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따라 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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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7 14:48 조회3,383회 댓글0건본문
믿음을 따라 행하라
믿음을 따라 행하라
2010년 06월 11일(금요철야)
본문 / 로마서 14:20~23
본문에 보면, 당시 로마교회에서는 ‘고기를 먹어도 되느냐, 먹으면 안 되느냐’, ‘포도주를 먹어도 되는가, 안 되는가’하는 두 가지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둘로 나누어져서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은 고기를 먹는 사람을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고기를 먹는 사람은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을 업신여겼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서로 분쟁하다보면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실망하고 낙심하게 되어 ‘이제 교회에 나가지 말아야겠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밤낮 싸우기만 한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도 생깁니다.
로마서 14장 1~3절에 보면,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14장 15절에 보면,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14장 20절에 보면,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로마교회에서 일어난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고린도전서 8장 7절 이하의 말씀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8장 7~13절에 보면,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기를 먹어도 된다, 먹으면 안 된다는 말이 나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시장에서 파는 고기 가운데 우상 앞에 제사를 지낸 고기가 많았습니다. 고기가 너무 많이 남으니까 시장에 팔았습니다. 그래서 시장에 가서 고기를 사먹을 때, 그 고기가 우상 앞에 제사를 지낸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시장에서 고기를 사먹는 사람은 모르고 먹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우상의 제물일 수 있으니까 아예 먹지 말아야 한다.”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거기에 귀신이 붙어있는 것은 아니므로 먹어도 된다.”라고 하며 의견이 나누어진 것입니다. 이 문제로 복잡한 일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자기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사도 바울은 원칙적으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만물은 모두 깨끗하므로 먹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거기에 귀신에 붙어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다만 우상 앞에 제사 지낸 제물이라는 것을 알고서도 그것을 먹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는 얼마든지 고기를 먹을 수 있고 그것을 먹을 수 있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만 자기가 이 음식을 먹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 “사도 바울도 우상의 제물을 먹는데 나도 먹자.”라고 하며, 우상의 제물인 줄 알고도 먹어 타락해버리면, 그 영혼을 멸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자기는 믿음이 있어서 극복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은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이 먹는 것을 보고 담력을 얻어서 먹은 것이니 믿음을 저버리는 것이고, 그 사람을 결국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기가 고기를 먹는 것을 보고 낙심하고 타락해서 잘못된 사람이 생길까봐 자기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자기는 자유롭지만 다른 사람이 실족할까봐 그렇게 결심한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을 보면, 여기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1~3절에 보면,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뒤로는 나쁜 짓을 하면서 겉으로는 선한 척하는 외식하는 사람들이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결혼한 사람이 죄 짓기가 쉽습니까,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죄 짓기가 쉽습니까?
저의 경우에는 총각으로 있을 때에는 어려움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조심해야했습니다. 말도 조심해야 하고, 행동도 조심해야 했습니다.
심방을 가면 예배를 드리고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집에서는 제게 “결혼할 사람을 정했느냐”고 먼저 물어보셨습니다. 그리고 처녀들이 옆에 와서 앉기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려서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니까 아무도 근처에 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일남일녀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혼인해서 함께 사는 것이 정상입니다. 사람의 체질도 그렇게 살아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귀신의 영을 받고 미혹의 영을 받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특별히 거룩하게 산다고 하면서 혼인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또 한 가지는 돼지고기는 먹으면 안 된다, 포도주도 먹으면 안 된다고 하며, 먹지 않으면 특별히 거룩한 사람인 것처럼 행세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미혹의 영을 받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3~5절에 보면,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은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혼인여부나 음식물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거룩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이루어집니다.
본문 로마서 14장 22~23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을 따라서 행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올바른 믿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믿음을 따라 행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행하는 것이 믿음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까?
