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먹이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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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8 13:19 조회3,365회 댓글0건본문
젖먹이 신자
젖먹이 신자
2010년 11월 05일(금요철야)
본문 / 고린도전서 3:1-3
성경에 보면, 아주 훌륭한 종교인 같은데, 실제로는 믿음이 전혀 없는 사람이 나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같은 사람입니다.
유대사회에서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종교 지도자였습니다. 보통 평신도가 아닙니다. 그들은 성경도 잘 알고, 기도도 많이 하고, 거룩하게 산다고 자부하는 특별한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18장 11~12절에 보면,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이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기도할 때에 세상에서 죄 많은 인간을 들먹이며 “우리는 그들과 같지 않게 하심을 감사합니다.”라고 스스로 의롭다고 하면서 기도했습니다.
마태복음 23장 23~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훌륭한 사람들처럼 보이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이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겉으로는 깨끗한 척하지만, 마음속에는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지적하시며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라고 무섭게 책망하셨습니다.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한 신앙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눈으로 볼 때, 그들은 전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고, 겉과 속이 다른 잘못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을 칭찬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그들 속에 성령이 없습니다.
유다서 1장 19절에 보면,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 안에는 성령이 계시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 보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성령의 일을 받지 않습니다. 성령이 없고, 성령을 알 수도 없고, 성령의 역사를 아주 어리석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5장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보셨습니다.
누가복음 11장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과 등진 사람들입니다.
첫째, 성령과 등졌습니다. 성령이 그 안에 없습니다. 둘째,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믿음 없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릅니다.
그리고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원 받지 못합니다. 아무나 회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이 계신 사람이라야 회개할 수 있지, 성령이 없는 사람은 회개할 수 없습니다.
회개가 되지도 않고, 회개할 마음도 생기지 않습니다. 죄를 짓고 악을 행하는 일에 정신이 없지, 회개할 겨를이 없습니다.
탕자는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아버지께 돌아왔습니다. 탕자가 어떻게 돌아올 수 있었는지 아십니까? 탕자는 자기 아버지가 어떤 아버지인지 알았기 때문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아는 믿음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아무나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성령께서 회개할 마음을 주셔야 회개할 수 있습니다.
그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계신 사람은 하나님이 아버지이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로마서 8장 15~17절에 보면,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믿을 수 있도록 증언해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이 그 안에 계신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 “아버지, 불쌍히 여겨주세요. 용서해주세요. 축복해주세요.”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회자 중에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 눈에는 좀 이상하게 보입니다.
저는 하루 종일 아버지를 부르며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인지, 세상 아버지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제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 아버지가 얼마나 좋은 분이신가를 알고 난 뒤부터 아버지가 있는 세상 친구들이 하나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아버지들과 비교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 하나님 아버지가 얼마나 좋으신 아버지이신가를 깨닫고, 하루 종일 아버지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마가복음 12장 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부들을 도와주어야 하는데, 바리새인들은 얼마나 못된 사람들인지, 과부의 가산을 슬쩍 빼돌렸습니다. 그리고 기도 많이 한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사람들이 아주 많이 다니는 곳에서 손들고 오래 기도하며 거룩한 척 행동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얼마나 가증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6).
누가복음 16장 14절에 보면,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돈을 좋아한다는 것은 하나님보다도 돈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과부의 가산을 삼키고, 돈이 우상이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책망하실 때, 바리새인들은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모이기만 하면,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까 공모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끼면,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면 됩니다. 그런데 회개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죄를 지적하는 예수님을 죽이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성령이 없고 믿음이 없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습니다.
오늘날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믿음 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친구를 따라다녔기 때문에 교회생활이 습관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나지는 못했고, 그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전혀 없습니다. 구원의 확신, 천국, 지옥, 심판이 하나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어도 거짓된 삶을 삽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주색에 빠지고 음란한 죄를 짓다가도, 주일에 기도 순서를 맡으면, 거룩한 척 기도합니다. 그리고 직장에서 뇌물을 받기 좋아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얼마나 악독한 짓을 하는지 모릅니다.
제가 아는 어느 교회에서는 목사님께서 기도를 많이 하셔서, 목사님께서 그 교회에 부임한 지 1년이 되었는데, 이전보다 7~8배 부흥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의 장로 중 몇 사람이 그 전에는 자기들이 교회에서 주인 노릇, 왕 노릇을 했는데, 교인이 많아지니 자기들끼리 왕 노릇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 사람들이 목사님을 찾아가서 우리는 부흥을 원하지 않으니 당장 나가라, 나가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 많이 하시는 훌륭한 목사님은 그런 사람들과 싸우지 않습니다.
그들은 신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교회가 얼마나 많은 줄 압니까?
