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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1장

천한것들을 택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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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5 07:50 조회4,2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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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한 것들을 택하시는 하나님

 

천한 것들을 택하시는 하나님

2009년 03월 13일(금요철야)

본문 / 고린도전서 1:26~31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간은 모두 죄인입니다. 아담이 선악과 따먹은 이후에 점점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시대가 갈수록 인간은 더 악해지고 음란해졌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죄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거룩한 척하고 의로운 척하면서 세리와 죄인들을 멸시하고 천대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세리와 죄인들보다는 바리새인들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이든 세리든 예수님의 눈에는 모두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한 가지 죄가 더 있습니다. 그들은 죄인이면서 마치 의인인 척 외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눈에는 세리나 죄인들보다 바리새인들이 더 문제가 많은 사람이요, 더 큰 죄인들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마 23:13,15,23,25,27,29)”라고 말씀하시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여러 번 책망하셨습니다.

이처럼 자기 자신은 의인인 척, 죄가 없는 척하며 다른 사람을 멸시 천대하는 죄인이 더 큰 죄인입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남을 판단하고 멸시 천대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자기 자신이 죄인인 줄 알고 겸손히 회개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님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요 8:4~5)”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므로 그들의 속을 들여다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뭔가 쓰셨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예수님께 자꾸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일어나셔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뭔가 계속 쓰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해서 젊은이까지 하나씩 떠나고, 예수님과 그 가운데 있는 여자만 남았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셔서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여자에게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요 8: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하다 붙잡힌 더러운 여자에게 “여자여”라고 존칭어를 쓰셨습니다.

여인이 “주여 없나이다”라고 대답하니 예수님께서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 8:10)”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몰려왔던 사람은 양심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들도 음행을 다 저지른 사람입니다. 죄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이 온갖 음란한 짓을 다 한 사람인 것을 예수님께서는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슬그머니 돌을 놓고 도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 누가 이 여인을 정죄할 자격이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 8:11)”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정죄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정죄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정죄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정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 소망 없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죽어야 할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저주하고 악담하고 죽이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살리기 위해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9장 1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 없는 사람을 찾으러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살리고, 죄인을 의롭게 하고, 죄인에게 소망을 주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남을 정죄하는 외식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남을 정죄할 자격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우리도 똑같은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정죄하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처럼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해 구원 받게 해야 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실 때에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어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아담의 자손으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약혼자인 요셉의 아들이 아닙니다.

 

세상적으로는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처럼 보이지만, 예수님은 요셉과 전혀 상관없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함께 살기 전에 깨끗한 처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셨습니다.

왜 그렇게 오셨습니까? 죄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죄인의 자식은 모두 죄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인의 몸만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인은 인류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처녀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신, 죄 없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이 세상에 오게 하실 때, 여인의 몸을 빌려 잉태하게 하실 때, 아무나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장에 보면,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아주 깨끗한 처녀였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뽑으신 사람입니다. 모범적인 부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과 마리아는 마태복음 1장 1절에 기록된 대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믿음의 조상의 후손입니다. 인류 가운데 가장 깨끗하고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족보를 가만히 살펴보면, 그들도 모두 죄인이었습니다. 부끄러운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우상을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누이동생과 결혼했습니다. 그의 부인 사라를 통해 이삭을 낳기 전에 사라의 몸종인 애굽 여인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의 열두 아들 중의 넷째인 유다는 자기 며느리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습니다. 며느리를 통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자손 중 살몬은 가나안 여인인 기생 라합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았습니다. 보아스는 모압 여인이요 과부인 룻과 결혼해서 오벳을 낳습니다. 오벳이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습니다.

위대한 다윗의 족보를 보면 다윗의 조상 가운데 이방인의 피가 많이 섞여있고, 관계가 복잡합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를 통해 솔로몬을 낳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충신인 우리아 장군의 아내를 통해 솔로몬을 낳았습니다. 인류 가운데 가장 훌륭한 가문의 족보가 이렇습니다.

 

여러분의 족보는 어떻습니까? 더 기막힐 것입니다. 족보를 자랑하는 사람처럼 위선자는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족보보다 훌륭한 족보는 세상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기 민족 외의 다른 사람들은 다 이방인이라고 해서 멸시했습니다.

 

특히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한 후, 그곳에 이방인들이 들어와 살면서 살아남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혼합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사마리아 사람은 순수한 유대인이 아닙니다. 이방인들과 섞인 사람이라 이방인도 아니요 유대인도 아닙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멸시 천대하고, 사마리아 사람과 상종하지도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실 때 사마리아를 통과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피곤하셔서 야곱의 우물가에서 쉬셨습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오려고 동네에 들어갔고, 예수님 혼자 우물가에서 쉬셨습니다.

