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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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01 10:48 조회5,613회 댓글0건본문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2006년 08월 20일(주일예배)
본문 / 로마서 12:14~21
사도 바울의 본래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바울은 과거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바울은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일곱 집사 중의 한 분인 스데반 집사가 복음을 전할 때 그를 붙잡아 돌로 쳐 죽인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는 ‘사울’이라는 이름이 ‘바울’로 바뀐 것처럼 완전히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사도행전 6장 15절에 보면,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스데반의 얼굴은 은혜충만한 얼굴이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의 능력 있는 설교가 오랫동안 은혜롭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라고 시작하는 그의 설교를 통해 우리는 그가 구약성경을 꿰뚫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7:2).
그러나 사울은 스데반의 힘 있는 설교에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를 갈며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일에 합세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고 눈을 감았습니다(행 7:59~60).
스데반은 자신을 돌로 쳐 죽이는 원수들을 미워하고 저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아달라고 축복하며 하나님 앞에 중보기도를 했습니다.
이 기도는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하시며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기도와 너무나 흡사합니다(눅 23:34).
아마 사울은 스데반이 숨을 거두는 이 모습을 일평생 잊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후 사울은 다메섹이라는 곳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 사람들을 붙잡아 가두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청년 사울은 이날의 회심으로 인해 핍박자에서 예수님을 증거 하는 사도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구원받은 자녀로서 예수 믿는 사람 된 표징을 무엇으로 보여주시겠습니까? 교회에 나간다는 말로 대신하시겠습니까? 교회에 다니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나가면서도 믿기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조롱거리가 되기 쉽습니다.
우리가 참 신자가 되었다면, 그것을 사랑으로 보여주고, 축복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남을 미워하던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을 저주하던 사람이 축복하는 사람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가장 큰 변화는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남을 미워하고 저주하기 좋아하던 사람이 남을 축복하고 선을 베푸는 사람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밸런타인은 고대 로마에 살던 한 젊은 그리스도인의 이름입니다. 많은 초대교인들처럼 그도 신앙 때문에 투옥되어 독방에 격리 수용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창문을 내다보다가 제비꽃이 만발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비록 꽃이 쉽게 손에 닿지는 않았지만 손을 뻗어 몇 개의 하트 모양의 잎들을 어렵게 뜯어낸 후 구멍을 뚫어 “밸런타인을 기억해주십시오”라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는 날마다 계속해서 더 많은 풀잎에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된 날이 바로 성 밸런타인데이로, 이날은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전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의 사랑을 보여주시려고 많은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시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큰 사랑을 받은 우리도 마땅히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왜 남을 미워하고 저주합니까? 그것은 상대방이 죽도록 미운 나머지 험담하고 저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산울림의 법칙과 같이 남을 저주하기를 좋아하는 악한 사람은 자신이 그 저주를 받고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울 왕은 자신의 사위이며 충신인 다윗을 몹시 미워하여 죽이려고, 그가 피하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추격을 멈추지 않고 못살게 굴었습니다. 그 결과 사울은 저주스러운 생을 마쳐야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보면,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남에게 사랑을 베풀면 자신이 사랑을 받게 되고, 남에게 해를 많이 끼치면 자신이 해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을 미워하면 자신이 미움을 받게 되고, 남을 축복하면 자신이 축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남을 저주하면 결국 자신도 저주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북한 공산 정권은 미국을 미워하고, 원수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우리 민족을 도운 우방입니다. 미국은 남한 땅까지 공산화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수십만 명의 군대를 보내주었고, 전쟁에서 수만 명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만일 미국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남한도 공산화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도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이 피를 흘리며 자유를 지켜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북한은 이 세상에서 가장 저주받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북한과 같이 자유가 없고, 매년 수백 명씩 굶어 죽어나가는 나라가 이 세상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백성들이 굶어죽든지 말든지 문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문 18~19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라는 주님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신 32:35).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다만 원수를 사랑하여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놓듯이 그의 얼굴이 화끈거리고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도리어 원수를 사랑하고, 그에게 사랑을 베풀라는 이 말씀은 기독교 외에 어느 종교에도 없습니다. 우리가 어찌하든지 열심으로 복음을 전하여 이 세상을 복음화 하려는 이유는 기독교만이 생명이 있고 구원이 있으며, 기독교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참 진리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고 도리어 원수를 사랑하고, 그에게 사랑을 베풀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며 행할 때 비로소 밝은 세상이 되고, 행복한 세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대로 살지 않고 사람들마다 직접 원수를 갚겠다고 보복한다면 그야말로 이 땅은 증오심으로 가득 찬 지옥과 같은 세상이 되고, 전쟁이 그칠 날이 없는 불행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남을 저주하며 살면 그 저주가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살게 되며, 이런 사람이 많아질수록 이 세상은 우울해지고 불행해집니다.
그러나 서로 남을 축복하며 살면, 그 축복이 자신에게로 되돌아와 자신도 행복해지고, 이 세상도 행복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사람으로,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을 사람들입니다.
창세기 12장 2~3절에 보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며, 너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고 축복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복은 예수 믿는 사람들도 받을 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원수라도 미워하지 말고 용서하고 축복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를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며, 우리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두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원수일지라도 축복하며 살 사람들이므로, 누구든 축복하며 살아야 하지만, 그 중에 더욱 축복하며 살아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부부와 자녀입니다.
저는 언제부터인가 아내에게 “하나님이 당신에게 큰 은혜를 주실 것이며, 크게 쓰실거요. 당신 얼굴엔 복이 가득하오.”라고 축복하였더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 복이 다 내게 돌아왔습니다.
여러분의 남편이 때때로 속을 썩여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무조건 남편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축복하실 거예요.” “당신은 교회의 기둥이 될 거예요.”
특별히 자녀들을 축복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저는 저의 세 자녀가 뱃속에 들어선 순간부터 축복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늘 축복기도를 해주고 있습니다. 제 기도대로 이들이 다 잘 되는 축복을 받았으며, 제가 빌었던 축복이 다시 돌아와 제게 복이 되었습니다.
저는 어느 집사님의 간증을 듣고 큰 감동이 되었습니다. 이 집사님의 남편은 어려서부터 부모에게서 매를 많이 맞고 자랐습니다. 공부도 잘했으나 어떤 때는 1등 못하고 2등 했다고 매를 맞기까지 하며 학대 속에 자라났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악만 남은 그는 생을 비관하며 조직폭력배의 두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좋은 아내를 만나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고 집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잘하다가도 술을 마시고 욱하면 뒤집어엎는 고약한 성질은 여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 아들이 “아빠, 날 위해 축복기도 해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부족한 자신을 믿고 축복해달라는 아들의 말에 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아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하다가 이 남편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후 이 집사님은 교회의 ‘아버지학교’ 책임자로 임명되어 충성을 다하는 큰 일꾼이 되었습니다.
가게를 운영하는 어느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의 가게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큰 가게가 들어섰습니다. 하필이면 경기도 어려운 이때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그 가게의 주인이 미워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이 집사님이 심방 온 목사님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목사님이 좋은 처방을 내려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집사님의 가게만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그 가게도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라고 권면하셨습니다. 이 집사님은 선뜻 내키지 않았지만,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양쪽 가게가 다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과연 이 기도대로 양쪽 가게가 다 잘되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부부간에 서로 축복하고, 자식을 축복하며, 성도끼리 축복하고, 이웃을 축복하며 사세요.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하나님이 축복하라고 말씀하셨으니 무조건 순종하고 축복하십시오. 그리할 때 가정과 교회가 천국이 될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가는 곳곳마다 축복의 통로가 되어 천국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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