첫째, 믿음을 따라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아멘’하고 순종하는 사람은 믿음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삽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을 기뻐하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모든 복을 주십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라고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면 가고, 서라 하시면 서고, 동으로 가라 하면 동으로 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살고,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라고 말씀하셨을 때에도 아브라함은 무조건 순종하여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살았고, 이삭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그랄 지방에 거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행동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 해에 백 배의 복을 주셔서 마침내 거부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여러분, 믿음을 따라 사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따라 살면, 축복이 따라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말씀대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열 명의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고쳐주지도 않으시고, 그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낫지 않았지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제사장에게 가는 도중에 자기 몸이 다 나은 것을 알았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니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말씀대로 행하다 보니 축복이 임했습니다. 믿음으로 살면 복을 받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상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절을 하지 않는 것 역시 믿음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금 신상을 만들어놓고 절하라고 했을 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풀무불에 들어갔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머리카락 하나 상함이 없이 살아나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목숨까지 걸었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대단한 것입니다. 믿음 따라 행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가리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순교를 하셨습니다. 믿음을 따라 살다가 믿음으로 죽은 사람입니다.
어떤 손해를 보게 된다 해도 각오하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도 대단한 믿음이고, 그것이 바로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장로님은 음식점을 하시는데, 주일은 가게 문을 절대 열지 않습니다. 주일마다 온 식구들이 종업원들과 함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음식점 종업원들이 1주일에 한 번씩 쉴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식당에는 1주일에 하루를 쉬니까 한번 들어온 종업원들이 결혼하는 일 외에는 식당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또 장로님은 음식을 특별히 좋은 재료로 정성을 다해서 만들었는데, 그것이 소문나서 주일에 장사를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얼마나 장사가 잘되었는지,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사실 안식일에 제일 돈을 많이 버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문 열고 장사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장로님은 손해가 된다 할지라도 각오하고 문을 닫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결국 장로님이 망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 음식점에 일하는 종업원 중에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된 분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저는 어렸을 때 주일에는 절대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월요일에 시험을 친다고 해도, 토요일 12시까지 공부하고 기도하고 잤습니다. 그리고 주일에는 온종일 교회에 가서 예배하고 찬양하고 봉사하고 집에 와서 일찍 잤습니다. 그리고 밤 12시에 일어나 공부하고 월요일에 시험을 쳤습니다.
남보다 공부하는 시간이 적었기 때문에 공부를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시험을 쳐서 낙방한 적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합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행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반드시 축복을 받습니다.
둘째, 믿음을 따라 행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십자가에 달려 못 박히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새 기도하실 때, 십자가의 고난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할 수만 있으면 고난이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막 14:36). 이것이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결정하기 어려울 때에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소원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십시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가는 것이라면 제가 가고, 가지 않는 것이 뜻이라면 가지 않기를 원합니다. 아버지의 뜻만 말씀해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지나고 보니 제가 이렇게 기도하기만 해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셨습니다. 그 기도가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셨습니다.
서울에서 저에게 오라고 하는 교회가 다섯 교회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환상을 보여주시며 “이 양떼들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부산에 수영로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보여주신 대로 축복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조건 순종하겠습니다.” 이것이 곧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대로만 사셔서 믿음으로 행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므로 받은 복이 너무나도 큽니다.
셋째, 믿음을 따라 행하는 것은 물질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물질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4장에 보면, 소돔 땅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소돔 땅에 살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붙잡혀갔습니다. 아브라함이 집에서 훈련시킨 318명을 데리고 쳐들어가서 적을 무찌르고 포로로 잡혀간 롯과 사람과 빼앗겼던 물질도 찾아왔습니다.
