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히 쓸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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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8 16:13 조회3,779회 댓글0건본문
귀히 쓸 그릇
귀히 쓸 그릇
2003년 01월 10일(금요철야)
본문 / 로마서 9:19~24
사람은 건강하게 태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건강하게 태어나느냐 태어나지 못하느냐에 따라 평생의 건강이 영향을 받습니다.
건강하게 태어나면 키도 잘 크고 힘도 있고 밥도 잘 먹고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건강하게 태어났더라도 자라는 동안에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건강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건강하게 태어났더라도 건강관리를 못하면 약해지기도 합니다. 태어날 때에 건강하게 태어나지 못했다 해도, 몸 관리를 잘 해서 오히려 건강하게 장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생사화복은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건강하고 키가 크고 잘 먹고 잘 생겨도,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아주 건강하고 잘생기고 공부 잘 하는 사람 중에 일찍 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죽고 사는 것은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 손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건강을 믿고 안심하면 안 됩니다.
성공과 실패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공부를 잘했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학교에서 공부하여 기술이 좋아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지 않으시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복을 받는 것과 저주를 받는 것, 이기고 지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의의 종이 되느냐 죄의 종이 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튼튼한 몸으로 높은 학문과 학식을 가지고 모든 것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그가 하나님의 종이 되지 못하고 마귀의 종이 되었다면. 그 사람이 남보다 잘생겼고 건강하고 남보다 출세했기 때문에 엄청난 죄를 범하게 됩니다. 마귀의 종이 된 사람은 빨리 없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강건하고 훌륭하게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종이 되고 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6~7절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6장 12~13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죄의 종 노릇 하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의 종, 의의 종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어떻게 써주시느냐에 따라 귀한 그릇이 될 수도 있고 천한 그릇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9장 21절에 보면,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귀히 쓰는 그릇이란 사람을 살리는 일, 영혼 구원받는 일을 하여 밝고 좋은 세상,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일에 쓰임 받는 것입니다. 천히 쓰이는 그릇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나 다른 사람이 저주받게 하는 일 등에 쓰임 받거나, 나라를 망하게 하고 백성을 고통을 당하게 하는 사람이 되거나, 심판의 도구로 쓰임 받는 것 등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귀히 쓰는 그릇으로 쓰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2절에 보면,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은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복을 받게 하여 세상을 복 받게 하는 일에 쓰임 받았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다윗과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열왕기하 9장에 보면, 님시의 손자이며, 여호사밧의 아들인 예후가 나옵니다. 예후는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예후는 악독한 왕 아합의 자손들과 아합 패거리들을 완전히 전멸시키는 일에 쓰임 받고, 바알 숭배자들을 완전히 전멸시키고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증손자까지만 왕이 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지 않고 금송아지 우상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이 천히 쓰는 그릇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시지만, 못된 인간들을 전멸시키는 심판의 도구로 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신 사람을 보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그들에게 능력과 지혜도 주시고, 기회도 주셔서 큰 역사를 이루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들어 쓰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모세에게 임하니까 홍해가 갈라지고 마라의 쓴 물이 단물이 되는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귀한 일,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일, 복된 일에 쓰임 받는 귀한 그릇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그릇이 되려면,
첫째, 자기를 깨끗이 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2장 21절에 보면,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그릇이 되려면, 자기를 깨끗이 해야 됩니다.
⑴ 자기 자신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철저히 회개하면,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회개하다가 불이 임하는 것을 체험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정결하게 될 뿐만 아니라, 죄를 이기는 능력, 거룩한 능력, 경건의 능력까지 생깁니다.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씻어주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넘어지고 쓰러질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대로 두면 안 됩니다. 성령께서 임하셔야 우리가 죄를 이길 수 있고, 거룩을 생명같이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철저한 회개를 해야 하는데, 우리의 죄를 하나님 앞에 낱낱이 자복해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주님 앞에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고난 받으신 주님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한 사람은 죄를 함부로 범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해보지 않은 사람은 죗값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릅니다. 주님의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모르고 감사할 줄 모릅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주님을 위해 고난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고난이 있으면 참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를 깊이 생각하고 눈물 흘려 기도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죄를 끊어버립니다. 죄를 멀리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주님께 감사하고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주를 위해 십자가를 달게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철저히 회개하려면 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죄를 끊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변하여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⑵ 자기 자신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철저히 회개하고 성령을 받아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디모데후서 2장 22절에 보면,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깨끗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은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신자다운 신자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은 사람은 시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은 시험의 바다입니다. 우리를 넘어지게 할 시험거리가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시험거리가 아무리 많아도 우리가 다 그것에 시험 받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험을 받게 되는 것은 욕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13절에 보면,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어 시험을 받게 되므로 시험의 원인은 욕심에 있습니다. 이 세상이 시험의 바다라고 해도 욕심이 없으면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욕심에 끌려 미혹되면, 시험 되지 않을 것도 시험이 되고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욕심을 품는 순간부터 마귀가 역사하기 시작하여 미혹되고 자꾸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므로 욕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릅니다.