이 때 수가 성에 사는 한 여인이 물을 긷기 위해 우물가로 왔습니다. 이 여인은 동네에서 죄인으로 소문난 사람이었습니다. 그 시간은 우리 시간으로 낮 12시, 햇볕이 가장 뜨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이 나라의 사람들은 대부분 낮잠을 자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길거리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 우물물을 길어가기 위해 우물가에 왔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을 만나기 위해 바로 이곳에 오셨고, 이 여인이 나타나는 시간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 자리에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요 4: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요 4:9)”라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천하게 여기기 때문에 상대하지도 않는데, 어찌하여 당신은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느냐는 의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요 4:10)”고 대답하셨습니다.

 

여자는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요 4:11~12)”라고 질문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14)”고 말씀하셨습니다.

에수님의 말씀을 듣고 여자가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요 4:15)”라고 말했습니다.

이 여인에게는 물 길으러 오는 것이 지옥과 같이 괴로웠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 항상 마음을 졸이며 물을 길으러 왔는데,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물이 있다고 하니 여자는 예수님께 그 물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요 4:16)”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여자는 가슴이 뜨끔했을 것입니다.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요 4:17)”라고 대답하니 예수님께서는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는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요 4:17~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자에게는 언제나 남자가 붙어있었습니다. 과거에 남편이 다섯 명 있었는데, 지금도 남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남자 복은 있는데 남편 복이 없습니다. 얼마나 불행합니까.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보통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 19절에 보면, 여자는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라고 하며 예배에 대해 예수님께 물어봤습니다.

요한복음 4장 25절에 보면, 여자는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그가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여인을 천하고 죄 많은 여인으로 보았지만, 이 여인은 예배와 메시아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형편없는 인간인 것 같은데, 이 여자만의 비밀이 있었습니다. 이 여자는 예배에 관심이 있었고, 메시아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요 4:26)”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것을 알고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네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 4:29)”라고 말했습니다.

이 여인은 자기가 만난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었을 뿐입니다.

 

요한복음 4장 39~42절에 보면,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예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은 지옥에 갈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수가 성 여인은 수가 성 사람들을 구원하는 데 쓰임 받았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누구든지 전도할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이 해결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남자를 정리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깨닫자 어디에서 용기가 생겼는지, 동네 사람들에게 가서 나의 이 모든 비밀을 알고 이야기한 사람을 와서 보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이 여인이 전도할 용기가 어떻게 생겼을까요?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 20-21절에 보면,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율법은 무엇이 죄인지 분별하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알면서도 범죄합니다.

그런데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했습니다. 똑같이 죄 사함을 받았다면, 죄가 많은 사람이 죄가 적은 사람보다 더 은혜를 더 많이 받은 것입니다.

수가 성 여인은 다른 사람보다 더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감격이 더 컸습니다. 자신은 죄가 많은 부끄러운 죄인이기 때문에 감격스럽습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지,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이 여인은 왜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아무도 없는 낮 12시에 우물물을 길으러 와야 했을까요? 사람들이 이 여인을 조롱하고 멸시 천대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남의 말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야기꺼리가 생기면 모여 조잘거립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별소리를 다 합니다.

이 여자는 그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이 여자는 유대인들과 사마리아 사람들로부터 멸시 천대를 받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남을 멸시하고 천대할 자격이 있습니까? 멸시 천대 받을 인간이 남을 멸시 천대한다면, 그 사람은 더 큰 죄인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의 족보를 보면, 얼마나 부끄러운 죄인의 자손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치 자기들이 특별한 민족인 것처럼 생각하고, 이방인들을 멸시하고 사마리아 사람들을 멸시했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사람들은 수가 성 여인을 멸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다 똑같은 죄인인데, 남을 멸시하는 못된 짓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더 큰 죄인입니까? 남을 멸시하는 사람들입니다.

 

본문 고린도전서 1장 28-2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에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패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우리는 왜 예수님께서 수가성 여인을 택하시고 그를 통하여 수가성 사람들을 구원하게 하셨는지 그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이 여인을 멸시하고 비방한 수가 성 사람들은 수가 성 여인보다 더 큰 죄인입니다. 그리고 수가 성 사마리아 사람들을 멸시 천대한 유대인들은 더 큰 죄인입니다.

주제 파악도 못하고 남을 멸시 천대한 그들보다 차라리 멸시 천대 받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더 나은 사람입니다.

 

본문 고린도전서 1장 26~31절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랑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랑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예레미야 9장 23~2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의 분수를 아는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아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당시 최고 학문인 가말리엘 문하생으로서 총독과 왕이 인정하는 인물이요, 그 시대에 손꼽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생각하고 그들을 붙잡아 죽이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후 그는 겸손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됩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겸손해집니다.