그때 소돔 왕이 너무 고마워서 아브라함에게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소돔 왕에게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창 14:22~23)”라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태도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만약 아브라함이 소돔 왕의 말을 받아들여서 물건을 다 가졌다면, 평생 축복을 받아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다는 말을 들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소돔 왕이 아브라함을 부자 되게 했다고 항상 듣게 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잘 살게 된 것인데, 하나님의 영광을 소돔 왕이 대신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소돔 왕으로부터 내가 아브라함을 부자가 되게 해주었다는 그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가닥도 가지지 않겠다고 하면서 엄청난 물질을 포기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행하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나병에 걸려서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엘리사가 요단 강 물에 들어가서 일곱 번 씻으라고 하니까 나아만은 그대로 행하고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그때 나아만은 은 십만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엘리사에게 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거절하고 하나도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쳤지, 자기 능력으로 고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가지고 돈을 벌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 은사를 행하는 사람들은 돈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타락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믿음도 능력도 다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려 버립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은사를 거저 받았으니 우리도 거저 주어야 합니다.
엘리사는 믿음으로 행한 것입니다. 돈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일입니까.
넷째, 믿음을 따라 행하는 것은 꿈을 해몽하고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말한 요셉과 같이 행동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렸습니다. 창세기 40장 8절에 보면, 요셉이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자기가 해석하는 것이 아니고,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고 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내세우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41장 15~16절에 보면,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셉은 철저하게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41장 25절에 보면,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창세기 41장 28절에 보면, “내가 바로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창세기 41장 32절에 보면,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앞에서 “하나님이 하셨다.”라고 자주 말했습니다. 여러분도 직장에서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했을 때, 직원들과 사장이 칭찬할 때 “이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말할 수 있다면 이것이 믿음의 행위인 줄 믿습니다.
다니엘도 철저히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렸습니다. 다니엘 2장 26~28절에 보면, “왕이 대답하여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꾼 꿈과 그 해석을 네가 능히 내게 알게 하겠느냐 하니 다니엘이 왕 앞에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물으신 바 은밀한 것은 지혜자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쟁이가 능히 왕께 보일 수 없으되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모르는 느부갓네살 왕 앞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꿈을 해석해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다니엘 2장 36~37절에 보면, 다니엘은 “그 꿈이 이러한즉 내가 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아뢰리이다 왕이여 왕은 여러 왕들 중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라고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다니엘 2장 44절에 보면, 다니엘은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라고 말했습니다.
다니엘은 언제나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렸습니다. 요셉과 다니엘처럼 하나님께 언제나 영광을 돌리므로 믿음으로 행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으로 행하면 전도가 저절로 됩니다. 다니엘 2장 47절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다니엘에게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라고 말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도 ‘너희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을 축복하십니다.
다섯째, 누가 보든지 보지 않든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사는 것이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5장 5절에 보면,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은 헷 사람 우리아의 일로 실수했지만, 그 일 외에는 평생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이 행하는 모습입니다.
창세기 39장 9절에 보면,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할 때, 요셉은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단호하게 뿌리쳤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가 보든지 보지 않든지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고 정직하게 살게 될 줄 믿습니다.
여섯째, 기도생활에 목숨을 거는 것이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다니엘 6장에 보면,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굴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루에 세 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했습니다.
기도하면 죽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도한다면, 이것은 위대한 믿음입니다. 목숨을 걸고 기도생활을 지켜나가는 믿음은 위대한 믿음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하루에 세 번씩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학교에 갈 때와 집으로 올 때, 그리고 저녁 먹고 나서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받은 복이 얼마나 크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여러분 기도 생활에 목숨을 거시기 바랍니다. 형편대로 기도하지 마시고, 기분에 따라 기도하지 마십시오. 목숨 걸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을 따라 행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면 죽는다고 할지라도 기도하다가 죽으련다.”하는 대단한 믿음을 가집시다.
일곱째, 사람들 앞에서 믿음의 말을 하는 것이 믿음을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24장 15절에 보면, 여호수아는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도 여호수아처럼 “나는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노라”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 앞에서 믿음의 말을 하는 것이 믿음을 따라 행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민수기 14장 7~9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의 모습니다.
우리도 담대하게 믿음의 말을 선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무엘상 17장 45~47절에 보면, 다윗은 골리앗에게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 담대하게 믿음의 말을 하고 달려가면서 물맷돌을 던졌습니다. 물맷돌이 이마에 박히는 기적이 일어나서 다윗은 거꾸러졌습니다.
