 진리에서 돌이킨 사람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믿는 것, 불의를 회개하고 버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말세에는 배도하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7장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성경 중에는 이해되는 말씀도 있고, 이해되지 않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중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꾸며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1%도 가감할 수 없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말씀하신 것을 가리켜 ‘복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복음이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인 복음은 진리입니다. 거짓이 조금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집니다.

 

갈라디아서 1장 9~12절에 보면,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4~16절에 보면,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복음입니다. 복음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복음의 진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믿고 진리를 따라야 합니다. 진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면 멸망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들을 때에 믿음이 생깁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들을 때에 믿음이 생깁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진리요 복음입니다.

 

목회자는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허탄한 이야기를 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끌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진리에서 돌이킨 허탄한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 복음을 들을 때에 믿음이 생깁니다.

진리에서 돌이킨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는 사람은 진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무엇이 진리인지 분별할 능력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단에 쉽게 빠집니다. 심판을 받아 멸망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4절에 보면,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는 사람은 교회에 열심히 다녔다 해도, 교회에서 수십 년 동안 봉사했다 해도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따라 행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합니까?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며 사는 사람은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좁은 길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4)”고 말씀하셨습니다. 택함 받은 사람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고 하고, 그것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100% 응답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고린도전서 10장 31~33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거치는 자’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자신이 생각한 대로만 하려고 합니다. 매사에 고집을 부립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사람들과 부딪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도 은혜를 받으면 다 변합니다. 은혜를 받고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됩니다. 완전히 달라집니다.

좋은 교회에는 거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은혜를 받아 변화된 사람이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남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 고집을 부리는 사람을 우리 교회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개척 초기에는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오늘 밤에 저를 데려가시든 저 사람을 데려가시든지 택하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결사적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니가 문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제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저는 제가 잘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제가 문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붙잡고 일하시지, 그 사람을 붙잡고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제게 맡기신 양일 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가 부흥하는 것은 제게 달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붙잡고 일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에 무슨 일이 있든지 성도들을 원망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든지 제게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결심하고 나니 마음이 평안했습니다. 기뻤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제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목사가 되면, 다른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는 책망하는 설교, 비판하는 설교를 많이 했습니다. 그 후에는 제가 은혜 받은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성도들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부흥되었습니다. 제가 변하니 모두 변했습니다.

목회자가 깨닫고 달라져야 교회가 달라집니다. 목회자가 철이 없어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하고, 밤낮 성도를 원망하면, 교회가 부흥할 수 없습니다.

 

본문 고린도전서 10장 33절에 보면,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나와 같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 보면,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설교자는 사도 바울을 본받아야 합니다. 성도들의 형편을 생각하고 성도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설교하려고 하지 말고, 설교자 자신이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설교자 자신이 말씀대로 살면서 본을 보여야 합니다.

설교자 자신은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 성도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이렇게 살라고 설교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설교는 감동이 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어떻게 사는가를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설교자가 말씀대로 살면서 본을 보여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감동을 받습니다.

 

본문 고린도전서 10장 33절에 보면,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 심지어 원수라고 할지라도 기쁘게 해주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신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라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의미입니다.

누가 이렇게 살 수 있습니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살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고,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 최고의 전도방법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다르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전도가 저절로 됩니다. 이것이 최고의 전도법입니다. 이렇게 해야 민족 복음화가 됩니다. 세계 복음화가 됩니다.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모든 민족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전도한다고 해서 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까지 올 수는 있습니다. 교회에 온다고 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전도해서 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것은 매우 귀한 일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보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가 아니라면, 예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아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을 통해 구원 받은 사람이 많지 않은 듯합니다. 분명한 것은 사도 바울을 통해 디모데라는 훌륭한 제자가 생긴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훌륭한 종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하나님의 훌륭한 종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도행전 1장 14절에 보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까지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모든 것을 제쳐두고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성령을 받기까지 전심전력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해도, 철저히 회개하지 않으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2장 38~39절에 보면,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우리의 죄를 사함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철저히 회개하며 기도할 때, 성령의 불이 임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보면,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족속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레위지파 중 아론의 자손들만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은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61장 5~6절에 보면, “외인은 서서 너희 양 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15장 15~16절에 보면,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을 전도하여 예수님을 믿게 할 뿐 아니라 이방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물로 드리게 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가리켜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제사장의 직분을 가지고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목회자만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 그런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믿게 하여 구원 받게 해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에게 평생의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들을 뿐 아니라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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