야고보서 1장 14~16절에 보면,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욕심을 충족시키면 행복할 것 같지만, 욕심 때문에 망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욕심은 독약에 꿀을 발라놓은 것과 같습니다. ‘한 번쯤이야 어떨까’라고 생각하고 죄를 짓지만 모든 죄는 한 번으로 시작합니다. ‘모두 하는데 나도 하면 어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같이 망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되지’라는 생각은 사탄이 주는 생각입니다. 내 마음대로 회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죽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도 모르게 하면 되지’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처음에는 ‘한 번쯤 하면 어떨까’하고 시작했을지 모릅니다. 가룟 유다는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다 아셨습니다. 다른 사람은 속였지만, 속이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이 망하는 길입니다.
프랑스의 알베르 까뮈의 희곡 〈오해〉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중부유럽의 외딴 들판 한가운데서 여인숙을 경영하는 어머니와 딸이 살고 있었습니다. 장거리 여행을 하는 여행자들이 거기서 쉬고 갑니다.
그런데 이 모녀는 주변에 사람이 없어 외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 모녀는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사랑 받을 희망조차 없이 쓸쓸히 나날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무료하게 생활하면서 ‘우리가 돈을 좀 많이 벌어서 잘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범죄를 계획했습니다. 여행자들 중에서 혼자 온 사람이 돈이 많아 보이면 그 사람에게 마취약을 먹인 다음, 죽여 강에 떠내려 보내버렸습니다. 그렇게 돈을 모으며 늘어나는 재산 때문에 행복해했습니다.
그런데 이 집에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집이 너무 가난해서 어렸을 때에 가출을 했습니다. 어느 날, 그 아들이 성공해서 돈을 가방에 잔뜩 넣고 어머니를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와 여동생을 놀라게 해주려고 투숙객으로 가장했기 때문에 모녀는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 모녀에게 유일하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아들인데, 그들은 이 사실을 모른 채 똑같은 방법으로 아들을 죽였습니다. 시체를 버리고 가방을 열어 빛바랜 사진과 신분증을 보고서야 그들은 자기들이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인간이 욕심에 눈이 어두우면 스스로 불행에 빠지고, 결국 인생이 비극으로 끝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욕심을 품고 사는 사람은 욕심이 진행됨에 따라 얼마나 큰 불행을 가져올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깨끗한 마음을 유지하려면,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무엇보다 기도생활로 무장되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7장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우리는 거룩해집니다. 성령의 은혜 가운데 살아 거룩을 유지하려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무장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3~16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 은혜 받았습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고 나니까 어린 마음에 걱정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중ㆍ고등학교 6년 동안 어떻게 하면 은혜 가운데 바르게 살고 신앙을 지킬 수 있을지 걱정되었습니다.
걱정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다가 성령께서 제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세 가지를 결심하게 하셨습니다.
첫 번째 결심은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교회에 출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를 떠나면 반드시 신앙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결심은 ‘하루에 세 번씩 꼭 교회에 가서 기도한다’는 것이었고, 세 번째 결심은 ;‘성경을 하루에 한 장 이상 꼭 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결심하고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결석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학생예배에만 간 것이 아니라 학생예배가 끝나면 대예배도 드리고 저녁예배도 드리며 예배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학교에 갈 때, 집으로 돌아올 때, 저녁을 먹고 난 후, 교회에 들러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성경을 한 장 이상 읽었습니다. 어떤 때에는 하루에 열 장 넘게 읽기도 했습니다.
고3 때 고등부에서 헌신예배를 드리는데, 강사를 청하지 않고 제게 설교하라고 해서 졸업을 앞두고 바쁠 때였지만 헌신예배 시간에 설교했습니다.
그때 저는 “내가 중ㆍ고등학교 6년을 돌이켜 보니까 이 시기는 풍랑이 일어나는 바다와 같다. 신앙생활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올라갈 때에는 마치 천사가 된 것처럼 올라가고, 떨어질 때에는 마귀사촌같이 떨어진다. 마치 풍랑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처럼 6년을 그렇게 지냈다. 그런데 오늘 이 시간까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중학교 1학년이었을 때에 세 가지를 결심하고 6년 동안 지켰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후배들에게 그것을 꼭 지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성령께서 주시는 영감으로 한 것임을 지금도 믿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계속해서 깨끗하게 유지하려면, 교회에 열심히 나오고,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 받고, 언제나 기도생활에 힘써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는 역사가 계속되어야 합니다.
둘째, 순종의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순종해야 거룩이 유지됩니다. 베드로전서 1장 22절에 보면,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회개함으로 깨끗하게 할 수 있고, 진리를 순종함으로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의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사울 왕은 아말렉 원수들을 다 멸하고 모든 짐승들까지 다 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상 15장 22~23절에 보면,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제물 드리는 것도 귀하고, 예배드리는 것도 귀하고, 봉사하는 것도 귀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제사보다 순종하는 것을 더 좋아하신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순종하면서 예배드리고, 순종하면서 봉사하고, 순종을 앞세우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를 축복하십니다. 순종하면 모든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를 귀하게 쓰십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명하신 일을 어긴 일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귀하게 쓰셨습니다.