그리고 자기들은 부자로 살면서 목사님은 가난해야 된다며 생활비, 월급을 일부러 주지 않는 교회도 있습니다.
저도 부교역자 시절에 3개월 동안 사례비를 받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교회는 사례비를 안 주려는 교회구나’라고 생각하고 사례비를 받지 않기로 각오하고 일했습니다. 목숨 걸고 일했습니다.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 하나님께서 충성된 종을 굶기시겠습니까.
4개월 후에 아주 적은 액수의 사례비를 처음으로 받았습니다. 까마귀를 통해 먹이시듯, 하나님께서는 그 해에 얼마나 축복해주셨는지 모릅니다.
성도들 가운데 은혜 받은 믿음의 사람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분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고, 하나님의 종들이 어려울 때에 돕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부족함 없이 오히려 풍성한 한 해를 보냈습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에 보면,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교회에 많습니다.
마태복음 10장 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종들을 영접하고 대접하는 것은 주님을 대접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고, 주의 종을 대접하는 것은 주님을 대접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누가복음 10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역자에게 생활비를 주지 않고, 힘들게 하는 것은 예수님께 못된 짓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이 천국에 가겠습니까.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은 사람입니까.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보면, 염소들이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라고 말씀하시고,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마 25:4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옥에 간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헛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려면 구원 받을 믿음을 가져야 하는데, 자기 멋대로 살면서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면 구원 받을 줄 착각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회개하지 아니하면, 지옥의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는 젖먹이 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는 하지만, 아직 믿음이 어린 사람들입니다.
본문에 보면, 이들을 가리켜 ‘육신에 속한 자’라고 했습니다. 본문 고린도전서 3장 1~3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들 속에 성령이 계시므로 믿음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어린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지만 매우 작아서,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세상을 더 사랑하고, 인간을 더 사랑하고, 자식을 더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는 하지만, 매우 작은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양다리를 걸치고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그리스도인 같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불신자 같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때에는 성령을 따라 행하고, 어떤 때에는 육신을 따라 행하며 왔다 갔다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24절에 보면,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8장 5~8절에 보면,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8장 12~14절에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과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령의 생각대로 사는 사람이 있고, 육신의 생각대로 사는 사람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젖먹이 신자는 언제나 양다리를 걸치고 있습니다. 성령을 따라 살 때에는 믿는 사람 같지만, 육신의 소욕을 따라가면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오늘날 교회에 매우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집사 장로가 됩니다.
젖먹이 신자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시기가 있습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싫어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부자가 되는 것을 보면 배 아파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먼저 장로가 되면 배 아파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옆 교회가 부흥되어 자기 교회보다 잘되면 배 아파하고, 그 교회를 비난합니다.
교회 부흥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목사가 설교 잘한다고 해서 교회가 부흥된다면, 세상에 부흥되지 않을 교회가 어디 있겠습니까.
교회 프로그램이 좋고 제자훈련을 잘한다고 교회가 부흥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이든 다 해봐도 부흥되지 않는 교회는 부흥되지 않습니다.
목사님들이 정보가 많고, 지식이 많고, 설교 자료가 많고, 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교회가 부흥된다면, 작은 교회는 없을 것입니다.
부흥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합니다. 남을 시기하고 미워해서 어떻게 축복받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의 은혜를 받기 전에 서로 시기하고 질투했습니다. 마태복음 20장 에 보면,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두 아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서 왕이 되시면 한 아들은 예수님의 우편에, 한 아들은 예수님의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말을 듣고 분히 여겼습니다(마 20:20~24).
성령의 은혜를 받기 전, 제자들은 젖먹이 신자였습니다. 누가복음 22장 24절에 보면,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실 텐데, 제자들은 누가 더 크냐 서열 다툼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무슨 서열이 있고, 장로님들 사이에 무슨 서열이 있습니까? 그런 생각은 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6~27)”,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1~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분쟁이 있습니다. 그래서 화평하지 못합니다.
왜 분쟁이 생기는지 아십니까?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형제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분쟁이 생깁니다. 사람을 따라 행하기 때문에 분쟁이 생깁니다.
본문 고린도전서 3장 3절에 보면,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오직 예수님만 따라가야 하고, 예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사람 편에 서면 안 됩니다. 사람 편에 서면, 파가 생깁니다.
젖먹이 신자들은 죄를 회개하고 성령의 은혜를 받아 성령의 열매를 맺느냐, 아니면 회개하지 않고 육신을 따르고 육신의 생각대로 살아서 하나님의 원수가 되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빨리 회개하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의 밥이 되기 쉽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우는 사자가 삼킬 자를 찾아 헤매는 것처럼, 마귀들이 발악합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마귀가 공격하여 우울증이 생기고 악신이 들어가 버립니다.