 

고린도전서 15장 8절에 보면,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9절에 보면,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와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에베소서 3장 8절에 보면,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 보면,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얼마나 겸손한 사람인가 알 수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함부로 남을 판단하지 않고, 남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남을 정죄하지 않고, 멸시하지 않으며, 비난하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 자랑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을 기뻐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겸손한 자를 높이 들어 쓰시고, 겸손한 자를 통해 영광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가 성 사람 중 가장 훌륭한 사람, 수가 성에서 제일 높은 성주를 통해 수가 성 사람을 구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멸시 받고 천대 받는 여인을 택하셔서 수가 성을 구원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수가 성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사람을 도구로 쓰십니다. 여러분이 전도해서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와 구원받았다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고 구원 받게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한 사람도 구원 받게 할 수 없습니다.

이 일에 쓰임 받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셨는데, 상은 우리가 받습니다. 영혼 구원에 쓰임 받는 사람은 칭찬을 받습니다. 면류관 쓰게 됩니다. 영광을 얻습니다.

 

둘째, 아무리 부족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면 못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강도가 칼을 쥐고 있으면, 그 칼은 강도짓에 사용됩니다. 외과의사가 칼을 쥐고 있으면, 그 칼은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는 데 사용됩니다. 누가 쥐고 있는가에 따라 차이가 큽니다.

아무리 부족한 사람이라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것, 약한 것, 천한 것. 멸시 받는 것, 없는 것을 택하여 쑤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미련하고 약하고 천하고 멸시 받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면 우리를 통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는가입니다.

 

셋째,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든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똑똑한 인간들이 자기가 잘나서 자기가 한 것처럼 생각하고 자기가 영광을 받으려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일이 잘 되었을 때, 우리는 자기 자랑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넷째, 남을 멸시하는 죄인은 멸시받는 죄인보다 더 큰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미련한 자보다 지혜롭다고 자랑하는 자가 더 큰 죄인입니다. 약한 자보다 강하다고 자랑하는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고, 버림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멸시 천대받는 수가 성 여인을 선택하셨습니다.

 

지혜롭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지혜롭다고 자랑하는 사람을 쓰시지 않으십니다.

강하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강하다고 자랑하는 사람을 쓰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미련하고 약하다고 생각하는 겸손한 사람을 쓰십니다.

 

다섯째, 자신의 죄가 적다고 생각하는 자보다 죄가 많다고 생각하는 자가 더 큰 은혜를 받기 때문입니다.

더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일수록 자기 자신이 큰 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들이 자기보다 더 훌륭하게 보입니다.

남들의 허물과 못난 것이 보이는 사람은 교만이 꽉 차 있는 사람입니다. 회개할 것을 다 회개하지 않은, 영적으로 어두운 사람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자기 죄와 허물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왈가왈부할 자신도 없고 용기도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와 비교해 보면 다른 사람이 훨씬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멸시 천대받는 수가 성 여인이 어떤 의미에서는 더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요, 은혜를 받는 사람입니다.

 

여섯째, 하나님께서는 과거보다 현재를 보시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18장 21~24절에 보면,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과거에 죄를 많이 범한 사람이라도 그 죄를 회개하고 끊어버리고 돌이켜 의롭게 살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죄를 하나도 기억하시지 않으십니다. 지금 의롭게 사는 모습을 보시고 축복하십니다.

 

반대로 과거에 바르게 살고 좋은 일을 많이 했어도, 지금은 남을 괴롭히며 나쁜 짓을 많이 하는 못된 인간이 되었다면, 과거에 행한 의로운 것을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지금 사는 모습을 보시고 심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매이지 마십시오. 과거를 묻지 마십시오. 과거를 고백하지 마십시오. 과거를 고백하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모릅니다. 그 사람에게도 괴로움을 주는 것입니다. 현재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재를 보십니다.

 

수가 성 여인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은 결혼하지 않고 살고 있지만,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었습니다. 과거를 보면 한심하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 수가 성 여인은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보다 현재를 보십니다. 그러므로 죄를 철저히 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잘못된 과거를 철저히 차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변화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어거스틴은 타락했을 때에 별별 짓을 다 했습니다. 사생아를 낳았고, 이단에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변화된 후에는 ‘성자’라고 불렸습니다.

과거 때문에 괴로워하지 마세요. 오늘 이 순간부터 정말 멋지고 거룩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일곱째, 예수님을 만나면 변하여 새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수가 성 여인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았습니다. 수가 성 여인은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헌신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달려가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사람들을 예수님께 나아오게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다가 예수님을 믿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헌신된 일꾼이 많이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통해 구원 받는 자가 많아지기 바랍니다.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은 다릅니다. 삶의 태도가 다릅니다. 간증거리가 많습니다.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게 복이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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