열왕기상 15장 5절에 보면,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빼앗은 사건 외에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어긴 일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원하십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기 원하십니까?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사람이 되기 원하십니까? 순종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높이 들어 쓰셨는데, 모세는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를 괴롭히고 원망불평하고 대적하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게 되게 하리라(출 32:10)”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못된 백성이지만, 모세는 자기 백성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사랑이 있는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다윗과 사울 왕을 비교해보십시오. 사울은 악독하고 증오심이 강했습니다. 다윗은 끝까지 하나님께 맡기고 끝까지 그를 용서하고 끝까지 그를 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죽은 다음에도 사울의 자손들에게 얼마나 사랑을 베풀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중심을 아시고 다윗에게 높은 권세를 주시고 크게 축복해주시고 크게 들어 쓰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요셉을 높이 들어 쓰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요셉이 원수를 갚았다는 말이 없습니다. 형님들은 자기를 팔아먹는 못된 짓을 하고 그를 죽이려고 했지만, ‘하나님이 심판하시면 했지, 내가 하나님도 아닌데, 하나님처럼 내가 형님들을 심판하느냐 그것은 하나님께 맡길 일이다’고 자기는 형님들의 자손들까지 잘 돌봐주고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랑의 사람이 되는 만큼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우리를 귀하게 들어 쓰십니다.
엘리야는 선지자 중의 선지자입니다만, 엘리야보다 더 크게 쓰임 받은 사람이 엘리사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엘리야는 엘리사보다 분명히 사랑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열왕기상 18장에 보면,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백 명, 총 850 명과 대결해서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도망간 그들을 다 붙잡아 기손 시내로 끌고 가 다 죽였습니다(왕상 18:40). 그리고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과 계속 대결했습니다(왕상 19장).
그래서 아합이 엘리야에게 항상 적대감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21장 20절에 보면, “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 대적자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가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었을 때, 믿음이 없는 이 왕이 바알세붑 귀신을 섬기는 사람에게 찾아가서 자기가 살지 죽을지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때 엘리야가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자 왕은 엘리야를 잡아오라고 오십부장에게 50 명의 군사를 붙여 보냅니다.
그때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해서 다 불태워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군사 50명도 그렇게 죽여 버렸습니다. 그것을 보면, 엘리야는 무시무시한 선지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선지자의 제자의 아내가 남편이 빚을 너무 많이 남기고 죽어 두 아들이 노예로 끌려가자 그 어려운 형편을 도와주었습니다(왕하 4장). 또 죽은 아이를 살려냈습니다(왕하 4:17). 나환자 나아만을 고쳐주었습니다(왕하 5장). 도단에서 자신을 죽이려고 포위한 아람군대가 맹인이 되어 다 죽일 수 있었지만,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떡과 물을 주고 돌려보냈습니다(왕하 6장).
이처럼 엘리사는 너무나도 사랑이 많은 선지자여서 다른 사람에게서도 사랑을 받았습니다. 열왕기하 13장 14절에 보면,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그에게로 내려와 자기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사에게 엘리야보다 갑절의 영감을 주셔서 크게 들어 쓰신 이유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내가 권세를 가지는가, 내가 얼마나 큰 능력을 가지는가는 문제가 아닙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에게 권세가 많습니다. 권능이 많으면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르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능력이 클수록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높이 쓰시는 사람이 되려면,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많으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구원받기 원하시지, 한 사람이라도 멸망하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죄인들을 회개하게 하고 죄인들을 구원하고 죄인들을 죽을 자리에서 살려내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똑똑한 사람이나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보다 사랑의 사람을 귀히 여기시고 크게 쓰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결국 서로 죽는 것이지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어떻게 쓰시겠습니까.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도 누군가가 그를 위해 눈물 흘리며 중보기도 하면 그 영혼을 살려냅니다.
사랑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에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남편이 밤낮 술만 먹고 방탕하고 말을 듣지 않는다고 원망불평하고 따지기만 하면, 남편은 괴로워 소망이 없습니다.
남편을 살리려면 그를 용서하고 그의 죄를 내 죄처럼 생각하고 그를 위해 울부짖고 그를 사랑으로 품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영혼을 살려내는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사랑의 사람을 크게 쓰시는지 아십니까? 사랑의 사람에게는 언제나 좋은 생각이 있고 좋은 꿈이 있고 좋은 비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목표를 가지고 삽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사람을 크게 쓰십니다.
넷째, 겸손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의 사람을 귀하게 쓰십니다. 베드로전서 5장 5~6절에 보면,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겸손한 자는 순종을 잘합니다. 겸손한 자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기뻐하시고 축복하시고 높이 들어 쓰십니다.
그러나 교만한 자는 불순종합니다. 감사할 줄 모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하고 자기가 영광을 누리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미워하시고 대적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그릇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그릇이 되려면, 자기를 깨끗이 하는 사람, 순종의 사람, 사랑의 사람, 겸손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이것을 염두에 두고 그대로 살아가신다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높이 들어 쓰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내 능력이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내 지혜가 됩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내 방법이 됩니다. 하나님의 큰손이 한번 역사하시면, 죽을 자라도 살리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그런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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