우리도 어떤 사람 앞에서든 믿음의 말을 담대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믿음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여덟째, 믿음을 따라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열 명의 나병환자가 모두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자기 몸에 병이 나았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바로 예수님께 돌아와서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서 감사드린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눅 17:17~18)”라고 말씀하시고,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눅 17: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스기야 왕도 죽을병에 걸렸다가 나았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은 마음이 교만해져서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습니다.
그 때 정신을 차리고 회개하니 히스기야 왕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진노를 받지 않고 넘어가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섭섭하셨을까요.
여러분,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은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감사해야 합니다. 월급을 받을 때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아는 것이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아홉째, 믿음을 따라 행하는 것은 사람을 따라 행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3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는 믿음이 아주 약한 성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따라서 모였습니다. 그러니까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교회가 평안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따라가지 마십시오. 교회는 모두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므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꼭 명심하셔야 합니다.
물론 교회 안에서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그 사람의 편에 설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교회가 아수라장이 됩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따라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1년 동안 “아버지, 이제 1년 후면 제가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칠 텐데, 평생 주를 위해 사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해서 고등학교 공부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데 꼭 필요하고 유익하다면, 합격만 시키지 마시고 학비까지 모두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고등학교에 가서 타락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지 않는다면, 저는 고등학교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제 앞길을 막아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합격시켜주셨을 뿐 아니라, 학비도 걱정하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공부도 잘하게 해주셨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에도 똑같이 기도했습니다. 1년 동안 진심으로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시험 치고 난 후, 합격자 발표되기 전에 엄청난 액수의 장학금을 받게 하셔서 학비를 걱정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고등학생들도 그렇게 기도해보세요. 이것은 하늘 보좌를 움직일 만한 믿음의 기도입니다. 자기 욕심을 완전히 버리고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반드시 축복하십니다.
수영로교회를 개척할 때에 예배당을 지어주신 장로님께서 그 당시에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분의 십일조만 해도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런데 수영로교회를 개척할 때, 제가 장로님께 한 가지 조건을 말씀드렸습니다. 그 장로님께서 우리 교회에 나오신다면 저는 교회를 개척하지 않고, 그 장로님께서 우리 교회에 안 나오시면 교회를 개척하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저의 믿음의 선택입니다.
그 장로님께서 우리 교회에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얼마나 축복해주시는지, 교회가 매년 두 배 이상 부흥되니까 예산을 세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출 예산만 세우기도 했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지 않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수영로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 축복해주십니다.
우리 교회에 특별히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마치 개미 군단과 같습니다. 누구나 다 함께하고 기도하고 헌금해서 언제나 넘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축복하신 줄 믿습니다.
믿음을 따라 행하면 축복받습니다. 믿음을 따라 행하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십니다. 믿음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로마교회가 고린도교회처럼 음식 문제로 분쟁이 일어나는 것은 참 불행한 일입니다. 어떤 교회는 예배당에 커튼을 다는데 커튼 색깔로 교회가 갈라졌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교회 안에서 의견이 나누어져서 분쟁이 일어날 때 잘 해결하는 방법은 옳고 그른 것을 따지지 않는 것입니다. 진리문제가 아닌 것에 목숨 걸 필요가 없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다 보면 분쟁이 끝날 날이 없습니다.
오직 사랑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해결하면, 이것이 곧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입을 꼭 다물고 기도하기만 하면, 성령께서 다 해결해주십니다. 문제가 문제되지 않고, 안개가 사라지듯 해결됩니다.
원수 마귀는 우리의 혀를 사용하기를 제일 좋아합니다. 그래서 혀 위에 앉아서 누가 옳다 그르다 말하게 해서 교회가 산산조각나게 만듭니다. 마귀에게 혀를 내어주면 안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외에는 입을 열지 마십시오. 입을 꼭 다물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버리십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정말 교회를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도들을 사랑한다면 입을 꼭 다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교회가 평화롭게 되고 하나 되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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