열심이 있는 것을 보고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단들도 열심이 대단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전도하는 것을 보면, 열심이 대단합니다. 다른 종교인들도 열심이 대단합니다. 그러므로 열심만 보고 집사, 장로로 세우면 안 됩니다.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도 열심을 낼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열심을 믿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지 믿음으로 하지 않습니다. 열심을 내어도 믿음으로 내는 열심이 아닙니다. 인간적인 계산이 깔려있습니다. 자기 기분에 따라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보이는 예배를 드립니다. 강단에서 기도할 때에도 진실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신경쓰며 사람에게 맞춰서 기도합니다.
헌금할 때에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헌금합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사람을 보고 헌금하지 마십시오.
목사님이 마음에 든다고 헌금을 많이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헌금을 적게 하는 사람은 사람을 보고 사람을 믿는 것이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기복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 받겠다고 십일조헌금을 드립니다. 또 조건부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감사할 일을 해주셔야 감사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면, 감사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감사하고,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고, 지금 살아 있는 것도 감사하고, 하나님의 집에 나올 수 있는 것도 감사합니다. 말씀 듣게 된 것이 감사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감사하고,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게 된 것도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 매우 많습니다.
기분에 따라 헌금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많이 헌금하고, 기분이 나쁘면 헌금하지 않습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찬양도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잘한다는 칭찬을 듣기 위해 찬양하는 것은 헛찬양하는 것입니다. 찬양은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양하는 사람들은 주님만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올려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교회에서 봉사할 때에도 직분 때문에 마지못해서 봉사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전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이기 때문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전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믿음은 없어도 열심이 있어서 총동원 전도할 때 아이들은 많이 데리고 왔습니다. 마음이 아픈 것은 죄를 많이 범하고, 악한 짓을 하고,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라 아이들을 다 실망시키고 말았습니다. 열심을 가지고 아이들을 데리고 왔는데, 믿는 사람의 본을 보여 주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 전도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실망하겠습니까.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 보면,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평생 복음을 전했는데, 남들은 구원 받고, 자기는 버림 받을까봐 항상 두려워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고, 성령의 생각을 따라감으로써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첫째, 성령의 사람은 작은 죄라도 철저히 회개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죄를 적당히 넘기지 않습니다. 작은 죄라도 철저히 회개하기 때문에, 아주 거룩하게 살고 항상 겸손합니다. 작은 죄를 범해도, 내가 죄인인 줄 아니까 겸손합니다. 그래서 은혜를 더 받게 됩니다.
둘째, 성령의 사람들에게는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항상 감사와 기쁨이 넘칩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할 것을 많이 깨닫게 되어 아주 행복하고 기쁨이 충만합니다. 성령의 사람에게는 원망과 불평이 없습니다.
셋째, 성령의 사람은 항상 주를 위해서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충성된 일꾼이 됩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부흥됩니다. 수영로교회가 왜 이렇게 부흥되었느냐 하면, 성령 받은 성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전도하고 봉사합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이 행복하고 좋아서 그렇게 합니다. 이런 분들이 많기 때문에 교회가 부흥되는 것입니다.
넷째, 성령의 사람은 날마다 날마다 변화됩니다.
주님을 닮아갑니다. 날마다 날마다 영적으로 성장합니다.
다섯째, 성령의 사람은 무엇보다도 사랑이 많습니다.
성령은 사랑의 영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의 첫 번째가 사랑입니다. 과거에는 사랑이 너무 없어서 미워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은혜 받고 난 후에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 사랑이 많아져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려고 하고 사랑을 베풀고 삽니다. 이런 사람이 진짜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성령의 사람들이 얼굴이 은혜롭고 예쁘게 보이는 것은 마음에 사랑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하면, 얼굴이 일그러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잘 믿고 은혜 받은 사람들은 얼굴이 천사처럼 변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볼 때, 부러워해야 합니다. 얼굴만 봐도 복되게 생겼고, 행복해보여야 합니다. 그런 모습으로 살아야 저절로 전도되고, 더 좋은 동네가 되는 것입니다.
여섯째, 성령의 사람은 옳고 그른 것을 따지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기 때문에, 싸움이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잘못된 사람을 보면 불쌍히 여기고, 그가 어려움을 당하면 눈물 흘리며 기도해주고, 그가 잘되기를 축복하며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진리에 어긋나지 않았다면 다 받아줘야 합니다. 너무 따지고,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면 안 됩니다.
일곱째, 성령의 사람은 승리의 삶을 살게 됩니다.
마귀를 이기고, 죄를 이기고, 시험을 이기고, 환난을 이기고, 승리의 삶을 삽니다.
여덟째, 성령의 사람은 주님을 모시고 사는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구원의 확신과 천국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죽음이 와도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 주님 만날 것을 생각하며 밝은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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